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난히 붉고 검은.
아, 오늘은 일요일.

붉은 십자가가,
무수히 많은 붉은 십자가가,
드높은 하늘의 검은색을 덮을 정도로.

하얀 눈을 구경하지 못한지 벌써
하나, 둘, 셋..
올해 겨울로 3년째.

저 멀리의 붉은 빛이 방해하지 못하는,
검은 아스팔트와 가로등 사이.

정적.

쓰레기봉지를 뒤지던 고양이가
타다닥, 떠나가는 소리.

저 앞의 아파트의 불도,
하나 둘 꺼지는 늦은 밤.


숨을 참은 두 남녀,
입술 사이의 거리.

두 점근선은 점점 가까워져
퍼스트 임팩트에 돌입한다.

말 그대로 퍼스트,
방금 먹은 쌉싸름한 커피의 향,
지그시 감은 두쌍의 눈,

서로 손을 어디에 둘 지 몰라
허공을 더듬다
서로 맞잡은 양손을 타고 흐르는 온기가
패딩도 못이겨낸 찬 바람을 이겨낸다.

열린 문 틈으로
서로의 온도가 평형을 이루어,

두 공간은 하나가 되고
두 주인이 한데 뒤섞이었다.


일순의 달콤한 경험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이곳은,

그리 높지않은 한 건물의 불 꺼진 베란다.
새벽녘의 공기와 푸근한 냄새가 공존하는,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

잠에 들려,
캣타워 위로 올라간 검은 고양이.

커진 동공과 홍채에 비친 남녀의 모습을 보며
편안히 누워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