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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외로운 시간을 홀로 버티는 건.


 이미 아물었단 상처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서 아릴만큼, 힘들다고. 그렇게 얘기하면,


네가 내 곁에 머물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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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가벼운 두 번의 두드림. 그것만으로 문 너머가 약간이나마 소란스러워진다. 


문이 살짝 열리며 '들어와.' 그리 종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란 걸 바로 알 수 있을만큼 미성이면서도, 꽤 낮은 목소리다. 고저 없는 말투가 얼핏 기계적으로 느껴지기도했다.


"어서와. 수현."


"...응. 뭔가 오랜만이네."


"그러게."


마주보이는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슬퍼보이는 느낌. 언제나의 그녀였다.


"이번에도 불러줘서 고마워. 진겨울."


"새삼스레. 같이 시간 떼우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


그것도 그랬다. 몇 번이나 됐을까. 정확한 수는 모르겠지만 열 번을 넘었을 때부터 세지 않았으니 적어도 열 번은 넘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온 일이 말이다.


원래 같았으면 조금 야릇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확실히 그런 흐름이 자연스럽겠지.

누군가에겐 오히려 아무렇지않아하는 우리 둘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봐."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이번에는 며칠이나 갈 예정이야? 이주?"


"아니, 아마도 사흘쯤. 대타 느낌으로 뛰어야 할 일이 바로 생겨버려서 말이야."


"아하. 사흘마다 밤낮을 바꾼다니. 너도 고생이네."


직장의 문제로 자주 밤낮을 바꿔야하는데, 야간에 맞출 때는 밤과 새벽 시간에 깨어있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적응하는 게, 이젠 당연하다시피 되어버렸으니.


"일이니까. 그만큼 돈을 더 주니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여기, 가라아게야."


"...가라아게?"


"응. 닭튀김. 어쩌다보니 받게돼서. 좋아하지?"


"좋아하지만, 꽤 엉뚱하네. 일식집에서 사이드로 시킨 것도 아닌데 가라아게만이라니."


"그러게. 그래도 조금 식었을텐데, 먹으려면 데워놓고 이따가 먹어야겠다."


"오늘 안주는 오랜만에 따뜻하겠네. 맥주랑 컵은 냉장고에 넣어뒀어."


"그럼 이것만 데우면 되겠네. 전자레인지 쓸게."


"응. 그럼 기다릴동안 담배나 한대 피울까—냄새 괜찮지?"


"상관없어."


찬장에서 꺼낸 접시에 종이 봉투를 털고 전자레인지에 넣으며 대답했다. 싱긋, 웃으며 베란다의 문을 열고나간 그녀는 난간에 기대어 앉고 지체없이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나는 묵묵히 열린 미닫이 문 앞에 앉을 뿐이었다.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방 안에는 향이 배어있었다. 그녀가 피는 향담배의 쾌쾌하면서 씁쓸하고 달콤한 향이. 현관 밖과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원룸으로 되어있는 그녀의 집 자체가 그렇다고 해도 무방했다.


"음, 역시 보고만 있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 ...수현도 한 대 피워볼 생각 없지?"


"없지. 계속 밤낮이 바뀌는 것만 해도 충분히 수명을 팔면서 하고 있으니까."


"하긴, 것도 그렇네."


쓰게 웃은 그녀가 늘어트렸던 팔을 입가에 끌어들였다. 입술이 살짝 벌려지고, 그 사이에 끼워지는 얇고 기다린, 까만 색감의 파이프. 눈은 감기고, 입술은 다시 물듯이 다물렸다.


이내 눈꺼풀이 들어올려지며 입가에 있던 궐련을 난간을 향해 늘어트린다.


"—푸흐으,"


뭐라고할까, 연기를 내뱉는 그녀의 눈은 굉장히 권태로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 자격도 없다.


그런 부분까지 영향을 주고 받을만큼 무거운 사이가 아니다. 나는, 우리는 한 없이 가벼운 관계였다. 어떤 말로도 정의하기 어렵고, 모자란.


그녀와는 인터넷에서 만났다. 정확히는, 게임에서 말이다. 내가 일을 하기 전에는 의존하다시피 했던 게임이기에, 매우 길었던 접속 시간 중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게임친구, 그녀의 정체였다.


