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구인회를 T사에 밀고해 구인회가 해체된 뒤, 이상, 동백, 동랑은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피쿼드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상은 일등 항해사, 동랑, 동백은 그냥 작살잡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번에 강하게 찌를 수 없으면 여러 번 찔러서 빈틈을 만들어내는 거지. 일단 처음에는 다들 어렵겠지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쉬운 일 하나 없네. 우리가 어쩌다가..."


"선원들! 전원 갑판으로 집합!"


 이스마엘 선장의 호통에 모든 선원이 갑판 위로 올라와 집합했다.


 "우리의 목적은 바로 증오의 창백한 고래를 죽이는 것이다!"


 솔직히 이스마엘 선장이 이전에도 창백한 고래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 적은 몇 번, 아니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것은 구인회 그 누구도, 아니 대부분의 선원들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우리가 어떻게 그 오재앙을 죽여? 특색도 한입에 잡아먹을 것 같은 그 괴물을?"


 "동백 말이 맞소. 설령 특색이 우리 곁에 있다 해도 이는 그저 자살 돌격에 불과할 뿐이오. 선원들, 우리는 고래 기름을 팔아 돈을 벌러 온 거지 선장의 허무맹랑한 복수극 따위에 동참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잖소."


 "물론 이게 미친 소리라고 항변할 선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이스마엘 선장 덕분에 이 배 위에서 죽은 선원들은 단,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오랜 시간 짜왔던 계획인만큼 그 창백한 고래 따위는 우리 앞에서 갈대처럼 쓰러질 것을 장담한다! 그럼에도 정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자네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다! 바로 이 금화!"


 이스마엘은 자신의 옆에 있는 금화가 가득 든 상자를 열어서 모두에게 반짝이는 금화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창백한 고래를 잡은 선원들에게 내가 약속한다. 그 부산물과 엄청난 양의 고래 기름을 통해 살아남은 선원들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두 배, 아니 열 배의 금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제 창백한 고래 사냥에 동참할 것인가?"


 (선원들)

 "와아아!"


 

 "죽인다. 창백한 고래."


 분위기는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고, 전세는 이미 이스마엘 쪽으로 크게 기울었지만 동백과 이상은 동랑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백, 이상, 이제 그만해. 배 위에서는 선장이 곧 법이야."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요? 다들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이오?"


 "야, 선장 이 얼간이야! 뒤질 거면 혼자 뒤져! 우리까지 같이 끌어들여서 같이 뒤질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말고."


 "선원들, 당장 내게 반항하는 선원 저 둘을 꽁꽁 묶어서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원들은 이상과 동백을 밧줄로 꽁꽁 묶어 선장 앞으로 끌고 왔다.


 "선장 명령에 반항하는 선원들은 전부 꽁꽁 묶어서 대호수에 빠트린 뒤 따개비 찜질을 해야 하지만 난 자비로운 선장이니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내 방으로 보내라."


 "야, 뭘 하려고? 대체 선장실로 끌고 가서 뭘 하려고?"


 두 선원은 꽁꽁 묶인 채 선장의 방에 내던져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대화만 나눌 수밖에 없었다.


 "동백, 괜찮소?"


 "괜찮아. 별 문제 없어."


 "그나저나 선장 새X 처음 봤을 때는 정상인인 줄 알았는데 상또라이였을 줄이야. 이 배에 괜히 올라탔어."


 시간이 꽤 지난 후, 선장이 금화 상자를 들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 둘, 잘 반성하고 있었나?"


 "반성은 무슨 반성! 자기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푸주한에게 꼬리를 살랑이며 반가워하는 소가 어디 있냐?"


 "반성의 여지가 없군."


 선장은 문을 잠그고 금화 상자를 침대 아래에 놓은 뒤, 동백과 이상의 밧줄을 풀고 명령했다.


 "해."


 "뭘?"


 "그러면 선원들 다 보는 앞에서 할까? 아니면 내가 이상과 함께 할까?"


 "혹시 성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오?"


 "그래. 참고로 내가 만족 못하면 이상 넌 나랑 다시 하게 될 거야."


 "이, 이 미친 선장 새X가...!"


 "동백, 참으시오. 적어도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하지만 지금..."


 "아무리 수치스러워도 죽을 수는 없소. 일단 명령이라면 따라야지."


 "그래! 알겠으니까 할게. 하면 되잖아!"


 그렇게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선장 앞에서 떡을 치기 시작했다.


 "야, 사, 상아. 좀 살살해. 쪽팔려 죽겠는데 너까지 이래야 하겠니?"


 "하아, 하, 하아..."


일이 끝나자 선장은 흔쾌히 그들을 선장실 밖으로 내보냈다.


 "좋아. 이번만큼은 통 크게 용서해주지. 하지만 봐주는 것도 한계는 있으니까 반항도 상황 잘 보면서 하라고."


 선실로 내려간 그들을 맞이한 건 동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후우, 대답도 하기 싫다."


 "대체 선장실에서 무슨... 아니다.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기회를 노려야지."


 "기회라니?"


 "잘 들어봐."


 며칠, 아니 한 달은 족히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선원 거의 전부가 세뇌된 와중에도 이상, 동백은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동랑은 인어들과 싸우다 큰 부상을 입었다.


 "이상, 빨리 조각배를 내려라."


