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목도 못 정했는데 거의 책 1권 분량을 썼네요.

전문가분들의 순애 농도 측정을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주는 거에요?"


"네. 하늘씨에게 주는거에요."


"와아... 고마워요."


마음에 드는 건지, 하늘씨는 꽃다발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신기해 했다. 그리고 향기를 한껏 맡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조화에요. 생화는 아무래도 상하고 버려야 하니까."


가장 예쁠 때 받아서 시들고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니까. 생화를 보고 싶으면 화원을 가거나 어디 공원이라도 가면 되지.


"그렇겠네요. 꽃을 처음 받아봐서... 고마워요."


솔직히 말하면 나도 꽃을 주는 건 처음이다. 아... 장례식장 조문 간거랑 묘지에 헌화한거 빼면.


"음... 근데 하늘씨에게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많이 물어봐도 돼요. 쓰리사이즈?"


아냐! 이 사람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


"전화번호요. 핸드폰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네. 외우기 쉬울거에요. 없으니까."


응? 없어?


"어... 네? 알려주기 싫은건가요?"


"알려줬는데요? 없어요."


"핸드폰이 없어요?"


"없어요."


"아,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없어요, 그냥."


뭐지... 인간 생존의 필수 요소는 의, 식, 주와 핸드폰 아니었나.
하늘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엷은 웃음을 짓고 조수석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그럼 카페 알바는 어떻게 하는 거에요?"


"응? 알바에 핸드폰이 꼭 필요한가요?"


"일정 조정이나 스케쥴 조절을 위해 필요하지 않나요?"


급한 일이 생길수도 있고, 사고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일을 못 할 수도 있잖아.


"아플 때도 카페에서 일하려고 했더니 사장님이
'안 나오면 그냥 아픈 줄 알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쉬어. 억지로 연락 안 해도 돼.'

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사장님 되게 멋져요."


대단한 사람이네. 나는 몇 번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알바생의 편의를 거기까지 봐주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


"그럼 오늘 메일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본 거에요?"


"학교의 공용 컴퓨터로 봤어요.
오후 강의는 교수님 친척이 돌아가셔서 다른 날로 미뤄진대요."


그런 사유면 휴강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근데 꽃을... 어디에 꽃아두거나 기대어둘 데가 없을까요?
팔이 아파요..."


"아까전부터 계속 앞으로 들고 있었어요?!"


"네에."


아플만 하지 그럼!
지금 도서관 거의 다 도착했는데!
한 30분을 앞으로 뻗고 있었던 거잖아!


"그렇게 쉽게 바스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으니까, 그냥 옆으로 눕혀놔도 돼요."


"아, 그래요? 플라스틱 같은 걸로 만들었을 테니까 까딱 잘못하면 부서질 줄 알았어요."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옆으로 눕혀놓는다고 박살날 정도는 아닐 거다.


"팔 아프겠다. 고생했어요. 운전하느라 제대로 신경을 못 썼네요."


"아니에요. 내려서 걸을까요?"


이대로 산까지 올라가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보다.
옆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괜찮을까 싶었다.
하늘씨 뺨에 멍이 있는데.


"네. 그러죠."


본인이 신경쓰지 않는 것 같으니 나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안 때리기도 했고.


"여기는 단풍나무가 많아서 좋아요."


꽃이랑 가방을 차에 두고 내린 하늘씨는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웃었다.
웃을 때 조금 아픈 건지, 멍이 든 왼쪽 뺨은 조금 웃는 것이 어색했다.


"우진씨는 친구랑 이런 데 안 와봤어요?"


"아... 남자들끼리 친구랑 만나면 보통 피시방을 가죠. 대학을 해외에서 다니기도 했고."


그렇다보니 고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은 다들 연락이 끊겨서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군대 갔다가 바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그렇구나. 그럼 우진씨도 여기 오는 게 처음이겠네요?"


"그쵸."


