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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순애야! 나랑 사귀어줘!”

 

순붕이에게 고백을 들었을 때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였다.

순붕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했고 그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다. 순붕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진.

 

순붕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찾아갔다. 병실 문을 열고 내 눈에 들어온 순붕이는 만신창이가 되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일어나봐..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왜..? 왜..”

 

의사는 평생 하반신을 쓸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상관없었다. 일어나기만 해준다면..

 

“얼른 일어나.. 언제 일어날 거야.. 나랑..나랑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얼른 일어나 제발.. 흑... 제발..”

 

순붕이가 의식이 없는 걸 보고 불안했다. 평소 내가 불안해하면 순붕이가 날 안아줬는데.. 하지만 내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순붕이가 날 안아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순붕이가 일어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환자 분 의식이 돌아오셨어요, 어서 병실로 와주세요!!!”

“지금요? 예! 바로 갈게요!”

 

서두르다 휴대폰도 떨어뜨리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였다. 순붕이가 일어난 모습이 보고 싶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 달렸다. 그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겨우 병실 앞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이 문을 열면 순붕이가 무슨 말을 해줄까.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날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아할까?

넘어져서 생긴 내 상처를 보고 마음 아파할까?

둘 다 아니였다. 순붕이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병실을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에이.. 장난치지 마. 왜 그래? 일어났을 때 내가 같이 안 있어줘서 삐진 거야? 미안해 잠깐 자리 비웠어. 이리 와,안아줄게!”

“잠깐.. 함부로 안지 마세요!!”

 

순붕이에게 다가가 안기려 했지만 순붕이는 내게 안기려 하지 않았다.

안기긴 커녕 온 힘을 다해 날 밀어냈다. 왜? 왜 그런 반응인 거야..? 왜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는 거야?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간호사가 불렀다.

 

“여친 분, 잠시 저랑 나가서 이야기하실까요?”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환자 분께서 기억상실증이세요.. 그러니..”

 

간호사는 그 뒤에 뭐라고 열심히 말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올 리 없었다. 기억상실증? 기억상실증이라고?

그런 건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시간이 좀 지난 후 차분히 생각해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런 건 뻔했다. 매일 찾아가는 것. 괜찮아. 다시 한번 내게 반하게 하면 돼. 어쩌면 도중에 기억이 돌아올지도 몰라. 응 괜찮아. 나라면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매일매일 찾아갔다. 비가 심하게 오는 와 우산이 뒤집히는 날에도 천둥이 치는 날에도 계속 찾아갔다. 이렇게 하면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무리였나 보다. 내 앞에 있는 건 내게 잘 웃어주는 애인, 순붕이가 아니라  나와 사귀기 전의 낯을 가리는 순붕이였다. 어느 날은 찾아가도 상대도 해주지 않았고, 어느 날은 아예 날 피해 숨었다. 난 점점 지쳐갔다. 날 그렇게 만나기 싫은 건가? 이젠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 건가? 이젠.. 놔줘야 하나?

 

 

 

 

오늘도 별 진전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순붕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찾아갔지만 순붕이는 입도 대지 않았다. 

입을 대기는 커녕 이젠 찾아오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


"솔직히 민폐에요. 이제 그만 와주세요."


민폐..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들은 순붕이에게 있어서 민폐였던 건가. 지금까지 괜한 짓한 건가.

이제 순붕이와 나는 끝인 건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가려는데 뒤에서 간호사가 불렀다.

 

“잠시만요!”

 

간호사는 내게 서둘러 달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그게요.. 음.. 사실…”

 

간호사는 몇번 주저하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 분은 사실 기억상실증이 아니세요.”

“..네? 아니, 하지만 그때 분명 기억상실증이라고 하셨잖아요.”

“죄송해요. 거짓말했어요. 환자 분께서 간절히 부탁하셔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어서 거짓말을 해?

 

“안 믿으시는 건가요?”

 

이런. 표정에서 드러났나보다.

 

“솔직히 안 믿기네요.. 순붕이가 뭐하러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해해요. 저라도 믿기 힘들 거에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건 환자 분께 들은 건데요.”

 

간호사는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울다 지쳐 잠든 날 순붕이는 잠깐 일어났었다는 것.

눈이 팅팅 부은 채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마음 아파했다는 것.

평생 하반신을 못 쓰는 자신은 나에게 있어서 짐이고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런 자신은 버리고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해서 기억을 잃은 척한 것 전부.

 

“…괜찮으세요? 상태가 안 좋아보이시는데.”

“괜찮아요.. 그냥 좀 생각이 복잡해서 그래요..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감사인사를 한 후 바로 달렸다. 엘레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병실 앞에 도착해 병실 문을 열자 순붕이는 꽤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왜 다시 오셨어요? 이제 오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너..너! 너 사실 나 기억나지! 기억상실증인 거 거짓말이지!!”

“..무슨 말이에요?! 남의 병실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알 수 없는 말까지 하는 거에요?!”

“너..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말 대신 눈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울어.. 요? 다가오진 마세요! 거기서 말하세요!”

 

시끄러워. 그동안 날 속인 대가를 치르게 해줄거야. 난 순붕이에게 다가가

 

“어?”

 

꼭 안아주었다.

 

 

“흑.. 미안해..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네 여친이라면서 너가 연기하는 것도, 너가 무슨 생각하는 지도 몰랐어..”

“….”

 

순붕이는 날 밀어내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얌전히 안겨있었다.

 

“미안해.. 나 사실 너가 기억상실증이라고 할 때, 그리고 나를 계속 밀어낼 때 널 놔줘야하나 싶었어.. 진짜 좋아하면 그런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나 역시 너 포기 못하겠어.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래..”

“..괜찮아?”

“어?”

“난 이제 평생 걷지도 못해.”

“괜찮아, 내가 계속 너의 다리가 되어줄게.”

“다른 사람이랑 연애하는 편이 훨씬 행복할 거야.”

“너가 아니면 안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여야 해.”

“…..”

“순붕아, 이런 나라도 좋다면 계속 사귀어줄래?”

 

순붕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흐느끼더니

 

“흑… 응…!”

 

그동안 안아주지 않았던 만큼 날 꽉 안아주었다.

난 순붕이가 힘을 준 만큼 더 힘을 주었고,순붕이도 내가 힘을 준 만큼 더 힘을 주었다. 우린 서로 안은 채 그날 하루 시간을 보냈다.

 

 

 

 

“순애야.”

“응? 왜?”

“만약 너가 날 떠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말해줘.”

“또 그런 말 할 거야?!”

“아니, 혹시나..”

“어허!”

“….”

“순붕아.”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