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피로 점철된 열차 복도안에서 머리를 벽에 부딪친다.

하염없이 부딪치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소름끼치는 적막 속에서

단순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일에 치여살다 잠시간의 안식을 찾아 떠나는 사람. 출장때문에 다른 둥지로 가야하는 사람. 연인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기분을 즐기던 사람.
아내를 위해 전을 사러 잠깐 옆둥지로 갔다오려던 사람이 있었다.

다양한 사연, 이야기, 감정들을 가득 실고 출발했던 열차는

날개를 저주하며 갈기갈기 찢겨진 사람.

잠깐인줄 알았던 출장이 억겁의 시간이 되었음에 절망하며 목을 그은 사람

연인을 지키려다 미쳐버린 연인의 손에 머리통이 갈라진 사람

이들 모두를 공평하게 다져버린 사람

다양한 사연, 이야기, 감정 모두가 새빨간

피, 고통으로 점철되어

망각의 너머로 사라졌다.



오늘로 몇일째더라

아니.... 몇년째더라....

나는 무엇때문에 머리를 벽에 박고 있더라

이미 이마는 짖이겨져 피가 넘쳐흐른다.

골백번은 반복햇을 자해에도 내 머리통은 아직 멀쩡하다.

너무 튼튼한 탓일까

너무 강했던 탓일까

미쳐서 날뛰는 승객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사랑하는 이를 두번 다시 만날수없다는 절망감과

왜 나에게 이딴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구심과

갈 곳 잃은 감정과

서서히 매몰되어가는 기억이

너무나도 서글퍼서

너무나 무료해져서

혹시라도 안젤리카를 슬프게하고 싶지 않아서

편히 몸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편히 기억을 내려 놓지도 못하고

멍청한 머리를 조금이라도 자극하고자

자괴하는 인형처럼

자해하는 수도승처럼

머리를 부딪친다

시작하고

끝났다

시작하고

끝난다

시작했으나

끝낼수없다

어찌 잊을까

어찌 내려놓을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친했던 이들의 등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고작 데미그라스 소스 한번 맛봤다고 죽을뻔 했던일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구해줬던 동료

다행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게 있어서

....

구해준게... 누구.. 였더라...

모르겠다

왜 기억하려 했더라

안돼

안돼

잊어서는 안된다

안젤리카

안젤리카

다행이다

아직은 기억한다


...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사랑하는 안젤리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너와의 추억을 놓지않겠다

하염없이 머리를 부딪치겠다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안젤리카

...


























"역시 워프열차는 편리하구만."
한순간에 도착한 열차안에서 롤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를 쓸었다.
아내가 부탁했던 전을 담은 비싸게 주고산 보관함을 챙기고 내리려던 찰나.
"손님? 혹시 해결사이십니까?"
험상궂은 인상의, 그리고 어딘가 매우 피곤해보이는 워프열차 직원이 롤랑의 어깨를 잡고 멈춰 세운다.
"네?"
어떻게 알았을까? 해결사로 일할때는 항상 인식저해가면을 쓰고 일했기 때문에 그를 해결사로써 알아볼 사람은 없다.
"어떻게... 아셨죠?"
롤랑은 경계하며 되묻는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과 경계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직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최소 1급 해결사로 추정되시니 운영수칙에 따라 범칙금을 부과하겠습니다."
"엑."
범칙금이라니. 롤랑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린 직원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워프열차 이용 안내수칙 11번. 2급 이상의 해결사나 그에 준하는 무력이 가능한자는 1등석에 타는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롤랑은 머리를 긁으며 쓰게 웃었다.
"아하하... 그게... 최근에 지출이 좀 커서... 돈좀 아껴볼려고..."
직원은 결제 단말기를 꺼내어 롤랑에게 내밀었다.
"사정이야 어쨋건 열차수칙을 위반하셨으니 범칙금을 내셔야합니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분쟁은 사절이다. 돈만 내고 해결할수 있는 문제라면...
...
"...비용이 생각보다 좀 쌔네요...?"
이정도면 거의 1등석칸 이용요금 수준이다.
"전투무력이 강하신분들이 일반승객칸에 탑승하면 열차운영에 무리가 생길수도 있기때문에 범칙금을 강하게 물리고 있습니다."
롤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결제를 하였다.
"으음... 죄송합니다."
힘이 좀 쌘사람이 타면 무리가 생기는 열차라니 여전히 영문 모를 기술이다.
도시의 특이점이란게 다 그모양 그꼴이긴 하다만.
"다음번에는 반드시 1등석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손님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을 덧붙인 직원은 그대로 등을 돌려 돌아가버렸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워프열차덕에 일찍 집에 도착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사랑하는 아내가 저녁식사를 준비중이겠지.
전과 약간의 술을 곁들인 후식이라면 더더욱 즐거워지겠지.
롤랑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