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답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을 해 보면 그것이 아름답지 않을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도 아름다운 만큼 크다는 게 아닐까?


첫사랑 얘기는 보통 세가지 끝을 가졌지.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도 자주 나오는 주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들으면 강한 인상을 남겨주니 잊을 수 없는 주제라서 또 재미있잖아?


첫번째 끝은 그런거 없다는 얘기. 다들 남중남고 나와서 그런가. 나는 그래도 옆 건물이 여중고였는데. 그렇다고 여사친들이 많지는 않았고.


두번째 끝은 무산된 얘기. 너무 흔해서 특별할 것도 아니라는 반응들이 나온다. 부랄친구라면 비웃음도 뿌려주는게 예사.

알고보니 남친이 있다던가, 그냥 차였다던가, 그대로 흘러가 잊혀졌다던가. 많이 보이는 그런 것.


세번째 끝은 이뤄지는 얘기. 참 아름다운 얘기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을 해 보면 거진 다 깨져버렸으니까 슬픈 얘기기도 하고. 하기사 원래 처음부터 잘 되는게 아니니까 아름다운거지.


사람 얘기 들어주는 것을 엄청 좋아해서, 내가 얘기하는것도 좋아해서 학생 때엔 학생 상담부도 했었는데. 심지어는 그걸로 교육도 받고 이런저런 활동도 했었지. 그런데 나는 이런 주제가 나오면 그냥 그런거 없었다는 말 밖에는 못 해. 난 분위기를 신경 많이 썼으니까.

이런 주제가 나온다는 것 부터 그 모임의 분위기는 정말 무르익어서 깨트리는 순간 그 사람의 위치가 추락해버리기 최적의 상황이 되어버리지. 다들 아는 그 어색한 상황. 알텐데? 갑자기 노래방에서 발라드 부르는 사람같은거. 손가락질에 눈칫밥으로 고봉밥 쌓아올리는 일.


난 그래서 더 얘기를 못 해. 첫사랑 얘기만 하면 분위기가 영화 소품 유리병 마냥 부서지거든.

나야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지. 당연하게도, 저 세 말로중에 하나였고. 그래도 다들 사람이 떠나는 얘기는 좋아하지 않으니까 얘기 못 해.


책이나, 좋아하는 스포츠 단 하나 외엔 아무것도 안 하던 음침한 사람한테 외국어 공부를 하려고 처음 사귄 펜팔은 신기했어. 성격도 좋아보였고, 호의가 안 생길수가 없지.

처음엔 그냥 이끌려서 글 쓰는걸 좋아하던 사람들끼리 있는 모임으로 말려들어가고, 그렇게 친해지는 건 순식간에 이어졌어.

취미도 책을 좋아하던 사람들끼리 쉽게 통했고, 나이도 똑같다는 것 정도는 얼마 안 지나 알았어도 그 때서야 간신히 말을 처음 놓았던 건 지금도 좀 어이가 없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다같이 북적이면서 노는건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 두 해도 아니고, 몇년이 지나도록 의외로 사고 없이 사람들은 다 같이 놀았지만 유난히 두 명이서 많이 놀아서 다들 놀렸어. 사귀냐고. 그래도 아니라고만 했지. 아닌게 맞지? 난 좋아해도 고백할 용기조차 없으니까 못 사귀고 있던거니까.

사귀는 게 아니더라도 그 이상으로 서로 영향을 크게 받았던 최고의 친구였으니까 만족했어. 얼마나 받았냐고? 말투나 성격, 좋아하는 작품 취향, 삶의 모토. 사실상 전부. 그 친구도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 야구라던가. 나한테 가장 크게 남는 영향은 모든 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려고 하라던 말이었는데, 한번 슬픔이나 고민에 빠지면 끝없이 이어지던 나를 잘 알아서 해 준 말이었겠지. 하소연을 하면, 많이 위로해줬으니까.


그래도 결국 둘중 아무도 고백을 못 했어. 아무도. 


친구라는 관계가 깨지는게 무섭다, 이건 아무리 온갖 로맨스에서 많이 나와서 진부할지 모르지만 정말 실제로 겪는다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문제였던거야.

