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107098065



“... 고양이 찾기.”

“다음.”

“뽀삐 포획.”

“다... 뽀삐는 또 뭐에요?”

“글쎄, 강아지 이름 아닐까?”

“그딴 짓에 잘도 해결사를...”
바퀴 달린 의자를 빙글, 펜도 빙글.
5월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한가한 사무소의 스피드 퀴즈 시간입니다.
제 직원이 병신같은 의뢰를 가져오면 전 오답을 외치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에요.

“좀 더 폼, 아니. 괜찮은 의뢰 없어요?”

“원래 우리같이 규모가 작은 사무소는 이런 일밖에 못 받는다고.”

“거짓말! 책에선 며칠 만에 도시 질병급 의뢰를 받았다고 했는데.”

“아마 그 사무소의 연줄로 어떻게 한 게 아닐까...”

“혹시 좋은 연줄 없으세요?”

“그럼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으하아아아암... 하품에 가까운 한숨. 

“방법이 없진 않아.”
오늘 들었던 말 중 가장 자극적인 말입니다. 나의 두 귀를 쫑긋,
어서 말해보시죠. 라는 표정으로 그를 슥 쳐다봅니다.

“공개 의뢰를 수락하는 거야. 최소 도시 전설급은 되니까.

그러면 왜 안 해요? 라고 물을까 봐 말하지만, 우리 둘로 도시 전설급 사건을 해결하긴 무리야.
4급 해결사 정도는 되어야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럼 어쩌라고요?”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다른 사무소와 제휴를 맺는 거야. 큰 사무소에 자잘한 도움을 주고, 소정의 보상과 이름값을 얻는 거야.”

“하청인가요?”
하청이라, 사실상 노예 아닌가요? 많은 사람이 저희 부모님 앞에서 굽신대는 걸 봐 왔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굽신대야 하는 걸까요? 

“그런 셈이지. 이쪽 의뢰 목록도 들어볼래?”

“선택권이 없네요.”

“고통의 불상, 재해 등급은 도시 전설.

S사에 고대부터 내려온 불상이 있는데, 이 불상을 보면 이성을 잃고 주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나 봐.

그래서 평소엔 케이스에 넣어놓곤 검은 천으로 가려 놨다는데, 이게 운송 중 도적들에게 탈취당해 행방이 묘연했다가, 뒷골목 번화가에서 발견됐다고 하네.“ 

“S사? 거긴 너무 멀잖아요. 가까운 데로 좀 추려줘요.”
모건은 스프링으로 된 메모장을 휙휙 넘기며 머리를 긁적거립니다.
가끔 ‘여기는 너무 멀고...’ 와 같은 바보 같은 혼잣말을 하네요.

“그럼 다음. KC 물산 암전 사건. 재해 등급은 도시 질병. 22구에 있는 곳이고...” 

“바로 근처네요. 거기부터 말하지 그랬어요?”

“재해 등급별로 설명하려 그랬지.”

“뭐, 가까운 데로 가죠.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어디 보자... 오늘이네? 17시! 17시까지 선풍기 사무소로 집결!”
시침은 3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분침은 한 5 정도에 위치했고요. 

“으아... 여기까지 2시간 만에 갈 수 있으려나...”
나는 손을 쭉 뻗어 그의 메모장을 탁 뺏습니다. 

“뭐야, 여기는 30분이면 가지 않나요?”

“뭐?”

“부모님이랑 이 근처로 몇 번 행사차 간 적 있어요. 별로 안 걸리던데요?”
모건이 하! 하곤 헛웃음을 짓습니다. 명백한 깔봄의 표시?

아니, 이건 오히려 백 피스 짜리 퍼즐을 끙끙대며 맞추는 5살 조카를 보는 삼촌 느낌... 
아~주 귀엽다. 귀여워~ 하는 듯한 저 표정이 마음에 들진 않네요. 

“그건 부자들 전용 차선을 써서 그래. 원래대로면 도로가 꽉꽉 막혀서 3시간은 걸릴걸?”

