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나는 기어다닌다.

꿈틀꿈틀.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였다 해도,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선은 이내 다른 곳으로 움직여버리고, 초점은 흐릿해진다.


나는 카메라 너머의 사람이다.

카메라의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빠지거나 한다.

좋았다, 하는 말을 연발하는 나는 좋지 못하다.

가증할 망상의 병이다. 


카메라 너머에는 피사체가 있다.

그것은 때로 사과가 되기도 하고, 어떠한 움직임, 사건이 되기도 하며, 그것은 때로 그녀가 되기도 한다.


그녀.


나는 그것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 했다. 카메라의 렌즈는 어디론가 움직였더라도 결국 그녀를 한번은 가르키기 마련이다. 

나는 이 현상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최근 들어서 찍은 사진에는 전부 그녀가 찍혀있다.

그녀는 때로 웃고있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때로는 바보같은 표정이기도 한다.


나는 전부가 좋다.


그녀의 싫은 부분 마저도 좋다. 그녀는 가끔씩 볼펜을 입에 물고 돌린다.

그녀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웃음을 짓는다.


아니, 카메라를 보고 웃는 것이겠지.


카메라는 그녀를 웃게 만든다.


그녀는 나보다 카메라가 좋은 것만 같다.


왜곡된 상으로,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괴짜라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푹 빠져버렸다.

사진이란, 동적인 사건을 정지된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 같다.

그것은 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정지되어있다.


나는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정지되어 있다. 그 미묘한 아이러니가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그 아이의 사진은 참 신기했다.

카메라에 다른 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사진은 무언가 달랐다.


나를 끌어들이는 힘. 그 힘이 그 아이의 사진 속에 내가 존재하게 한다.


카메라 셔터가 눌린다. 나는 미소 짓는다. 좋았다, 고 말해주는 너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아니, 나는 렌즈를 바라보고 있다. 그 너머로 너의 눈이 존재한다.


이내 사진이 뽑혀 나온다. 그 사진 속에 있는 모델은 나다. 하지만 때로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왜곡된 상에 있어서야 그 아이 곁에 존재할 수 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남는 것은 사진 뿐이었다.

웃고 계신 부모님. 나에게 달려오는 강아지. 어제 먹은 저녁까지.

남는 것은 사진 뿐이었다.

지금도, 손을 뻗으면 닿는 사진에는, 내가 닿지 못할 것들만 가득하다.


그녀.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어준다. 그것은 사진 속에 있다.









나는 죽었다.

어떻게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 아이의 사진은 영원히 한 구석에 남게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카메라는 오늘도 나를 찍고 있다.


나는 이미 왜곡되어있는 존재다.

나는 허상이며, 나는 그것을 인지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카메라는, 나를 바라본다.

그 아이도 나를 바라본다.

조금 더 일렀다면.










나는 오늘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만 했다.

그러지 못했다.

뒤집힌 찰나, 그녀는 영원히 사진으로 남게되었다.


그 사진이 걸려있는 곳에서, 나는 울지 못하였다.

그저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녀.


그녀가 사진 한 구석에 찍혔다.

나는 미친사람처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처럼, 내 눈물이 터졌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야기 할 방법도 없다.

그저 셔터를 누르면, 그 너머에 그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흐릿한 초점.

그 너머로 보이는 그녀.









그리고 그 아이.


마지막으로 남은 사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