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부끄럼 많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녀는 항상 모든 것이 궁금했습니다.

소년은 항상 모든 것에 무신경해보이곤 했습니다.


소녀는 수업이 끝나면 바다를 보러 갔어요.

멋진 모험가가 되어 온 세상을 누비는 계승자 언니들이 부러웠습니다.


소년은 일과가 끝나면 바다를 보곤 했어요.

시리도록 차가운 대륙의 바람 아래 너울대는 파도를 그저 바라보았습니다.


드디어 소녀도 계승자로서의 의식을 마치고, 장대한 아크라시아의 역사 속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포근한 햇살 아래 아담한 마을, 레온하트.


그곳에서 소녀는 소년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소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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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어휴, 이 밥팅아! 내가 어제 꼭 챙기라고 그으렇게 말을 했는데도! 으휴 정말!"


앙칼지게 새된 목소리가 고래고래 울려퍼진다.


분명 청아하고 맑은 음색임에도 틱틱대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짜증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것이리라.


사정을 모르는 이가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려본다면


아이라기엔 성숙했고, 어른이라기엔 앳되보이는,

인형처럼 아주 예쁜 소녀가 그 고운 아미를 잔뜩 찌뿌린 채

덩치가 산만한 커다란 중갑 기사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중갑 기사는 멋적은 듯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더더욱 골이 나는 모양인지 기사의 흉갑을 쾅쾅 두들겨댔다.


하지만 그렇게 때려봐도 고통의 몫은 제 두 주먹이지, 

그 주인만큼 짜증나게 묵직하고 단단한 강철의 갑옷이 아니었다.


소녀는 벌게진 주먹을 감싸쥐고 기사를 노려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하여간... 이번만 내 거 빌려줄테니까, 일단 가."


 - 이게 마지막이야 진짜로 

라고 붙이며 소녀가 길을 앞장섰-



중갑 기사가 갑자기 소녀의 어깨를 붙잡고는

아무래도 그녀가 방향을 착각한 모양인 듯,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 '세심한 조언'은 분노에 찬 로우킥으로 되돌아왔지만.


헛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만담의 현장에도 주변 사람들은 하루이틀 보는 게 아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빙그레 웃으며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두 명이 매일 아침 베른 광장에 활력을 불어넣음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얀 새와 적기사'.


모험가들을 비롯해 베른 성의 주민들이 둘을 이르는 말이었다.

발란카르 산의 활기차게 지저귀는 조그맣고 하얀 새처럼 하얀 옷의 앳된 마법사 소녀와

태산처럼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는 붉은 중갑의 기사.


항상 어디선가 투닥거리지만 ( 대부분 기사가 소녀에게 얻어맞는 편이었다. )

그 사이에 엿보이는 단단한 유대감은 오히려 그것을 흐뭇한 광경으로 탈바꿈시켰다.



"빨리 와, 이 바보야!"


어느 새 크로나 항구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그녀의 외침에

적기사가 뒤뚱뒤뚱 그녀를 쫓아갔다.



***



"아, 혹시 비아키스 토벌 파티..."


"맞아요. 반가워요, 소서리스 씨. 그쪽은 워로드 씨 맞으신가요?"


"아, 네! 맞아요. 제 친구에요."


"그럼 다 모인 게 맞네요. 출발하기 전에 배틀 아이템은 다들 챙기셨는지 확인하죠."


근처에 서 있던 여섯 명의 모험가 가운데 블레이드와 건슬링어가 둘을 반겼다.

한쪽 파티에는 서포터가 없다는 말에 의아해하는 소서리스에게 블레이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서포터들이 요즘 굉장히 귀해져서요. 그나마 워로드씨가 계셔서 다행이죠."


"그치만 저기 도화가 씨가 계시는데..."


"저 분은 딜러로 오셨어요."




***




소서리스는 기분이 매우 심히 좋지 않았다.


"바보."


시선 끝에는 워붕이가 있었다. 


블레이드와 건슬링어, 

싱글생글 웃으며 그의 실력을 칭찬하는 두 미녀에 둘러싸여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워붕이가.


토벌이 굉장히 성공적으로 끝난 후 늘상 그랬듯 그를 재촉하며 돌아가려는데 

블레이드가 뒤풀이를 하자며 제안했고,

마침 토벌 전리품도 다들 운 좋게 정말 귀한 것들을 챙겼기에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주점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을 때는 분명 처음에 그 녀석과 같이 앉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자신은 여기 홀로 있었고,

워붕이는 건슬링어, 블레이드와 함께 다른 테이블에서 대작을 하고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지금.

도발 타이밍이 놀라울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는 둥

전장의 방패와 각성기 세이브가 정말 인상깊었다는 둥


간간히 웃음을 터뜨리며 들러붙는 둘을 떼내지 못한 채 술자리 내내 여태 저 모양이었다.


하여간 저 바보 멍청이.

