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lovelove/101616301
"지금 공지 사항 하나를 잘 못 작성해 올렸습니다.
삭제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내려가는 대로 삭제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최근에올라간공지를삭제하시면될것같습니다."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이거 잘못하면 뉴스로 뜬다.
익명게시판에 올라가는 건 물론이고 회사에서 심심할 때마다 이야기 나올 거야.
회장님이 알면 주먹과 내 얼굴이 격한 우정을 나누게 될 거고.
"알겠습니다. 오늘 올라간 공지를 삭제하겠습니다.
그리고..."
왜. 뭐. 또 할 말 있나?
내 계정 비밀번호나 그런 거 필요한가?
"사모님 선물로는 칼퇴가 가장 좋지 않을까 합니다.
가족에게 있어 가장 좋은 선물은 가족 자신이지 않겠습니까."
그... 좋은 소리긴 한데. 그거 아니다.
난 그냥 홍아름 씨 개인 의견이 듣고 싶었던 거라고.
칼퇴는 어차피 이번 주에는 해야 해.
그리고 사모님 아냐. 아직은.
"... 의견 감사합니다."
이런 내 속마음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그냥 알겠다고 하고 빨리 내보냈다.
뭐야. 왜 조회수가 또 늘어났어.
집... 괄호치고 부동산 누구냐.
그거 양도세는 니가 낼 거니.
이전에 하늘 씨 잡아두려고 집 어쩌고 했더니, 부동산 이야기만 나와도 하늘 씨 긴장한단 말야.
그딴소리 꺼내지 마라.
"성인..."
성인용품 누구야.
그리고 심지어 순위가 높아!
이거 성희롱으로 걸 수 있지 않나?
그리고 그 아래에 성인용품 브랜드 적는 인간은 뭐 하는 인간들이야.
니들 성인용품 취향 관심 없다고. 일이나 해!
댓글 뭐냐. 너무 가볍게 사내 게시판 쓰는 거 아냐?
뭐 적당히 뒷담화도 하고 그러라고 만든 게시판이라, '오늘 점심같이 드실 분' 이나 '협력사 정보 요청', '니들이 게 맛을 알어?' 같은 글들도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곳이지만...
- 꺅! 사장님 로맨티스트!
다들 성인용품에 왜 이렇게 진심이야.
그리고 다들 실명으로 댓글 다는 건데 저거 괜찮나.
옆사람이 그런 글 쓴다는 거 알아도 되겠어? 정말?
근데 직원 식당에서 음식 가져가는 건 횡령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네.
맛있는 건 다행인데, 외부로 싸갔을 때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
이건 주의 주는 게 맞을 것 같고...
이 인간들 왜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려.
할 일이 없나?
일 좀 만들어 줘야 하나?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사장 비서 홍아름입니다."
전화 받는 홍아름 씨를 보며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나 없다고 해! 지금은 아냐!
"네, 아... 지금 사장님께서 자리에 안 계십니다."
그렇지. 잘했어!
"네. 알겠습니다."
홍아름 씨는 곧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께서 찾으시는데, 없다고 둘러대었습니다.
다시 연락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다행이네요..."
일단 이거 삭제되는 거 보고.
그냥 비서의 개인적 일탈이었다고 둘러대면... 안 되겠지.
간만에 뭐가 날아올지도 몰라.
'낯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모자라서!
그걸 부하의 탓으로 돌려!
니가 그러고도 사장이야!'
뭐 대충 그런 소리를 하시겠지.
그냥 죄송합니다 하는 게 훨씬 덜 아플 거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려 확인했더니...
회장님이 문자를 보냈네.
[무슨 말 할지 알지? 올라와라.]
...... 뭐 당연하겠지.
내가 있는 걸 모를 리가 없을 거다.
"... 회장님이 찾으시네요. 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래도 12월 초에 유언장을 갱신해서 다행이야.
내가 없어도 하늘 씨는 잘 지내겠지...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홍아름 씨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게시글은 됐어요. 그냥 둡시다..."
어차피 혼나는 거.
이렇게라도 직원들이 웃으면 그걸로 됐어...
"우진아."
회장님이 한숨을 푹 쉬며 불렀다.
나는 차렷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 앞에 서 있었고.
"네."
"니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지?"
"네. 죄송합니다."
공지 사항으로 올라갔고 알림까지 왔는데 회장님이 모를 수가 있나.
당연히 알겠지.
"요즘 일이 편하냐?"
"아닙니다."
"연애하니까 회사 다 때려치우고 싶냐?"
"아닙니다."
"회사 장난처럼 다니냐?"
"성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즘 험한 소리 안 하니까 심심해?"
"아닙니다. 존경합니다."
