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디다 둘까?”


“옆에 상자에 넣어줘. 아 이것도.”


“이게 다 필요한 거야?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 잖아”


“그래도 가서 언젠가는 쓰겠지. 멀리 가는 건 아니어도 오래는 있잖아?”


항상 그랬다. 아끼고 아끼다 결국 쓰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포기를 못한다. 그러다 결국 쌓이고 쌓여 똑같은 것들이 서너개 아니, 한 여섯개는 될 쯤 내가 이걸 왜 샀지 하며 후회한다.


“에휴, 나중에 짐이라고 버릴 때 힘들지 않겠어?” 


“누가 짐이래? 이거 나중에 다 쓴다니까? 이게 다 미리미리 준비하는거야. 가서 필요할 때나 사야할 때 되면, 딱 하고 찾아서 쓰면 얼마나 도움되겠어? 이런 것부터 절약하는거라구~”


“네 네.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할께요.”


바보. 방금 내가 정리해준것도 내가 아까 세번은 더 봤다.


“그래도 고마워! 이렇게 정리해줘서. 역시 너가 있어야 이게 착착착 된다니까. 친구 참 잘뒀다 !”


“뭘 새삼스레. 차피 친구 나밖에 없잖아?”


“그 말 후회 할거야 너”


“아니 맞잖아 진짜 너 친구 없잖아”


그리고 계산기가 생각보다 많이 쓰라리단걸 알기 까지 시간은 분단위로도 걸리지 않았다.


대충 정리된 이삿짐들은 성인 여자 한명꺼라고 하기엔 골판지 색깔들과 캐리어의 작은 산으로 보였다.


이게 다 짐이라니. 어디 먼데도 아니고 그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 하나 뿐인데.


똑같은 한국이고, 똑같이 한국어 쓰고, 똑같이 사람사는 곳인데. 그냥 그 정도일 뿐인데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바리바리 이삿짐을 싸냐.


“…..야”


“응?”


“언제 다시 들릴꺼야?”


“응? 어디?”


“여기. 그래도 여기가 네 집이잖아.”


“여기? 아~…… 뭐 시간이 되면 한번은 오겠지. 물론 바쁘면 방법 없지만.”


“허, 섭섭하네 그래도 시간내서 한번은 와야지.”


“엥? 왜 그래? 마치 내가 뭐 놓고 온거 마냥?”


“……그래도 친구는 보러 와야지.”


그녀가 웃었다. 여자답지 않은 호탕함이 방을 감쌌다. 웃음소리는 경박해도 누군가 자신의 방에 있어서일까, 절대로 편하지 않게, 그렇게 친구는 크고 짧게 웃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왜? 내가 없으면 안되겠어?”


경박함은 온데간데 없고, 붉으스름하게 존재감을 알려주는 입술. 좀전에 정리와 웃음들이 살짝 격했는지 조금 상기된듯 발그레해진 볼.


 아무것도 아닌듯 바라보는 눈동자. 그리고 그걸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라고 알려주듯 잔뜩 힘이 들어가서 올라간 눈썹. 


그리곤 다시 옅게 후- 하고 숨을 뱉고는 입술을 삐죽 내미는 표정. 너무나도 많이 봐온 너의 표정이다. 그래도 가끔 당황할 때도 있다.


방금 이라던가.


“아니 난 누구보단 친구 그래도 어느정도 있어서 그정도는 아니야.”


“야. 장난하냐 진짜 아까부터?”


“장난은 맞는데 미안하니까 손에 계산기는 내려주라. 그거 좀 아프더라.”


“에휴…… 됬다. 넌 맨날 똑같구나.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그렇게 아픈데를 찔러야 겠어?”


“하지만 너무 오래 이러고 지냈는걸. 야 내가 너랑 알고 지낸지 7년이 지났어.”


“6년 아냐? 중학교 1학년이면.”


아 그런가.


“바보. 머리가 모자란 당신은 힘들게 짐을 정리한 나에게 밥을 사주셔야 합니다.”


“그거 모자라서 그런거 맞지?”


“아닌데? 그냥 얻어 먹을려고 하는거야”


……차라리 장난으로 얼버무리지 그랬냐. 


“헤헤. 사주라 사줘!”


“그래 나가자…... 옷 두껍게 입어라. 밖에 눈 온다.”


“엥 진짜? 첫 눈 아냐? 올해?”


