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도 뽑았겠다, 어느덧 해가 지기에 그와 저는 이만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와 같이 걸어가면서 보는 노을은 어째선지 낭만적이네요. 노을이야 다른곳에서도 얼마든지 볼수있겠지만

역시 주변에 사람없는 거리에서 이렇게 단둘이 있는곳에서의 노을은 낭만이 있달까요?


"난 저 왼쪽골목으로 돌아서 10분정도 가면 돼"


..? 

사실 저쪽은 제 집으로 가는 방향인데, 이게 어찌된일 일까요

집의 방향이 저와 똑같다고 하자 놀란건 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비과학적인 얘기는 신빙성이 떨어져 믿지않는 사람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운명이란것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거리도 방향도 비슷한데 어째서 등교때 그와 마주친적이 한번도 없었던걸까요? 어쩌면..


"왜겠어, 내가 너보다 집에서 늦게 나오니깐 그렇지"


...그럼 그렇지, 역시 불성실한 사람이네요


그래서 그에게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평소보다 일찍일어나면  앞에서 마중나올테니 같이 등교하자고.


저에게 나름 호감이 있으신거 같은데, 이런 미인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일 일지도 모르지만. 당신과 같이 학교를 걸어간다면 평소에 느끼는 고독감도 덜어낼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조회시간 전에 당신에게 공부를 가르칠 시간도 늘어나죠.



하지만 그의 답은 거절이였습니다. 그도 제 말대로 하고싶다지만 안된다네요?



그것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그에게는 여동생이 있다고합니다, 두살아래 여동생이.

그의 어머님께서 여동생이 일어나는 시간에만 아침식사를 차리므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진다는 거였죠

..그냥 차려달라하면 되는게 아닌가? 왜?

이유가 납득이 되질 알았습니다. 아직 고작 말 한마디듣고 확정할수는 없겠지만.

믿고싶지 않지만 설마 이건... 차별, 이란걸까요?


그러다 갑자기. 그가 한말이 떠올랐습니다.

자기는 가족조차 포기했다고.

버렸다고.

그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네요

가령 어머니뿐만아니라 아버지란 분도 똑같을 겁니다


"..당신의 어머니라는 분은 어쨰서 여동생에게만 신경쓰는건가요? 써도 그렇지. 당신에겐 말 한마디 없이?

 왜 그렇게 편파적일수가 있죠.."


그가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여동생이 뭐든 잘하고, 아주 잘 났거든. 그것도 엄-청 많이 잘났어"


...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보네요


그는 그 후,

평상시의 차분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를정도로.  신경질적으로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여동생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다. 비정상적인 천운과 재능을 갖고 태어난것같다.

..그래서 부모님은 자신한테 신경을 안써준다. 하나도.



"아하하..미안해. 이런 기분나쁜 얘기같은거. 별로 재미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았을텐데"


기분나쁜 얘기같은게 아닙니다. 당신이 얼마나 서러웠을지 알겠으니까요..


"...어요"


"응? 무슨말ㅇ"


못 알아들으셨다면 다시 한번 말해드리죠


"그런건 잘못됐어요.  옳지 않다고요!"


저는 외동이라 형제자매가 없어서 그의 속마음을 100퍼센트 이해하진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아는건 있어요


"어느 부모의 자식이든간에, 모둥 공평하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어요! 편애같은걸로, 한쪽에게만 퍼부어주고

 다른 한쪽은 버린물건따위로 대하는건 결코 있어선 안되는 일이라구요! 당신도 엄연히 이 집의 아들, 자식일텐데

누군 잘하고 누군 그보다 못했다고 이렇게 비참하게 살 이유가 세상에 어딨다는 건가요.."


어쩌면 제가 하는짓이 과한 오지랖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삶을 당신 스스로가 어찌 생각하며 받아들이는지는 타인이 아닌 자기 몫이지만. 그래도 참견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저보다 앞장서서 걸었으니, 지금 무슨 표정을 지으시고 계실지는 저도  모르지만...

