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목장 일을 하는 집안에 남자아이가 태어난 남자아이.

이 꼬마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무려 동물이랑 대화할 수 있다!

물론 소 단 한마리하고만.

어째서인지 목장에 있던 나이 지긋한 암소 ''누렁이' 씨

딱 한 마리하고만 서로 대화할 수 있었던 거지.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바빠서 혼자 남게 되면,

늘 그 소 곁으로 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지.

목장의 위치가 시내나 다른 아이들의 집과는 거리가 있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지.

혼난 걸 하소연하면, 위로해준다고 볼을 핥아 주고.

어제 어린이집에서 칭찬받았다고 하면, 축하한다고 볼을 핥아 주고.

다 볼을 핥긴 하는데, 소에게는 방법이 그런 거 밖에 없었으니까.

낮잠도 같이 자곤 했지. 처음에는 질색하던 축사냄새에도 금방 적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6살쯤 되었을까.

그날따라 일찍 잠에서 깬 아이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고 말지.

그 소가 너무 늙어 상품가치도 떨어져가고 이제는 새끼 소를 낳기도 어렵다는 진단도 나왔으니,

내일 도축해야겠다는 얘기를 들어버린 거야.

처음에는 도축이 뭔지 몰라서 어렴풋이 들은 기억만 있었던 아이.

왜인지 소를 도축하는 날에는 부모님이 목장을 못 들어가게 했어서,

도축이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왜 어른들이 유난을 떨고 안에서는 소 울음소리가 들리곤 하는지 잘 몰랐지.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물어본 아이는 그 의미를 알아버리고 충격을 받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누렁이한테 달려가서 사실을 털어놓지.


하지만 무덤덤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소.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고

자신도 이미 대강 예상해고 있었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

아이는 밤중에 부모님 몰래 빠져나와 '누렁이'를 풀어주려 하지만

누렁이는 한사코 거절하지. 그걸 이 아이의 부모님이 알았다가는 경을 칠 테니까.

코뚜레를 안간힘을 써며 잡아당겨보지만 6살짜리가 어떻게 소를 끌겠어.

애가 다칠까봐 한 두 걸음씩만 움직여줄 뿐.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축사 밖으로 빼내는데는 성공했지.

물론 목장 울타리 바깥까지는 한참 남았고 말이야.

이미 시간은 심야를 넘어서 황혼, 이제 일출도 얼마 안 남은 시각.

이제는 소 입장에서 궁금해졌지.

아무리 말이 통한다 한들 자신은 이 아이의 부모님의 목장이 소유한 소, 재산일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떠는 거냐고 묻자.

아이는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였다고,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소중한 가족이었다고 대답했지.

아이다운 순수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대답에 소는 감동받았지.

하지만 이를 어쩌나, 도축이 있는 날에는 부모님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작업을 시작하거든.

저 멀리서 이미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아이가 혼날 걸 걱정한 누렁이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머리로 아이를 살짝 받아 넘어트렸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달려온 부모님은 자신의 아들이 소가 탈출하려는 것을 막았다고 판단했고,

크게 다칠 뻔한 걸 자신들이 구했다고 생각하며 분노에 찬 얼굴로 소를 도축장에 끌고 갔고,

그게 둘의 마지막이었어.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어.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날의 장면은 뇌리에 남아서 

트라우마로 인해 쭉 소고기를 먹지 못하고 있었지.

화석 취급을 받으며 졸업 학점을 꾸역꾸역 채우고 있던 어느날,

한 무리의 신입생들이 지나가는 걸 보며, 좋을 때라고 한숨을 쉬고 있었지.

그런데 유난히도 키가 큰 여학생과 딱 눈이 마주친 거야.

분명 처음 봤을 텐데 이상하게 낯이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하고 지나치려는데.

그 여학생이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에게 말을 걸었어.


"저기...혹시 '대통이' 니?"


아니 처음 보는 신입생이 초면에 반말을...

근데 뭐라...고?


"그걸...어떻게?"


'대통이' 는 4살 때 꿈이 대통령이라고 말한 이후 지어진 내 어릴 적 별명이다.

부모님이랑 친척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텐데 어째서...?

그냥 우연의 일치로 나랑 같은 별명을 가진 사람과 아는 사이인 걸까?

어렸을 때 꿈이 대통령인 아이는 수두룩할 거 아냐.


"진짜? 진짜 '대통이' 맞구나!"

"어어?"


그녀가 갑자기 확 껴안아 온다.

가까이서 보니 키차이가 머리 하나만큼이나 난다.

게다가 덩치도...

호랑이 앞에 선 고양이 꼴이다.

그 호랑이가 나를 껴안고 있지만.


"누...누구시죠?"

"나? 나 기억 안나?"


도저히 짚이는 부분이 없어 다시 되묻자,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짓지만 금세 미소를 되찾은 신입생.


"하긴, 기억 못할 만도 하지. 동물 얼굴을 어떻게 기억해."


???

뭐? 동물? 이건 또 뭔소리야?


어안이 벙벙해하며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는 동안,

그녀는 볼을 핥았다. 갑자기?!

그런데 뭔가 떠오를 듯 말듯한...


"사람의 혀라 느낌이 다르려나..."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잠깐? 에이. 설마.

말도 안 돼는 소리 하지 마.

어떻게 동물이 사람으로 환생을 해.

그런 말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잖아.


"나야 나. '누렁이'.

네가 탈출시키려고 했던 소."

"???????????"


또라이가 여기 있었네.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네.

뭐, 나 같아도 믿기 힘들겠지만...

동물이랑 대화할 수 있었던 너라면 이런 이상한 일도 납득할 수 있겠지?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마. 나도 몰라."

"사, 사람 잘못 본 거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정신 나간 거 아닌가? 하는 표정이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럼 증거로, 어렸을 때 네가 이불에 지도를 그려서 

소 아래 덮어주는 이불과 몰래 바꿔치기 했다던가...

꼬맹이 주제에 어린이집에서 고백했다가 차였다던가 하는 얘기들...

다 말해줄 수 있는데."


정말 말이 안 되지만,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얘기들은 부모님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 얘기들이다.


"어...어떻게...이런 일이?"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엄청 찾아다녔는데.

신이란 건 존재하나 보네.

아, 친구들이 부른다. 번호 교환해줄래?"


얼이 빠진 나는 홀린 듯 번호를 교환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봐!

아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말을 귓가에 속삭이고는 떠나갔다.


"앞으로 둘만 있을 때는 '누나' 라고 불러♡"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 멀리서 그녀와 친구들이 지금 번호 딴 거냐며 꺅꺅 거리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너무 현실감이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 폰에 남아있는 전화번호...멋대로 '누나♡' 로 저장해놓은 화면이

지금 일이 거짓이 아님을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뭐냐고...."




소재 어때, 쓸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