좀 시간을 내서라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관이긴 했다.
흐드러지게 있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자 어지러울 정도였다.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붉은색과 이미 바닥에 깔려 있는 노란색은 푹신한 양탄자 같아서 포근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예쁘네요."


그래도 그 중에 가장 예쁜 건 바로 옆에 있었다.
하얀 피부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파란색 숄을 걸친 하늘씨는 얼굴에 단풍이 들어 있었다.

좀 슬프지만.


"단풍이요?"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이 예뻤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단풍을 맞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주변에 색이라는 색은 다 물들어 있는데, 하얀색 옷을 입은 그녀만이 이 세상에서 티 없이 맑아보였다.


"아... 네."


그냥 말하기에는 부끄러워서 말을 돌렸다.
가장 예쁜건, 단풍이 들지 않아도 되니 하늘씨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하하. 그래도 저랑 처음 와본다니 기뻐요.
왠지 독점한 것 같은 느낌이야."


"뭐 적어도 지금은... 독점 맞죠?"


"기업인이 독점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내뱉어도 되나요?"


"사업을 잘 모르시네. 독점은 좋은겁니다."


공급이나 기술이나 시장을 독점할 수 있으면 그 사업은 망하는 게 더 힘드니까.


"응... 그럼 나도 우진씨 독점할래요."


하늘씨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에게 폭 매달렸다.
깜짝 놀랐지만 옆을 내려다보자, 하늘씨의 귀여운 얼굴이 보여서 그냥 풀썩 웃어버렸다.


"아, 미안해요. 싫었나요?
제가 누구 끌어안는 스킨십을 좋아해서..."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하늘씨도 귀여워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안 싫어요. 하늘씨가 끌어안는 거면 좋죠."


하늘씨가 끌어안자 이전에 맡아본 적 있는, 쇠 냄새가 났다.
약간 녹이 슬어서 붉게 변한 쇠 냄새.
파병갔을 때 오래된 탄통에서 맡아보았던, 약간 매캐한 냄새와 닮았다.


"우진씨는 듬직해서 좋아요. 팔로 다 두르기 힘들 정도고."


"어... 살 뺄게요?"


배 나왔다는 소린가?
하긴 요즘 글 쓰느라 운동을 좀 소홀히 하긴 했지.
크로스핏이랑 헬스장 끊어야겠네.


"아니에요. 빼지 마요. 배는 딱딱한데요 뭐.
제 팔이 짧은거에요."


하늘씨는 내 배를 만지작거렸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배에 힘을 주었더니, 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 끝으로 콕콕 찔러댔다.


"운동은 해야해요. 건강을 위해서."


하늘씨가 내 품에서 떨어져서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아마 남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이겠지.
처음 가보는 길인데 생각보다 가파른 편이었다.


"음. 그럼 우진씨는 지금 막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 건가요?"


"그쵸. 한국 온지 3개월째인데 친구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외로우신가요?"


외롭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글 쓰는 걸 보았을 때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요.
심리묘사보다는 상황 묘사를 주로 하고, 등장인물도 굉장히 절제된 편이잖아요.
주인공들은 있어도 고정적으로 나오는 주연은 잘 없는 느낌이에요."


"그게... 맞긴 한데요. 그런가? 외로운가?"


딱히 그런 마음이나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은 없는데, 무의식이 반영되었나보다.
가끔 이렇게 하늘씨가 내 글을 놓고 나를 분석하는 걸 보면 소름 돋을 때가 있어.


"그럼 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을 만들지 않나요?
어떤 세력이나 단체에 소속된 주인공도 매력있게 그릴 수 있지 않나요?"


"인물이 많아지면... 묘사할 게 많아지고, 그러면 집중이 흐트러지고 늘어지니까 그렇게 한 것 같은데요."


"아니죠. 우진씨가 그런 부분에서 절제를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많아봐야 우진씨 스타일이 어차피 필요한 부분만 묘사를 넣고, 주로 사건 위주로 풀어가는데."


그... 런가? 캐릭터가 많아져도 내가 잘 조절할 수 있을까?