확실한건 좀 전의 당신은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얼굴을 하셨으니까.

그리고 오직 저만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


그는 고개를 숙인채 미동도 안하고 허수아비처럼 멈춰 서있었습니다

제가 흥분해서 주제넘은 말을 내뱉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불안하네요, 상처를 주고싶었던건 결코 아니였는데..


"어..왜 그래요? 그렇게 고개까지 푹 숙이시고.. 혹시 제가 말 실수를 했다면 사과드릴테니. 화 좀 풀어주시면 안될까요?

 전 그저, 이건 아닌거같다 싶어서. 당신이 걱정되서 그런거니까..."


그보다 앞으로 걸어가. 안색을 조심스레 살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저,저 저기요? 지금 설마.."




그는

울고있었습니다


길에서 부모를 잃고  헤메는 어린아이마냥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어 울고있었습니다



"어, 어..난, 나느은..."



단순한 이 말 몇마디에 그가 감정을 주체못하고 울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도 그를 걱정해주지 않았으니까. 보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이니까요

가족이란 인간들도 신경써주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붙잡고 지지해줄리가 없었겠죠

사실 당신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였을텐데, 하고싶은게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짓밟혀버려 결국 이렇게 죽은 사람이 되버린걸까요...


그는 멈출기색이 없어보였습니다


자기도 노력했다고, 열심히했는데 다들 동생만 신경써줘

주위에선 자신에 대해 안중에도 없어서 혼자서만 외로이 달려와 그럼에도 노력해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 꿈마저 결국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죠



왜 매사를 귀찮아하고 미래의 계획같은것도 없이 살아가는지.

당신이 왜 그랬는지 저는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당신의 곪아버린 상처를 없던걸로 해줄수는 없어요

그건, 해주고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상처를 덜어내줄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왜 나만..이렇게 되버린거냐고..."


왜 당신이 그런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으니까 대신 -



-이렇게. 당신을 안아드릴게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여러 힘든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죄송했어요. 그동안 몰라줘서.."



적막한 하늘 아래, 그의 흐느낌만이 주변의 정적을 매웠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이 비도 언젠가는 그칠테니까



-


10월의 마지막날. 쌀쌀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한적한 근처 벤치에서 멍하게 앉아 있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8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슬퍼하는 그를 외면하고 집으로 가기엔 뭐하다싶어서

이렇게 늦은 저녁까지 귀가를 안하고 그의 옆에 앉아있네요


아무래도 그의 입장에선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고 생각한건지. 입을 열 기미가 안보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그와 있는데도 어색한 분위기가 생기는건 싫네요

이럴땐 유도리있게 제가 먼저 입을 떼는게 좋겠죠?


"그래서, 이젠 뚝 그치셨나요?"


"..응. 나야 상관없지만.. 넌 아직까지 집에 안들어가도 괜찮아?"


딸바보인 부모님들이시지만.. 옆에 든든한 사람이 있으니 늦게가도 괜찮다고 말씀드려 놨습니다. 이상한 말이긴한데..

..남자친구가 있다고 얘기할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실제로 저희가 연인인것도 아니지만 뭐. 그냥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아까 아버지께 늦게 들어간다고 문자를 드렸으니 괜찮아요, 뭐 여기서 더 늦으면 부모님도 걱정하실지 모르니

 슬슬 가봐야겠지만.."


"그렇네..슬슬 가봐야지.. 아, 오늘일 말인데..미안.."


뭐가 미안하다는걸까요. 전 오히려 털어놔줘서 고마운데.

평소에 무표정하면서 이런면에서는 또 저를 배려해주려 합니다.