그냥 고생했다고 한 마디 하고 끊는 게 그렇게 어렵나?


"치이.."


그가 이쪽을 바라본다.


"뭐"


어쩌라고


거기서 행복하게 살던가

내가 무슨 상관이야


소녀는 두 팔을 테이블에 올리고 웅크렸다.

턱을 팔에 파묻고 워붕이를 다시 노려본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저 녀석이 뭔가 행복해보여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심술이 났다.


와- 하는 왁자지껄하고 유쾌한 술집의 소음조차도

그녀의 주변에서 한 발짝 멀어져있는 느낌이었다.


사박 사박 -


그녀의 옆에 다가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보아하니 의자에 앉은 자기보다도 머리 하나즈음 작은 것이 딱 도화가인 모양이었다.


유심히 워붕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소서리스를 바라보고, 둘을 반복해서 보던 도화가가 입을 열었다.


"너, 쟤 좋아해?"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것만 같은 순진무구한 목소리.

그것이 안 그래도 잔뜩 뒤틀린 심기를 더더욱 비틀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짜증의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팍팍 뿜어진다.


대답 할 가치조차 없다.


-흠.. 

턱에 손을 짚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도화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재밌는 수수께끼 하나 내볼게."


어딘가 재밌어하는 도화가의 말에 소서리스는 좁게 뜬 눈만 슬며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기어린 시선이지만 도화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조그맣고 예쁜 붉은 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해마다 산 너머 작은 집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그 집의 가족들도 그 붉은 새를 사랑했지요.


어느 날, 그 집 주인이 다리를 다친 다른 새를 치료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붉은 새는 그 광경을 보고 그 해에는 산 너머 작은 집을 찾지 않았어요.


집 주인과 그의 가족들은 붉은 새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 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제일 후회하는 건 누구일까요?"




"당연히 집 주인이-"

"땡!"


도화가가 쿡쿡 웃었다.


"왜 땡이야."


퉁명스럽게 따지고 드는 말엔 대답하지 않은 채 도화가가 한쪽을 가리켰다.


어느 샌가 블레이드가 워붕이의 흉갑에 엉겨붙어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쓸고 있었다. 

건슬링어는 그 녀석의 팔에 제 몸을 밀어붙이고 귓가에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심장은 숨쉬기 불편할 정도로 조여들었다.

머리가 하얘진다.

굉장히 불쾌하다.

술 기운 때문인가?


턱 끝까지 차오른 온갖 것을 기어이 눌러삼키지만 절로 이가 앙다물린다.


숨쉬기가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치 욘 대륙의 뜨겁디 뜨거운 용광로와 숨부터 턱 막히는 열기의 지하 채굴장에 한번에 들어간 것처럼.

시야마저 어딘가 흐려지는 그녀의 귓가에 도화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려퍼지듯 들려왔다.


"수수께끼의 답은 이미 알고 있잖아."


말간 웃음을 터뜨리며 도화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건배를 올린다.


세상 조그마한 요즈 모험가가 던진 몇 마디일 뿐이지만

곱절은 커다란 누군가의 마음 속 커다란 파동이 되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구.

심술이라기엔 더더욱 가슴이 비틀리고 

훨씬 질척하며 어두운 무언가임을 


붉은 새가 다음 해 의기양양하게 되돌아가봤자

그 집은 이미 그 전에 다쳤던 새가 들어와 앉아있음을


분명 그 새는 작은 집의 처마 아래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았을 것이다.

붉은 새가 다시 작은 집에 들어가려고 해도

이제 어미가 된 새는 모든 것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목숨을 걸며 붉은 새를 쫓아내려 할 테니.


더 이상 붉은 새가 돌아갈 자리는 없다.


하지만 겨울은 이미 다가왔고

시급히 산간의 나무든 어디든 보금자리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블레이드의 두 눈이 보인다.

계속해서 워붕이를 바라보는 붉은 꽃에 불길한 꿀이 깃들어 있다.


- 페이튼의 여자들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아.

- 그녀들을 조심하라구, 기사 양반.


언젠가 함께 야영을 하던 모험가가 심심풀이로 모험담을 늘어놓던 도중

워붕이의 어깨를 탕탕 두드리며 건넸던 농담이 떠오른다.




소서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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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쉽게 그녀들은 워붕이를 내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워붕이가 그 자리를 뜬 것일테지.


- 이제 피곤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가자, 밥팅.


이전까지 어쩔 줄 몰라하며 우물쭈물대던 모습은 어디가고

소서리스의 말 한마디에 이때다 싶었는지 세상 단호하게 일어서던 워붕이.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은 듯 벙찐 표정을 짓던 블레이드가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하자

바닥에 쳐박혔던 기분이 어느정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일부러 워붕이의 팔을 제 허리에 두르고 슬쩍 고개를 돌려 비웃음을 지어줬을 땐 정말 볼 만했었지.

