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가 온 누리를 지껄였다.




  나는 쥐 죽은 듯 처마 아래에서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바람이 썩 쓸쓸하던 날이어서, 영문 모를 일에 대해 구시렁대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날에, 이리는 내게로 소리 없이 다가와,
  「무엇이 그리 고민이느냐?」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뒤돌아보며, 〈아차, 이자는 이리의 벗이었나니, 가까이 하면 안 되겠구나!〉 하던 놈들을 생각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익숙할 정도였지만, 아직 고민할 거리가 아니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리는 그런 내 생각을 반만 읽었는지,

  「혹시, 나와 네 관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하기라도 한 것이느냐? 그런 것이라면 내게 허물없이 말하거라. 네 벗 아니겠느냐.」

  그녀의 부드러운 말에 나는,
  「아니외다. 별 심각한 일은 아니외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괴(怪)한 표정을 지으랴? 내게는 아직도 그 험한 꼴이 아른아른한데, 네 지금 꼴이 딱 그때 그 꼴이라. 일단 인상을 펴 겉이라도 좋게 하자꾸나.」

  나는 내 표정이 그리 심각하였나 하면서,
  「지금 제 표(表)가 그만큼 엉망인 겁니까?」

  「그래. 상처는 없지마는, 표정이 그때와 똑 닮았다.


  이(耳)는 노(怒)한 듯 벌겋게 화(化)하고 있느니,
  목(目)은 한껏 찌푸려져 허(虛)한 하늘만을 지긋이 주시하고 있나니.
  구(口)는 강직한 이목(耳目)과는 다르게 멍하니 벌려져 있나니,
  비(鼻)는 상기되거나 하지 않고 차분한 채 있느니.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음양지화(蔭陽之和)렷다 똑 그때와 같으리.」


  이리는 자신이 한 말이 만족스러운지 한껏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어하며,
  「되도 않는 농은 그만 던지시고…….」

  「흥 없는 농이었다면 그만 접으마. 그래도, 농으로 네 표정이 조금 풀어진 듯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나도 모르는 새에 입꼬리를 올렸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올린 채로 자연히 놓아 두으며,
  「그럼, 이걸로 안심입니까?」

  「응, 안심이다. 네 사정은 아니 말해도 되느니, 네 미소만 있으면 좋아라 하겠느니라.」
  그런 밝기만 한 말과 함께, 이리의 늑대 귀가 쫑긋하였나니.




  '이리'라는 벗은 그 이름에 걸맞게 늑대와 인간이 섞인 '낭인(狼人)'이라. '이리'라고 하는 건 명(名)이요, 성씨(姓氏)는 있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이리'라는 이름은 누가 잃어 준 것이냐 물었나니 그녀가 말하길,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리 괴물이다!〉라고 하던 걸 듣고 스스로 정한 것이라 한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언제였던가. 꽤 예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몇 해 전의, 소한(小寒) 즈음이었던가. 그래 그쯤 되는 추위였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와의 첫만남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첫 만남이라……. 아마 한 해 전이었을 것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리가 그리 말했다.

  「생각보다 짧군요. 하도 일이 많았어서,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그래, 참 다사다난했지.〈초면(初面)에 접문(接吻)이라니…….〉하던 네 말이 아직도 귀에 아른거리는구나.」

  「제가 그런 말을 했었습니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확실하다. 네가 내게〈연모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던 그때의 일도 눈에 선한데, 한번 보겠느냐?」

  지난 날들의 기억이 상기돼 쑥스러워 약간 얼굴을 붉히며, 나는 물었다.
  「본다니요? 어떻게 말입니까?」

  「예전에 네 벗 구춘(具春)이 쓰러졌을 때가 기억나느냐?」

  「네, 그때…… 아아! 기억 내(內)로 들어갔었죠. 경험한 적 없는 일들이 눈에 선하게 펼쳐져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방법을 쓸 겁니까?」

  「그래, 네 기억에 들어가는 것이라. 내 입장에서도 네 입장에서도 그게 낫겠지. 너도 내 기억을 보고 싶지는 아니하잖느냐?」

  「……네. 저번에 보았을 때에…….」

  이전번에 보았던 이리의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아팠다. 그녀는 내가 머리를 짚는 것을 보고,
  「내 과거에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지금 너와 함께 있으니 됐다.」
  그런 말을 하며, 한껏 미소를 지었다. 꾸밈 없는 미소였다.

  「그래서, 볼 터이냐?」

  「오랜만에 추억을 회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쇠다.」

  「호(好)의 의미라 생각해도 되겠지? 그러하다면, 지금 당장, 한 해 전의 그날로 가 보자꾸나.」
  그녀는 그리 말하고, 시를 읊조렸다.