"우진씨 글 보면 주연급, 조연급은 묘사가 없는 캐릭터도 있어요.
그런데 과하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를 절제해서 넣더라고요.
물론 집중도가 올라가긴 하지만... 조금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천천히 걸으며 하늘씨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렇네요. 사람이 많아서 북적거린다는 느낌 보다는 좀 삭막하다 싶을 정도로 적네요."


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을 제외하면 1, 2명 정도.
많아도 5명을 넘지 않으니까.


"그래서 물어보는 거에요. 우진씨는 많이 외로운 걸까, 싶어서."


외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 싶고. 


하지만 가끔... 빈 집에 혼자 있으면서 창 밖을 바라보면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드물게 내가 쓰는 글에서 한 이야기를 끝냈을 때, 인물이 행복해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는 장면을 보며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주변에 어떤 소리라도 있었으면 해서, 카페가 열려있는 시간에는 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글을 썼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자 하늘씨는 밝게 웃으며 다시 내 허리에 달라붙었다.
안아주려고 한 것 같은데...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매달리는 것에 가깝게 되어버렸네.


"우리는 1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동안은 우진씨 옆에 있어볼게요.
그러니까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불러줘요."


"하하, 고마워요. 근데 하늘씨도 하늘씨 일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우진씨가 조금 더 중요해요."


고마워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늘씨에게서 나는 약간의 쇠와 녹 냄새도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누가 나를 위로하거나, 생각해주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게 고마운건지, 어색한건지도 모를 정도로 생소한 감각이지만...
확실한 건 내 마음에 깊은 감상을 남긴 것 같았다.


"저도 같이 고민해볼게요. 우진씨 안 외롭게."


"응? 외로운거랑 관련이 있나요?"


"원래 같이 문제를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 외로운 법이에요.
같이 놀 사람은 만들기 쉽잖아요.
외롭지 않으려면 안 좋은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거에요."


하늘씨는 배시시 웃으면서 옆에 있는 계단 턱을 올라가더니, 내 머리카락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니까 너무 외로움 많이 타지 마요. 아이 착하다."


"나는 애가 아니에요."


내 키랑 몸무게에 애면 좀 징그러울거 같은데.


"왜요, 애 맞지. 같이 고민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도 없으면 애죠. 친구 없는 애."


"아니... 하늘씨는 있어요?"


"난 오늘도 보고 왔는걸요? 카페 사장님."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긴 하네.


"오구오구, 우리 우진씨. 외로웠쪄요?"


뭔가 머리 쓰다듬어지는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아 도망가지 말고 좀만 있어봐요.
우진씨는 나 많이 쓰다듬었잖아요.
이런 기분이구나."


뭐 그건 큰 문제가 아니지.
나를 꼬집거나 때리는 것도 아니고.


"머리에 왁스칠해서... 손에 다 묻을 텐데. 괜찮아요?"


"응 괜찮아요. 우진씨도 아침에 내 머리 떡진거 봤잖아요.


도망도 안 가네.
아이 착하다, 우리 우진씨."


아침에 머리 손질 안 하면 누구나 그렇지 뭐.
나도 머리 뻗쳐 있었을 거고. 그리고 전혀 떡진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너무 외로워하지는 마요.
우진씨만 괜찮으면 계약 기간 끝나도 친구해줄게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하늘씨를 따라 나도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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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데이트입니다... 본편 일부를 잘라내서 가져왔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순애 농도 측정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하는 광고.

https://blog.munpia.com/dizzyto/novel/314505 

- 소녀를 구한 마법사는 여행을 합니다.

   삽화가 나왔어요. 이야기를 오프닝부터 다 뜯어고쳤습니다.

https://blog.munpia.com/dizzyto/novel/314582

- 살아남은 소녀는 여행을 합니다.

   위의 글보다 좀 더 울림이 깊고, 조금 더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공모전 응모중입니다ㅠㅠ... 부디 한 번만 읽어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