등 뒤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자마자 워붕이에게 안기듯이 아주 몸을 기대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숙소 문을 닫고 들어온 워붕이에게 등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야. 밥팅."


스스로도 놀랄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 절그럭

두터운 철갑끼리 부딪히는 소리만으로도 그가 움츠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좋았냐?"


그가 얼어붙었다.

아직 가시지도 않은 술의 열기에 몸은 뜨겁건만

어찌하여 방 안은 이리도 냉풍이 부는 것인지


소서리스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엉거주춤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못하는 워붕이가 보인다.


에휴- 하고 숨을 내쉬며 이어 입을 열었다.


"그 답답한 갑옷이나 벗어, 쫌, 이 답답아!!"


슬금슬금 갑옷의 끈을 풀고 조심스레 한 켠에 개어둘 때까지

소서리스는 팔짱을 낀 채 그를 지켜보았다.


갑옷과 무구를 걸어두고 이제 바지와 셔츠 차림이 된 워붕이가 그녀의 눈치를 본다.


"일루 와."


마치 엄마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의 앞에 다가와 섰다.


"더 와."


한 발짝 더.


"나 봐."


커다란 체구와 단단한 근육들.

짧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

굵고 날렵한 턱선과 

굳세고 날카로운 인상의 얼굴.

 

그녀를 바라보는 그런 전사의 얼굴에는 언뜻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팍


그의 널따란 가슴팍에 너무나도 작은 두 주먹이 날아와 꽂힌다.


팍. 퍽. 팍 팍 파악 짝


"이 씨! 이 씨!! 우이 씨!! 이 씨!!!!"


"좋았냐?" 팍 " 좋았어?" 퍽 "그게!" 팍 "그것들이!" 팍 "그렇게도!" 퍼억 "좋디?" 퍽


이제는 울음기마저 서려나오는 그녀의 외침.

울분을 터뜨리듯 점점 힘이 실리는 그녀의 주먹이 워붕이의 가슴팍을 두들겨댔다.


"이 바보야아!!"


온 체중을 실어서 휘둘러진 마법사의 작은 펀치는

워붕이의 단단한 몸뚱이에 되려 반탄력으로 튕겨나와버렸고

그것은 오히려 제 주인의 몸을 뒤로 거꾸러뜨리기 충분한 힘이었다.


"아악!"

"...!!"


그렇게 침대에 뒤로 엎어지며 차올린 두 다리가 

그녀를 잡아주려 달려들던 워붕이의 다리를 걸어버렸고


"...읏..."

"....."



마치 워붕이가 소서리스를 침대로 자빠뜨린 듯 묘한 구도의 광경이 펼쳐졌다. 


눈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그를 노려보는 그녀.

두 팔은 머리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오똑한 코가 그를 향해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다.

살짝 벌린 입에서는 술냄새와 함께 어딘가 달콤한 향이 배어나온다.




그녀가


그를 밀어내는 대신


눈을 감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워붕이는 화가 났다.


가슴이 쿵쾅대고, 머리가 뜨거우며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터져나올 것만 같다.

온 몸의 혈류가 세차게 돌고 모든 근육이 긴장하는 것이 전부 느껴진다.

이것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워붕이는 이것이 화가 난다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 밖의 흥분은 워붕이의 지식 범주 안에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이상한 분노다.

그의 밑에 깔려있는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은 분명한데,

그녀에게 손을 휘두를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거다.


워붕이는 제 행동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자기가 왜 화가 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기를 매도해댔을 때는 전혀 화 따위 나지도 않았건만

이제와서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가.



-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 난 무엇을 하고 싶은거야?


- 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거야?



슈샤이어의 경험많은 사냥꾼들. 싸움꾼들. 

그리고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씀.


분노에 자신을 잃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해라.

열기에 휩쓸려 이성을 잃는 순간 패배만이 널 기다린다.


그래서 워붕이는 찬찬히, 상황을 다시 인지하고자 노력한다.


주르륵-


워붕이에게도, 그녀에게도 땀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른다.


새하얀 목덜미가 무방비하게 드러나있다.

앵두같은 입술이 앙다물려있다.

베일 것만 같은 오똑한 코를 넘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반쯤 감겨서 그를 노려보는 청명한 두 눈

침대에 격하게 눕혀 산발이 되었지만 그 윤기를 잃지 않은 머리칼.


바다와도 같은 푸른 두 눈이 그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바보 밥팅아, 쫌."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꺼내왔다.

조용히 그를 노려보던 그녀가 워붕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는

천천히, 천천히 제게 끌어당겼다.


"여기까지 와서도, 자꾸 그럴거야?" 


그리고 조심스레, 하지만 확실하고 탐욕스럽게

그의 입을 잠식해 들어간다.


굳게 다물린 그의 입술을 입술로 비집어 열고

혀를 밀어넣어 치열을 두드린다.


