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링크: https://arca.live/b/lovelove/107244289





'빅, 비빅....'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컴퓨터에는 29장 분량의 PPT가 켜져있었고, 컴퓨터의 옆으로는 에너지드링크가 나열되어있었다.

아, 나 과제하다가 잠들었구나. 

얼마나 피곤했으면 11년 전 일을 상상하냐....


'삐빅, 비빅....'

익숙한 소리가 났고, 근원지를 찾으려 안경을 책상을 더듬거리며 찾았다.

'삐비빅, 비빅....'

안경을 쓴 후 책상을 둘러보니 내 폰이 밝게 울리고 있었다.

'삐비빅, 비빅....'

화면에는 내 대학교 친구 지후의 번호가 떠 있었다. 


'또롱'


"여보세요, 야, 우진. 왜 이렇게 늦게 받는거야?"

나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아, 미안.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다가..."

"피곤할 만 하긴 하지......어쨌든, 완성 자료 보내놨지?"

"음..... 잠시만....(타닥)...보냈어, 확인해봐."

"음, 맞게 온 것 같네. 이대로 제출한다?"

"확인, 수고해. 난 자러 간다."

나는 기지개를 피며 안경을 다시 한 번 벗으며 침대로 향했다.

"야, 우진. 시간도 그렇게 안 늦었는데, 놀러 갈 생각 있냐?"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책상에 붙어있는 전자시계를 보았고, 시계는 PM 9:30을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히 늦진 않았네, 근데 뭐 하고 놀려고?"

"뭐, 여자들이랑 술이나 마실까?"

나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야, 너나 나같은 복학생이, 여자가 어디 있냐?"

"그건 맞긴 하지....그럼 오랜만에 오락실이나 갈래?"

".........오락실?"

"왜? 너 리듬게임 좋아하잖아?"

"그렇긴 한데....생각해보니 저번 이후로 가지를 않았네.....좋아, 오랜만에 가자."

"알았어, 그럼 10시에 오락실 앞 부거킹에서 만나자."

'뚝'

침대에 휴대폰을 던지고 수건을 든 후 욕실로 향했다.

빨리 씻어야겠네.....






9월 26일 (THU)
PM 10:00



"우진, 여기야."

지후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키도 작으면서 기다란 츄리닝을 입은 그는 씻고 오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야, 좀 씻고 와."

"뭐 어때? 어짜피 꼬추밭 가는데, 향수 뿌리고 왔으니까 괜찮아."

"....더러운 놈. 그러니 여친이 없지."

"지는, 같은 모쏠이면서."




우리는 오락실에 도착했고, 능숙하게 카드를 충전하고, 2인용 게임인 마X마X로 향했다.

"아, 씹. 뭔 3대기여, 다른 게임이나 할래?"

"그래도 오랜만에 왔는데 한판은 해야지, 좀 기다리자."

"아, 나는 딴 겜 하고 올테니까 니가 대기해놔."

지후는 나에게 카드를 맡기고 2층으로 내려갔다. 

저 새끼가......







12분 정도가 지났을까, 대기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나는 지후를 카톡으로 불렀다. 

우리 앞에 대기한 사람들이 게임을 하러 왔고, 내 대학교 과잠을 입고 있었다. 

그 두 명이 과잠을 벗자 긴생머리가 옷 밖으로 나왔고, 키득거리는 소리의 톤이 높았다. 아까까지는 몰랐지만, 둘 다 여자인 것 같았다.





"(소근소근)야, 뭐냐? 점마들 여잔가? 과잠 보니까 미대 쪽인가? 에이 씨, 씻고 좀 올걸....."

어느새 지후가 도착해서 나한테 속삭이고 있었다.

"여미새야, 오락실에서까지 여자 생각을 하고 있냐.....술 마시다가 궁금해서 한 번 해보러 온 거 아닐까?"




내 예상과 달리 그 둘은 수준급이였고, 그 중에서 왼쪽, 갈색 머리의 여자는 내 실력급이였다.

"야, 쟤들 잘하는데? 진짜 뭐냐?"

"그러게...?"




게임이 끝나고, 그들은 다시 과잠을 뒤집어쓰고 떠나기 시작했다.

"아....얼굴을 안 보여주네....쩝...게임이나 하자..."

나와 지후는 그녀들의 얼굴을 못 본 것을 아쉬워하며 게임이나 하기로 결정했다.




'삑'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킹우진님!"


기기에서 내 닉네임이 울려퍼지자 두 여자 중 한명, 갈색 머리의 여자가 멈칫하고 뒤돌아보았다.

나도 그녀들을 힐긋 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 만의 눈 마주침일까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이뻐지고 키가 커지고, 당당해진 '그녀'





'그녀'라는 것을 특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유림이라는 것을







"유림아...?"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녀의 동료는 벙찐 표정을 하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그녀를 뒤따라 나가기 시작하였다.

"유림? 걔가 누구냐? 아는 사이였냐?"

".........아는 사이였지...."


저렇게 인사도 없이 뛰어가는 걸 보면 내가 그렇게 싫었던 걸까? 

나는 뛰어가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그녀에게서 어떤 말을 들을지 두려웠기에, 게임에 집중하려 했다.






아. 나는 지금도 겁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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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어릴 때보다 더 듬직하고 잘생겨져선, 그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나면 증오만 생길 줄 알았다. 내가 스스로 그를 증오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만나면 화내며 당당히 걸어가고자 했다.

나를 그렇게 버려놓고 즐겁게 살고 있었냐고.


언젠가 만나더라도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증오감보다 반가움이 컸다.

그렇게 버림받아 놓고도 나의 마음은 그와 함께 있었던, 살아가면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7개월 간의 시간만 찾기 시작했다.




심장이 뛴다.

달려서 그런 걸까?

아니, 어쩌면.....






"유림아! 왜 그렇게 뛰어가는 거야? 아오, 숨차...."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오락실 근처 뒷골목에 기대어 있었고, 내 친구인 도은이는 숨을 고르며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남자가 누군데 그렇게 뛰어가냐? 아는 사이야?"

".....맞아. 아는 사이."

"그러면 인사를 해야지, 왜 그렇게 뛰어가? 아, 혹시 안 좋은 사이였어?"

"........아니....."





안 좋은 사이였나?

분명 안 좋게 끝나긴 했다.

그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도은아,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집에 빨리 갈게, 컨디션이 안 좋네....미안...."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도은이에게 손을 흔들며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5~6화까지를 생각하고 작성 중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