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뭐하세요? 시리즈를 생각하며 쓴 팬픽입니다. 그래서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저 소설 혹은 애니메이션을 볼 예정이신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 짤막한 즐거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들은 사랑을 했다.

 종말을 맞이한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있는 힘껏 사랑을 했다.



 소년은 꼭 행복하게 해주겠다 했고,

 소녀는, 행복해질 수 없었기 때문에.



 *



 세상은 한차례 종말을 맞이했다. 500년 전, 항거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한차례 지상을 흝고 지나갔다. 생존한 자들이 삶을 연명한 부유섬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다.



 소년은 저주로 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500년 전 멸망한 자들의 유일한 생존자다. 시대의 이방인은 보이지 않을 뿐 온몸이 찢기고 뭉개지고 으깨졌다. 그마저도 모자라, 그의 종족은 멸망을 초래한 저주받은 종족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녀는 요정이다. 요정은 나이의 앞자리 수가 2로 바뀔 정도로 살았다는 전례가 없다. 하물며 그녀는 부유섬을 지키기 위한 병기이며 수틀리면 자폭마저 해야하는 처지다. 그마저도 모자라, 종족의 고질병으로 기억마저 흐려지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순탄치 않을 것이다. 아니, 그뿐이랴. 그들을 찔러 피가 나오게 하고 신음을 흘리게 할 가시밭길이 그들 앞에 펼쳐져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손을 뻗는다.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시련과 고통이 온몸을 꿰뚫더라도 서로의 눈을 본다. 비극이 목을 졸라오더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숨겨진 진실이 온몸을 난도질해도, 서로를 껴안으며 버틴다.



 망가져가는 육체가 선혈과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라져가는 기억에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더라도,



 서로가 미련스럽게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다. 끈질기게 서로를 놓지 않으며 서로를 보고 웃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절박하게 하는 걸까?



 그것은 약속 때문이다.



 소년은 소녀가 돌아오면 버터케이크를 해주기로 했다.

 소녀는 다시금 돌아오면 가장 맛있게 먹어주기로 했다.



 더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도, 늘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위안이었고, 누군가에겐 행복이었다.



 소년은 소녀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앞두고, 그걸 알면서도, 고집스레 그런 약속을 했다.



 하지만 결국 소년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소녀는 더이상 행복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기 직전, 소년과 함께 미래를 보기로 약속한 날, 소년과 하릴없이 거리를 걸은 날, 별자리 아래에서 소년의 연주를 들은 날, 소년이 기다릴테니 살아와달라 한 날, 아니,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소년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나를 받아준 순간부터.



 이미 소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을 했다.

 종말을 맞이한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있는 힘껏. 애절하게. 애달프게. 처절하게. 절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랑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