부끄럼 많은 주인을 닮아 부끄럼 많은 그의 혀가 나올 때까지

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쓸었다.


마침내, 그 단단히 물려있던 치아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놀라지 않도록 살며시 다가와 

그러나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단숨에 휘감아 빼낸다.


츄웁-. 츄르릅- 하읍 -쩍 -  쮸웁


오랜 세월을 감내해온 포식자가 드디어 그 먹이를 포식하는 야릇한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오른손이 워붕이의 뒤통수를 붙잡고, 왼 팔이 뒷목을 휘감아 안았다.

마치 커다랗고 교활한 뱀처럼 먹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숨을 다시 채우는 그 잠시마저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떼자마자 다시 밀어 붙이고 그 안을 탐식한다.


술 냄새가 뒤섞인 달콤한 향이 그의 입을 침범해 단번에 장악한다.


푸하 - 쮸읍 쯥


수십여분이 지났다.

혹은 시간 단위가 지났을런지도.


확실하게 포식한 그녀가 슬쩍 입을 떼었다.

그 여운이 입술과 입술 사이 은빛 실에 방울 방울 맺혀 있다.



***



워붕이의 초점이 흐리다.

그의 시선이 멍하다.

그녀를 바라보고는 있으나 그의 뜻이 아니다.

그의 정신은 이미 그녀로 가득 찼으니.



아, 이 미련곰탱이는 내 마음 따위 1도 몰랐던 게 분명하다.

그때부터 장장 7년을 기다렸는데!


그래... 어떻게 네가 알겠어. 

나도 지금껏 모르는 체 해왔던 걸.


그 긴 세월동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부끄러움에 내 마음을 속여온 것 뿐이고

그는 애당초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도화지였을 뿐이다.


[ 그 도화지는 언제나 내 것이었고, 내가 언제든 칠할 수 있었다. ]

오랜 시간에게 속은 채 그런 착각에 빠져있었던 나를 깨운 건


감히 그 도화지에 그 탐욕스런 색깔을 뿌리려고 다가온 늑대 둘.

그리고 그 늑대들을 제대로 마주보게 해준 양치기 소녀 하나.




정말. 

저어엉말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역시 너는 내가 아니면 안되는구나

그래서 또 조금은 기쁠지도.


여전히 내 눈만 바라보는 그를 조심스레 아래로 내려보냈다.

옷을 위로 걷어 올리자 풍만한 젖가슴이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며칠 전보다 조금은 더 커진거려나


"빨아 줘."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아주 순진무구한 의문이 들어있었다.

평소같았으면 눈치도 없냐며 한대 쥐어박아줬겠지.


"...어서"


곧 의문을 거두고 그가 오물대며 입을 갖다 댄다.

그 옛날 로헨델 도서관의 소설이나 춘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극적인 자극은 없었다.


조금 간지럽고,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혹시라도 아플까 조심스럽게 빨아들이는 게 마치 아기같아서 기묘하다.


방금 격렬하게 탐식당했음에도 여전히 수줍은 그의 혀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한 발자국 다가와 젖꼭지를 조심스레 쓸어갈 때마다


점점 더 느낌이 한 층씩 겹치듯 진해지고, 등골이 바짝 서는 듯 했다.

골반이 절로 이리저리 비틀린다.

속옷은 이미 축축해진 지 오래였다.


"거기만 말구...이쪽두..."


침과 젖이 한데 어우러진 왼쪽 가슴에서 그를 떼내어 다시 오른쪽으로 옮겼다.


새로이 맞이한 곳에 다시 한번 그의 혀가 용기를 내는 동안

나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들부들한 정수리 쪽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게 좋아

짧게 밀어버린 뒷목 부근, 빳빳하게 선 모근들이 손바닥을 훑는 게 좋아


그가 내 젖가슴을 번갈아 훑을 동안 치마를 들어올리고, 속옷을 반쯤 내린다.

상체를 조금씩 일으켜 앉고, 그를 천천히 바닥에 무릎꿇도록 유도한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는,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다리를 조금 벌리고

나만이 알고있는 성역을 그에게 처음으로 내어보였다.


으윽,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 같다




워붕이의 눈동자에 일자로 앙다문 그것이 비쳤다.


섬섬옥수가 내려와 맞물린 둔덕을 비집어 벌리자

정말 자그마한 돌기 하나가 얼굴을 내밀고

분홍빛 성문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와 그를 마주했다.


그것은 벌써부터 희여멀건 무언가로 '젖어있었다.'

환한 마법 전등의 조명에 번들거리는 그것이 너무나도 야릇하다.


워붕이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다.

전투 이외에 그가 처음으로 직감을 발휘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조심스레 입술을 갖다대자, 그녀가 움찔거렸다.

혀를 내밀어 돌기에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흐응....하아...."


돌기의 주인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내쉰다.


할짝


다시 아래에서부터 위로 쓸어올린다.

