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쓰인 모든 사건은 허구이며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학창 생활이 좋지 않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왕따였지요. 인복이란 인복은 더럽게 없었습니다.

자살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게 있습니다. 의심병입니다. 누군가가 호의를 베푼다면 무조건적으로 의심을 했습니다. 그게 득이 되던, 손해가 되던 말입니다. 결국 아무도 저와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더욱 커져 부모님조차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부시키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라는 포장이 아니라 그저 서울대 간 자랑스러운 '자식 농사의 결과물' 이 하나 필요해서는 아닐까?


대학 역시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에 뭐가 더 있을까요. 차라리 학연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인싸들이 연애를 할 때 저는 미치도록 공부를 했습니다. 그것만이 제가 '살아갈' 유일한 길이였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친구' '동기' '선배' '후배' 대신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는게 정서적으로 편안했습니다. 돈 마련한다고 여기저기 얘기하다 보니 어둠의 업계를 다니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술 못먹는다고 말해도 강제로 먹이는 학연보다 그래도 젊은이 착실하게 산다며 배려해주는 업계 관계자들이 더 나았습니다. 심지어 어둠의 업계 관계자는 저를 더더욱 극진히 대접해주었습니다. 수익의 90%가 넘는 금액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차라리 이 사람이 더 친구같았고, 그건 그 사람도 그리 생각했나 봅니다. 인터넷으로 만난 사이지만 불알친구 안 부러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더 했습니다. 군대를 간 것도 역시 부모님의 강요였습니다.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지'. 의심병이 폭발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아니라 '자식 농사의 결과물'만을 원한다는 마음에 더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상근, 공익들은 방위따리라며 남자 취급도 못받는다며 역정을 냈습니다. 그나마 연락이 닿았던 업계 관계자들과의 연락이 끊긴 것도 더 했습니다. 폭발한 것을 넘어 병으로까지 전이되었습니다. DSM-V라 불리는 처방전을 받고 먹는 약은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잃은 저에게는 하루하루를 연명시키는 무언가에 불과했습니다. 


기회는 올까요. 군대를 끝나고 내 능력을 눈여겨본 사람에게 스카웃 제의가 왔습니다. 학연 혈연보다 업계 관계자와의 지연을 믿었기에 높지도 않은 학점 취업계로 넘기고 업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도 약은 끊지 못했습니다. DSM-V는 여전히 저를 옥죄고 있었습니다. 기업은 스타트업,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토익점수나 대기업 또는 대학원 가라고 잔소리가 날아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졸업을 하니 어느덧 나이는 20후반을 바라봅니다. 이 때 결혼 관련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회사 소개팅은 의심병, 개발이사가 결혼에 성공한, 여자 많다는 화실 입성은 공황발작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며 욕도 먹었습니다. 이 이후로 회사에서는 점점 저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믿었던 업계의 인연마저 저를 배신하였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업계에서 인연을 찾는게 병신이라는 소리를 인터넷에서 보고선 더더욱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필이면 얻은 불알친구같던 업계 친구는 또 어둠의 길을 걷는 것도 플러스였습니다. 인터넷 글을 찾아보다 이직에 관한 글을 찾았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에 회사를 나가는 것이 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거다. 나는 왜 당하기만 했을까. 나의 실력에 대해 확신도 없던 차, 취준생들 있던, 빛의 업계쪽 카톡방에 말을 던졌습니다. 나 그만둔다! 시발!


갑자기 누가 여기로 좀 나와 보랍니다. 외국계 대기업 계열사 직원이었습니다. 이 기업에서는 사내 헤드헌터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데 추천비라도 먹을 수 있을까 연락한 것입니다.


