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사 둥지의 어느 결혼식장


 "안젤리카, 이렇게 결혼식이 잘 끝날 줄은 몰랐네. 당신 오빠도 전혀 성가시게 하지 않고."


 "네. 분명 결혼식에 이의 있으신 분 부분에서 이의를 제기했을 텐데 어째서인지 조용히 잘 끝났네요."


(롤랑 지인 해결사)

 "아, 그 아르갈리아 씨 말하는 거죠? 그 사람 당신들 결혼식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다가 슬쩍 나가버렸어요."


 "뭐라고요? 롤랑, 일단 오빠부터 찾죠."


 그때 갑자기 옆방 예식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듯한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와장창! 


 "아하하하!"


 "잠깐, 그 웃음소리 그..."


 "네. 오빠 웃음소리 맞아요. 어서 가보죠."


 두 사람이 서둘러 옆방 예식장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서는 한 여자가 신랑을 복날의 개 패듯 두들겨 패고 있었고, 하객과 주례는 여자를 제지하려 하거나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 딱 한 명만 빼고.


 "아이고, 웃겨서 눈물이 나올 것 같네. 응? 안젤리카 네가 여긴 웬일이야?"


 "재밌는데 방해해서 미안해, 오빠. 어서 가자."


 "하하하, 안젤리카 너도 그거 봤어야 하는데 정말 재밌는 광경이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그렇게 아르갈리아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 솔직히 롤랑 네 못생긴 얼굴이 좀 아니꼬워서 중간에 슬쩍 나가서 옆 예식장에 들어갔는데 재밌게도 신랑과 신부, 주례, 하객들의 표정이 죄다 굳어있는 거야.


 그래서 몰래 자리에 앉아 지켜보았지.


 "..."


 ""


(영지)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예."


 "네."


(영지)

 "그럼 이 결혼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있으십니까?"


 그러더니 주례를 서던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려는 듯이 한쪽 손을 들어올리더라고. 그걸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손을 들어올리더군.


 "이의 있다! 이 배신자 새X야!"


 "나도."


 (갑룡)

 "여기 이의 있습니다."


 "이상 씨, 애초에 이들이 당신을 따돌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우리의 결혼을 축복할 생각이 없었어요."


 "저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겁니까?"


(갑룡)

 "으음? 처음 보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로 여기 온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거..."


 궁금해서 빈털털이로 보이는 남자에게 질문했는데 처음에는 날 경계했지만 돈 좀 쥐어주니까 금세 친절해지더라고.


(갑룡)

 "흐흠, 흠, 고맙군요. 일단 저 신랑이 건축가로 일하는 제 친구 이상인데 갑자기 저 파우스트란 여자를 가정부로 고용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동백 빼고 다들 별 의심을 안 했는데 점점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더니 아예 저 여자와 함께 같이 동업하면서 동거까지 하니까 다들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


(갑룡)

 "그러자 동백은 이상에게 그 여자와의 관계와 자신과의 우정 중에서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했고, 이상은 잠시 고민하겠다고 하고 한 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통보하는 겁니다. 다들 이에 대해 썩 그리 좋게 보지 못했죠."


 "야, 일단 처절하게 배신 당한 것도 그렇고, 네가 이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오?"


 "일단 그 창년 옷장 열린 거 슬쩍 봤는데 메이드복은 그렇다 쳐도, 바니걸 복장은 대체 왜 있니?"


 "..."


 "그리고, 네 방에 수갑과 결박용 밧줄까지 있더라? 둘이서 아주 즐겁게 놀다 애 생겨서 이렇게 결혼까지 했니? 나한테는 이별 통보 한 마디도 안하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논 주제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


 "그리고 내 앞에서는 둔감한 척, 관심 없는 척 다 하면서도 X년 앞에서는 아주 음란마귀가 따로 없더라?"


 그러면서 여자가 녹음기를 꺼내더니 하객들 앞에서 녹음해 놓았던 걸 재생하는 거야.


 (녹음 기록 재생 시작)


 "이상 씨."


 "파우스트 양, 적어도 침대 위에서는 날 주인님이라 불러줄 수 있소?"


 "네? 자, 잠깐만요! 이렇게 대뜸..."


 (과도한 선정성으로 인해 검열)


 "하아, 하... 주인님. 너무... 피곤한데 좀 잠들고 싶습니다."


 "후우, 이제 편히 쉬시오. 더 이상은 괴로운 모양이구료."


 (녹음 기록 재생 끝)


 "일단 나중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테니까 잘 기억해 두시고, 제가 그렇게 그이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게 못마땅하신건가요?"


 "그래, 이 창년아! 아무튼 난 이 결혼 절대 허락 못 해, 이 사기꾼 새X야!"


 "동백."


 "왜?"


 "미안하오. 그대가 날 연모하고 있었던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하지만 이제 작별이오. 동백 그대도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시구료. 나처럼 못난 사람과 엮여 고생하지 말고."


 "..."


 처음에는 여자가 가만히 있었는데 금세 다시 분노한 표정으로 변하더라고.


 "야, 이 새X야! 사람 마음에 대못을 박고 겨우 사과 한 번으로 아예 인연을 끊겠다? 내가 그 정도로 호구로 보이냐?"


 그렇게 그 여자가 신랑에게 대뜸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더라고. 얼마나 재미있던지.


"알겠으니까 일단 어서 여기를 뜨자고. 더 있다가는 걸릴 수도 있으니."


 그렇게 그들은 난장판이 된 예식장을 뒤로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결혼식의 순간을 만끽했어. 단 한 명만 빼고.


 "거기, 피아니스트 양반. 결혼 행진곡 연주도 끝났는데 같이 즐기는 게 어때?"


(피아니스트, 참고로 라오루의 그 '피아니스트'과 동일 인물)

 "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끼리 실컷 즐기시죠."



 "나 갈게 안젤리카."



 "오빠, 이런 날에는 좀 제발 분위기 좀 맞춰줄 수 없어? 오빠 때문에..."



 "알았어, 알았다고. 딱 오늘만이야."


 그날은 뭐랄까, 희극과 블랙 코미디가 교차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