“그러게.”


문을 열고 본 바깥은 그리 춥진 않았다. 다만 이제 곧 추워질 것이라고 예고 하듯 새하얗게, 그치만 얕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뿌옇고 짙게. 흩날리듯 진하게. 하늘은 이미 항복한지 오래라며 보란듯이 우리 앞을 하얀 벽으로 뒤덮고 있었다.


조그맣게 열심히 저항하는 우산 하나. 그 아래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에 깊게 발자국이 남겨지며. 


“뭐 먹을래. “


“눈 오면 항상 먹던거.”


“우동?”


“그렇지.”


“참 우동 좋아해.”


“헤헤.”


집 앞 사거리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깔끔해 보이지만 어느정도 연식이 있어 보이는 우동집을 둘이서 간다. 


겨울이 되면 우리에겐 연례행사이다. 눈이 오던 아니던, 겨울이네 싶을땐 서로 말을 길게 주고 받을 필요 없이 우동집을 간다. 


이것도 6년째인가. 언제나 똑 같은 자리. 안쪽 구석에 4인 테이블. 내가 바깥쪽 의자, 너는 안쪽 소파. 폭신한게 편하다면서 먼저 자리를 선점한다.


“단무지랑 김치 가지러간다.”


“야 그 김치…”


“많이 가져오지 말라고? 딱 하나 마지막 한입 때 먹을거니까?”


“오 역시.”


“당연하지.”


김이 모락모락. 단촐해 보이는 평범한 우동. 하지만 어묵 하나는 큼직한 우동이다. 이 집은 참 맛도 안 변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단골생활 6년동안 우리가 여기 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눈싸움하다 추워서 배고플 때도. 그냥 만났는데 메뉴가 생각이 안날 때도. 별거 아닌 일로 삐진 기분 풀어줄 때, 


몇 달 전 수능 끝날 때도 우린 여기로 왔다.


“내일 가는거지?”


“응. 아마 눈 와서 일찍은 못 갈거야. 그치면 가야지.”


“더 도와줄거 없어?”


“없어 없어. 걱정하지마.”


후루룩. 후루루룩. 면발이 입으로 휘몰아친다. 서로 콧등이 빨개져선 우선 온기를 돌려보잔 마음으로, 서로보단 우동에 집중한다. 


후루룩. 후루루룩. 면발이 입으로 사라져간다. 슬슬 입에 건더기가 씹힌다. 그릇에는 면보다 어묵이 더 보인다. 


국물이 식기도 전에 면발을 떠나보내고. 드디어 국물 한모금. 희미하게 공명하듯, 크하- 하며 짧은 외침. 


서로가 드디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고생했다.”


“고마워.”


“미안해.”


“뭐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이렇게 됬잖아.”


“아냐. 그게 뭐 맘대로 되는건가.”


“너 말대로 나 머리가 나쁜가봐.”


“…솔직히 그런거 같긴 해”


까득, 단무지가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내버렸다. 나도 모르게 너무 강하게 물어버렸다.


“그래도 나도 나름대로 공부했어.”


“맞아. 지방 국립도 진짜 잘한거지.”


거기가 내 한계였지만.


국물을 더 들이켰다. 접시가 내 얼굴을 덮을 정도로 벌컥벌컥. 어묵이 거침없이 입술을 강타할 때 까지. 


더 따듯해지고 싶었는지 필요 이상의 열량을 담고 겨우 그릇을 내릴땐 웃는 너의 얼굴이 보였다.


“밥먹고 뭐할래?”


“글쎄? 아직 생각이 안나네~ 나 근데 오늘 술은 안마시고 싶다.”


“저번에 새해 지나고 술먹을 때 너 굉장하긴 했지.”


“야 그때 얘기 하지마라”


“아니 어떻게 한병도 아니고 반병 마시고 토하러 가는게 어딨어. 안주보다 니 토를 더 많이 봤다.”


“아 씨 말하지 말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 미안해 젓가락 내려놔 미안해”


“우씨 진짜…… 짜증나게 하지마라”


“네 네 얼른 마저 국물이나 드세요, 나가게.”


“추운데 더 있어도 되지 않아?”


“아니 그냥… 첫 눈이니까. 좀 보는 것도 좋을거 같아서.”


“니가 그렇게 로맨틱한 부분도 있었나?”