몇년동안 최고의 친구로, 하루에도 몇시간씩 얘기하던게 순식간으로 느껴지는 그런 관계가 깨지는건 정말 엄청나게 무서운 상황이라는건 혹시나, 하고 고백하는 것을 생각 할 때 마다 뼈저리게 느껴졌어. 멍청하지 진짜.


심지어는 한국으로 여행을 와서 실제로 봤을 때도, 모든 사람들이 그 날 며칠에 일정을 끼워맞춰서 힘들게 성사된 정모였던 그 때 두 자릿수가 모였는데도 둘이서 한참 떠들었는데. 그 때가 최고의 타이밍이었을텐데.

그러고도 해가 넘어가고, 달력을 바꿀 때 까지 얘기를 못 할 줄은, 솔직히 스스로도 알긴 했을거야.


그래서 더욱 먼저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미친듯이 후회한거지.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던 사람이 일을 끝마치고 퇴근하려던 길에 허무하게 떠났다는 건 내가 아직도 신을 안 믿는 이유기도 해. 자동차 사고를 보면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가족을 잃은 것도 아니고.


연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친구, 지인이 떠난거지만, 그래도 스스로 얼마나 자책했는지 부모님이 날 보고 쉬라고 해서 시골 친척네로 잠시 갔지. 길만 건너면 있던 바다가 정말 예뻤는데,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


같이 모임에 있던 친구의 동생이, 걔가 날 좋아했다고 전해준 건 진짜 큰 쐐기였어. 충격때문에 자학스러운 일을 하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친구에게 미안해서 그만뒀어. 분명 싫어할 것 같아서. 


한창 공부해야 하는 때에 그렇게 후유증에 시달리니 부모님 걱정도 이만저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배려덕에 마음을 추스리고 내 삶을 살 정도까진 나아졌지.


이게 내 첫사랑 이야기야.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의 18번. 흔한 전형인 첫사랑이라는 주제라서, 반대로 생각하면 첫사랑이라서 더 가슴아픈 이야기.


이후로 그 모임은 천천히 흩어지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도 많이 있지. 근황만 전해지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남은 사람도 생각보다 많아서 아직 몇년은 더 가면 좋겠네. 추억이 있잖아. 


이런 슬픈 이야기라서 나는 들뜬 분위기에선 그냥 첫사랑 얘기를 안 해. 했다가는 다들 분위기가 숙연해지거든.


그래도 정작 나는 마냥 슬픈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가르쳐 준 대로, "반대로 생각한다면."


이런 경험을 내가 겪었으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전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하면서도, 힘든 일인지 알게 됐거든.

그리고, 그럼에도 왜 용기를 마음먹고 내야 하는건지 깨닫게 되어서 아직도 상담을 좋아해. 마냥 좋은 이야기는 오글거린다면서 비극적인 글을 취미삼아 쓰던 내가 이젠 순애 연애물도 좋아하게 됐고.

연애상담을 하면, 그 친구들이 언젠가 깨지게 될 지는 몰라도 최소한 좋아한다는 것은 얘기하게 되잖아? 또, 순애물은 덩달아 너무나 아름답게 이루어지잖아.

이런 게 너무 좋아졌어.


이 이야기는 정말 가슴아파서 생각만 하면 입술 살짝 깨물고 울음을 참아야 하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도 고맙고, 미안하고, 좋아하는 내 인생 최고의 친구 이야기야.


이제서야 되도않는 웃긴 유머라고 치자면 대가가 좀 비싼 교훈이었지. 그 쉬는 동안 Y대 성적이 D대가 됐거든. 그래도 나름 과는 내가 원하는 과로 갔어.


내가 신을 안 믿는다고 했지? 사후세계도 안 믿어. 그래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지옥이나 천국 그런거 상관 말고, 그냥 알던 사람과 얘기정도만 할 수 있다면 좋겠어. 보자마자 좋아한다고 하고싶거든. 사랑한다고.


정말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 라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그 만큼 좋아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걸 쓰게 된 건 공부하다 괜히 새벽감성에 젖어있는데 작품중 몇몇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한풀이 겸 했어.


너희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은 꼭 숨기지 마. 기회가 늘 다시 돌아오는건 아니었더라. 나는 수많은 기회도 놓고 놓아버린 끝에 다신 오지 않게 됐었으니까. 당장 부모님한테도 좋아한다 못 하는 사람 많잖아?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