당연히 의심병이 끝까지 팽 돌았지만, 이는 저 자신을 '인력 세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잡대가 외국계 대기업이라니! 어학 성적은 없었지만, 혼자 공부할 때 돈이 쪼달려 외국에서 재료를 조달하며 생긴 실전 압축 영어는 있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처음에는 주니어 직급으로 면접을 보다가 오히려 시니어로 포지션 역제안이 와서 시니어 급으로 합격한 것입니다. 요즘 애들은 토익점수만 높지 실제로 말을 못해서 문제였다며, '프리랜서' 준비한다며 대충 던진 대답은 경력자들도 못하는 허를 찌르는 대답이란 명목으로 플러스점수를 엄청나게 받아 의도치 않은 '진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IT기업의 성지인 판교로 입성하는건가. 사실 입성을 하더라도 별 다를 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회사와 다른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여유'. 큰 기업은 무언가 달랐습니다. 빠른 일처리만 원하던 이전의 기업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일이 있지만 '여유 있는' 일처리는 저를 치유했습니다. 부모님한테는 최종 면접이 끝나고 연봉 오퍼레터에 사인하기 전까지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인을 하고 대학원 잔소리하는 부모님께 연봉계약서 사진을 찍어 전송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하자에서 집안의 자랑으로 인식이 뒤바뀌었습니다. 온 사방팔방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어디서 얘기를 주워들었는지 커피 쿠폰을 선물하며 축하해줍니다. 어이가 털리는 것도 정도껏이지요. 허탈함만 더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DSM-V 처방전은 완치 진단서로 바뀌었습니다. 의사는 부모님 잔소리가 없어진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됐다고 말합니다. 수십 년을 기다린 내가 옳았음을 입증했으리라.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짓만 했던 내가 드디어 옳았던 것인가. 때마침 같은 학교 출신으로 보던 사람이 취업 걱정을 쓰는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비웃음의 조소를 날리며 내가 승리했음을 확신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또 열심히 했습니다. 결혼은 이미 의미를 잃었고, 거래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결혼 얘기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자유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에 진절머리가 날 때 쯤.


엄청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직장인 커뮤니티가 불타올랐습니다. 순식간에 관계는 뒤집혔습니다. 유부남은 승리자에서 패배자로, 솔로들은 승리자,  '승리자'가 가장 비웃었던 오타쿠 부류들은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가는 자기객관화가 가장 잘 되는 사람으로.


대상자가 나 자신이 아님을 확신한 저는 웃고 떠들고 즐기다 뒤통수를 맞은 듯 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저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버리고 싶어했던


끝없는 의심병이


저를 


구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결혼을 빌미로 나를 회사에 묶으려던 것들 전부가. 그렇게까지 저를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전부 뒤통수를 맞고 이혼서류에 지장찍을 준비 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부모님이 제발 넌 사람을 좀 믿으라고 사랑 안준거 아닌데 왜 그러냐? 라는 물음에 이렇게 하면 되냐며 기괴한 웃음을 지어버린 제가 옳았다는 게 증명이 되었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애초부터 사랑 순결을 찾은게 어리석었다는 겁니다. 사람이 결핍된 것에 집착한다는 것이 100% 맞는 것 같습니다.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환각이 보입니다.


사람 머리 위에 빨간색 글씨가 떠다닙니다.


누구는 희생양, 누구는 희생자.


판단이 안 서면 아이가 펜을 아무렇게나 그은 것처럼. 이상하게 그어진 선만 가득 나오는 환각입니다.


그리고 영화 조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억지로 짓던 기괴한 미소가. 그렇게 부모님이 마음 속 깊숙히 막으라고 했던 게 진심으로, 얼굴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광기가 그렇게 저를 침식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유부남을 보면 나도 결혼하라고 잔소리나 엄청 들었고, 집안에서도 이제 번듯한 직장 취직했으니 결혼하라고 하던 이야기도, 지금은 그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흘려보낼 뿐입니다. 물론 유부남들 역시 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가지며 이혼 소송서류에 도장을 찍어내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일종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뒷조사가 필요하다는 명목하에 어둠의 길을 잠시나마 걸었던 저에게 문의를 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원체 친하게 지내고 기술을 대가로 대학 등록금 전부를 후원해준 이 어두운 업계 친구는 중개자로서 짭짤한 돈을 챙겼습니다. 니 이런 건 다 어디서 일감 갖고오냐는 물음엔 마찬가지로 기괴한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오히려 위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그런 거였던 거야.


허탈한 한숨만 나옵니다.


이 친구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거봐라 내가 뭐랬냐.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븅신새끼야.


