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원 정원준 (3)



카페를 갔다가 쇼핑을 하러 왔는데, 희영이는 묘하게 식품보다는 생필품을 위주로 고르고 있었다. 

접시, 밥그릇, 국그릇, 가위, 칼, 도마 등...

혼자 살면서는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방치해뒀던 물건들인데, 오늘 아침에 보니 없는 것이 많았나보다.


이럴 거면 염가 잡화점을 갈 걸 그랬나. 

요즘 내구성도 괜찮고 가격도 합리적인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희영이는 콧노래를 불렀다.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집 밖이 좋은 걸까, 카트를 끌고 다니며 여러가지 가재도구들을 집어넣는 손에 흥이 담겨있었다. 


쇼핑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처음 신혼집을 마련하며 가재도구를 장만할 때 이런 느낌이었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주방을 꾸민다는 이야기에 반색하며 바로 시간을 빼내는 사람이었다. 

인테리어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주방을 꾸미는 것에는 묘하게 진심이랄까.


"원준씨는 먹고 싶은거 없어요?"


희영이가 바로 옆에서 물어보았다. 

어깨 바로 옆에 오는 아담한 키였다.


"아. 내일 아침은 들기름 막국수나 해볼까?"


들깨가루도 있겠다, 들기름이랑 조미간장만 사면 바로 만들 수 있을 거다. 

나는 한 때 질릴 정도로 먹어서 별 감흥이 없는 음식인데, 그녀는 항상 좋아하며 먹곤 했다. 

만들기 쉬운 것에 비해서 맛이 뛰어난 편이니까 나도 좋아했고. 

사실상 라면보다 조금 더 손이 가는 수준이니 급하게 먹을 때도 괜찮았다.


"좋죠. 맵지 않게 해줘요."


젓갈을 많이 넣고 맵게 막국수를 해준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좀 싫어했다. 

너무 시고 짜서 먹기 힘들다나. 

심장 때문에 평소에 하는 요리에는 간을 거의 안 하는 편이니 이해가 되긴 하지. 

편의점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는 상당히 싱거웠지만, 같이 먹는 식사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이따가 저녁은 뭐 먹을까요?"


"항상 가던 돼지고기집 어때?"


조금 가격이 있긴 하지만 둘 다 돈을 버니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거든.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기를 먹으러 가면 거의 그 곳으로 갔다.


"좋죠. 거기로 갈까요?"


어차피 꿈 같은 시간이라면, 굳이 다른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과거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2년 동안 매번 그리워하기만 했던 추억이다. 

같은 시간을 보내며 그녀에 대한 기억을 다시 새롭게 가다듬고 싶었다. 

비록 누군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마 죽을 때 까지 이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갈 테니까.


"거기 고기는 좋은데 항상 너무 비쌌어요."


"그래도 직접 구워주는 거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웬만큼 바쁘지 않으면 손님이 고기 굽게 두지 않는 집이라 좋긴 했다. 

나도, 그녀도 고기를 잘 굽는 편은 아니라서 웬만하면 고기는 구워주는 곳을 갔으니까.


"그래요. 원준씨 첫 데이트 때 고기 다 태운거 생각하면..."


희영이가 키득거렸다. 

나도 그 때를 생각하면 난처한 웃음이 나오긴 하지.


마침 옆에 정육 코너를 지나고 있었다. 

오리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친구를 통해 만나게 되어서, 서로 메신저로 연락만 주고받다가 주말에 시간이 맞아서 같이 만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데 처음 먹어보는 오리고기 집으로 와서... 

삼겹살이나 굽던 내가 오리를 굽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고, 대부분을 태우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바삭바삭한게 디저트 같고 좋네요.'


그런데도 그녀는 거의 다 탄화되어 숯덩이가 된 고기를 맛있게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미안해서 비싼 케이크와 푸딩을 사서 같이 먹긴 했지만, 그 때 이후로 고기는 웬만하면 구워져서 나오거나 직원이 구워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왜냐면 그녀가 삼겹살을 구웠을 때는 겉 부분만 익고 속은 생고기인, 굉장히 신기한 경지에 도달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네. 

고기의 겉면은 익히고 안은 태우는 게 어떻게 가능했어?"


내 말에 희영이는 난처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기어코 카트를 끌고 돌려진 고개를 따라가며 눈을 마추려 했다.


"아마 고기가... 얼어 있던 것 아닐까 싶은데요..."


항상 이 주제만 나오면 항상 목소리가 작아지고 눈을 맞추기 힘들어 했다.


다른 요리는 잘 하면서, 심지어 고기를 삶거나 튀기는 건 곧 잘 하는데, 고기를 불에 굽는 것과 라면을 끓이는 것 만큼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삼겹살을 사면 다음날 저녁에 보쌈을 해먹곤 했지.


"어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고기도?"


언제 해동을 하고, 얼마나 얼렸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다. 

중요한 건 그녀가 굽기만 하면 항상 타거나, 덜 익거나, 양념이 이상하다는 거지. 

신기할 정도다. 

같은 프라이팬에 기름, 인덕션을 사용해도 그녀는 항상 구운 고기를 요리하지 못했다.


"그... 에이 진짜! 놀리지 말아요!"


하지만 귀여운걸. 

새빨개져서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워 보였다. 