의외로 상냥하달까.. 슬픈 사정으로 약간 뒤틀려버려서 그렇지, 원래 이게 그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딱히 부끄러워 하실필요는 없답니다? 누구든 간에 울고싶을 때에는 참지말고 울어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애써 버티면

 마음만 썩어버릴테니까"


당신은 오늘 전까지, 얼마나 쌓아두며 살아왔을까요?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한채로..


당신이 오늘 보여주고싶지 않았겠지만 보여준 그 연약한 모습은. 오직 저만이 알고있다 생각하니 뭐랄까..

기분좋네요. 당신이 제 품속에서 눈물을 흘린건, 당신이 본심을 드러낼수 있는건 그만큼 제가 신뢰할수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거, 맞죠? 

그러니 앞으로도 절 믿어주세요. 힘들땐 기대어주세요.

그리고..



"..."


"그리고, 전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단 말이 더 듣기좋아요"



그러니까 고맙다고 말해주시면 더 기쁠것같아요



"그래, 고맙다. ..항상 해왔던 생각인데 넌 말야, 사람 속을 잘 읽는거 같단말이지"


"하하.. 그냥 당신은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기 쉽거든요"


사실입니다. 뾰루퉁하게 있어봤자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제 앞에서 본심은 다 보인다구요?



"그리고.. 말하는 김에 하는 부탁인데. 제 이름은 '넌' , '너'가 아니에요.

 수연. 이게 제 이름이죠. 얼굴튼지도 꽤 된것같은데, 아직도 이름으로 불러주신 적이 없으니 꽤 속상하다고요?"


제가 생각해도, 이건 저 답지 않은 언동입니다.

이런 말은, 보통 속 시꺼면 여자가 남자를 뱀처럼 삼키기위해 유혹하는 그것과도 같은데...

말하고보니 내심 부끄럽네요. 언제부터 전 이렇게 대담해진거 걸까요?



"알았어, 수연아"



처음으로, 이름으로 드디어 불렸습니다. 

결국 순간적으로 이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와~ 박수!! 드디어 불러주셨네요!

 상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 드릴까요?"


이러고 있습니다. 제 머리가 어떻게 되버린게 아닌가싶네요


"수연아"


"네?"


"내 애기, 더 들어줄 수 있어?


"물론이죠"


오히려 이쪽에서 듣고싶네요


-



그는 그후로 말했습니다.

어릴때부터 농구선수가 꿈이였다고, 노력해서 국가대표도 가능할정도로 잘했다고.

그때는 부모님도 그에게 신경써주었다 합니다. 하지만 1년 반 전부터. 여동생의 천부적인 재능이 드러나서..

그 뒤로 부모님은 동생 쪽에만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다고하네요.

순붕씨도 엄연한 자식이고, 노력도 했는데 정말 너무한게 아닌가싶습니다. 금전적 문제라는 핑계라고 교육적인

지원도 잘 안해주면서, 가만히 냅둬도 못할 망정 가업까지 떠맡으려고 하는 바람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요? 그 집에 태어난 죄? 아니면 동생보다 뛰어나지 못한 죄?

전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결국 당신은 사는걸 포기해버렸죠. 하고싶은것도 더이상 못하고.. 가족과 친척들은 그 잘난 여동생에게만 애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전 당신을 처음 볼때, 아무 기운없이 흘러가는대로 살아 인생을 버리는 양아치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당신은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상처받았을 뿐인 사람이란걸."



전부 사실입니다. 처음엔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알고있으니까.



"이제라도 알아줬으니 다행ㅇ.."



"솔직히, 제가 당신의 꿈을 이뤄드릴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꿈을 강제로 잃어버리게 된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건 가혹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삶의 의미를 찾아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말하는건.. 사실상 고백과 다름없지 않나요? 저도 이런 제가 답답해서 미칠것 같으니까, 

이젠 차라리 그가 시원하게 사귀자고 말해버리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흔쾌히 수락받았습니다.

어차피 그가 마음을 담을 사람이라고 해봐야. 지금 이 세상에서는 저 뿐일테니..아직 고백하지 못해도 괜찮겠죠


그러면 슬슬.. 시간도 아홉시가 되가니 일어서야 하지만.