“거지들 사정을 제가 어떻게 아나요... 그래서 갈 수 있어요 없어요?”

“글쎄다, 지하철로 가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수도... 설마 지하철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알아요. 그 정도는 알아요. 그, 빙빙 도는 거 말하는 거 맞죠?”

“아니... 흠. 맞나? 아무튼, 타 본 적은 있나?”
그는 무슨 답변을 기대하는 걸까요. 난 15살 이후로 집 밖으로 발을 디딘 적이 드물다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 그럼 일단 출발하지? 세부 사항은 가면서 설명할게.” 


-


사람의 숨소리가 그리 불결한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이 시궁창 같은 냄새는 대체 뭐고... 아니, 그 전에.
 왜 사람들이 이 좁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비비적거리는 겁니까?

그 이유가 뭔진 몰라도 이 모든 불쾌감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모두 뭉쳐 하나의(당연 그 접착제는 땀이고) 사람 덩어리가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상황에 순응하기 직전 가까스로 탈출했고요.

“겨우 도착했네. 저기, 저 회색 빌딩 3층.”

“다음엔 여유로운 의뢰를 받아야겠네요. 이거 한 번 더 탔다간 인간 교자가 되겠어요.”

‘선풍기 사무소’
다 스러져가는 붉은 빌라들 사이 유일하게 우직히 서 있는 횟빛 건물.
일부로 못생긴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저 건물이 딱 그런 느낌입니다. 

“들어가자.”

털털털털털털... 건물 안에선 오래된 선풍기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왔군.”
사무소 안에는 머리를 의체로 바꾼 남성이 보입니다. 그 의체가 선풍기처럼 생겼다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그의 근처로 보이는 저 수많은 선풍기는 뭘까요? 높이도, 색깔도, 팬이 돌아가는 속도도 제각각. 
그 화룡점정은 천장에 달린 실링 팬입니다. 이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분간할 수 없게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자네들이 처음이야... 처음...”
스피커는 어디일까요... 난 내 머리칼을 날리며 생각합니다.

“하하...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상두 사무소] 소속 9급 해결사 모건입니다.”
몇분 늦은 거로 뭐라고 하지 않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담긴 말일 겁니다. 
근데, [상두 사무소]라뇨. 기분 좋네요.
뭔가 야릇한 느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약속 시간, 약속 시간 말이다...! 계획은 17시에 전부 집결하는 거라고.”
남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시계를 가리킵니다.

“거기, 9급! 지금이 몇 시지?”

“예?”

“시간, 시간 말이다. 17시 4분이다. 근데 왜 아무도 없는 거지? 이 좁은 사무소에 왜 우리 세명밖에 없는 것이지? 한명은 대체 어디로 증발한 건가?”
남성은 분을 이기지 못한 듯 근처의 선풍기들을 걷어찹니다.

“이것들이 날려 보낸 건가? 이, 이 고물들이?”
남자의 발이 닿는 곳마다 불쌍한 고철 덩어리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나옵니다.
뭘까요? 일종의 자기혐오?

“지... 진정하십쇼...”

“저 대가리에 박아놓은 선풍기엔 열을 식혀주는 기능은 없는 걸까요..?”

“열내지마~ 선풍기.”
묘한 분위기 속에 긴 코트를 입은 장발의 여성이 들어옵니다.

“[선풍기 사무소] 소속 5급 해결사 잠자, 입니다. 지나갈게요~”  
되직한 목소리의 그녀가 우리 사이를 가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늦었다. 늦었다고! 지금이 대체 몇분이야?”

“그래, 그래. 길이 막혀서~”

“넌 자동차도 없잖냐!”

“아, 다음부턴 안 늦는다고.”

“사... 상당히 뻔뻔하시네요...”

“난 유능하니까. 근데 넌 누구?”
전혀 농담이 아니었는데. 누구는 생지옥을 헤쳐나왔다고요. 지각 하지 않으려고. 

“아, 이분은 제 사장님. 그러니 [상두 사무소]의 대표인 8급 해결사 상두라고 하십니다.”