조금은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오줌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맛이 났다.


조금씩, 조금씩 워붕이가 그 비부를 헤집고 탐사해나갈수록

소서리스가 몸을 움찔대는 정도가, 횟수가 늘어났다.


성문 안에서는 점점 더 물이 터져나왔다.

달뜬 숨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더더욱 강렬히 성대를 긁고 나와 신음소리로 비집어 나온다.

그 신음소리와 더불어 찰박거리는 야릇한 소리가 섞여나왔다.


워붕이는 점점 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네던 신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폭한 야만인이 게걸스럽게 돌기와 성문을 탐하고 쓸으며 두들겨댔다.

제 입 안쪽으로 쭈욱 빨아들이기도 하고, 

되려 성문 안에 혀를 집어넣어 그 벽을 사방으로 긁어내기도 했다.


이곳 저곳으로 뛰쳐나가려는 골반을 강하게 붙들어 고정시키고

워붕이는 더 이상 탐사라고 부를 수 없는 탐사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침범과 유린이었다.


그 유린은 오직 그 성문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온 사방을 짓밟고 다니던 야만인은 조금 더 아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을 발견했다.

작고 어두운, 그러나 아주 강하게 맞다물린 곳.


엉덩이를 조금 더 치켜올리고, 회음부를 쓸며 내려온다.


소서리스는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각과 그의 혀가 향하는 곳에 굉장한 불길함을 느꼈고

곧 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직감했다.


"아...안돼! 안돼! 하지마! 거기느으으으으으으으!!"


그녀의 항의는 끝을 맺지 못한 채 고음으로 산화했다.

워붕이는 그 주름 하나하나에 제 타액을 배어넣기라도 하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핥았고, 빨아들였다.


"하지마! 하지마하하아아! 흐아아앙! 흐아앗! 흐으! 흐으! 흐아아아아!"


수치심. 또 수치심.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가 풀려 당장이라도 자살할 수 있는 광경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부끄러운 곳을 빨린다는 

그 배덕감.

그것에 또 열락을 느낀다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쾌감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를 덮쳤다.



아악- 악! 아으윽! 놔 줘! 제발! 아아악! 놔 줘어!! 그마아아아안!!!


여인의 신음소리는 어느 새 비명과 울음으로 변질되어 방 안을 가득 채웠고

그녀가 걸터앉은 침대와 바닥은 이미 흥건하게 젖고, 또 물이 고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의 손이 이제 그의 머리채를 붙잡다가도

다시 침대보를 붙잡아 거칠게 뜯어낸다.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뛰쳐들어와 워붕이의 머리를 감싸안는가 하면

귀신들린 듯 뒤로 홱 젖혀나가 허리를 활처럼 휘이고 다시 침대를 쥐어뜯었다.


이성을 놓은 채 다시 그녀의 비부에 입을 처박고 유린하던 워붕이의 정신을 깨운 것은

찌이익- 하고 입천장에 강하게 맞부딪치는 '물총'이었다.


동시에 성문에서 댐 터지듯 터져나온 '물'이 그의 입 안을 가득가득 메웠다.



"흐아아아아앙....흐응......하아아....흐아앙"


그녀가 신음과 흐느낌 사이의 무언가를 내뱉으며 경련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골반과 사방으로 흩어진 애액.


그리고 지금 바지 속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워붕이는 기억하고 있다.

그의 형과 옆집 누나가 헛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형의 아랫도리를 입에 넣고 왔다갔다 하던 누나의 모습을.

어릴 때는 뭔가 방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기분 좋다는 말을 계속 내뱉던 그의 형이 

대체 무엇이 기분이 좋은 것인지 계속 궁금했었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은 소서리스의 눈 앞에 '그것'이 들어섰다.


거대하고도, 육중한 존재감.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외교 사절이 아니라 선전 포고였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폭거였다.


그녀의 입에 거칠게 밀려들어온다.

그 곳에 깃대를 꽂고 제 구역이라며 호령한다.

그녀의 혀를 내리눌러 제압하고

목구멍 직전까지 돌파해 들어간다.


턱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구토감이 그녀를 급습했다.


"으욱! 커억! 쯔읍! 쭙! 켈록!"


그러나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난폭하게 구는 야만인들을 부드럽게 다시 감싸안았다.


허리가 빠졌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진 않지만

그의 엉덩이와 다리에 손을 올려 제 뜻을 알렸다.


그의 육봉이 움직임을 멈추고, 소서리스는 그것을 입에 문 채로 

워붕이의 하체에 기대어 자세를 바로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금.


그가 나만큼 기분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가 너를 이만큼 생각해준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의 것을 어루만진다.


- 쮸웁 쯥 쩌억 


비록 처음이라 서투르고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것은 역시 처음인 워붕이에게도 비교할 수 없는 자극이었다.


