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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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혁씨는 나를 만나고 바뀌었다. 


저체온증이 걱정된다고 했던 첫 만남 때 느꼈던 손은, 아마 내가 술을 마셔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척 차갑게 느꼈다. 


정말 얼음장 같을 정도로. 



하지만 결국 내 눈물을 닦아주던 그 손은, 끌어안아 주었던 그 팔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그래, 내가 했던 것들이 쓸데없는 건 아니었어.



그건 참 다행이다. 


아마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기계처럼 딱딱하게 행동하거나 자신의 생활을 박살 내가면서 일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노을을 다 보고 뛸까 했지만, 그것도 별 의미 있는 일 같지는 않아서 가만히 두었다.

노을 좀 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슬슬 일어나자.




[쾅]




커다란 굉음이 위쪽에서 들렸다.

뭐가 찌그러지는 그런 소리가 났는데...




뭐지. 뭐가 터졌나? 싶어서 위를 바라보았더니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난간이 이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뭔가로 들이받은 것 같은데, 저거 차인가?

그리고 절벽 위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살짝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꺅!"




여기로 떨어질 것 같아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죽을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내 눈앞에서 사람이 곤죽이 되는 걸 보고 싶다는 건 아니라고...

뭐야 저 사람. 왜 떨어지는 건데?




무작정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서서히 제동이 걸리는 게, 어떤 선이나 끈 같은 것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죽을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전혀 느리지 않은 속도로 벤치에서 좀 떨어진 나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질 때 크진 않지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아프겠지.




그리고 떨어진 사람은 끙끙대면서도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질 때 충격으로 주머니에서 빠져나왔는지 반 쯤 망가진 내 핸드폰이 보였다.




“네, 수경씨. 덕분에 찾았습니다. 서울 가서 같이 이야기하죠.”




수경이? 아니 잠깐만.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야?

내가 핸드폰을 두고 가서 둘이 통화가 된 건가?




"우혁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신 죽으려고 환장했어?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위쪽에서 들린 폭파음은 뭔데.

오른손에 서류 가방은 뭔데.

천천히 왼손을 등 뒤로 돌린 우혁씨는 비틀린 신음과 함께 등 뒤에 연결된 선과 카라비너를 떼어냈다.

아마 윈치나 그런 거로 떨어질 때 제동을 건 모양인데...

저쯤 되면 의미가 없지 않나?

크게 쿵, 하는 소리가 났다고.




"괜찮아요?"




아니 그 말은 당신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턱에서 피난다. 그리고 오른손 덜덜 떨리는 중인데...




"아니 나는 괜찮은데..."




"다행이네요."




그 말을 한 우혁씨가 손을 뻗어서 나를 끌어안았다.




평소와 같은, 높이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어조로 말한 건데,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나를 뜨겁게 안아주는 우혁씨를 나도 마주 안으며 우혁씨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픈지 몸을 움찔거렸지만, 딱히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온 거예요?"




우혁씨의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결코 여기를 올 리가 없을 텐데.

잠깐 우혁씨의 품에서 떨어졌다.




"이거..."




덜덜 떨리는 오른손으로 서류 가방을 간신히 연 우혁씨는 안에 있던 서류를 내게 보여주었다.




"계약 기간 안 적혀 있어요."




그래, 내가 적었으니 기억은 당연히 났다.

산학협력단에서 지원금 나오면 다시 적자고 해놓고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계약보다도,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짝]




뺨이 화끈거리고 시야가 휙 돌아갔다.

우혁씨가 나를 때린 것 같았다.

진짜 세게 때린 건지 왼쪽 뺨이 얼얼하고 감각이 둔했다.

반사적으로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는 자살 같은 거 생각하지 마!"




아프긴 했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그저 미안할 뿐이지.

나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혁씨가 끌어안는 팔에 몸을 맡기고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당신이 내 심장에 불을 붙였잖아.

나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 놓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생활을 고쳐 놓았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이 없어지려고 하는 건 뭔데."




"미안해요..."




뭘 더 할 말이 있겠어.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무책임해. 대책도 없고.

설령 일을 못하겠다면 그냥 조용히 안 맡겠다고 하면 될 일이잖아.

내가 쫓아내고 모른 척 하고 그럴 것 같아?"




우혁씨가 등을 토닥이던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아픈데, 아직도 뺨이 얼얼하고 눈물이 나오는데, 웃음도 같이 나왔다.

생각보다 내가 이 사람을 많이 바꿔 놓았구나 싶어서.

감정을 실어서 다른 사람에게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구나.




"난 이제 일 하다가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무의식중에 살피게 됐어요.

로봇 상황과 관측 체크하다가 뒤 돌아서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요.

밥을 먹으면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게 당신이라는게 참을 수 없이 고맙고 기뻐요."




"나도..."




기침을 해서 잠긴 목을 풀고 우혁씨를 올려다 보았다.




"나도, 당신이 좋아요."