“아아 그렇구만, 잘 해보자고.”

“진짜 해고할 거야 썅년...”

“해고하면 여기 불 지를 거야. 그 선풍기들로 잘 꺼보라고.” 

 “좆까, 아무튼. 다 모였으니 브리핑을 시작한다.”
그의 말이 끝남과 함께 주변의 선풍기들이 전부 픽, 하고 멈췄습니다. 
덕분에 귀를 거슬리게 하던 소음들이 사라졌습니다. 

“그것때매 대...대가리를 의체로 바꾼 거에요? 선풍기 제어?”

“멋있지 않나?”

“와정말멋지네요”

“그거 고맙군. 이제 내 말 끊지 마.”

“자... 8시간 전, KC 물산에서 작은 소음과 함께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다. 

동시에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가 건물의 창문에서 폭발적으로 분출,
사건 발생 1시간 후 건물을 뒤덮고 근처로 확산하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액체에 인체가 접촉할 경우, 낮은 정도의 화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영향력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를 인지한 KC 물산의 모회사에서 세븐 측에 의뢰를 요청했고, 세븐의 자체적인 판단하에 공개 의뢰로 전환. 우리 [선풍기 사무소]에서 해당 건을 맡기로 했다.“

“우리의 목표는 검은 액체로 뒤덮여, 내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KC 물산의 건물로 진입,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와 잠자는 돌파를, [상두 사무소]는 ‘밧줄’의 관리와 우리의 뒤를 맡는다.
브리핑은 여기까지. 질문 있나?”
모건이 손을 듭니다.

“질문... 해도 되나?”

“허가한다.”

“밧줄이 뭐지?”

“관련 정보는 작전 개요에 적어뒀다. 진입 전 확인하도록. 또 질문?”

“좋아, 없으면 10분간 정비 후 출발한다.”
뭐, 질문을 받으려는 태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때 꼭 질문으로 수업 시간을 늘리던 눈치 없는 놈들이 한 둘씩 있었죠. 모건을 보니 딱 그 친구들이 떠오르네요... 

-

먹물만큼이나 시커먼, 그리고 찐덕한 액체가 찰랑거림을 느낍니다.
탁자에 물을 쏟은 듯 여기저기 흩뿌려진 검은 액체가, 저마다의 손을 쭉 내뻗어 점점 사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둥지로 향하는 방향이 눈에 띕니다. 저것 때문에 의뢰가 들어온 거겠지요.

“사장님, 몸에 안 닿게 조심해.”

“밧줄이나 잘 간수하세요. 만약 뭔 일이 생기면 의지할 건 그거밖에 없으니까요.”

“매정하긴...”

“잠깐. 정지. 신원을 밝혀라.”
누군가 우리를 막아서네요... 저 구린 초록빛 제복은 분명 세븐... 협회? 였던 거 같은데요. 

“[선풍기 사무소] 대표 3급 해결사 팬, 그리고 그 외 무장 인원 3인의 작전 지역에 진입 허가를 요청합니다.”

“확인했다. 4인의 작전지역 진입을 허가한다.” 

“추가로, 19시까지 별도의 연락이 없을 시 추가적인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원래 이렇게 절차가 빡빡한가요?’ 
내가 소곤소곤 모건에게 묻습니다. 시끄럽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라서요.

‘세븐 임감 하에 있는 의뢰는 절차가 빡세다고 들었어.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팬, 그러니 선풍기 사장은 종이에 이리저리 서명하곤 건물의 입구로 향합니다.

“자, 모든 절차가 끝났다. 들어가자고.”
첫 의뢰라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이라도 했을까요. 

도시 사람들의 냉소가 아녔다면 난 아직도 방 안에서 쪼그려 있었겠죠.
흥분으로 몸이 바르르 떨립니다. 

좋아요, 저 검은 아가리로 한번 대가리를 쑥 밀어보자고요.




(여기부터 본편 아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앞으로 상두의 여정은 화, 목, 일요일 7시에 정기적으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드리며 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