십여 초나 되었을까 하는 짧은 시간만에 그의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 그것이

소서리스의 입으로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갑자기 입을 가득 채워 들어오는 끈적하고 비릿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기습하는 바람에

소서리스는 얼떨결에 그것을 죄다 그 너머로 삼켜버렸다.


"켈룩! 콜록! 콜록!"


급하게 육봉을 빼내고 기침을 내뱉으며 숨을 고른다.

밤꽃 향에, 맛은 비리고, 목구멍에 죄다 들러붙어서 기분나쁜 감각이었다.


채 삼켜지지 못하고 그녀의 입가 밖으로 주륵 흘러나오는 끈끈한 몇 방울이 그 정체를 가늠케 했다.






"...이 밥팅아....콜록! 살살 좀 해..."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이 퍽이나 웃기다.

그렇게 난폭하게 물고 빨고 핥고 또 빨게 했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것을 입가에 다 묻힌 채 이런 꼴이라니.


그러나 아직 이게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오히려 이게 끝이었으면 실망했겠지.


그에게 두 팔을 내민다.


"나 좀 들어줘."


 안절부절하던 워붕이가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들어 올렸다.

등을 가로질러 견갑을 붙잡고, 다른 팔로 엉덩이를 받친다.


그녀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가슴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눌려 형태가 변한다.

배꼽 즈음에 느껴지는 그의 것이 다시 단단하게 차오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기...침대루..."


워붕이가 침대 머리맡 베개에 그녀의 머리를 두고, 몸을 차례대로 부드럽게 뉘였다.


그리고...그제야 보이는 완전한 그녀의 나신


새하얀 목덜미와 선연한 쇄골.

새하얀 피부와 풍만한 젖가슴.

잘록한 허리와 대비되는 넓은 골반.

완만한 곡선으로 맞아 떨어지는 허벅지와 종아리의 각선


그저 아름다웠다.

그 어떤 여신상도 

그 어떤 광경들도


그가 지금 보는 그녀에 비한다면 빛이 바랠 것이다.


그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너...너무 쳐다보지 마라구, 밥팅아."


그녀가 가슴과 국부에 가느다란 팔을 올려 가려보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더욱 ...


소서리스는 그러면서도 다리를 열어 젖힌다.

진정으로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수 십년, 그리고 또 7년.

그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그녀의 첫 손님이자 마지막 주인이 될 그를 


워붕이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고는

다시 몸을 아래로 내린다-


찰싹!


그의 뒤통수를 손바닥이 강타했다.



***



"이 바보 멍청아! 아 진짜!"


하여간 이 미련 곰탱이가!

또 또 지가 왜 맞았는지도 모르는 그 얼빵한 표정! 


"누가 또 빨아주래? 그거 아니라구, 이 얼빵아!"


-하여간 무드란 게 없어, 무드라는 게.

요조숙녀가 결국 이런 걸 입에 담게 만들어?


그리고 정말 그런 기세로 또 빨렸다가는 기절하고 말 게 뻔한데.


여기서까지 또 바보같은 짓이야, 이 바보가.


"그거. 여기. 알았어?"


그의 것을 가리키고, 다시 내 비부를 가리킨다.

밥팅이가 대충 끄덕이지만,


 내 눈은 못 속여.


못 알아먹은 게 안 봐도 비디오 스크롤이다.

그의 귀두를 손가락 끝으로 잡아 입구에 갖다 대준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나 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여태 이런 것도 모를 정도로 순수하다는 게 조금 귀엽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한다.


그의 첫 "여자"가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고, 기쁠 지도.

그러면서도 저 커다란 게 내 아랫배에 들어온다는 게 무섭다.


그의 것을 잡았을 때 대충 보기로는 배꼽 조금 위까지 닿던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를 생각도 없다.

저 녀석이 도망치는 것도 용납할 생각이 없다.


그에게 두 팔을 뻗는다.


"키스해 줘."


저 미련퉁이는 키스가 뭔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대충 내가 하는 사인은 알아먹는지,

부드럽게 입술을 겹쳐온다.


자연스럽게 그의 하반신이 맞닿아오고

내 비부를 비집는 그의 것이 느껴진다.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입구까지 그를 반길 준비를 하는 것도 느껴진다.


조금씩, 천천히.

그의 뒷 허벅지에 내 다리를 걸어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천천히....부드럽게 와 줘.."


조금씩 열리는 문과, 그 빈틈을 꽉 채워 들어오는 그가 느껴진다.

생각보다 고통은 덜했다.

그 녀석의 걸신들린 혀가 큰 공을 세운 게 아닐까 한다.


쯔거억


이제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던 그 영역에

드디어 그가 발을 들인다.


평생을 맞닿아있던 촉촉한 두 벽을 비집고 그가 들어온다.

점점 더 아랫배가 아릿해져 왔다.


무언가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점도가 다른 물줄기 하나가 엉덩이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아아, 드디어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너도, 나도.


