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의 남성이 람세스 2세, 그의 품에 안겨있는 여성이 정실부인 네페르타리)

람세스 2세,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으로 인생 무상을 상징하는 시로 유명한 오지만디아스가 바로 이 사람이다.




(은발의 남성은 람세스의 벗이였던 모세)


첫 번째 정비인 네페르타리를 비롯해 여러 명의 왕비 및 후궁을 두었으나 그는 정실부인인 네페르타리만 곁에 있다면 측실따위는 한명도 둘 필요가 없었다고 느꼈다.



람세스 2세가 역사속에서도 손꼽을만한 애처가라는 것은 실제 문헌이나 유적에서 발견되는 만큼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람세스는 그녀를 위해 직접 신전을 지어 주기도 하였다. 아부심벨 소신전이라 불리우는 아부심벨 대신전 근처의 신전이 바로 그 곳이다. 아부심벨 소신전에서는 신전 앞의 석상이 람세스와 같은 크기로 새겨지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곳곳에 새겨둔 네페르타리의 무덤은 왕비들의 계곡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막간 등장하는 토끼귀의 보라색 머리카락 캐릭터는 고대 파라오중 한명이 니토크리스)


룩소르 축제에  네페르타리를 묘사하고 있는 글은 다음과 같다. ‘여왕, 찬양을 받는 여인, 우아한 여군주, 달콤한 사람의 여인, 두 땅덩어리의 여주인, 완벽한 여인, 두 손으로 시스트럼을 쥐고 있는 여인, 아버지 아문을 즐겁게 해주는 여인, 가장 사랑받는 여인, 왕관을 쓴 여인, 아름다운 용모, 충만함이 가득한 말을 전하는 여인.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지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얼굴엔 기쁨이 넘쳐 흐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생명이 솟아난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한 첫해부터 왕비는 중요한 나라 일에 관여했다. 대관식이 있은 뒤 네페르타리는 람세스와 함께 아비도스에서 네부네네프를 아문의 대신과으로 임명하는 의식에 참여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부유하고 강력한 테베 성직자의 중성을 보장받았던 것이다. 네페르타리는 민의 죽제저럼 두 땅의 번영을 영구히 지속시기는 나라의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축제에서 왕비는 주술을 외우면서 왕의 주위를 일곱 번 돌았다고 한다. 특히 람세스 2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수 있는 히타이트인과의 평화 협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히타이트와의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네페르타리는 장기간의 협상기간 동안 히타이트 왕비와 서신을 나누었다. 두 왕비는 보석과 옷감 등도 교환했는데, 그러는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던 모양이다. 여기서 네페르타리는 히타이트의 왕비를 동생이라 부르며 서로의 결혼생활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아름다운 꽃은 일찍 지는 법이랄까, 정확한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가 파라오에 오른 지 25년째 되던 해에 사망하였다. 이후 람세스 2세는 죽는 나이인 90세 까지 여러명의 측실 부인을 들였지만 그들 중 네페르타리만큼 사랑을 나누었던 기록은 찾아볼수 없었다고 한다. 










저 위의 이야기들 대부분이 다 실제 이야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