내 말을 들은 우혁씨는 잠깐 멈칫거리더니 내 왼쪽 귓 부분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겨 주었다.




"처음부터 반해 있었어요.

아무 조건 없이 힘든 나를 받아주고, 나를 위해 여러가지를 맞춰주고, 나 때문에 바뀌게 된 생활에 불평을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당신의 감정과 기분을 밑바닥부터 뒤흔드는데도 당신은 거기에 반기를 들지 않고, 오히려 나를 살피고 내가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어요."




왼쪽 뺨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직 뺨이 화끈거렸지만 이 사람이 원망스럽거나 싫지 않았다.




"당신 덕분에 나는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받아들였어요.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왔고, 그 사고는 진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어요."



"유언장에 부모님이 유리씨를 원망했나요?"




그건... 아니지.




"입장을 바꿔서, 유리씨는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을 원망할 건가요?"




그것도 아니다. 혼자 남을 딸에게 미안할... 아.




우혁씨는 조용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가방에서 내 부모님의 유언장을... 뒷면을 보여주었다.

얇은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그 종이의 한 가운데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에 너무 마음쓰지 마렴. 사랑한다.]




어머니의 필체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비록 아플지라도, 힘들지라도. 이 상처와 아픔도 결국 내가 받아들여야 할 상처니까.

이것을 직시하며,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다만 내 뺨을 어루만지는 이 사람이 내 옆에서 도와줄 수 있겠지.




"난 당신이 없으면 안돼요.

당신을 좀 더 깊게 알고 싶어하는 그 마음 자체가, 사랑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그러면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난..."




우혁씨의 눈동자에, 오렌지색 석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해안이라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 저 끝에서부터 오렌지색으로 하늘이 칠해지는 것이, 우혁씨의 눈동자를 통해 비쳤다.




"처음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다음에는 계약이었지만, 당신이 바꿔놓기 시작한 내 마음과 생각이 좋았어요.

이게 잘못되었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만 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바꿔놓기 시작한 당신과 더 이야기를 하고 더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제넘지만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알려주고, 겪어나가는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른손이, 내 왼 뺨에 닿았다.

나도 우혁씨의 목에 손을 올렸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눈을 감고, 우혁씨의 입술이 내 입술과 가까워지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처음 해보는 누군가와의 스킨십과 키스에 머리가 멈추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이제 부정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번에는 내가 억지로 숨기려고 하거나 막지 않았기 때문일까, 쿵쾅거리는 심장은 한 번 뛸 때 마다 뇌로 행복과 기쁨을 가득 보내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뜨겁고, 벅차오르는 기분이 행복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비록 이 마음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때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반추(反芻)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 때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사람과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모든 신경이 입술과 손에 집중되는 것 같았다.

최소한의 정보를 기억하려는 노력도 없는 걸로 보아 이미 뇌는 반쯤 파업을 선언했다.

그리고 굳이 그걸 돌려놓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얼굴을 떨어뜨렸을 때, 이번에는 오른쪽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우혁씨가 살며시 눈을 떴는데, 내가 울고 있으니 깜짝 놀라서 몸이 굳어졌다.




"사과하지 마요. 이건 기뻐서 우는 거니까."




내 말에 우혁씨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손을 풀지 않았다. 바다를 등지고 선 내가 볼 수 없는 바다를, 우혁씨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한참 석양이 지고 있는 바다는, 하늘과 마찬가지로 어슴푸레한 오렌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다는 하늘이 될 수 없고, 하늘은 바다가 될 수 없다.

비슷한 색을 하고 있지만, 서로 동일하게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늘도 바다도 같은 색으로 물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파란색 쪽빛이 아닌, 붉은색으로.




"차가운 심장에, 노을을 쏟아 붓고 싶어요."




당신의 눈을 통해서, 내 심장에 있는 열기를 부어주고 싶어요.




"당신은 이미 내 심장을 태웠어요."




우혁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음이 열기에 녹아 물이 되어 흐르듯이,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눈물도 쏟아져 나오기를 바랬다.

조용히 그를 끌어안았다.




"숨을 쉬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 사람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활기차게 두근거리는 심장이, 뜨거운 가슴 속에서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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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누적 조회수가 1천을 넘을 것 같아서... 한번 광고 해보려고 합니다.

https://novelpia.com/novel/32298 - 위 내용은 이 소설의 일부(결말부분) 입니다. 로멘스라기보다는 성장물에 가깝긴 한데... 

열심히 썼습니다. 완결 났어요. 12월 중에 외전 작성해서 1월 중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래는 광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https://novelpia.com/novel/56024 - 19금 순애물. 누적조회수 980대... 조금만 도와주십쇼...

https://novelpia.com/novel/43093 - 몽환적인 판타지입니다. 리메이크 중.

https://novelpia.com/novel/43092 - 근 미래 현대 판타지입니다. 폭력, 고어요소가 있습니다.


https://novelpia.com/novel/32298 - 완결난 현대 로맨스입니다. 순애입니다. 봐주세요. 공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