조금은 급작스럽지만,

또 서툴지만,

어설프지만,


나의 첫 경험이 너라는 사실에

또 너의 첫 여자가 나라는 사실에


나는...



"후우우....하아.....하아....하아..."


알싸하고도 아릿한 파과의 고통을 달래는 심호흡 사이로

희미한 희열이 섞여 들어온다.


어느새 그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고

나는 온 몸으로 그를 껴안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덜미와 귓가에서 느껴지는 그의 호흡이 거칠다.

그의 골반이 나의 것과 드디어 맞닿기 직전


그의 선발대가 길의 끝을 고했다.


배꼽 바로 아래.

그 이물감

그의 것이 느껴진다.

그가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처음'을 서로 맞바꾼다는 것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것이 가득히 차올라왔다.




"히끅..."


나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는 울음 소리에 

그 녀석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본다.


"흑... 흐윽... 히끅..... 이 바보야..."




슬퍼서, 아파서 우는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 좋아해..."




그러니까




다시는




" ..날 떠나지마..."


항상 내 곁에 있어줘














한 방울 

두 방울


눈가에서 떨어져 내리는 기쁨과 벅참


그것이 부끄러워


다시금 그에게 입술을 겹쳤다.


새하얀 도화지가, 분홍빛으로 물든다.



***





머리가 하얬다.


발탄의 커다란 도끼에 머리를 얻어맞았을 때도


비아키스의 감전 장판을 4번 다 맞았을 때도


그 수많은 전장을 헤치며 겪어온 그 어떤 격통도




지금처럼 그를 뒤흔들진 못했다.



".....좋아해..."







아.


그런가.


그런 것이었나.


지금 이 가슴 속 조여오는 고통도, 분노도.

단전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감각도


모든 것이



- 우리 아가, 내 아들아.

- 어느 날, 너에게 봄처럼 찾아오는 누군가가 있을 거란다.

- 그녀는 태풍처럼 찾아올 수도 있고, 바람처럼 떠나갈 지도 모르지.

-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 그런 이가 오면 너 스스로 깨닫게 될 거란다.

- 그 때, 너의 마음을 후회 없도록 표현해주렴.

- 그 아이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란다.



그 옛날 


수 백여년 만에 흐린 하늘이 걷히고

노을이 지는 슈샤이어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볼 때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셨던 말씀이


지금 그의 눈 앞에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그의 목숨마저도 거리낌없이 바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서.



지금 이 순간

그는 무엇을 해야할 지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를 바칠 것이다.

그녀에게 내 모든 걸 바칠 것이다.

그녀가 내 모든 걸 가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녀를 가질 것이다.

그녀가 이제 나의 것임을

이 밤과 나와 너를 증인으로 

세상에 선포하리라



입술을 겹쳐오는 그녀를 열렬히 맞이해준다.

그녀가 뒷목을 휘감아온다.

그 또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붙잡고

더더욱 끌어당긴다.


허리가 알아서 앞 뒤로 튕기기 시작했다.

질 주름이 그의 남근에 들러붙어 놓아주지 않았다.


육벽이 그의 남근을 강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만큼

더더욱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왼손은 소서리스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더 강하게 몸을 붙여왔다.


그녀의 골반도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함께 흔들기 시작했다.

다리는 더더욱 벌려 그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푸흐...흐으....흡...."

"푸하...하아...하아....아앙....앗...흐아..."


입술을 떼고,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청명한 바다가 그를 바라본다.

넓은 대지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더욱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녀가 나로 인해 더더욱 기분 좋아졌으면 한다.

더 많이 그녀를 알고 싶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귀를 빨았고

그녀의 목덜미를 빨았다.


자세를 바꾸어 침대에 앉고

질내에 남근을 박아넣은 그대로 그녀를 안아올려 무릎 위에 앉혔다.


골반을 튕기면서 그녀의 젖가슴을 빤다.


그녀가 침을 흘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신음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음이 높아진다.


찰박 철벅 거리는 야릇한 물 소리가 신음과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우고

귓가를 울려 두 남녀를 한층 더 흥분시켰다.


오른손으로 등과 고개를 함께 받쳐주고

왼손도 등 뒤로 넘겨 골반 아래로 향한다.


요추를 타고, 사과같은 그녀의 엉덩이 한 가운데 골을 타고 내려가

다시금 '그곳' 위에 중지를 올려둔다


젖힌 고개가 홱- 하고 돌아와 그를 노려보았다.

- 하지 말랬다


바다같은 눈동자에 담긴 경고를 무시하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곳을 압박한다.


"핫! 흣! 아앙! 흐아앗! 하지! 앗! 읏! 앗! 말랬! 아앙! 하아! 흑!"




점점 그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에

소서리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만큼이나 커다란 쾌감이 그것을 흩어버렸기에.


아랫배에 가득한 이물감과 더불어 그 곳에 들어오는 손가락에서 비롯된 배덕감, 수치심이

그 쾌감을 두 배, 세 배 더 증폭시켰다.