  봄을 그려헐 날아
  春乙戀尸日良
  덜이 하너를 명조허메
  月是天乙明照米

  하널이 멀가 진미허져
  天是靑可眞美齊

  심동ㅅ 눈이 너리던 밤아
  深冬叱雪是降尸夜良

  어느 이리홀 구허메
  何狼
求米
  이리이 입시울을 맞초오져
  狼是吻乙接齊

  덜하 우리홀
  月下吾里

  하이헌 눈산ㅅ 새박으로
  白尸雪山叱曉以

  니야깃 처썸으로
  語叱初以

  더려가시셔
  送賜立


  이리가 그리 읊조리자, 세상이 일그러지매, 곧 이리를 만났던 그때의 옷차림이라.





 
  심동(深冬)의 설산(雪山)이었다.



  두 달 정도의 긴 여행을 하고 있었던 나는, 삼 대째 이어지고 있다는 한 허름한 주막에 묵게 되었다. 설목산(雪目山) 중턱에서 산 밑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방에서 대단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굳이 산 중턱에까지 올라 찾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그 '대단한 광경'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썩 괜찮은 광경이긴 하지만 진경(珍景)이나 절경(絶景)까지는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으리라. 다만, 산경(山景)이란 건 절경이 아니라 하여도 충분히 귀한 것이라, 충분히 즐길 가치는 있었기에, 일단 주막에서 한 밤 정도 묵기로 했다. 물론〈혹여 야경은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자, 배가 고파져 말했다.
  「주모, 배 채울 만한 음식 거리 있소?」

  「바로 차려 드리지요. 이제 막 만들디다.」

  「고맙소. 그나저나, 여기 다른 투숙객들은 없소?」

  「요새에는 추워서 잘 안 온다오. 요맘때가 가장 추울 때니. 당신이 특이한 거요. 산길이 위험하지는 않았소?」

  「다행히 별일 없었쇠다. 위험한 건 오히려 이쪽인 것 아니오? 인적 드문 산에 주막이라니. 장사는 잘 되오?」

  「수입만큼 지출도 별로인지라, 가족이 벌어 오는 돈까지 보태면 충분하다오.」

  「가족?」
  아이들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아니하였기에, 그리 말했다.

  「서방님이 아랫마을에서 돈을 벌어온다오. 고생깨나 하시지.」

  그런 대화를 하는 새에, 상이 다 차려졌다. 숟가락을 들고 뭇국을 맛보았다. 그리고 다른 반찬들을 맛보았다. 모두 맛이 썩 좋아서, 입가에 웃음이 피었다.
  「맛이 좋구려.」

  주모는 그런 칭찬에 얼굴이 발그레져,
  「호호, 다들 그리 말하지요.」

  밥상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고기랄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꽤 맛있는 밥상이었다. 특히 뭇국이 일품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게 없어 보여서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가 싶은 정도였다. 주모는 맛있다는 듯이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옆쪽을 보니, 하늘은 아직 푸르거늘 벌써 별과 달이 그 빛을 희미하게나마 밝히고 있었다.

  주모는 산의 정기를 마시듯 마음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더니,
  「이맘때면 참 춥긴 하여도, 하늘만은 참 아름답늰다.」

  「그런 것 같구려.」

  주모도 나도 청천(靑天)과 월성(月星)의 조화에 감탄하였다. 이게 그가 말하던 '대단한 광경'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저런 건 마을에서도 하늘만 올려다보면 볼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

  주모는 그 목소리에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서방님! 어서 오세요!」
  하고 외쳤다. 보아하니 저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주모의 남편이었던 모양이라.

  나는 그 짐작을 까닭으로,
  「내 이제 들어가리다. 오붓한 시간 보내시오.」

  내가 그리 말하자 주모는 웃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낼 묘시에 깨우리라.」

  「알겠소.」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잠에 일찍 드는 편인 데다, 막 식사를 한 터라, 잠이 솔솔 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잠시 눈을 감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귀를 편안케 했다.





  은은히 비치는 달빛에 눈을 떴다.
  보아하니 아직 어둑한 시간대인데, 여명도 밝지 않은 걸 보니 깨우리라던 묘시는 아닌 듯했다. 너무 일찍 잔 것인가 후회하며, 마려움에 이부자리서 나와 뒷간으로 걸었다.



  동야 명월(冬夜明月)에 백설(白雪)이 솔솔 내리니 참 아름다웠다. 뒷간에서 나와 일어난 김에 산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을 쪽으로 잠깐 걸음을 옮기었다.

  산봇길에 귀뚜라미 소리가 귀를 울리었고, 야행하는 짐승들의 눈이 몇 번 반짝였다. 눈에 덮여 하얘 보이는 청초(靑草)가 내 걸음이나 짐승의 뜀으로 바스락바스락했다.