“추우면 더 있어도 돼.”


“아니야. 얼른 먹을께.”


말이 끝나게 무섭게 그릇이 그녀의 얼굴을 삼켰다. 꿀꺽 꿀꺽. 국물이 넘처 흘러서 목을 타고 전신에게 찾아왔다며 노크를 한다. 


그렇게 모든 문이 열려서 손님을 확인하려고 할 때쯤, 그녀의 그릇에는 무엇하나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급하게 먹냐. 체하면 어떡하려고.”


“완전 멀쩡. 나가자!”


또 오라는 사장님의 단골 멘트에 네 감사합니다 라며 응답해드렸다.


관심도 없는 티비 시사뉴스 나레이션이 자동문이 닫히면서 같이 페이드 아웃된다. 그리곤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눈이 내린다. 계속 내린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내린다.


우산 아래 남녀 둘의 간격은 손가락 마디 하나. 아니 손톱 하나정도. 


뽀작뽀작 소리를 내며 아무도 걷지 않게 하듯 빈자리를 채우는 눈 위에 하나 둘 하나 둘 발자취를 남기며 말없이 걷는다. 


침묵을 먼저 깨준건 그녀였다.


“이렇게 걷는 건 또 오랜만이네. 이것도 괜찮다! ……좀 춥긴 하지만. 헤헤.”


“그러게. 추운데 걷자 해서 미안하다.”


“아냐 우동 먹어서 괜찮아.”


하나 둘 하나 둘.


“좀 붙어. 눈 맞겠다.”


“누구 씨가 작은거 들고와서 이미 다 맞고 있거든요?”


“그니까 좀 붙으라고. 눈 맞는 거 싫어하잖아.”


“아 좀 옆으로 가봐 그러면.”


하나 둘. 둘 하나.


“야 비켰으니까 들어와.”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닿았다.


좁다. 넓은데 좁다. 불안정하지만 확실히 몸은 우산 안에 있다.


왼쪽 어깨에 녹아가는 자극들은 지금은 무시하자. 우린 지금 우산 안에 있다. 


하나 둘. 둘 하나. 하나 둘. 둘 둘. 발을 맞춰야 한다. 


그래. 발을 맞춰야 안정된다. 하나, 둘 , 셋. 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찰나였다.


“……이제 좀 편해?”


“……응.”


발자국이 일정 해졌다. 차 하나 다니지 않는 눈 만 내리는 보도. 하나라도 들려야 하는데. 


공원에서 눈이 온다고 노는 아이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제설하는 어딘진 모르는 집주인의 삽 소리. 제발 하나라도 들려야 하는데. 


좀 있으면 굉장히 큰 북소리가 내 몸 어딘가에서 콩닥 콩닥 울릴텐데. 들키기 싫은데. 들키고 싶은데, 오늘은 안되는데.


“……야.”


“…왜?”


“그렇게 아쉽냐?”


“뭐가.”


“나 가는거. 그렇게 아쉽냐고.”


“……응”


찰랑. 귀가 보였다. 역시 춥겠지. 귓등이 빨갛다. 잠시 텀을 두고 반응을 살피더니 이내 그녀는 다시 앞을 본다.


 머리가 올라온다. 아마 허리를 다시 핀 거겠지.


“나. 진짜 쌓아두잖아.”


“그렇지.”


“이것저것. 필요하든 안 필요하든. 그게 얼마나 중요한건지도 모르고.”


“그렇지.”


“가끔 가면 그땐 진짜 중요해서 보관해놓고 나중에 꺼내야지 하는데, 맨날 까먹어. 그게 어딨는지.”


“그래서 내가 항상 찾아주잖아.”


“그게 몇 개이든, 너가 항상 다 찾아줬잖아.”


“……응”


“너가 오늘, 나 이사간다고 전부 다 헤집고 다 찾아줘서. 이제 더 이상 찾을게 없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였나. 온몸이 뜨겁지만 눈이 오고 밖은 추우니 머리는 차갑다. 온기는 냉정으로 둔갑하고 뇌를 속인다.

 

그래서 그런가? 뇌가 굳어버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제 다 정리 한거잖아.”


“……아직 하나 남았어. 응. 조금 남았어.”


“어떤건데?”


“……니가 찾아줘. 난 어디있는지 몰라.”


“너도 모르면 내가 어떻게 찾아줘.”