그렇게 몇 달 후 저는 창녀촌에 갔습니다. 어두운 업계 친구는 하루하루 악에 받쳐사는, 이젠 악이 아예 사람을 구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어버린 저를 보며


니 좆대가리는 쟤들한테 쓰라고 있는게 아니니 그냥 사먹어라. 어자피 결혼은 글렀다. 통계적으로 1/3이상이 저지랄이다. 창고에서 썩어갈 좆대가리라지만 한 번도 못 놀리고 가긴 좀 아깝지 않냐? 차라리 쟤들이 관리되고 깨끗한 애들이다.


그렇게 저를 끌고 창녀촌에 집어넣었습니다. 우연찮게 '교육이 덜 된'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초보니 초보가 다루는게 맞다며. 공돌이한텐 이게 기본이라며. 성격만 지랄맞은거 아니면 OK라고 넘겼습니다.


'교육이 덜 된' 에서 짐작을 했지만 이런 유형이 나오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친구한테 들은 화류계 여자들의 스킬 이런건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이는 20살 좀 어리게 되어 보였습니다. 성욕보다 앞선 것은 한숨이었습니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쥐어짰습니다. 그 아가씨는 뭐가 문제인지 연신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동정심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허가된 시간의 반절 넘는 시간을 대화하는데 허망하게 날리고 이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처녀였습니다. 이런 애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속으로는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어떤 기대도 하지 마라는 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 하지 마란 짓을 하면 해방감과 남들 하지말라는 거 하는 배덕감으로 신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씁쓸함과 찝찝함만이 터져나옵니다. 옘병할.


일을 치르고 팁을 주고 지역을 빠져 나가려는데 그 아가씨가 저를 불러 세웁니다. 왜 그러느냐 묻습니다. 자기를 데려가 달랍니다. 제가  가족에게 억압받은 이야기를 한 탓일까요. 자기는 가족이 없다며.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24시간 카페로 갑니다. 신상털이 기술로 빠르게 서류를 확보합니다. 어두운 업계에서 일한 적 있었으니, 이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합법적 서류부터 검색해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서류만으로도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사람 찾기'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부 사망 모 사망. 사망년도는 18년 전.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집에 올 것이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니는 좆대가리 처음 놀리다 뇌까지 좆으로 수술시켰냐는 친구의 만류를 뒤로하고 저는 이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길가다 고양이 줏은 셈 치지 뭐. 얘 어디 어떻게 뺄 수 없냐?


놀랍게도 도시쪽 화류계 입문 여자들은 절박함이 없기에 순순히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그 아가씨가 무슨 빚을 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의무교육이 끝나고 고아가 할 일이 없어서, 그건 그 친구가 어두운 업계 탑이라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네 '소개' 덕분에 먹은 돈 이번에 갚은셈 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판교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지옥 연옥에서 손을 뻗어 중생을 구하는 붓다가 되자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함이 아닙니다. 오로지 내 자신의 멘탈만 케어하면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오면서도 끊임없는 생각이 나를 맴돕니다.


시발 내가 어쩌다... 에휴 그녀석 말대로 나는 좆이 최종진화한 좆대가리다 시발


나는 아무 말 없이 머리만 싸매고 음악만 듣다 갔습니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MC 스나이퍼의 강남 NB였습니다. 한 곡 반복 모드였지만 그게 알 바입니까? 결국 인생 꼬라지 이렇게 될 줄 알았을텐데. 나중에 복이나 얻으면 좋으련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제가 이어폰을 통해 노렸던 효과를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세상과 나의 단절. 그리고 거기에 플러스 효과도 있습니다. 옆 자리 여자와 나의 단절입니다.


(강남 NB)


때마침 이 곡을 부른 래퍼가 불교 신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 붓다여. 당신은 중생을 구제할 때 어떤 생각을 가졌나이까? 그렇게 고뇌로 가득찬 버스는 성남을 향해 달립니다.


