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막하게 지나가는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출근시간의 오후. 오전의 열기는 식어버린지 오래였고,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한서희는 옷깃을 여몄다. 한 두 방울 씩 떨어진 빗물에 옷이 젖어 축축해졌다. 우산으로 막지 못한 비였다. 비는 바닥에 튀어서라도 옷을 젖도록 만들었다.

 우산에서 빗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비를 피할 이유로 갈 만한 곳이 있었다. 한서희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다. 회색 도로 너머. 아이보리색 길을 타고 하얀 증기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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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고 들어오자 녹차향이 퍼졌다. 이 날은 녹차를 찾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서희는 빗물을 털어내고 계산대로 걸어갔다. 갈색 앞치마를 두른 서유하가 계산대에 서 있었다.


"커피 한 잔 주문 할 수 있을까요?"

"네, 3000원 입니다."


 미소를 건 서유하가 가격을 말했다. 한서희는 카드를 꺼냈다. 계산을 한 뒤에, 한서희는 진동벨을 받았다.

 진동벨을 든 채로 한서희는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작은 카페를 채우고 있었다. 역시나도, 따뜻했다.

 아늑한 좌석. 책이 가득한 서재. 책들이 커피를 내리는 사장이 읽는 책인 것을 한서희는 알고 있다. 사장은 책을 좋아했다. 밝게 웃으면서 인사해주는 사서. 어떤 때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책을 너무좋아해서 도서관에 머무르는 사서같았다.

종이 냄새가 났다. 오래된 동시에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가는 책들이 한서희가 앉은 자리 옆에 있었다. 약간은 바랜 색의 종이들의 냄새가 편안했다. 이 냄새는 한서희가 카페에 오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진동벨이 울렸다. 한서희는 진동벨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옅은 커피향에 다른 향이 섞여들었다. 카페의 주인이 풍기는 특유의 종이의 냄새가 아니었다.


"실수하신 것 같아요. 녹차는 시킨 적이 없어요, 사장님."

"서비스입니다. 매일 이 시간대에 오시길래 준비해놓은 겁니다. 같이 마시면 피로회복에 좋을 거에요."

"아, 감사합니다."


 한서희는 받침대를 들어올렸다. 커피와 녹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에 뺨이 연하게 붉어졌다.

 카페에 온 이유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보다는 핑계가 알맞았다. 한서희는 책 냄새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 냄새를 풍기는 것들을 좋아했다.

 작가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해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사장은 그 냄새를 풍겼다. 퇴근 후 커피를 마시러 오던 목적은 커피를 내리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으로 변했다. 여태껏 인정하지 않았지만 깨달았다. 그것은 어떻게도 옷에 묻는 빗물처럼 천천히 그리고 불가항력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소나기처럼 짧게 모습을 내보이면서도 흔적을 진하게 남겼다. 뺨이 다시 붉어졌다.

 반해버렸다. 생각도 못해 본 일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탁자 위에 커피와 녹차를 올린 뒤에 한서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녹차는 아무래도 아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