“신기하네. 너가 못 찾아주는 것도 있고.”


“언제적 건데 어디 있는지를 몰라?”


“몰라. 너무 옛날에 보관했어. 한 6년전에. 


매년마다 너무 중요해서 항상 꺼내봤는데, 이번년도는 바빠서 꺼내 보지 않았더니, 나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집에 있는거지? 가보자 오늘 찾아야지.”


“안가도 돼.”


발자국이 끊겼다. 정확히는 내 앞에 있는 길잡이 그녀가 발을 멈췄다. 똑바로 정면을 보고 있다. 


“……집에서 찾으면, 또 꺼내 봐야 하잖아. 내년에도. 혼자서.”


긴 생머리에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뒷머리에 눈을 두었다.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초점이 흔들린다. 


눈이 내린다. 내 앞에 내린다. 뿌옇고 짙게. 흔들리듯 진하게. 내가 앞을 똑바로 바라보곤 있는 건가? 


잔뜩 긴장한 입안은 안쪽살을 어금니까지 선 따라 줄이 그어지듯 자국이 남고 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오랜 친구. 오랜 감정. 


아. 이 기분도 적당히 적응했을텐데. 어제와 다르다. 어저께와 다르다. 1년전과 다르다. 3년전과 다르다. 이 정도면 그때 보다. 아니 그때 만큼. 너를 처음 본 그때 만큼.


“……야.”


“………응.”


“그럼 너도 찾아줘. 내꺼.”


“어떤거?”


“나도 중요한게 있었는데. 난 일부러 안 찾아봤어. 그냥 간직하고 있다는거 만으로도 좋아서. 그 정도로 중요했어. “


“그래?”


“응. 그게 아무리 좋아도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적도 있었어. 


너무 바쁘고 힘든게 끝나고, 겨우 다시 그걸 찾아서 오랜만에 눈으로 봤어. 처음 봤을때랑 다르더라. 변했고, 모습도 다르게 생겼었어. 


조금 바래진 느낌도 있었던거 같아. 내가 계속 가지고만 있었으니까. 나도 그것도 시간에 적응 한거지. 더 이상 그 때 그 소중한 모습은 아니었어. ”


“……근데?”


“그런데, 상관 없더라. 아직도 소중해. 계속 간직하고 싶어. 지금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너가 6년전이라고 했잖아. 바보야.”


찰랑. 이제 얼굴이 다 보인다. 눈썹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바라보는 눈동자. 조금 흔들린다. 아니 많이 흔들리나? 


살짝 벌어진 입. 빨갛지만 살짝 불어튼 입술. 당황한게 다 보이네. 어찌 됬든 상관없다. 마지막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되니까.


더 이상 끝나지 않는, 이 북소리를 듣는 관객이긴 싫으니까. 이젠 추억으로 남겨야지.


“너가 소중하게 생각하는거, 아마 나랑 같은거 같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목 언저리에 검은 별 두개가 공전한다. 점점 내려간다. 그럼에도 빛난다. 


그녀는 힘겹게 말을 꺼낸다.


“……너가 먼저 찾아줘. 너 아니면 나 못찾아.”


“그럼 너가 먼저 찾아줘. 나도 너 아니면 못찾아.”


“난 내일이면 못 찾는다니까? 지금 찾아줘.”


“……같이 찾자. 어때? 나는 네꺼. 너는 내꺼.”


침묵. 


이윽고.


“……시간 좀 걸릴거야. 기다릴 수 있어?”


“얼마나 걸린다고. 난 진작 찾아서 네 앞에 가져다 줄께. 항상 그랬잖아.”


침묵. 눈이 내린다. 드디어, 나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그건 그녀도 같았다. 약간의 침묵. 


코먹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짧은 외마디 호흡의 이중창. 그녀가 다시 허리를 폈다. 나의 두 검은 별은 오늘 여우비가 내린다. 


조심스레 눈가를 닦아주었다.


“약속할께. 내가 꼭 찾을께. 다시 돌아와서 네 앞에 보여줄께.”


“에이. 내가 널 아는데.”


“아니야 진짜로. 자 약속. 새끼손가락. 들어 빨리.”


“그래. 약속.”


새끼를 걸었다. 의외로 따듯했다. 꽁꽁 얼까봐 주머니 안에서 숨겨두던 따뜻함을 나눴다. 미미하지만 그 어느때 보다 따뜻했다. 


