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지 542일째.

우린 드디어 마왕을 쓰러뜨렸다.

"역시, 죽는 것은 아프구만."

그 말을 끝으로 대륙의 절반을 집어삼킨 악마는 소멸했다.

이는 즉, 1년 반 동안 함께 여기까지 온 파티원들과

용사, 우리의 빛이자, 나의 반쪽이었던 그녀를 떠나보낼 때가 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판, 정말 안되는거야?"

"미안, 아무래도 이제 마지막인 것 같아."

"아니면 차라리 여기서 도망치고 이 세계에서 살자. 굳이 돌아갈 필요 없잖아.

아, 차라리 우리 세계로 올래? 보내드리는 건 여신님이니까, 잘만 기도하면 들어주실 수도-"

"리아."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아직 저 세상에 두고 온 것이 많아.

20년 동안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과, 나의 분신인 친구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이 그곳에 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판, 난 너와 함께 있을수만 있으면 그까짓 거 다 버릴 수 있어!"
"정말 그래? 그랬으면 너가 먼저 나의 세계로 가자고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침묵했다.

"리아, 우린 아직 21살이야. 여기서는 22이지만, 돌아가면 1년 젊어있겠지. 아직 남은 시간은 많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난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너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버리진 말았으면 좋겠어"

그녀가 나를 안으며 말했다.

"하지만 판, 나는 너가 없으면 안돼..."

"나도 너가 없으면 안돼, 리아."

"그럼 난, 어떻게 그 그리움을 참아야 돼?

널 잃었다는 상실감과, 고독은?"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너도 언젠가 이별에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러다보면 우린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아지는거야.

그 때는 이렇게 말하겠지.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그만큼 사랑했었다고."

"하지만, 난 너를 추억 따위로 남기고 싶진 않단 말야..."

그녀는 나의 품에서 흐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따라 안아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 추스리는 덴 1시간이 걸렸다.

"이재 정말 마지막이네?"

"그래, 마지막이야."

"사랑해 판, 정말로."

"나도 사랑해, 리아."

"마지막으로 한번만, 키스해줘."

그녀는 눈을 감았고, 나도 눈을 감고 그녀에게 몸을 누웠다.

이윽고, 우리는 눈을 떴다.

"그럼, 잘가."

"잘가. 그곳에서도 행복해야 해."

우리는 마법진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취했다.

곧, 밝은 빛이 우리를 감쌌다.

신성력의 겹침 때문인지, 그녀의 생각이 나에게 전해졌다.

나와 함께 원래 세계로 돌아간 모습.

함께 길을 거닐고, 밥을 먹고, 실없는 장난도 치고

영화를 보다 잠든 내 모습에 웃기도 하며

함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면 옆에 누운 나를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그녀.

그런 일상적인, 연인의 모습.

문득 눈을 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랑해."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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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보면서 울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사랑해."

나는 곧바로 눈을 떴다.

원래 세계에서 돌아온지도 7년이 되었지만,오늘도 그녀의 꿈을 꿨다.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였다.


나는 원래 세계에서 돌아온 이후 물리학과로 전과하였다. 또한 대학원에서는 이론물리학, 그 중 상대성이론에 몰두하였다.

"어이, 이준석 석사님. 아니, 이젠 이준석 '박사'님이라 불러야 하나?"

"깐족대지 마라."

이 사람은 김지훈. 나의 오랜 친구이자, 귀환 이후에도 친한 몇 없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근데 니 논문, 그거 진짜 되는거야? 아무리 최근 발견된 거라 해도, 그 정도는 못하지 않나?"

나는 그곳에서의 마나를 기억한다. 마법사라는 칙명을 달고 내 몸에 받아들였던 마나.

그것은 분명히 무형의 에너지였고, 그것을 이용하는 기술 또한 분명히 과학이었다.

다만 중세시대의 문명이라, 알아채지 못한 것일 뿐.

그리고 이곳, 이 세상에 돌아와서도, 나는 마나를 느꼈다. 그곳과는 다른, 지구만의 마나.

그렇게 마나에 대해 정리한 자료는 김지훈한테 넘기고, 나는 마나를 이용하는 기술, 즉 마법학을 연구하였다.

또한, 마법학을 연구하며 맺은 열매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나를 이용한 공간장의 변이와 물질의 이동」

통칭, '이세계 전이'를 설계하였다.

"분명히 할 수 있어. 내가 죽는더라도 완성시킬거야."
"왜 이리도 집착하는지 원..."

친구와의 만남을 뒤로, 나의 랩실로 돌아갔다.


마나는 무형의 에너지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것은 바로 생물이다.

생물의 생명활동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마나이므로, 마나에는 근원인 생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생물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어떤 형태인지, 어디서 방출되었는지,

또한 어떤 세계에서 만들어졌는지.

나는 그녀의 마나를 갖고 있다. 마왕의 공격으로 입은 상처를 메꿔주기 위해 나에게 주었던 마나였다.

'죽으면 안돼 판, 죽으면 안돼...'

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실험을 시작했다.

금으로 새긴 마법진 위, 현대기술로 만든 워프게이트.

"실험 제 2317번. 프로토타입 193. 게이트 목표 002. 실험 시작."

그녀의 마나 일부를 기계에 답는다. 그리고는 칼로 손을 긋고 마법진에 흩뿌린다.

피에 담긴 마나가 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곧 핏물이 사라지며 마법진이 흰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점점 워프게이트가 형형색색의 빛깔로 채워지고는,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 좌절했다. 지금까지 모든 실패는, 붉은색이었으니.

'여신님, 단 한번이라도 그녀를 만나게 해줄수는 없으신 건가요...'

그 순간, 게이트가 파란색으로 바뀌더니, 아름다운 옥색의 순백으로 채워졌다.

"시...실험 2317번...성공..."

곧장 게이트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펜에 실을 묶어 던져보았다.

다시 끌어온 펜은, 단 하나의 스크래치 없이 멀쩡했다.

그걸 확인한 나는 게이트를 향해 뛰어들었다.

나를 감싸는 거대한 마나의 바다.

그것은 마치, 그날의 신성력과 비슷한, 아니 똑같은 느낌이었다.


사라진 마나를 느끼고는 눈을 뜨니, 길 한복판이었다.

눈 앞에는 한 가게와 간판,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던 글자였다.

글자를 읽어보려 고개를 내민 그때,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다.

7년동안 안고만 있었던,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 따뜻한 느낌이었다.

곧장 나는 뒤돌고 그녀를 찾아보려 했지만, 내가 알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난 그녀를 찾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장장 2시간째 뛰어다녔지만 그녀를 찾지 못했다.

땀은 소나기마냥 내리고 심장은 터질 듯 했으며, 다리는 부스러지기 직전이었다.

결국 난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영원히.

갑자기 울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가 필요했던 사람은, 리아가 아니라 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와 함께 갔더라면, 미련 없이 떠났더라면 이렇게 후회하지는 않았을텐데.

앉은 자리에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겨우 울음이 가시고,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판...?"

"리아...?"

그녀는 눈물에 가린 나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오랜만이야,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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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단편이었슴다.

감사함다.

혹시라도 궁금하실까봐,

중부대전은 리메이크 중에 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