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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잘 모르겠다고 하니 걔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주었습니다 시끄럽고 통통 튀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참 펑범한 이름이었지요 그리고 전날 못했던 번호 교환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로 저희 5명은 밥친이 되었습니다 사적인 연락은 없었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모여서 밥을 먹었죠 하루는 누가 빠지고 또 하루는 다른 누가 빠지곤 했지만

그렇게 같이 점심을 먹으며 그 친구를 알아갔습니다 걔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아이였어요 '억텐' 제가 느낀 첫인상은 그런 과한 쾌활함이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곤 했지만, 생각보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그날은 이미 술이 조금 들어갔고, 그 친구도 그런 술자리가 익숙치 않았기에 그만 오버를 했나봅니다

하루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 이놈은 오씨니까 o라고 하고 그 친구는 김씨니까 k라고 할게요 o녀석이 신검을 받는다고 학교를 오지 않았고, 다른 밥친인 두 친구는 조별과제의 같은 조가 되어 회의를 한다며 가버린 날이었죠 저는 그냥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먹을 생각으로 수업을 듣고 나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을 보니 카톡이 하나 와있었습니다

'어디야?'

k에게 온 첫 카톡이었어요 저는 순순히 제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은 닭갈비 먹자'

솔직히 단 둘이 밥을 먹는다는 가정 자체가 없었기에 저는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고 있는 새에 누가 제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손가락이 제 볼을 찌르더군요 k였습니다 같은 동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지라 곧바로 저에게 온 것이었지요 저는 그때까지 k를 조금 어렵게 느꼈었는데, 타고난 친화력인지 서슴없이 그런 장난을 치더군요

티는 안내려 했지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도 그럴게 제가 시골에서 살면서 남중 남고를 나왔거든요 여자와 접점이 전혀 없었던 인생이었던지라, 그만한 스킨쉽에도 제 귀가 그렇게나 빨개졌나봅니다 잔뜩 빨개진 제 귀를 보고 어찌나 놀리던지..

그날은 둘이서 유가네를 갔었고, 그리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대화가 많이 오가진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면 저는 그렇구나 하는.. 재미없고 답답한 대화를 했겠지요 그날은 그저 부끄러워서, 곱씹는 지금도 기억이 온전치가 않네요

다만 그날을 계기로 저희가 조금 친해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당시 저는 자존감이 박살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땅을 보고 걸었는데, 그날 이후 걔는 지나가다 저를 보면 꼭 웃으며

"어깨 좀 피고 걸어라ㅋㅋ 동전 줍니?"

혹은

"어우 강도야? 왤케 올블랙이야ㅋㅋ"

농담을 던지고는 친구들과 깔깔대며 제 갈 길을 가는, 그런 식이었죠

저와 같이 다니던 o는 k가 너한테 관심있는거 아니냐고 저를 놀려댔지만 저는 쿨찐미를 한껏 드러내며 그럴 일은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났습니다 경영학원론 수업이었고, 밥친 모두가 듣는 수업이었습니다 시험은 4시에 끝났고 학생회가 1학년 시간표를 보고 일정을 짰는지, 6시에는 종강파티가 잡혀있었습니다

저는 과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놈이기에, 이번에도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제 밥친들은 그런 찐따같은 제 모습이 불만이었는지 그 곳에 억지로 저를 끌고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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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이거 쓰는데 2시간이나 걸렸어요 허허.. 저도 이렇게 길게 쓸 줄은 몰랐네요 아니 글솜씨가 없어서 많이 쓰지도 않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쨌든 독서실에 가야하니 저녁 먹으면서 혹은 공부를 끝마치고 마저 써볼게요 이게 봐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쓰다보니 조금 후련해지고 그런게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