  그렇게 금수 곤충과 함께 설산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니, 어느 백모(白毛)의 늑대가 눈에 파묻혀 처참한 몰골로 숨을 헐떡이고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 흰눈색 늑대는 백설에 파묻혀 있다 하여도 썩 눈에 띄었을 정도로 피투성이였기에, 난 〈어이쿠, 저대로 놔 두면 금방 죽겠구나.〉 하고 늑대를 안아 들었다. 피가 옷에 묻어 결국 배어 버릴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따위 것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자연과 생명의 미(美)는 다른 모든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가 내 신조였기 때문이라.



  늑대를 안고 주막 방향으로 뛰었다. 눈이 와 바닥이 미끄러워 자주 넘어졌는데, 넘어질 적에는 혹여 안고 있는 늑대가 다칠까 봐 최대한 몸을 틀어 등 쪽으로 넘어지거나 하였다. 그런 덕인지 다행히 여관에 도달할 즈음에도 늑대의 숨은 희미하게나마 붙어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 자고 있는 이들을 깨울까 봐 반(半)달음박질로 조심히 방에 들었다.
  그러고, 일단 상처를 처치하기 위해 천에 늑대를 눕힌 후, 이부자리 오른쪽에 두었던 중간 크기의 자루에서 약초 따위를 꺼냈다.

  여행을 하려면 응급 처치법 정도는 다 꿰고 있어야 하기에, 치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신경쓰이는 건 온몸의 절상이었는데, 금수의 발톱에 긁힌 것이 아닌, 사람이 검으로 세게 벤 것 같은 상처였다. 무슨 사정이길래 사람에게 이리 험한 꼴을 당한 것이느냐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임이 참 안타까웠다.




  처치를 끝내고 경과를 잠시 지켜보던 중, 찬바람을 쐬어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들어, 그만 수면하고 말았는데, 꿈도 꾸지 아니할 정도로 깊은 수면이었다.

  그리 수면하던 중, 주모가 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에 의식을 되찾았다. 주모가 문을 열었던 것이라.

  문을 연 주모가 왜인지 놀라 말하길,
  「에구머니나! 웬 처자가…….」

  그 말에 눈이 번쩍 떠져 눈 앞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난 그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뽀얀 피부에 흰 머릿결을 지니고는 굳게 표정한 곱디고운 처자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하여도 놀라운 것이었는데, 날 그리 놀라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나니, 인간의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을 뿐더러, 머리 위쪽에 늑대의 귀가 달려 있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 처자는 내가 눈을 떴음을 깨닫고는,
  「일어났느냐? 내 벗 될 자야.」

  어느새 주모는 문앞에서 사라져 있었으니, 나는 기어 문을 다시 닫고는,
  「무, 무슨 일입니까?」
  그리 말하고, 처치를 하였던 늑대는 잘 있나 눈으로 방을 훑었다.
  하지만 그 늑대는 어디론가로 사라져 없었고, 오직 피로 얼룩진 천만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처자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염려 말거라. 내가 그 늑대, 이리일지니.」

  나는 그 말에 황당해하며,
  「……뭔 헛소립니까? 금수가 인간이 되었다는 건, 요괴라도 된다는 것입니까?」

  「요괴는 아닐지니, 영물이로다.」

  「영물이라니, 농을 던지지는 마시지요.」

  「진심이니라. 내 귀를 보고도 모르겠느냐?」

  처자는 그 백설(白雪)처럼 새하얀 귀를 쫑긋 세웠다. 상술했듯이, 머리 위쪽에 달린 늑대의 귀였다.
  나는 그 귀를 보고 이곳이 꿈인지 의심했지만, 정신이 은처럼 맑은 게, 적어도 꿈은 아닌 듯했다.



  「내 이름은〈이리〉라. 비록 요술에 능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 지혜만은 영험하고 신묘하나니.」

  그녀의 소개에 나는,
  「영물이라면 본디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외다. 그 힘이 지혜라면은,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기라도 하다는 것입니까?」

  「반쯤은 맞지만, 나는 시인일진저, 안타깝게도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볼 수는 없노라. 다만…….」

  「다만?」

  「꿰뚫어 보지는 못하나, 지껄일 수는 있으니라.」

  「시인이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다만, 너희들이 그렇게들 좋아하는 한시(漢詩)에는 그다지 밝지 못하라.」

  「그렇다면 무슨 시에 밝다는 겁니까?」

  「나는 시인이니, 시에 밝으니라. 시라 함은, 시시한 노래라는 것이지. 나는 그런 시시한 노래에 능하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피식 웃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어하며,
  「그러면, 한번 지껄여 보시지요.」

  「무엇을 말이느냐?」

  「세상을 말입니다. 금방 세상을 지껄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세상을 지껄이는 건 언제나 되는 게 아니니, 때가 왔노라 하여야 비로소 지껄일 수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저는 당신을 영물이라 신(信)할 수 없나이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몸을 내 눈앞까지 들이대더니,
  「그렇다면, 이리 해야 믿을 것이더냐?」
  라고 하고는, 갑자기 나를 확 잡아끌며―



  

  입을 맞추었다.