조금 더 놀리고 싶긴 하지만, 여기서 더 놀리면 등짝에 빨간색 손자국이 새겨질 거다. 

그건 피하는 게 좋겠지.


"원, 원준씨도 못 하는 거 한 가지 정도는 있잖아요."


"그치. 있지."


네가 없이 사는 거.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다시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슬퍼하며 기다리는 것. 

가슴 한 구석에 뚫린 구멍을 억지로 손으로 부여잡으며, 채워지지 못하는 상실감을 견디며 버티는 일.


"그러니까 놀리지 말아요."


"시작한건 희영이인데 말이지."


첫 데이트 때에 고기 다 태운 거 이야기 한게 누구인데.


"으억!"


희영이가 갑자기 내 옆구리를 한껏 꼬집었다. 

평소보다 더 깊이 손가락을 넣고 비틀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이럴 때는 적당히 좀 져줘요. 부끄럽단 말야..."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옷깃을 잡은 희영이가 귀여워서 한동안 키득거렸다.


곧 계산하고 고깃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희영이는 나를 잡아끌고 지하철 역 근처의 잡화점으로 갔다.


"사야할 게 있어요."


아까 전에도 가재도구를 위주로 고르더니, 집안 살림이 그렇게나 엉망이었나?


"어떤거?"


"아, 여깄다. 밀폐용기 행사상품."


살림꾼의 본능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할인 행사만 보면 지나치지 못했는데... 

보통 식품이었지.


"밀폐용기는 왜?"


"자기 도시락 싸줘야죠. 

우리 전에 샀던 도시락통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더라고요."


아침에 청소할 때 같이 쓸려서 없어진게 아니면... 아.


"아마 이전 회사에 뒀을 텐데. 버렸을거야."


회사에서 병원의 연락을 받았으니까. 

비상연락망에 내가 등록되어있어서 간호사가 연락을 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얼른 오셔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원준씨?!"


그 때의 기억이 현실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옆에서 소리치는 희영이의 목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급하게 회사에 이야기를 했다. 

지금 아내가 쓰러져서 병원에 갔다. 

못다한 일은 최대한 빨리 와서 처리하겠다. 

하던 업무와 메뉴얼은 정리가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것도 가능은 할 거다... 

작년부터 휴가 한 번 쓰지 않았으니 부디 사정을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씨?"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 나는... 

위잉, 하는 소리가 몇 번이나 중첩되는 것 같더니 곧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하 2층에 도착해 차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손에서 차키가 미끄러져 세 번이나 실패했다. 

이대로 차를 타면 분명히 사고가 난다. 

제대로 도착은 고사하고 내 장례식이 더 빠를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장이 안 좋았다. 

집안 내력이 있기도 했고,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심장을 찌른 후유증이라고 했다. 

아주 병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컨디션이 무너지면 심장의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항상 노란색 니트로 글리세린 알약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그녀도 당뇨 환자가 인슐린 맞는 것과 별 다를 것 없다고 매번 말했고,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컨디션이 무너져도 약을 먹으면 괜찮아 졌으니까.

곧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번 받고, 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여행 마지막 코스로 정해졌을 정도였다.


"병원! 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택시를 잡아타고 식은땀을 흘리며 들어간 병원 응급실에서는 이미 사망선고가 있은 후였다. 

유족에 대한 예우를 위해 잠깐 이 곳에 두는 거라고...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핏기가 돌지 않는지, 내가 누른 부분이 하얗게 일어나기만 하고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억지로 없는 지식을 짜내 심폐소생술을 했다. 

예비군 훈련에서도 배웠던 조치를 하는데, 옆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꺼...'


숨을 불어넣을 때 마다 그녀의 목에서 소리가 났다. 

일어나라고 소리를 치며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몇 번이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 까지 보았는데도...


'그만하세요...'


보다 못한 간호사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잡았지만, 이미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침상 위에 올라가 몇 세트나 반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급작스러운 운동을 감당하지 못해 어깨부터 손목까지 삐걱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릴때까지 반복했지만 결국 그녀가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의사의 말로는 이미 왔을 때 동공반사가 없었다고 했다. 

이미 시각을 관장하는 중뇌까지 손상이 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라고.


오늘 아침에만 해도 차려주는 밥을 먹었는데. 

직장에 연차를 냈다고 좋아했는데. 

그래서 웃는 얼굴로 배웅을 해주고, 나도 웃으면서 갔다오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직장에서도 아침에 아내가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서 밥을 차려준다고 점심을 먹으면서 자랑을 했다. 

부부싸움으로 집에 안 들어간다는 직장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조언해주기도 했다. 

알차게 점심시간을 보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연락을 하고 일을 했는데...


'저, 죄송하지만...'


의사는 장기 이식에 대한 동의를 했다며, 그와 관련된 절차를 이야기 했다. 

귀로는 듣고 있지만, 마음과 머리는 알아듣기를 거부했다.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로 돌아오고 싶었다. 

집은 없어도 되니, 내가 쉴 수 있는 곳은 그녀의 품 안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받아주고, 가식 없이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녀 뿐이었으니까.


결국 그날, 나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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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모전 중이라 노벨피아에서 읽어주시면 더 감사할거에요...


https://novelpia.com/novel/122239


이전에 올렸던 분량 삭제하고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