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침대 위에 걸터 앉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막막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기억은 없지, 수감자들은 늘 말썽을 부리고, 베르길리우스는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묻기 일쑤다. 


책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황금 가지를 모은다는 사명이 나를 올바르게 이끄리라 믿는다. 아니, 믿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도시라는 기이한 환경이 나를 간혹 어지럽게 만든다.


불안감은 언제나 새벽에 찾아왔다. 마음 속에 묻어둔 생각 파편이 두둥실 떠올라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게 맞는가? 

원래 모든 존재는 비참하게 죽어갈 뿐인가? 


기억을 잃은 건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건 수천번은 넘는다. 혹은 더 될지도.


도시 사람은 죽음을 가볍게 받아들인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철저한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붙이고, 기꺼이 슬퍼하며, 결국엔 무너져내린다. 


유리, 그녀는 어딨지. 관리자인 내가 그녀를 막았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른 인연들은?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무참히 시곗바늘을 돌리지 않는 것으로도 말이다.


후회와 죄악감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솔직한 심정으로 죽고 싶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들때면 그 날은 어떻게든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다가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도시에 좀 먹힌 것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인가. 생각하고 고뇌하며, 결국엔 수긍한다. 


남는 건 공허함 뿐. 같잖은 의미를 부여하기엔 난 너무 멀리 왔다. 


침대에 몸을 뉘인다. 삭신이 다 아파왔다. 오늘 그레고르의 몸이 박살났고, 로쟈의 팔이 날라갔으며, 이스마엘은 목이 잘렸다. 당연하지만 나는 그들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들과 동일한 고통을 겪었다. 분명 정신적인 충격이었지만 이상하게 근육이 아팠다.


간혹 생각한다. 내가 되살린 이들은 과연 내가 알던 그들이 맞을까. 그들의 가죽을 뒤집어 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가 알던 이들은 정말로 죽었고, 다른 세계에서 대체했을 수도. 


불확실성이다.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간혹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과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 상사와 부하? 전우? 공통 분모는 많다. 전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레고르도 돈키호테도 이상도 로쟈도 료슈도 싱클레어도 뫼르소도 히스클리프도 오티스도 홍루도 이스마엘도 파우스트도.


아무것도.


그저 찰나의 인연이다. 도시는 찰나를 제공하고, 나는 그 자원을 쓰는 것뿐이다. 이들과 나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베르길리우스도 말했었다. 파우스트도 얘기했었다. 나 역시 수긍했다.


째깍거리는 소리에 고요한 방안에 울렸다. 방 안에 시계는 없었지만, 시각은 예감할 수 있었다. 늦은 새벽. 시간은 늘 빠른 것 같다. 날 기다려주지 않으니깐.


눈을 감자. 잠을 자자.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자. 아침이 되면 조금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다. 기억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수면을 취하고 내일을 맞이하자. 


나는 도시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떠나간 그들과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다. 오늘을 이겨냈으니 내일도 이겨내자. 


눈을 감는다.


활짝 펴진 상념은 다시 잦아들고 수그러진다.


난 오늘도 내가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명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 찰나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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