  어느새, 그녀의 팔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 몸부림을 쳐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였지만, 그녀의 괴력(强力)에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기에, 곧 저항을 포기하였다.
  그러자, 내음― 들꽃과 같은 내음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그런 좋은 내음에, 정신이 혼미해져― 타액(唾液)를 뒤섞었다.



  재언(再言). 포옹한 채 입을 맞추니, 한동안 지속하더라.

  정신이 사르르 녹아 달콤해, 새파란 한낮이 푸르른 보름밤이니, 보름달 푸른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었다.

  눈을 이리에게로 돌리자, 그녀의 은빛 머리칼이 달빛에 파르라니 비치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얼굴을 붉히니, 내게 안긴 그녀의 몸이 따듯이 부드러워져,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육감(肉感)에 정신이 집중되어, 늑대 무리의 지혜에 안긴 듯 하였나니,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아, 천지에 몸을 맡긴 듯하였다.

  그 와중 또다시 코를 간지럽히는, 청림(靑林)의 내음.
  그 내음 탓에, 이윽고 다디단 설(舌)을 느끼었다. 보드라웠다. 그러자 느껴졌다― 설(雪) 내음이. 포근하였다.


  붉어진 뺨을 감각하면 차가우면서도 따듯하였는데, 두 사이가 가까워 내 뺨이 붉은 건지 그녀 뺨이 붉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적어도 그 진실함은 강하게 와닿았다.




  꽤 지나고, 그녀가 입을 떼고는 말했다.
  「이제, 너는 나의 벗이로다. 수렁에 빠진즉 내가 알아 구원할 터이니.」

  나는 입속에 남아 있는 그녀의 타액(唾液)에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며, 
  「갑자기 접문(接吻)이라니…….」

  그녀는 내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네 왼쪽 위팔을 보라. 이리 랑(狼) 자가 새겨져 있을 터이니, 그건 증표이니라.」

  왼쪽 소매를 걷어 올라니 정말로 위팔에 랑(狼) 자가 새겨져 있었나니,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난 네 팔에 손도 대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글씨가 새겨졌으니, 이제 내가 영물임을 믿을 수 있겠느뇨? 뭣하면 네게 내 힘을 보여줄 수도 있느니라. 이제 너는 내 벗이니 말이다.」

  나는 저절로 문자가 새겨졌다는 신묘한 사실에 살짝 놀라며,
  「……그만 됐습니다. 헌데, 벗이라뇨? 어찌 된 영문입니까?」

  「단순 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요, 네 사람됨이 퍽 아름다웠기 때문이니라.」

  「아름답다는 건 도대체 무엇이 아름답다는 겁니까?」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네 자연에의 존중이, 늑대인 나를 마다치 않고 구원하여 준 것이 아름다웠다.」

  「그건 사람 된 도리올시다. 저는 자연히 해야 될 일을 한 것뿐이니.」

  「자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니, 그런 점을 감안하면 네 행동은 보답받아 마땅한 것이라.」

  나는 그 말에 괜히 쑥스러워하며,
  「뭐, 보답을 하는 건 각자의 자유이니…….」

  화중(話中), 이리가 「아아」 하고 말을 끊어 「무슨 일이나이까?」 하니,
  「이제 시간이 다 되어, 나는 산림(山林)으로 돌아갈지니.」

  「네? 무슨 말입니까?」

  「떠돌이 늑대로 돌아가겠단 말이라. 잠시 작별이겠구나. 그때까지 여행 잘 하려무나. 누군가 네 위팔의 랑(狼) 자가 무어냐 묻는다면, 늑대의 벗이 된 증표라 하거라.」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곧 방이 안개로 뒤덮히더니—

  「그럼, 안녕히.」
  그런 말이 들리고,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었나니, 곧 사라졌다.




  안개가 걷히고 일광(日光)이 다시 세상을 비추었으매, 하늘은 다시 퍼래졌다.

  나는 이전의 일이 마치 꿈 같다고 생각하며 볼을 매만졌지만, 볼의 뜨거운 감촉에 정신이 깨었다. 위팔의 글자도 여전하여서, 나로 하여금 〈꿈이 아니구나!〉라고 확신하게 하였다.




  전에 다른 데에 올렸던 걸 합치고 약간 수정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문제 되는 거 있으면 내리겠습니다.


(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