판교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이었습니다. 씻겨주고 재워주니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저건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이런 생각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알몸이요? 이미 만난 장소가 장소입니다. 거기에 그렇고 그런 생각은 이미 사회이기 때문에 미투밖에 생각이 안 나 저 멀리 치워두었습니다. 이 여자는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표정만 지었습니다. 제가 순수한 표정으로 이상한거 쥐고 흔들때 머리 싸매던 부모님이 처음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남자의 요리만 먹었습니다. 감정이 마모될 대로 마모된 저는, 그리고 끝없는 인간 불신으로 가득찬 저는,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며 하루 먹을 것만 던져주고 알아서 해라라고 했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키울 때도 이랬습니다. 그 고양이도 정이 많은 녀석이었던 것 같지만 죽은 동물은 울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달 동안은 말 한마디 없었던 사람이 처음엔 다녀왔냐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한 달 반 정도에는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컴퓨터로 밥 벌어먹으며 집에서까지 컴퓨터 앞에서 16진수와 씨름하는 저를 보고 뭐라도 떠오른 게 있나 봅니다. 집에서마저 업무에 밀린 저는 도서관에서 컴퓨터 사용법에 대한 책을 사서 던져주고 그 여자 몫으로 1대의 컴퓨터를 할당해 주었습니다. 원래 사람이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컴퓨터가 10대정도는 되어 그 정도 빼는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는 집 밖을 나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 명의의 '체크 카드'를 주었습니다. 계좌 자체를 아예 분리시켜 놓았기에 내 '재산'에 직접적 접근은 불가능했고, 카드 이외의 현찰은 주지 않았기에 카드 사용 내역을 비교/대조하면 위치추적기 역할도 겸하는 그런 알고리즘이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첫 카드 사용처는 집 앞 대형마트입니다. 물음표가 가득했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아는 선에선 이게 아니었는데. 그날 저녁은 바깥 여자가 한 집밥이었습니다. 그 후엔 저를 도와줬습니다. 게임을 할 때 사과를 깎아주는 것을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이 여자도 나는 그저 ATM기 취급 할 것은 아닐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창녀촌에서 구르던 천애고아. 상대는 스물 여덟에 외국계 대기업 대리. 완벽한 조건이지 않습니니까?


그 떄 희번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 엄마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우짓을 본능적으로 캐치할 수 있다는 말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테스트할 좋은 기회가 때마침 돌아온 추석 연휴였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어머니 아버지가 이 때만큼은 감사했습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한편으로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누구는 효도 못해서 안달인 어머니 아버지를 ATM 호구 방지 테스트 시험지로 쓰는 제 자신에 대한 자괴감입니다.


추석 연휴에 여자친구라고 속이고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어머니 아버지마저 '여자를 테스트할 도구'로 생각하는 내 처지에 더 한숨입니다. 거기에 이제 좋은 집안 처자 만날 때라며 결혼하라는 어머니 아버지 말에 한숨은 여자가 신나하면서 먹는 아메리카노 투샷처럼 더 얹혀십니다. 왜 그러냐며 혹시 안 좋은 일 있냐고 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이번엔 그 기괴한 웃음조차조 지을 수 없습니다. 안쓰러움이 묻어 나옵니다. 그냥 고양이라 생각하니, 누군가를 동정하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부모님은 평소에 그렇게 결혼 결혼 노래를 불러도 생각없다며 한 귀로 흘리던 녀석이 웬 여자친구를 데려오니 화색 반 걱정 반인 얼굴을 합니다. 그 얼굴을 보니 이젠 드디어 결혼 잘했다는 트로피를 세우려고 나를 몰아세운 게 아니냐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따로 불러 여자의 딱한 가정사정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닙니다. 자살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 져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도한 입장에서 너무 잘 압니다. 부모님은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약간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장을 보는데, 그렇게 행복한 얼굴은 처음 봤습니다. 그러다가, 말도 하는데. 세상에. '엄마' 라고 합니다. 따뜻하다며 어머니가 쇼핑카트에 올려놓은 손에 자기 손 포개기도 합니다. 며느리가 일반적으로 시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어머님 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전 마음이 아팠습니다. 잘 때 어머니 옆에 붙어서 자라고 했습니다. 가족에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게 나을 것 같으니. 자다가 물 마시러 나와보니 이 여자가 잠꼬대를 합니다. 


