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편



"단테 씨, 날도 추운데 우육면에 고량주 한 잔 곁들이러 가는 거 어때요? 마침 이 근방에 제가 단골로 가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런 거 보다는 든든하게 땅고기 외식을 때리는 게 낫죠. 원래 사람은 고기를 먹어줘야 힘이 난다는 거 몰라요?"


"우육면에도 고기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이런 날에는 뜨끈한 국물로 속을 지져야 감기도 안 걸리는 거라고요."


"그러면 땅고기 잔뜩 먹어서 기름으로 속 지지면 되죠! 그리고 고량주니 뭐니, 그런 거보다 제가 직접 담근 술이 더 낫거든요?"


"으윽, 아… 진짜… 목소리 좀 낮춰요 제발… 여기 있으면 조금은 편히 쉴 수 있나 싶었는데…."


"음~ 저는 고량주도 마시고 싶고 다른 제가 직접 담궜다는 술도 마시고 싶네요. 술을 술안주 삼아서 딱 한 잔, 캬~"


<얘들아, 얘기를 나누는 건 좋은데… 난 너희들이랑 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언제부터 단테 씨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어?>




로쟈 편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파티가 있어야지~ 이번에 내가 파우스트에게 졸라서 먹을거리 많이 사왔으니까, 다들 맘 놓고 먹어."


"좋네~ 난 그러면 초코 퐁듀에 마시멜로 가득 담긴 걸로 할게. 일 하도 고되다보니 한 번 나갔다오면 달달한 게 땡기더라고."


"어머, 너도 그래? 나도 의뢰자 지킬 때 달달한 게 옆에 없으면 진정이 안되더라고. 아, 나는 초코 도넛으로 부탁해?"



"다른 나들은 단 걸 좋아하나 보네? 나는 고기가 좋더라고. 한 바탕 칼부림을 하다보면 온몸에 피비린내가 배기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만 구워진 스테이크를 먹어야지 진정되더라."


"난 말이지~ 먹을 거도 좋은데 다같이 먹는 게 좋더라. 그래도 정 혼자 먹는다면… 역시 후추랑 파 썬 거 팍팍 넣은 설렁탕 한 그릇 때리는 게 최고지. 특히 카지노에서 잭팟 띄우고서 먹는 설렁탕 만큼 맛있는 건 없더라고~"



"뭐야뭐야,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한 먹보 했네? 역시 사람 천성은 어쩔 수 없다니까~ 내가 소속된 협회에서는 내가 하도 많이 먹는다고 맨날 눈치 주는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어~"


"그게 맞지,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게 먹을 거 가지고 타박하는 거라잖아~ 어라? 근데 거기 다른 나는 왜 아무것도 안 먹어?"


"우후훗… 저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전 먹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되려 최근에는 몸을 순수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단식에 접어들어있죠."


"…뭐?"


"놀라셨나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다른 저들이 오히려 이상하군요. 음식이란 건 결국 세치 혀를 거치고 지나가면 오물덩어리로 변할 것인데, 어째서 그것에 그리 연연하시는 거죠? 불변이란 쥐는 자의 언약이자 순수한 저희들의 육신일진데."


"너… 미쳤어?"


"미친 년 맞아. 눈깔 좀 봐. 어휴, 동네 어시장에 있는 건어포 눈깔이 더 생기있어 보이겠다 야."


"후후훗, 아둔한 것들 같으니라고. 쥐는 자께 선택받지 못한 저는 이리도 천박하기― 무, 뭐죠? 이거 놓으세요!"


"잠깐만, 얘 이제보니 갑옷 아래에…."


"뭐야, 이 가는 팔… 뼈랑 가죽만 남아서 서 있는 게 고작이잖아…."


"…야 안되겠다. 각자 몰래 뽀려왔던 간식거리 있으면 싹 다 들고와봐. 그리고 다른 애들 있는 곳에 가서 먹을 거 더 있는지도 알아봐야겠어."


"그래야겠어. 얘가 원채 못 먹어 버릇해서 잘 먹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모르네. 단식 같은 끔찍한 짓을 왜 하는거야?"


"이, 이 잡것들이…! 이거 놔! 무, 무슨 힘이 이리들 쎄…?!"





싱클레어 편



"저 왔어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아, 아! 다른 저 잘 오셨어요! 아무거나 막을 거 좀 가져와주세요! 빨리요!"


"어… 네? 막을 거는 대체 왜―"


"그 오물을!!!"


"빠, 빨리요! 이러다가 겨우 방에 가둬놓은 제가 뛰쳐나오겠어요!"


"그러니까 대체 왜 의체 얘기를 꺼낸 건데요!!"



"으아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제가 있던 동네 분들 얘기한건데…!"


"부, 부적도 다 떨어져가요…! 이제 남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죠? 다, 단테 님을 불러와야 할까요…?!"


"어, 어어, 그러니까…."