"회사 생활에 긴장감을 좀 넣어줘?"
"열심히 하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사적인 걸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알아, 몰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회사 생활 끝나냐?"
끝나도... 괜찮지 않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 들고 하늘 씨랑 세계 여행하면서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 눈빛이 좀 그렇다. 꼽냐?"
"아닙니다."
"그럼 아니꼬와?"
"아닙니다. 존경합니다."
어, 씨. 군대 재입대한 것 같네.
지금까지 중간관리자로 승진시키면 회장님이랑 독대시켰는데, 이런 식으로 압박해서 회사에서 쫓아낸 건가...
지금이 그 순간인가.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것을 꺼내놓을 때?
"왜. 뭐. 뭘 봐?"
...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게 맞지.
앞으로 홍아름 씨에게 그런 건 물어보지 말기로 하자.
"근데 갑자기 무슨 선물이냐?"
"아닙니다... 네?"
"뭔 선물이냐고. 그 아이 생일도 아니지 않냐."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세요?
"아, 그게... 화이트데이니까 선물을 준비할까 했습니다.
지금까지 선물 다운 선물을 해준 적이 없기도 하고..."
하늘 씨가 딱히 원하는 게 없기는 했다.
욕심이랄 것이 딱히 없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 하는 성격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뭘 받는지도 모르는 건지.
"선물로 뭐가 좋은지도 몰라?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
"옷도 사주고 방도 만들어주긴 했습니다만...
뭐를 제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욕구나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정말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먹는 건 뭐를 제일 좋아... 아니다.
정희가 매일 밥을 만들어주고 있으니 먹는 건 무리겠군."
"네. 한정희 아주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려고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요."
"아... 그렇군. 그 아이 음식도 먹어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근데 나 혼나는 중 아니었어?
왜 회장님도 고민 중이지.
"그럼 입을 건 어떠냐. 옷을 사줘도 좋아할 것 같다만."
"좋아할 것 같긴 합니다만...
필요하다거나 사달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친척 집에서는 언니의 옷을 물려받아서 지낸 것 같더라고요.
옷을 사본 적이 적어서 그런지, 필요성을 느끼는 것에 좀 둔감한 것 같습니다."
"흠. 그래서 미묘하게 옷 사이즈가 안 맞았던 거군."
의식주 중에 의와 식이 나왔으니 이제 주거인가.
부동산을 넘겨주는 건 세금 문제도 있고 좀 복잡한데.
"좀 기다려봐라. 어차피 올린 김에 투표나 한번 보자."
음... 네? 그 투표를 왜요?
그리고 핸드폰을 든 회장님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어 갔다.
"성인... 용품. 요즘은 이런 것도 선물로 주고받는 거냐?
세대 차이... 뭐 그런 건가?"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네.
응. 나도 어이없기는 해.
"어, 잠깐만요. 지금 1위가 성인용품입니까?!"
진짜? 우리 직원들이 그렇게 개념 없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아니 그건 부동산인데..."
아니네. 속물들 같으니라고.
그래도 개념 없는 인간들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 때는 그냥 통닭 한 마리 사 들고 들어가면 그게 선물이었는데."
아버지... 아니 아버지는 그 전에 집에 잘 안 들어오셨잖아.
물론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하아. 됐다. 잘 고민해서 선물해라.
다시는 회사에 이런 짓 하지 말고."
"네..."
"그리고 이런 일로 비서 자르지는 마라."
내가 아니라 비서가 올린 것도 짐작하고 계시네.
하긴, 그래도 회장이라는 위치에 있으니 명목상이라도 불러서 혼내야겠지.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송하늘 양이랑 밥이라도 한 끼 하자."
인사를 하고 밖에 나왔더니 회장실 앞의 비서실에 계신 분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아뇨. 오늘은 안 던지셨습니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으니 오늘도 뭔가 던지신 줄 알았나 보네.
그럴 수 있지. 근데 오늘 내 외투는 깨끗한걸.
"저..."
"네?"
그거랑 별개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았다.
"기념품 같은 건 어떠십니까?
당일로라도 여행을 한 뒤 그걸 기념할 수 있게 기념품을 선물해 주면 좋아할 겁니다."
음... 그건 괜찮네.
연륜이라는 건가, 나보다 한참 나이가 있는 분의 말이라 그런지 꽤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근데 비서실도 게시판 공지 사항을... 아니, 당연하겠지.
공지 사항이니까 회사 소속으로 사번이 나왔으면 다 알림이 갔을 거다.
평소에 잠잠하던 회사 공지 사항이 뜨니까 뭐 궁금해서라도 봤겠지.
"네. 고민해 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사장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홍아름 비서에게 문자가 왔다.
[사장님. 회의 15분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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