'엄마… 고마워요…'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었을 뿐입니다. 본가의 내 방으로 돌아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그렇게 딸자식 노래를 부르시더니 드디어 얻어서 기쁘시겠구나. 


저래서였구나.


남자새끼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더니 딱 저거인가 봅니다.


세상에. 요즘 전 부치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나. 허허 참. 전 부치는것도 재밌다며 웃어가며 부치고. 차례 지낼때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주메느리가 뭐가 그리 신나냐고 하고 어머니는 그렇게 키우고 싶었던 딸자식을 얻어서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열굴이 펴지셨습니다. 차례가 끝나고 성묘를 지내면 항상 뭐 먹으러 갑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꺄륵 거리며 국수를 흡입합니다. 주변 사람은 쟤가 며느리냐, 결혼 잘했네 라고 하고 전 아직은.. 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요.


이쯤에서 어머님과 할머님의 마음은 이미 함락당했을 지 모릅니다.


저는 이 여자가 도저히 그 밑박닥에서 '주워온'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그 딱하다는 가정 사정도 천애고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생각에는 딱한 고양이 주워 키워서 보냈던 심리와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는 나 같은 '결함품' 보다 더 나은 생활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 정을 주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도 정이 무섭다고 합니다. 정을 주지 않겠다는 영상이 밈이 된 유튜버도 있습니다.


판교 집에 돌아와 넌지시 묻습니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 고맙다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따스함을, 아버지의 듬직함을 알려주었다고.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모든 병력을 고백하였습니다. 몸병신 마음병신 정신병환자 좋아해주어서 고맙다고. DSM-V 같은 진단명이 아닌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말로, 공황장애, 강박장애, 성인 ADHD 등 종합 정신병동.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혹시라도 못 알아 들을까봐, 병이 생긴 '원인'부터, 진단차트까지 펴놓고 하나하나 짚어주며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넌지시 말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준 것 같으니. 이제 너의 삶을 찾는 것이 어떠냐 물었습니다. 여자의 동공은 더 커집니다. 오해하지 말라며 덧붙인 말은 이런 나보단 다른 사람을 위해, 너의 인생을 위해, 공부에 투자하고 신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낫지 않냐 합니다. 나 같은 거 더 이상 상대하지 말라고. 물론 선택은 너의 몫이니, 너 내키는 대로 하라고도 했습니다. 이는 정 떨어뜨리기 위한, 내 이상이 내 뇌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 게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그 용도였는데.


그 여자는. 주섬 주섬 뭔가를 챙기는 가 싶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 대답이 듣고 싶냐고.


저는 그렇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갑자기 저를 쫒아 와서 입맞춤을 합니다. 이게 내 대답이다. 이런 은인을 두고 어딜 가냐고. 그 눈빛은 진심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눈이 흔들립니다. 여자의 눈은 더 흔들립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에 인간 불신이 녹아내립니다. 끈적한 게 맑은 물에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일단 세수나 하자고 했습니다. 서로 진정 되고 알 수 없는 동질감이 흐릅니다. 


그 뒤는 뭐. 잘 아시겠지요.


일이 끝나고 나서 묻습니다. 왜 나같은 놈을 좋아해주느냐. 눈빛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눈빛. 


그렇다. 나도 세상을 등졌다 


여자는 그 말에 화답하듯. 자기에게 있던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중고등학교때 폭행 당했던 것. 성 폭행 빼고 다였습니다. 자살 안한게 놀라웠습니다. 물리적인게 그정도인데 정신적인건 오죽할까요. 어쩌면 내가 저 여자를 봤을 때의 직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도, 사회에 의해 버려졌었구나.


