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단편으로 쓸 거였는데 너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눔

https://arca.live/b/lovelove/48188416 이거 보고 써 봤다


그날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쿠아리스트의 하루였다. 땅거미가 지는 저녁, 메인 수조의 모래뱀상어들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던 내게 갑자기 동료가 찾아왔다.

 "야. 빨리 내려와 봐."

 "왜, 뭔 일 있어? 나 바쁜데."

 "인어야, 인어! 인어가 왔어."

 인어. 사람의 상반신에 물고기의 하반신을 가진 해양 포유류. 중세 시대부터 부자들이 권력의 상징으로 인어를 소유해 왔다는 기록이 있고, 인어 포획이 엄격히 금지된 현재도 그물에 잡혀 인간에게 사육되던 인어의 사례가 이따금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황급히 1층으로 내려와 보니, 여러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운반하던 수조 안에는 과연 상처투성이가 된 인어가 있었다. 동행한 해경들에게 사연을 들어 보니, 인어가 흘린 눈물은 진주가 된다고 믿은 어부들이 우연히 그물에 걸린 인어를 부둣가에서 학대하며 억지로 울리던 것을 지나가던 주민의 신고로 적발했다고 한다.

마취제를 투여받고 잠든 인어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나빠 보였다. 강제로 뽑았는지 비늘 여러 개가 떨어져 있었고, 상반신 곳곳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분노에 가득 차 이를 갈았다.

 "미친 새끼들.."

애초에 생물이 흘린 눈물이 굳었으면 굳었지, 진짜 진주로 변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가. 얼마나 못 배웠으면 그딴 헛소리를 믿는 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인어는 응급 조치를 받은 채 무사히 바다 생물들이 치료받는 아쿠아리움 내 시설로 옮겨졌고, 이 모든 일에 직접 참여한 관장님께서는 옆에 있던 나를 따로 불러냈다.

 "민수야. 네가 저 인어 좀 맡아줄래?"

 "네? 하지만.."

"너 이런 일 잘하잖아. 알다시피 지금 추가로 들어오는 생물이 많아서 일손이 모자라. 대신 월급은 2배로 올려줄게. 정 필요하면 직원도 더 붙여주고."

"하..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따가 인어 관련 자료들 보내줄게."

그렇게 관장님을 포함한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나는 인어가 담긴 넓고 얕은 수조를 바라보았다. 분홍빛의 긴 생머리가 물살을 따라 천천히 흔들렸고, 그와 대조되는 푸른 비늘로 덮인 꼬리는 많이 상했을지언정 꽤 아름다웠다. 이렇게 보니 왜 부자들이 그토록 인어에 열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외모도 엄청 예쁘... 아니, 지금 뭔 생각을.'

외모야 어찌됐건 문제는 그녀가 깨어난 직후다. 인간에게 팔이 부러질 만큼 험한 꼴을 당했는데, 도저히 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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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음..."


"아. 일어났어요?"

인어가 마취에서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조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인어와 관련된 정보를 찾던 내가 인사를 건내자, 찰나의 순간 멍하니 있던 그녀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싫어.. 오지 마..윽!"


온몸에 느껴지는 뻐근한 통증 때문인지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직 마취제의 효과기 남아있다고 해도, 인어의 상처는 그 정도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전신 방수복을 입고 수조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인어는 벌벌 떠는 정도를 넘어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싫어 ...!"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그녀를 어떻게 2주 동안 돌보지? 그나마 거칠게 반항하지 못한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안심하세요.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 "

나는 양손을 들어 애써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어째 효과는 그다지 없는 모양새였다.


"몸은 좀 어때요? 많이 아파요?"


"......."


"하... 배는 안 고파요?"


그물에 걸린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반나절이 더 넘었다고 했으니, 충분히 배가 고플 만하다고 생각했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던 인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당연히 그래야죠. 몸이 다 낫는 대로 보내드릴게요. 저한테 협조만 제대로 해 주시면 훨씬 빨리 집에 갈 거에요."


"정말요....?"


"네. 그래서 배는 안 고프세요? 잘 챙겨먹어야 빨리 낫죠."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슬슬 인내심에도 한계가 생길 즈음이었다.


"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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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입 벌려요. 아."


나는 그녀 앞에 말끔히 손질된 생선 토막을 내밀었다. 팔 하나도 부러졌고 상반신 전체가 상처로 가득했기에 혼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인어의 앵둣빛 입술 사이로 생선 토막이 들어갔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도 든 줄 아는 건지, 입 안에 넣고도 얼마가 지나서야 그녀가 생선을 씹기 시작했다.


"어때요? 맛있어요?" 


인어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처럼 대부분의 척추 동물 역시 단 것을 좋아한다. 영양제와 함께 일부러 인체에 무해한, 단맛이 나는 감미료를 첨가했더니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한 번 먹어보고 이상이 없으니 안심한 덕분일까. 인어는 별 탈 없이 식사를 마쳤다. 나는 다른 아픈 생물에게 그러듯 늦은 밤까지 남아 인어의 상태를 지켜보다 숙직실로 들어갔다.


 다음날에 왔을 때도 인어는 여전히 수조 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녀에게 밥을 먹이고 얕은 경사로까지 데리고 온 나는 팔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난 상처에 조심스럽게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아....!"


인간보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덜했지만 상처가 꽤 깊었던 탓에 그녀는 내내 움찔거리며 탄식을 뱉었다. 처음 만져본 인어의 꼬리는 미끌거리면서도 어류와는 달리 따뜻했다.


진짜 문제인 것은 나 자신이었다. 돌고래도 가슴은 있지만 그 형태가 인간과는 사뭇 달랐는데, 잘 빠진 늘씬한 몸매에 조가비로 가려진 그녀의 흉부에 본능적으로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무리였다.


한참 발로 얻어맞은 배 쪽의 상처를 치료할 때였다. 인어가 자꾸만 몸부림치는 탓에 고심하던 나는 그녀의 가슴 바로 아래를 왼팔로 지긋이 눌렀다. 그곳 말고는 상처투성이인 탓에 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 거기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것은 그녀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약을 다 바르고, 인어는 어제보다 더욱 심하게 떨면서 얕은 물 속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서야 우리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에 수조를 방문하니, 항상 틀어박혀 있던 그녀가 어쩐 일인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