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더없이 밝은 검은색 눈동자.

부드러운 손길로 내 오른손을 감싸안았다.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로,

조용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내게 말한다.

"저랑 같이•••천국에 가요. 영원한 안식을 그곳에서•••."

마치 사이비를 연상케 하는 말투.

'저 새끼들은, 일단 말투부터 바꾸고 게임을 하지.'

"•••••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침묵을 유지한다.

갈수록 말투와 행동이 작위적이다. 그럴수록 내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는 듯이. 처음이 오히려 버티기 어려웠다. 이제는 딱히 다음날에도 지장이 없고.

드르렁- 쿨쿨••••••.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듯 하다. 이 지긋지긋한 악몽마저도 익숙해졌는지 전보다 더 쉽게 잠들었다.

*
*
*

매일같이 방문하는 병실 안.

그녀의 손끝이 살짝, 아주 미미하게 움직였다. 착각일수도 있다.

저번이 이 게임이 시작된지 11개월 차. 얼마나 이어질 지는 모른다. 하지만 매일 병실에 들를 때마다 느껴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이 게임은 끝나가고 있었고, 다행인 것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손을 붙잡은 그너의 온기가 이를 보여준다.

'나도 참•••'

그녀가 깨어날지, 아니 이 환상이 끝날지조차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저 온기가 증거라는 것은 어떤 근거도 없다.

툭툭.

옆자리에 있던 할머니가 내 옆구리를 살짝 쳤다. 워낙 기척이 없어서 나는 약간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이거라도 먹어요, 젊은이."

"아•••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손에 쥐여준 홍삼캔디.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껍질을 까서 입 안에 넣었다.

'쓰네•••.'

당연히 썼다. 물론 이미 현실이 씁쓸했기에, 캔디 하나가지고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이 아이는 부인인감? 참 이쁘네. 나도 좀만 더 젊었으면•••"

"아니에요. 할머니는 아직도 아름다워요."

약간은 입에 발린 말이었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근데 아직도 안 깨어났는감?"

"곧•••깨어날 거에요. 아무런 증거는 없지만."

"잘 되길 빌겠네"

그 말을 끝으로 할머니는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에휴, 천사란 것들이 참. 악마보다 더하네.'

할머니가 작게 읊조린 말을 잘 듣지 못했다.

'근데•••원래 이 방에 저런 할머니가 있었나?'

*
*
*

다시, 또 그날. 

이제는 익숙해진 행위를 또 반복한다.

정시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곧장 향한다. 술은 미리 사뒀으니까.

미리 재워둔 갈비를 꺼낸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술을 한 병 마시고, 마지막으로•••

딸깍-

형광등까지 껐다.

째깍, 째깍•••.

6시 59분

째깍•••.

7시 정각.

•••••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무슨 일이지?'

째깍, 째깍•••.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 소리도, 목소리도.

혹시 아내가 깨어났을까?

띠리리링, 띠리링-.

병실에 둔 전화는 받지 않는다.

몇 분 지나고 받은 직원도,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답한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건가?'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왔다. 어쩌면, 이 게임은 내가 질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상상한 모든 것들이 착각일수도 있다. 그 선명한 모습도, 나의 막연한 희망도.

'정말로, 죽어야만 만날 수 있는 거라면•••.'

이 말은 사실일까?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날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었다. 

*
*
*

두렵다.

한 달째, 다시 그 날이 되었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병실 안 그녀의 모습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일말의 희망이었던 환상조차 사라졌다.

천장에 걸어둔 밧줄.

계속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럴수록, 그녀 없이는 어디에서도 살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 목을 스스로 내어 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웃게 만든다. 누군가 본다면 너무나 흉측한 몰골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저번에 본 할머니의 모습이 스치듯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


'에휴, 이딴 것들이 천사냐. 이거는 어디서부터•••기억 편집을 해야 하지. 일단 죽으려 한 거는 꿈으로 치고•••.'

*
*
*

'•••••여긴 어디지?'

나는 죽었다. 그렇다기엔, 이곳은 내 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으윽•••.'

다시금 그 고통이 몰려왔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이게 꿈이었다고? 

주물주물•••.

가만히 앉아 일만 하다가 생긴 뱃살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

'그러면, 그렇다면•••.'

아내는, 깨어났을까. 

띠리리링, 띠리링•••••••.

제발.

딸칵!

"•••••••"

전화기 너머에선, 누군가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거친듯한 숨소리와, 이 울음소리.

"일어•••난거야?"

"••••••응."

"잠시만 기다려, 당장 갈게."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널부러진 옷 한벌만 겨우 입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택시!"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길가에 있던 택시를 아무거나 잡았다. 미터기 안에서 달리는 말이 내 심정을 대변하곤 있었다.

6층에 있던 병원까지 계단을 올라 허겁지겁 뛰어갔다.

그곳에는, 볼품없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가 나를 맞이했다.

"•••••"

그녀는 말 없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와락-!

나는 그녀의 품에 곧장 안겼다. 그녀의 체온과 피부가 내 온몸에 닿고 있었다. 환상이 아닌, 진짜 아내가 있었다.

"••••••••미안, 미안해요•••."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모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사과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나는, 아니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있었고, 서로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다.



부활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