그 공통점이, 우리를 이렇게 묶어 놓은 것입니다. 안타까움만 나왔습니다. 말 없이 여자를 안았습니다. 안아 준 것이 아닙니다. 할 말을 잃고 그녀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버려지기 싫어서 하는 연기가 아니였습니다. 그저 동질감을 느끼는 자로써, 그저 그렇게. 버려진 자들끼리만 통하는 아린 교감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자에게 그나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을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혼 입니다. 잘못 걸리면 남자를 토막치는 결혼도, 저 여자가 최대한 속물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혼을 하는 것 보다 그냥 집안에 붙어있는게 재산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판정을 받으면 50%의 재산이 여자 명의로 가지만, 그냥 붙어있으면 나중에 부모형제남편형부가 다 죽었을 때 100%의 재산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혼 도장 찍었던 직장 상사가 그렇게 갈라졌을 때도 재산의 50%만 여자가 뺏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급할 수록 돌아가는 법. 최대한 계획을 짜고 갑니다. 다음 설날에 결혼을 부딪치는 게 승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혼은 연애와는 다릅니다. 계약 대 계약입니다. 그러나 여자쪽은 계약을 책임질 가정이 없습니다. 계약의 세계는 악 대 악입니다. 무조건 가정 사정 얘기가 나옵니다. 이 점을 여러번 상기시킵니다. 여자는 굳은 표정을 짓습니다. 애교를 부리면서 화이팅하던 표정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니 손까지 떨고 있습니다. 그렇게 결혼 허가를 받으러 부모님께 내려갑니다. 외가는 갈 필요가 없었지요. 어떻게 갑니까. 누군지도 모르는데. 친가 부모님만 허가를 하면 됩니다.


역시 아버지께서는 반대를 합니다. 족보 가져와라부터 시작해서 재산 노리는거 아니냐고 맹폭격을 합니다. 목소리도 점점 올라갑니다. 여자는 겁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초적 공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리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생각을 잠시만 해보세요. 요즘 며느리들 외가에 돈빼돌리다가 대폭발하지 않습니까? 얘는 애초에 그럴 외가가 없습니다.


단단히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감정이 뒤틀릴대로 뒤틀린 지 너무 오래 되어 무엇이 상식인지도 모를 제가 논리랍시고 내뱉는 것들은 하나같이 여자의 심장을 후벼파는 소리입니다. 병신한테 하는 '야 이 병신아' 라는 말과 사지멀쩡 정신 건강한 친구끼리 하는 '야 이병신아' 는 엄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정말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만 올라갑니다. 악 대 악.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세요. 얘가 우리집 재산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여기 계속 붙어 있는 겁니다. 얘만큼 가정에 충실한 애가 어딨습니까. 애초부터 빌라에서 제가 먹여살려서 신혼집 걱정도 없습니다. 혼수걱정도 없어요. 아버지.. 첫 시작은 아파트라며 공동명의로 집 뺏기는게 더 손해다 이런 말이예요.


그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말씀하시려다 어머님께 제지 당합니다.


결정적으로 얘가 뭐라했는지 아세요? 엄마래요 엄마! 귀성 후에 재우면서 들은 잠꼬대가 엄마 고마워요 래요! 그리고 처음 우리집 와서 잘 때 엄마 끌어안고 하는 소리도 엄마….였어요. 보통 집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부를 때 어머님이라고 하는데, 얘는 그냥 엄마라고 불렀다구요.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으면, 그렇게 가족이 필요할 때 없었으면..! 


이 때 어머니 역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얘야…. 여보.. 이거 해주자. 얘는…… 흑흑….


아버지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고 저는 눈을 부릅떴습니다. 살면서 이 여자한테 보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았을 때 이만하면 천운이 아닙니까? 그렇게 문란한 시대에서 핀 연꽃만한, 이 정도로 순수한 여자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고학력자 사이에서도 사랑 없는, 서로를 속이고 나중에는 파국을 맞는 결혼이 빈번하다는데, 차라리 가장 천한 곳에서 만나고, 이른바 족보도 없는 사람이지만 순수한 이 여자가 훨씬 나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마지못해 허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와 여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엄마아아..엉엉… 엄마아아...


그래그래 우리 딸내미….엉엉..


씁쓸한 결혼허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 카페에 둘이 갔습니다. 커피 한잔씩 걸치고 묻습니다.


기분 괜찮냐고. 


그랬더니 여자는 씨익 웃었습니다. 히히.. 하며.


