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온 사람은 우리 둘뿐이였다


"어라..아무도 없네요?"


"그야 우리가 평소보다 일찍 나왔으니까, 아무튼 조용하니 좋지않아? 이럴땐 적막하니 잠도 잘온다고. "


"아하하,아직도 당신 머리 속에는 주무실 생각밖에 없나요?"


"그냥 농담이야. 아무 소리없이 고요한것보다야 애들끼리 모여서 서로 시덥잖은 얘기를 하느라 시끌벅적한것도 사실 나쁘지않지.

조용하면 그건 그것대로 적적한 기분이거든 "


"순붕씨는.. 조용한 분위기보단 왁자지껄한 쪽이 더 좋으세요?"


1년 반 전 쯤. 그러니까 동생이 내가 받았어야할 이목까지 혼자서 모두 독차지 해버리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도 부모님과 친척들의 따스한 응원과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명절만 되면 주변 어른들이 술상에서 국대에 나가느니 뭐니.

성공할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느라 항상 시끌벅적했었다. 그야 그때는 다들 나한테 관심을 쏟아부어 줬으니까,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런 정신사나운 분위기가 그립기도 하다

...뭐, 이제는 그럴 날이 올리 없겠지만.



"그래. 너야 뭐 조용한 쪽을 좋아할거 같지만."


"선호하긴 하지만.. 싫어하기도 해요"


"답이 뭐그리 두루뭉실해? 싫으면 싫은거고 좋으면 좋은거지."


..틀림없이 전자라고 단답 할것이라 예상했는데 애매한 대답을 내놨다



"조용하면 무슨일을 하든간에 집중하기 쉽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느낌도 들어서 좋아하긴 하지만..

오히려 가끔식 저 혼자 세상에 남겨진 기분이라 싫기도 해요"


..혼자 세상에 남겨진 기분이라. 무슨 기분인지 안다.

정확히는 남겨졌다기 보다는 버림받은 느낌이지



"..그래? 너라면 무조건 조용한 편을 좋아할거라 생각했는데 좀 의외네"



"그 혹시,제가 학교에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리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그냥 솔직하게 말할란다



"하아..저도 당신처럼 같이 밥먹고 잡담하는 친구들 정도는 있다고요? 말을 떠는건 제가 좀 긴장해서 그럴뿐. 교우문제같은건

하나도 없어요.  남학생들은 하나같이 저돌적이라 그닥 친해지기 싫은거고."



"근데 나하고는 잘만 친해졌다? 처음 볼때부터 너하고 친해질꺼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친구가 될줄 누가 알았겠어"



"..당신이야 뭐,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런거죠.

그런데 지금..친구라고 하셨나요?"


"그럼. 여사친이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대답을 들은 그녀는 살짝 섭섭해보였다


..솔직히 여사친이 아니라 그냥 여친이라고 무리수 두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제정신으론 말 못하겠다.

그런말했다가 짜게식은 얼굴로 바라볼지도 몰라.



"..잡담이 길어졌네요. 슬슬 반 학생분들이 올지도 모르니, 그 전에 드시는게 어때요? 보는 사람이 생기면 이상한 소문이 퍼질지도

모르니깐.."


뭘 그리 수줍어할까. 사실 이미 전교에서는 그녀와 내가 사귄다는 소문까지 돈지 오래인데. 이제와서 도시락 싸주는걸로...

아, 확실히 누가 봐서 소문이라도 퍼진다 생각하면 좀 부끄럽긴하네. 

이 학교에서도 커플이 여럿있긴 하겠지만 도시락싸주는 연인같은건  본적이 없다...이런건 누가봐도 평범하진않겠지.


"그.. 그래야 할거같네"


그녀가 또 다른 가방에서 꺼낸건..이층 도시락이였다.

그게 다가 아니라 국이라도 담아온건지 보온통도 보이는데, 전부 내용물은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신경써서 만든거겠지..

그녀의 노고와 친절에 감사할뿐이다. 천사나 신같은 영적인 존재가 실제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옆자리에 있는

그녀는 틀림없이 천사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를 알 수없다.


"..저기요"


"저기, 어쩌면..별로 맛없어도 부디 뭐라 하시진 말아주세요.."