유달리 감정이,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도 긴 시간동안 관계가 이어졌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마개였다. 코르크를 잃어버린 와인병에, 대충 크기가 맞는 무언가를 얼버무리듯 어설피 끼워놓은.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꽤 달랐지만, 또 꽤 닮았기에.


잡생각을 털어내며 일어나, 이미 진작 타이머가 울었을 전자레인지로 향했다.


"오늘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가보네."


"조금 그렇네."


그녀가 쿡,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뭐, 이런 일도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버튼을 몇번 누르며, 전자레인지가 웅웅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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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냉장고에 있던 맥주잔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소리와 손 끝의 차가운 습기가 어딘가 찌릿하기까지했다.


유리잔과 캔 맥주를 상 위에 올려놓자, 절묘하게 전자레인지가 울어댄다.


가라아게가 수북히 쌓인 접시를 꺼내들고 돌아봤을 때, 그녀가 베란다의 문을 닫고 들어오며 싱긋, 웃어보였다.


"타이밍이 절묘하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리모컨을 주워들었다. 언젠가 얘기한적 있는 영화의 타이틀이, 상 너머 티비에 띄워졌다.


"그러게 말이야."


모든게 자연스러웠다. 또 익숙했다.


그 사실에 이질감마저 느껴질정도였다.


수년 전, 그녀와 꽤 친해진 뒤에.

내게 취업을 하지않으면 안될 상황이 오고나서는 게임을 통하는 대신 사적으로 연락했고, 게임 외적인 취미도 꽤나 잘 맞는다는 것도, 우리의 성별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밤낮을 바꿔야할 일이 생겼다고 그녀에게 말했던 날, 그리고 거처마저도 가깝다는 걸 알게 된 날. 그 날이 그녀와 현실에게 만나게 된 첫날이자 그녀의 집에 오게된 첫날이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상상보다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니까. 그 외모가, 목소리가, 미소가.


어딘가 퇴폐적이고 음울한 느낌을 주는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내가 알고있는 액정 너머의 그녀가 맞다는 걸 깨닫는 경험은, 안타까움마저 일었다.


어쩌다가 그녀는, 나와 닮은 꼴의 삶을 살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허나 묻지 않았다. 못했다. 그녀는 나와 달랐지만,


또 닮았기에.


그 짐의 무게를, 감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책임을 지고싶지 않은, 겁쟁이인 나는 그저 슬프게 싱긋 웃던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 오늘처럼 둘의 취향에 들만한 영화를 골랐고, 맥주 몇 캔을 나눠마셨었다.


"생각보다 재미 없네."


"평가에 비해 몰입감이 굉장히 별로였어."


"다른 거나 볼까."


"이건 어떨 것 같아?"


마치, 무심한 듯. 인터넷 너머로 나누던 대화를 목소리로 나눴다.


그 익숙한 척 했던 연기는, 이제 연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 점이, 이상하게도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다만 역시나, 드러내지는 않는다.


"홀수였네. 가라아게."


"그럼 네가 하나 더 먹는 걸로."


"괜찮아? 꽤 맛있지 않았어?"


"응. 맛있었지만. 그래도 난 이쪽."


얼마 남지 않은 맥주잔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슬프게 싱긋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그럼 건배할까."


챙—,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잔에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생각했다.


다만 요즘에는, 그녀가 드러내지 않은 슬픈 미소의 의미를 알아버릴 것만 같아서. 무섭다고.


***


그림 퀄이 그리 좋지 않아서 아쉽게 됐음!




(*이미지 파일 보기 힘들면 말해주셈. 지우거나 수정해봄. 뉴비라 해본 적이 없어서!)


위에 건 처음 그린 거. 사실 낙서를 먼저 그리고 글을 맞춰서 쓴거여서.

아래꺼는, 쓰면서 이래저래 고쳐보고 무엇보다 눈물을 그리고 얼굴 초점 맞춰서 찍은건데... 처음이 나았던 것 같기도하지만. 역시 그림이래도 사진은 구도가 중요한지 느낌이 다르게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새벽의 외롭고 쓸쓸한 우울의 감정은

마냥 드러내는 것보다, 드라이하지만 은은히 비치는 게.

그러다가 터져나오는 짙고, 깊고, 거친 한방이 날 죽고 못 살게 만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