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자기 전 순애 챈에 하루 쌓여있는 사료 받아먹다가 자는게 행복인 순붕이다.

최근에 고백해서 여기에라도 풀어보려고 해.


상대를 처음 만난 거는 2월 말이었어.

본인이 대학생 새내기라 아무것도 몰?루 이러고 있었는데 학과에서 새내기 배움터 (이하 새터)를 열어줘서 참가헀어.

새터에서 선배랑 후배들 매치시켜주고 조를 편성해줬거든.

어버버 하면서 활동하다가 우리 조의 선배들이 수강신청 도와주겠다고 수강신청날 다같이 대학 근처 pc방에서 모이기로 했어.

나름대로 시간표 짜서 쫄래쫄래 가서 선배 도움 덕에 올클하고 기분 좋게 점심도 조원들하고 다같이 먹었어.

어디가지 하는데 20학번의 인싸 선배가 우리 학과면 가야하는 국률 카페가 있다 해서 다같이 몰려 갔어.

조원들을 줌에서만 만나고 대면으로 만난거는 그날이 처음이었기에 다들 어색한 미소만 지으면서 쭈뼛쭈뼛 있었는데

우리 조가 앉은 테이블 대각선에 너무 괜찮은 여성 분이 한 분 계시는거야!

옷도 엄청 잘 입으시고 엄청 성숙해보이셨는데 약간 홀리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모쏠 순붕이인 내가 냅다 사람들 단체로 앉아있는 곳에 가서 이름 뭔가요? 할 수도 없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지.


그리고 그 다음날이 OT였어.

조원하고 활동들 하면서 시간 보내다가 학과 관련 설명 한다고 그날 OT에 참석한 인원 전원하고 교수님하고 등등 다들 강당에 다같이 모였어.

그래서 멍하니 설명 좀 듣고 하다보니 금방 끝나더라고,

그래서 다들 점심 먹으러 가라고 차례대로 이동하는데, 어제 봤던 그 분이 지나가시더라고.

OT할 때에 이름표 나눠줬는데, 이름을 정확히는 못 보고 얼핏 봤어.

같은 학과구나 오오 했는데.

느낌이 너무 성숙한 느낌이라 학과 선배라고만 생각하고 말았어.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맨날 술 마시면서 지내다가 기회가 다시 찾아온거야.

학과 동아리 설명회가 열렸는데, 거기 가기전에 다른 조랑 밥을 같이 먹자고 한거야.

바로 설명회가 있으니 술자리 같이 엄청 친해지는 자리는 아니었어.

시국 때문에 자리를 나눠앉았고, 나는 다른 조 사람들하고 같이 못 먹었어.

그래도 밥 먹고, 설명회 열리는 장소까지 이동하면서 잠시 인사를 나눴어.

그때 그 조의 여학우가 한 명 있었는데, 많이 본 기분이 들었거든.

나중에 집 가서 머리를 굴려보니까 이름도 그때 얼핏 본 이름표랑 매칭이 되고 외모도 매칭이 되는거야!

예상과 다르게 선배도 아니었고 나랑 나이도 같았어.


이런 기회가 다 있나 싶었지.

그런데 다른 조였고, 밥 먹었을 때에도 뭔가 서로 통성명만 하고 말아서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어.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해도 한낱 순붕이인 내가 갑자기 다가서기에는 난 겁이 많았어.

이제 얘를 A라 할게.

그런데 기회는 다시 오더라.


우리 조원들이 다들 성격이 좋아서 두루두루 친한데 특히 친한 형이 한 명이 있어.

학번은 같은데 이리저리 하다 보니 나보다 나이가 좀 많은데 나랑 무척 잘 맞아서 맨날 같이 다녔어.

그런데 날짜가.... 3월 15일 화요일이었어.

그 날 내가 형보고 내일 뭐하고 물어보니까 같은 조의 누나(선배) 한 명하고 밥약을 한다고 알려줬어.

