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새치 항구에 있는 어느 자그마한 술집에서 한 남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만 나가려고 했고 그런 그를 에이해브는 만류하려 했다.


“푸흐, 더는 못 마시겠군.”

“아직 새벽 3시밖에 안 됐는데 좀 더 마시지 그러나? 주머니 상황이 빈곤해서 그러나? 오늘이라면 특별히 럼주 3병까지는 외상으로 해주지.”

“주머니가 문제가 아니라 내일은 슬슬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거든. 배를 타야 하는데 맑은 정신으로 가야지 술에 꼴아서 가면 되겠나? 그건 과거에 유명한 선장이었던 에이해브,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자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경이롭고 위험한 삶의 전장으로 떠나야 하므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으니까.


한때 선장이었던 그녀로서는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통증이란 것을 느낄 수 없게 된 오른 다리의 절단면에서 시큰한 아려옴이 올라왔다.


말을 잃고 침묵하여 멍하니 있는 에이해브를 보며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크흠, 이만 가봐야겠어. 그리고 오늘따라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오늘은 일찍 문을 닫고 쉬는 게 어떨까 싶은데.”


“….”

하지만 에이해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남자는 ‘다음에 또 올게, 에이해브.’ 라고 짧게 인사만 건네고 나가버렸다.

에이해브는 멍하니 서서 약 1시간 전 까지만 해도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했던 자신의 술집의 풍경을 바라봤다.

이리저리 어질러진 남겨진 음식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의자들.
이곳저곳 흩뿌려진 토사물들.

공허하고 텅 빈 공간에 아무 의미 없는 오물들만이 들어찬 술집을 보며 에이해브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

지금의 술집의 광경이 마치 자신과도 같이 느껴졌다.

남겨진 음식은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이 죽어버린 뒤 혼자 남은 자신을 떠올리게 했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의자들은 한때 유명한 선장이었다는 이름값에 이 술집을 찾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으며.


이곳저곳 흩뿌려진 토사물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이어가고 있는 자기 행동들을 연상시키게 했다.


에이해브는 방금까지 활기가 가득 했던 술집을 떠올리며 한 때 생기가 넘쳤던 자신의 과거를 곱씹었다. 













에이해브는 한 때 자신의 소중한 것들은 모두 대호수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여겼다.

그 전의 그녀는 삶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에이해브는 한 때 자신의 소중한 것들은 모두 대호수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여겼다.

그 전의 그녀는 삶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R사 둥지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갔던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삶에 염증을 느끼게 됐다. 자기 삶의 색이란 것을 찾고 싶어 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R사 내부에 있는 블릿협회 라는 곳으로 들어가서 해결사로서 일하게 됐다.


해결사로서의 일은 R사의 간부 중 한명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덕에 카리스마가 있고 통솔력이 높은 에이해브에게 잘 맞았다.


그녀는 금방 실적을 올릴 수 있었고 신참 9급 해결사는 빠르게 성장하여 어느새 5급 해결사의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녀는 해결사로서의 흥미를 점점 잃어갔다.


기존에 하던 일들에 비하면 ‘자신의 색’ 을 찾은 것 같긴 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여전히 자신은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무미건조한 삶을 산다고 느꼈다.


그러던 도중 에이해브는 블릿협회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U사의 에잇 협회라는 곳의 협조 요청으로 처음으로 배를 타게 됐다.


그때 에이해브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지와는 다른 대호수만의 특별한 경치에 푹 빠졌고.
대호수에서만 볼 수 있는 온갖 자연재해를 겪으며 대호수에 경의를 품게 됐으며.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에 푹 빠졌다.

에이해브는 그때 생각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도시가 아니라 이곳 대호수라고.

내가 되어야 할 것은 아무 의미 없는 무색무취의 해결사가 아니라 이 경이로운 호수를 정복해나갈 수 있는 선원이어야 한다고.


언젠가는 나만의 배를 얻고. 

나만의 항해를 하고 싶다고.


에이해브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배에 오를 때마다 선원들에게 이런저런 노하우를 배우고.

대호수의 이런저런 역경을 이겨나가며.

도시에 있을 때는 선원으로서, 선장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우는 데 전념했다.


그 결과 에이해브는 처음으로 대호수를 접한 뒤로부터 약 5년 후에 3급까지 올라간 해결사를 그만두고 한 배의 선장이 될 수 있었다.


자신만의 배를 가지고.

자신과 마음에 맞는 선원들을 데리고.


많은 즐겁고 멋진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소중한 인연을 여럿 만들었다.


많은 괴로움과 슬픔도 있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괴로움과 슬픔을 겪는 만큼 강해져서 다음에 같은 재해를 겪어도 전보다 더 적거나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어느새 에이해브는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이름 있는 선장이 되어있었다.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기로 약속한 연인도 생겼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생각했었다.


대호수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자신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선물해준 고마운 존재라고.

언제나 경의를 가지고 진중하게 대해야하며.

언젠가 늙어 죽거나 재해를 극복하지 못해 죽는 그 날까지 선장으로서 살고 싶다고.


한때는 그랬었다.


진정한 재앙을 눈앞에 목도하기 전까지는.



-------------


반응 좋으면 더 써본다.
과거에 대해선 나온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전부 지어낸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