[이상과 잔재]


언제부터 눈을 감았던가.
세상이, 아니 이상이 눈을 떴다.



황급히 자신이 내릴 역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지만, 익숙한 열차의 좌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버스였다. 설마, 자신이 열차를 제때 내리지 못한...



이상은 눈을 감았다. 이건 잔재였다.
차가운 이성은 꿉꿉한 냄새의 현실을 일깨워주웠지만,



귀 뒤까지 몰린 뜨거운 피는 쿵쾅거리고 있었다.



방금의 잔재는 분명 W사의 자신,.. 지난번에 맞이한 인격의 잔재리라.



살인을 가벼이 여기던 검계의 자신,
괴상한 커피를 좋아하던 세븐협회의 자신,
알싸한 생강향이 풍기던 기해연의 자신...



다양한 자신의 잔재를 마주하였을 때 찌르르한 이질감에 전율하였지만



이번 W사의 자신의 잔재는 좀 더, 프리키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이 문제를 마주할 수도 없고, 변화를 마주할 가능성도 희박한 자신.



이상은 흐릿하게 떠오른 그에 관한 기억을 흩어버렸다.
그저 지금, 작은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거울세계의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숨을 조금 들이마시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잘 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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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