"그럴일 없어. 니가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준걸로도 이미 충분히 기쁘니까"



-


도시락 뚜껑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뭔가 집밥보다도 그리울꺼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내용물을 보니 그 자리에서 감동할수밖에 없었다

주먹밥에 치즈와 베이컨을 말은것과 제육볶음, 발사믹 식초에 절인듯한 샐러드와 새우튀김, 그리고

이층에는 오믈렛과 콘치즈가 있었다. 


"와, 우와..."


"왜,왜그래요? 설마 별로"


"그럴리가 있겠냐!"


"너 이거 정말 혼자서 다 준비한거야? 나같은 새끼한테 이렇게 까지.."


"네, 전부 혼자서다했죠. 오믈렛이 살짝 어려웠던거 빼면 할만했달까.."


"이거, 정말 나 먹으라고 만든거 맞지..?"


"푸흣,당신먹으라고 만든건데, 그럼 누구겠어요?

식기전에 빨리 드시기나해요. 맛평가는 그 이후에 들려주셔도 괜찮으니까"



불행했었다. 널 만나기전까지는.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것같아





-


"..그렇게 빨리 안드셔도 괜찮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본인도 입꼬리가 올라간게 다 보인다

..이거 맛도 하나같이 범상치않은데? 레스토랑같은곳에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이정도면

그녀의 요리실력은 그런곳의 쉐프보다 틀림없이 높을것같고,

그녀의 꿈이 요리사가 아닐까 생각될정도로 맛있다.



" 시발 존나 맛있는데? 특히 오믈렛 이거.. 그냥 호텔 요리사해도 되겠다고!

너 사실 꿈이 요리사인거 아냐? 살면서 먹은 것중에 제일 맛있어"


"..그렇게 호들갑떨면서까지 치켜세워주실 필요는 없거든요?

이정도야 그냥 평소 취미에요."


"아니, 띄어주는게 아니라 진짜 맛있다니까 그러네? 이렇게 맛있는거 처음 먹어봐"


"아, 정말..!"


부끄러워서 그런가? 그녀가 책상에 고개를 박고있다

어휘력이 딸려서 맛 표현을 상세하게 못하는게 한이지. 어느 음식 하나 전부 간이 골고루. 음식점에서 비싼 돈받고 팔아도 될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이게 진짜 집밥이지


이게 진짜 야스지


정신없이 먹느라 도시락을 어느새 국이 담긴 보온통빼고 전부 텅 비워버렸다


"..수연아"


"네?"


"..너가 최고야"


"..정말로 맘에 드셨나보네요. 당신이 그렇게 까지 호평해주시면... 진짜 요리사를 해볼까 싶기도하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눈을 피하고있는 중이다

하나같이 듣는사람 오글거리는 칭찬만 하는것같지만. 그정도로 맛있으니까 당연하지




"정말 고마운데, 나 때문에 앞으로 너가 힘들거같아서 신경쓰여. 이거 이렇게 만드는것도 일찍 일어나야하고 힘이 많이 갈텐데..

다음부터는 안싸줘도 괜찮아. 나 생각해주는걸로도 충분히 고맙"


".....안돼요"


"..뭐?"


"제 요리, 맛있다고 하셨죠?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거죠?"


"그야 물론이지! 정말, 정말로 기쁘지만..생각해보니 나 챙겨준다고 너가 힘드는건 좀 아니지않나 싶어서.."


"하나도 안 힘들어요. 일찍 일어나면 그만인거고. 당신이 생각하는것 만큼 그닥 힘쓰는것도 아니니깐.. 그저 얌전히 즐겨주세요.

당신도 사실 좋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해주는건, 해주고싶은건 당신이 처음이니까. 제가 재밌어서 하는거니까.. 배려는 감사하지만

그렇게 신경안쓰셔도 괜찮다고요.네?"


어느샌가 양손으로 내 어깨를 쥐어잡고 목소리를 내뱉는 그녀에게

평소 있었던 맑고 투명한 눈의 광채를 찾을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심해조차 묻어버릴정도로 탁한 빛에 잠겨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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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맞습니다

순애 맞습니다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