근데 이제 그 형하고 누나만 하는 게 아니라, 누나의 친한 다른 선배(이분도 여자심)하고 A랑 4명이서 한다는 거야.

여기서부터 내가 머리를 엄청 굴리기 시작했지.

대충 할 일을 빨리 끝내놓고는 형 혼자 남자인데 안 불편하겠냐? 내가 같이 가주겠다.

나도 아직 우리 조의 그 누나하고 밥약을 안 했다라고 하면서 나도 슬쩍 끼어들었어.


그렇게 나랑 다른 선배까지 참가해서 6명의 파티가 꾸려졌지.

대망의 3월 16일 수요일.

밥 먹고 2차로 술집까지 갔어.

어떻게든 A 옆에 앉아서 대화를 이어나갔어.

생각보다 엄청 잘 맞았어!

학과도 그냥 성적 맞춰서 들어온 게 아니라 나처럼 들어오고 싶어서 온 거였고,

생각하는 진로 방향도 비슷했고

특히 A가 친화력이 좋아서 내가 약간 낯 가리면서 있어도 말 걸고,

내가 자작하려면 옆에서 바로 술병 낚아채서 자작은 하면 안된다면서 따라주고.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가고 있을 때 난 이미 호감을 넘어서 A에게 빠져든 것 같더라.

그런데 술 마시던 중 A가 막 내일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없다, 나만 아침 수업 있다 툴툴거리더라고

마침 나도 그다음날에 점심 먹을 사람 없다 해서 약속을 바로 잡았지.


3월 17일.

A의 아침 수업이 끝나고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어.

그런데 오후에 줌 수업 같이 듣는 게 있어서 그때까지 할게 없으니까 카페에 가기로 했어.

카페에서 한참을 이야기 했는데 생각보다 겹치는 게 많았어.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나, 게임에 관심 있다던지.

그래서 그날부터 점점 카톡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 시작했어.

이런게 처음인 모솔 순붕이인 나는 이렇게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천천히 나아가면 될 줄 알았지.


3월 19일.

오랜만에 내 친구를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하고는 갈 곳이 없어서 내 자취방에 데려왔어.

엄청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라 서로 스스럼 없었고 그날 저녁에서 대화 주제도 A였지.

이 친구가 침대에 누워있는 나보고 막 A에게 전화걸어보라고 해서 엄청 갈팡질팡하던 끝에 전화를 걸어버렸어!

걱정과 달리 A가 무척 잘 받아주고 대화가 길어지자, 친구를 쫓아내고 전화를 이어나갔지.

이후로도 매일 통화를 했어.

그다음날, 다다음날에도 통화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


전화를 하며 즐겁게 삶을 보내고 있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

A가 수요일에 밥약속이 잡혀 있었어.

근데 그게 그냥 밥약이 아니라, A랑 친해진 선배가 A의 이상형을 듣고는 그 선배가 속한 새터 조에 이상형과 닮은 후배가 있다며 약속을 잡아준거야.

수요일이니까 3월 23일이지.

그래서 혼자서 엄청 갈팡질팡했어.


그러다가 3월 21일.

혼자서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서는 A에게 전화를 걸었어.

A도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간거라 잠시만 통화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내가 직접적으로 A에게 말을 했어.


"너 수요일 술자리 그냥 안 가면 안돼?"


A는 약간 당황했는지 조금 생각에 빠지더라고...

그러다가 한 2초 후에


"왜?"


거기서 내가 더 뭐라 지를 수도 없었으니 대답은 당연히


"그냥"


이었어.

A는 오래전부터 잡힌 약속이라 모르겠다, 고민해봐야겠다 그러고는 짧게 통화가 끝났어.

막상 지르고 보니까 후회가 몰려왔어.

그런데 막상 그다음날 A를 수업에서 마주치니까 반갑게 인사해주더라고.

다행이다 싶었지.


그리고 대망의 수요일.

3월 23일.

그날 수업을 다 끝내고 아까 말했던 친한 형하고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A가 도로 반대편에서 날 부르는거야!