벌써 그 녀석 모르게 몇 번이나 가버렸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엉덩이 아래가 그녀가 저지른 홍수들 때문에 축축했지만

그는 아랑곳않고 그녀를 눕혔다가, 또 앉혔다가, 또 뒤로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세를 바꿀 때마다 몇 번이고 달라지는 성감이 

그녀의 이성줄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세마다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앉아서 할 때는 키스를 퍼붓고, 가슴을 빨고, 엉덩이에 손가락을 박아넣어

질벽과 장벽을 한번에 압박했다.


앞을 바라보고 엎드리게 했을 때는 그녀의 유두를 집고, 돌리고

배꼽을 만지고, 그 아래로 내려가 비부를 비집어내어 작은 돌기를 마구 유린했다.


질 내에서 난폭하게 날뛰는 그의 큼지막한 남근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클리토리스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자극에 그녀는 허리가 빠져서는 상체를 지탱하지도 못했다.


이 빌어먹을 밥팅이는 여태 전투에서 그러하듯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데서 본능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가장 최적의 방법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격정적이다가도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을 때에는 조용히 입술을 겹치면서

그녀의 두 팔을 한 손에 구속하고 팔 안쪽과 가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듯 부드럽게 삽입해 들어와 천천히 그 육벽을 긁어대었다.



소서리스는 그 어떤 자세보다도 이때가 정말 미쳐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앞에 별이 터지는 것만 같은 그 느낌

아랫배에서 절절히 울려퍼지는 그 쾌감의 폭풍

온 몸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열락에


그것이 흘러넘쳐 입으로 새어나왔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널...읏....하아....좋아해!...좋아해...좋아해...!"


"워붕아...좋아해..!"



그 감정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해졌는지

아랫배의 이물감도, 그의 호흡도 점점 더 격렬해졌다.


"워붕아..! 워붕아..! 워붕..! 워브..아! 아! 워브! 웝! 아! 아앗! 악! 아악! 아! 아아아아! 워붕아아! 워붕아아아! 하앗! 앗! 아악!"


찌걱 찔걱 찌걱 철퍽


여태껏 정욕의 끝이란 끝은 다 보았다고 생각했건만


온 몸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전의 거대한 열락을 가뿐히 뛰어넘는

'천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이

형용하기 힘든 쾌감이 그녀를 감싼다. 그를 감싼다.




단전 저 안쪽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수많은 '그'가

그녀의 뱃속으로 쏜살처럼 질주해 들어간다.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내장이라도 쏟는 듯한 느낌이

전신을 날벼락처럼 때리는 쾌감과 함께 그녀를 강타한다.


그가 그녀에게,

그녀가 그에게,


그 애정과 욕망의 끝을 뿜었다.




방을 가득히 채운 야릇한 향기와 잦아드는 숨소리 아래,


그 둘만의 은밀한 축포이자 성스러운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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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밥팅."

"..."



나의 품에 안겨 고른 숨을 들고 내쉬는 워붕이.


모든 기운을 전부 나에게 쏟아내버린 그는 

일어날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 그대로 쓰러진 채로.


잔다.


새근새근 잔다.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들부들한 정수리 쪽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게 좋아.

짧게 밀어버린 뒷목 부근, 빳빳하게 선 모근들이 손바닥을 훑는 게 좋아.



그냥 네가 내게 안겨있는 지금이 좋아.

내가 널 안을 수 있는 지금이 좋아.



칠칠맞고 엉뚱하지만 그런 네가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좋아.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만 하는 어린아이 같아서 좋아.


그래도 가끔은 듬직해보이는 너의 넓은 등이 좋아.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너의 품이 좋아.


무심해보이면서도 나부터 찾는 그 눈빛이 좋아.

무신경해보이면서도 나부터 생각하는 그 행동이 좋아.


어디에 있든 맡을 수 있는 서늘한 너의 살내음에 안심이 되서

어디에 있든 날 안아주는 너의 강인한 팔에 마음이 놓여서


화를 내고 뛰쳐나가도 항상 뒤에 있어주는 네게 미안해서

그런 네게 또 짜증내고 울어도 또 찾아오는 네가 고마워서



그런 너의 모든 게 다 좋아서

그냥, 그래서









사실 어쩌면 그 때 그 날 


레온하트에서 우리 처음 만난 그 날


울고있던 내게 손수건을 내민 널 처음 보았던 7년 전의 그 순간부터

누군가의 색으로 물들었던 건 네가 아니라 이미 내가 아니었을까










"..사랑해."



무슨 꿈을 꾸는지 미소짓는 그의 얼굴.


"바보같은 얼굴 하지 말라니깐.."


그런 그를 다시금 살며시 품에 안는다.







오랜 세월 바라온 하얀 새의 기다림은


그렇게 강렬하고도 담백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