"아… 그래! 이거라면… 호, 혹시 남는 종이랑 적을 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조, 종이 여기요! 그런데 이걸로 뭐 하시게요?!"


"있어요 그게! 저, 저기…요! 이거 좀 보세요! 이거 뭐라고 적혀있나요?!"


"떼어내주― 뭐? 파오차이라고 적혀있잖아?"


"지금 파오차이라 했소?"







오티스 편


"본디 이렇게 우리들이 마주한다는 일은 있어선 안되는 일이지만, 특별히 이번만큼은 관리자님께서 우리들을 생각하여 주신 덕분에 일어난 기적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이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관리자님께 온몸으로 감사함을 느껴야하며, 혹여나 관리자님의 신변에 누가 되지 않게끔 각별히 주의하도록!"


"흐음…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네. 다만 나는 한 부서의 장으로써 있기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부외자를 상급자로써 존중할 순 없네."


"하, 네녀석의 귓구멍은 장식으로 달려있나? 네놈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조차도 관리자님의 은덕일텐데."


"밀린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가운데에 업무 흐름을 끊어내고 나를 이 자리에 강제로 초청한 것을 은덕으로 취급한다면, 내 앞서 말한 것도 그 자에 대한 예우라고 해두지."


"나도 어느정도 그녀의 말에 동조하는 바이다. 제아무리 민간인 신분이라 할지라도 숙면을 취해야할 시간이 이리 불필요한 만담을 하게 시키다니… 내가 관리자였다면 차라리 야간 훈련을 투입시켜 정신단련에 치중했을 거다."


"지금 그 말은 하극상의 의미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군. 내가 니녀석의 목을 도려내 관리자님께 충절의 증표로 써야하나?"


"해볼 수 있으면 해보지 그러나. 다른 나라 할지라도 민간인 따위에게 질 만큼 내 삶은 평탄하진 않았으니."


"다들 날카롭구만. 이럴 때는… 역시 술 만한 게 없지. 다들 한 잔 씩 받지 그래."


"술이라… 좋군. 한 잔 주게. 청명한 술잔에 달 하나 담아마시면 마음이 평온해지곤 하지."







그레고르 편



"신고합니다! 입사를 명 받은 그레고르라고 합니다. 작전에 함께 투입되어서 영광입니다!"


"어, 어어~ 그래그래, 반가워 나도 그레고르야. 편히 있어 편히."


"아닙니다! 저희 G 사의 영웅이신 분을 앞에 두고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혹여나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시급히 처리하겠습니다!"


"그…으래, 그래도 있잖아. 너무 그러진 말고 편히 있어. 진짜로. 형씨가 이러는 게 내가 더 부담스러우니까."


"형씨 고생이 많네. 댁 이렇게 대우 받곤 하는 거 싫어하지 않아?"


"맞어, 그렇지… 허 참, 내 살다살다 나 자신에게 경례를 받아보기도 하고… 인생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단 말이지."


"원래 인생이 그런 법이지. 떵떵거리며 잘 돌아다니던 배도 파도 잘못 만나서 인어 됐다는 얘기가 허다하듯이 말이야. 그런데 형씨, 여기 세계의 난 여자라고 하는데… 사실이야?"


"어? 어어… 그으, 렇지? 근데… 왜 그런걸 물어보시나?"


"아니 뭐, 듣자하니 꽤나 쌔끈하게 생겼다고 하길래… 때마침 지내는 곳도 클럽이래잖아? 만나볼까 해서."


"뭐? 아니 이 아저씨가 미쳤나, 뭐 그런 미친 생각을 하고 있어?!"


"이게 왜 미친 생각이야? 나나 댁이나 똑같이 생겼어도 다른 사람인 거처럼, 여기 세계의 나도 결국엔 다른 사람이잖아? 남자가 여자 만나러 클럽 간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


"오… 설득력 있는데?"


"설득력이 있기는 개뿔이!"


"클럽이라… 생각해보니 나도 예전에 종종 클럽에 가본 적 있었지. 근데 가보니까 상태가 영 안좋더라고."


"뭐가? 수질이?"


"아니, 육질이."











단테 편



<헉… 헉, 겨우 빠져나왔다… 도대체 이게 뭐야, 왜 이스마엘이 나를 붙잡고 옷을 벗기려고 하는건데…?!>


<하아… 후, 일단 진정하자. 시간 되면 알아서 유리창이 해제되거나 베르길리우스가 와서 도와줄테니… 그 때까지만 여기서 숨어있자. 아무도 모를 곳이니까…."


"단테 씨… 여기 있으면, 제가 못 찾을 줄 아셨나요?"


<어?>


단테는 그대로 시협회 이스마엘에게 붙잡혀 이스마엘의 방으로 끌려갔다.


그가 다시 나올 수 있던 건 일주일 뒤에 베르길리우스가 카론과 나갔다 돌아온 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