그전에 해야할 말은 해야겠죠



"아, 그리고 좀 전에 말했던대로, 앞으로 일찍 일어나주세요, 제가 마중나올테니"


"하지만.."


"제가 도시락을 싸드리면 해결되는 문제, 맞죠?"


그의 얼굴빛이 달아올랐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 도시락까지 만들다니..왠만한 남자들은 다 부러워서 나뒹굴텐데,

하긴 그 당사자는 얼마나 기뻐할까요? 후후...


"그런 바보같은 표정짓지마요. 저도 요리는 좀 하니까. 아니면..집밥이 더 맛있으셔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아니, 절대 그런거 아냐!"


예상했던 반응이라 그런지 더욱 재밌네요


"그래주면야 엄청 고맙지, 하지만 너가 힘들텐데.. 나 때문에 괜히 고생만 시키는것 같다고."


"그정도론 끄떡없거든요 - 바보

 그럼 내일봐요. 얼굴이 하도 울어서 퉁퉁부었는데 집가서 세수 좀 하시고"


"쪽팔리게 꼭 그런말까지 해야 돼?"


할 필요야 없죠. 그냥 재밌으니깐 그런거지..



-


"아이구, 어서와 우리딸~"

"옆에 사람이 있어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괜찮니 수연아?"


평소처럼 부모님이 환하게 절 반겨주시네요

경영주이신 아버지, 그리고 은퇴했지만 지금까지도 전국적인 인기로 이름을 떨치시는 미인 배우이신 어머니.

저는 항상 부모님께서 이렇게 과하게 반겨주시는 거에 대해 일상적인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가 생각나 슬퍼집니다.


"그래서..문자로 말했던 그 옆에 든든한 사람이란 누구니?"


"아. 그냥 반친구에요..남사친.."


"정말~그냥 남사친일까? 응?"


"그,그런거 아니에요 정말로!"


"어련하시겠어요~ 그러면, 많이 친하니?"


"..네. 많이 친한것같아요"


"아이고.우리 수연이가 드디어 친구가 생겼구나!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애들이 너 차가워서 무섭다고

 막 리산드라?인가 칼날여왕인가 뭐라 불렀다던데.. 지금은 새 학교로 온지 한달도 안되서 절친까지 만들었구나"


어머니가 흑역사를 막 꺼내시네요.. 그때는 남자애들이 본인 내키는대로 들이대서 상종하기 싫어서 접점을 점차 없엤지만,

그래도 같은 여자애들끼리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었어요

그렇다고 절친수준으로 깊게 친해진 사람이 있냐하면 소수의 여자애 몇명뿐이지, 남자쪽으로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 아빠도 너가 전에 남자애들이 철없어서 싫다고 아예 연애를 안한다고 말했을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그래도 지금은 하려하니깐 천만다행이다. 좋은 사람이면 절대 놓치지마. 청춘이라고 해도 여러 연애경험을 가질 필요는 없는

 법이거든. 한번이여도 서로 잘 통하고 마음이 맞으면 그걸로 충분한거야."


"그러니까, 사귀는거 아니에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남의 도시락을 싸준다라.. 사실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연인들만이 할법한 행동인데,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것마냥 말했네요..

그의 입장에서 제 말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생각하니 뭔가 낯 부끄럽습니다



"어, 어디가 수연아?"


"먼저 방에 들어갈게요~!"



그래도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법이니..

그럼 자기 전에 내일 뭘 만들어줄지 생각이라도 해볼까요?




-


수연시점 끝

다시 스토리 진행할꺼



내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글 못올라올지도 모른다. 대면시험있어서 기숙사 가야하거든...


오늘 바람 ㅈ ㄴ 춥던데

다들 슬슬 전기장판도 깔고 긴팔 티 입는게 좋을듯



그럼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