안그래도 결혼 허락도 받았겠다. 우울한 기분 털어낼 겸 바닷가로 갔습니다. 데이트는 뭐 별 거 없었지요. 그냥 손 잡고 바다를 걸은 게 다입니다. 드디어 허들을 넘었구나. 사회 패배자들의 승리였구나.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여자를 바라봅니다. 여자도 같이 웃습니다. 이 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짓고 있던 표정은 이전에 짓던 기괴한 웃음이 아닌, 진정한 웃음이었다는 것을요.


여자는 묻습니다.


요즘엔 정신과 약 끊었어?


응...


지금은 필요한 것 같아?


한숨을 내쉬다.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모의 반대를 넘어선 하나의 결과입니다. 부모가 이끌리는 대로 간다는 인생이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처음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의 기에 눌렸습니다. 부모의 생각과는 다른 창의적인 결과로 부모가 원하는 결과만을 만족시킨 것이 다입니다.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결과는 부모의 생각대로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부모의 은근한 압박을 극복한 것입니다.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지요? 가스라이팅을 스스로 깨기는 상당히 어렵다 합니다. 나는 가스라이팅을 깼는가. 옆을 잠깐 바라봅니다. 또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바닷가 갈매기를 보며 웃습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저는 가스라이팅을 스스로 깨뜨린 게 아닙니다. 같은 종류의 아픔을 갖은 사람과, 믿을만한 전우와, 평생의 동반자와 같이 깬 것입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직 약이 필요한 것 같아.


이렇게 답을 줍니다. 여자는 놀라며 정신과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 볼에 입맞춤을 합니다.


이게 지금 내가 필요한 약이야.


본가로 복귀하는게 아니라 모텔로 갔습니다. 첫 만남도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지금 똑같은 짓 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습니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 남녀 모두 첫 경험을 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신뢰관계가 확실한거 아니겠습니까.


결혼식은 어자피 신부 하객이 없을 걸 알기에 조촐하게 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 몇 명만 초대해서 간단하게 했습니다. 주변에선 도둑놈 소리 들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몇인데. 물론 어둠의 세계에 있었던 친구는 착잡하면서도 좋은 미소를 지어 주었습니다. 사실 이 친구도 미친놈 소리 많이 했지만 내가 얘 아다 깼다 하니 어휴 창의적으로 운좋은 십새끼 소리밖에 더 안 나왔습니다. 이날의 저를 있게 한 가장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나중에 아내와 같이 술 한잔 샀습니다. 


신혼 여행지는 제주도였습니다. 보통의 신혼 여행 코스와는 다르게 절 하나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너 구하면서 부처님 생각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중생을 구했으나 해탈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니, 승천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답을 얻은 것이 아니냐며. 그리고는 소원을 빈다고 했습니다. 기와장에 작은 글귀를 적어서 냅니다.


우리 사이 영원하게 해주세요.


저는 얌전히 '저도요' 라고 적었습니다. 스님들은 인연의 끈이 깊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화려한 여행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정신적으로 꽉 찬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집안 농사일 철이 되면, 회사 일에 바쁜 저를 두고 혼자 기차타고 강릉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도와줍니다. 그때도 엄마 엄마 하면서. 주위에는 딸자식 키우냐는 소리 듣는다고 합니다. 며느리라고 하면 부러움의 시선을 받는다 합니다. 그렇게 딸자식 노래 부르던 어머니 심정이 이제서야,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2년 후, 설날에 차례 지내는데, 이 얘기가 할머님께 나왔습니다. 우리 손녀딸(손주며느리가 아닙니다) 왜이리 이쁘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불가의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피어 깨달음을 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참 연꽃같은 아이였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자 뱃속에 있는 약 1개월 된 아이의 이름이 벌써 정해진 것 같습니다.



※DSM-V : 공황장애 (https://www.paik.ac.kr/seoul/medicine/disease_info_view.asp?p_sid=1021&p_cate=A)


문학은 처음인데 냉정한 평가 부탁함 ㅇㅇ. 주제 생각해보다 여기가 가장 잘 맞을거 같아 올림.

계산 법적지식 의학지식 생물학적 지식 종교지식 반박시 너가맞음. 감으로 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