 "하지만 선장님..."


 "명령이다."


 이스마엘 선장의 명령 없이는 그 누구도 배 위에서 죽을 수 없다. 그렇기에 조각배를 내리고 죽기 전에 피쿼드호에서 내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예... 이스마엘 선장님."


 자신을 내쫓길 망설이는 이상을 바라보던 동랑은 곧 끝을 직감했는지 이상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이상. 내, 내가..."


 "동랑, 작별이오."


 "아니.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랑은 이상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자 이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동랑의 속삭임을 전부 들은 이상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조각배를 내리고 동랑을 태운 뒤, 무거운 어깨로 선실로 내려갔다.


 "...잘 가시오."


선실로 들어가자 동백이 이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동랑은?"


 "조각배에 올라탔소."


 "야, 어떻게 네가 동랑을..."


 "동랑이 떠나기 전에 내게 고백한 게 있소."


 "뭔데?"


 "떠나기 직전, 구인회를 밀고한 배신자가 자신이라고 고백했소."


 동랑이 구인회를 밀고했다는 말에 동백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잠시 멍하니 있다가 분노를 꽃잎 터지듯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 이.. 변절자 새X! 그러고도 우리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던 거야?"


 "그렇소. 마음만 같았으면 복부에 작살을 박고 내던졌겠지만 벗으로서의 마지막 자비로 편히 보내주었소."


 동백은 동랑이 배신했다는 말에 마음이 착잡했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이상, 우리라도 이 미친 곳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자. 커다란 항구선에서 네가 원했던 대로 카페도 차리고 둘이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거야."


 "약속하겠소."


 또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 피쿼드호는 드디어 창백한 고래와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선원이 전투 준비를 하는 마당에 한 작살잡이는 오히려 조각배 상태나 살피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선원들, 모두 집합! 우리 눈 앞에 그 증오의 창백한 고래가 있다! 모두 함께 이 창백한 고래를 잡고 악을 막아내는 것이다!"


 (선원들)

 "와아아!"


 "...이제 모든 게 끝나리라."


 갑판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창백한 인어들로 인해 전투는 격렬했고, 창백한 소음으로 미쳐버리는 선원들까지 생기는 마당에도 이상과 동백은 침착했다.


 "인어, 전부, 죽인다."


 (미쳐버린 선원)

 "아아악! 귀, 귀가..."


 "선원들! 정신을 다잡아라! 창백한 고래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다!"


 기회를 노리던 이상은 동백에게 조용히 말했다.


 "동백, 어서 내려가시오. 난 선장실로 갈 테니."


 "알았어."


 동백이 내려간 사이, 이상은 이스마엘 선장과 선원들이 전부 창백한 고래에 미친 틈을 타 몰래 선장실로 가서 금화가 가득 든 상자와 값비싼 물건들을 찾아 어깨에 끼고 밖으로 나왔다.


 이상이 선장실 밖으로 나오자 동백도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아무도 모르게 개조한 조각배를 꺼내 짐을 실고 있었고, 이상은 금화 상자와 물건들을 조각배에 실은 뒤, 주위로 다가오는 창백한 인어 몇 마리를 찔러 죽이며 조각배를 내리고 먼저 조각배 위에 올라탔다.


"동백, 빨리 타시오."


하지만 동백은 이상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장에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이스마엘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야, 선장!"


 "동백? 창백한 인어가 급습이라도 했나?"


 "아니다, 이 멍청아! 그동안 함께 해서 기분 더러웠고, 네놈이 고래에게 잡아먹혀 인어가 될 동안 우리는 이 배를 떠날 거다!"


 "이... 이... 배신자 새X가 감히..."


 말을 마친 동백은 격노한 선장의 작살이 자신에게 날아오기 직전에 곧바로 뛰어내려 조각배 위로 올라탔고, 챙겨뒀던 노를 꺼내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성공했소, 동백."


 "후우, 말 그대로 아슬아슬했네."


 (5년 뒤)

 이상과 동백은 무사히 구조되어 항구선에 도착한 뒤, 선장의 금화로 카페를 차렸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카페는 나름대로 장사가 잘 되었고, 둘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함께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


 "이상? 무슨 생각 하고 있어?"


 "그저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뿐이오. 그런데..."


 그러다 갑자기 TV에서 속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뉴스)

 "속보입니다! 오재앙 중 하나를 사냥했던 특색 쪽빛노인이 창백한 고래를 사냥하는데 성공했으며, 고래 뱃속 내부에서 피쿼드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구조..."


 "미친, 저기서 살아남았다고? 선장 목숨 줄 끈질기다 못해 아주 끔찍하네."


 기분이 불쾌해진 이상은 곧바로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렸지만 TV에서는 또 다른 불쾌한 소식이 들려왔다.


 (뉴스)

 "미래 선원 생명의 직원인 동랑이 구인회와 피쿼드호 시절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발명..."


 이상은 아예 리모콘으로 TV를 꺼버린 뒤,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꺼내 조용히 말했다.


"여보시오? 거기 시 협회 맞소?"


(시 협회 해결사)

 "네. 맞습니다. 무슨 의뢰를 하려고 하십니까?"


 "혹시 피쿼드호의 이스마엘 선장과 미래 선원 생명의 동랑이라는 사람을 암살해주실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