자기 지금 저녁 먹을 사람 없는데, 저녁을 같이 먹자고.

난 바로 따라갔지.

떡볶이를 먹으러 갔어.

딱 자리에 앉자마자 A가 점심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알고보니 원래 저녁에 있던 그 약속을 점심으로 옮겼더라고.

그런데 막 그 이상형이라던 분도 알고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

그래서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A랑 나 모두 금요일이 공강이야.

그런데 마침 금요일에 A에게 일정을 물어보니까 비어있다더라고.

나랑 놀아달라고 약속을 잡아달라한 끝에.. 금요일에 약속을 잡았지.


3월 25일.

그렇게 나랑 A는 홍대에서 만났어.

A와 점심을 먹고 옷을 보러 같이 갔어.

난생 처음 옷 사러 다녀본 거였지만 즐거웠어.

A의 옷을 봐주고, A도 내 코디를 해줬지.

내가 모솔 순붕이니까 옷 입는 게 영 그닥이었거든.

그리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먹고는 칵테일 바를 같이 갔어.

A가 그전부터 칵테일 이야기를 자주했거든.


A는 장난기가 많아.

사실 "너 수요일 술자리 그냥 안 가면 안돼?" 라고 내가 말한 시점에서 내가 A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난 술에 좀 약해.

그래서 A가 장난기가 발동되었어.


A는 나에게 술을 계속 먹이며 막 묻기 시작했어.

"이상형이 뭐야?"

"관심있는 사람 있어?"

"같은 학교야?"

"그럼 같은 학과야?"

"왜 좋아해?"


술을 마신 나는 술술 대답했어.

추궁 끝에 내가 말 안 한 거는 A의 이름 뿐이었어.

A는 계속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물었고 나는 대답을 피하다가 결국 주문한 칵테일을 다 마셨어.

내가


"나가서 술에서 깨며 대답해주겠다."


라면서 밖으로 향했지.

처음에는 난 당연히 A가 내가 A를 좋아하는 걸 알거라 생각했어.

근데 A가 너무 시치미 잘 떼면서 태연하게 물어보니까 A가 아는지 모르는지 헷갈리는거야.

마침 또 비가 왔어.

우산은 내가 챙겨온 장우산 하나 뿐이었고.

같이 우산을 쓰고 가던 중 추궁 당하던 끝에 결국


"너니까 그러지!"


라고 질러버렸어.

A는 만족했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며 막 이야기를 했어.

내가 고백은 좀 더 무드 있게 하고 싶었다라고 툴툴거렸어.

왜 그렇게 갈궜냐며.

그러니까 A가 그러면 자기가 기회를 주겠다.

지금 대답을 들을래 아니면 나중에 무드 있게 제대로 고백해보겠냐.

내가 A를 집까지 바래다줄테니 거기서 멘트라도 그럴듯하게 칠테니 거기서 들려달라라고 했어.


같이 버스를 타고 조용하게 A의 집으로 갔어.

시간은 금방 흘러가고 우린 버스에서 내렸어.


"난 모솔이다."

"아무것도 모른다."

"오늘 같이 다녀봐서 알다시피 옷 입을 줄도 모른다."

"친구들하고 이렇게 놀러다녀보는 것도 모른다."

"반면에 너는 너무 멋지다."

"옷을 무척이나 잘 입는다."

"멋진 친구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재밌게 놀 줄도 안다."

"난 백지다."

"너가 나와 무엇을 하든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이다."

"넌 멋진 색을 가지고 있다."

"그 색으로 나를 물들여줘."


"..."


"좋아"


A가 답했어.

A는 엄청 오글거려하면서 받아줬어.

그렇게 나의 첫고백이 끝나고 연애가 시작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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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날짜를 계산해보면 알겠지만 오늘 20일째야.

고백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잊혀지기 전에 어딘가에 남겨보고 싶었어.

이 글 읽는 순붕이도 성공해서 좋은 사랑하기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