아쉬웠다. 너의 온기는 새끼에만 있는게 아닐텐데. 벌써부터 찾고 싶었다. 그녀가 새끼를 풀었다. 나도 새끼를 내렸다.


그 순간 내 손을 그녀가 낚아챘다. 찰나였다.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어이쿠, 우산을 급하게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뜨거운 달이 나에게 굉장한 빛을 내뿜으며 왼쪽 귀를 향해 떨어졌다.

 

뜨겁다. 뜨거워서 데일것만 같은 붉은 달. 빨갛게 상기된 볼. 입김 때문에 자욱한 내 두 눈앞. 어여쁜 달이 내게 속삭인다.


“꼭 찾아줘.”


부릉 부릉. 눈은 아직도 그칠 줄을 모른다. 다음 날 그녀는 뜨거운 입김을 내며 모든 짐을 보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 옆에 있었다. 


날은 추웠다. 그렇다고 땀이 안난건 아니었다. 무겁더라. 진짜.


“빠진거 없지?”


“당연하지.”


올라가는 터미널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터미널의 바랜 초록색 벽도 새하얗게 보인다. 눈은 다행히도 오지 않았다.

 

온세상이 하얀데 하늘만 파랗다. 그럼에도 추운건 어쩔 수 없어서, 우린 손을 잡았다.


“진짜 마지막이네.”


“……보고 싶을꺼야.”


“언제는 나보고 자기 없으면 안될거 같냐고 했으면서.”


“……그때는 그때였고.”


“네 네. 진짜 빠진거 없지?”


“없어 없어.”


“…..꼭 찾아야 한다.”


“당연하지. 꼭 찾아줄께. 너도 꼭 찾아야돼.”


“난 당연히 다 찾았지.”


“……야”


“버스 시간 되겠다. 늦기 전에 타.”


“……추워.”


춥다. 분명 하늘은 파랄 터인데 춥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땐 얼굴 어딘가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눈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직 준비도 안된듯 땅바닥에 무너져내려 쌓이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려고, 내 볼에. 내 손에. 가슴에, 등에, 어깨에. 그리고 그녀에게 내리고 있었다. 아아. 너도 마지막이구나.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뿌옇고 짙게. 흩날리듯 진하게.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린 이제 더 이상 헤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주머니 안에 있던 손을 펼쳐 그녀를 안았다. 꼬옥. 어디 하나 세게 하지 않고, 그녀의 두 볼에 무엇 하나 녹지 않게. 꼭 안아주었다. 


아래에서 짧은 외마디 외침이 들렸지만 넘어가도 좋다. 곧 동동 거리던 두 발을 진정시키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으니까. 


참을 수 없던 지난 날도, 눈 녹듯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전부 다 녹아 없어져버릴 때 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 그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이젠 없으면 안되는 것.


난 이미 찾았다. 언제나 그녀에게 내가 그랬듯. 난 그녀에게 소중한 걸 가져다 줬다.


이제, 난 무엇보다 소중한걸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주고 떠나 보내야겠다. 그녀가 기댄 가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댔다.


침묵. 코먹는 소리가 침묵을 깨줬다. 짧은 외마디 호흡의 이중창. 그녀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아. 난 정말 이렇게 중요한걸 이제서야 말한걸까.


머리가 알아채기 전에 빨리 해버려야지. 그녀가 알아채기 전에 빨리 해버려야지.


장난기 가득한 옅은 웃음을 하곤, 난 그녀에 입술에 내 입술을 약하게 포개었다.


시간은 멈추고, 눈 또한 멈춘거 같은 그때. 그녀에게 내가 찾은 걸 제 자리에 돌려주었다.


"사랑해."


눈이 내린다. 다시 내린다. 다만 이제 더 추워질 것이라고 예고 하듯 새하얗게, 그치만 얕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뿌옇고 짙게. 흩날리듯 진하게. 하늘은 이미 항복한지 오래라며 보란듯이 우리 사이를 하얀 벽으로 뒤덮고 있었다. 아마 조금은 더 쓸쓸하겠지.


조금 더 손이 시릴꺼야. 그치만 기다려야지. 약속했으니까. 웃으면서 그녀의 뒤를 보았다.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잘 가 라는 말은 하지않았다.


그대로 씹어 삼켰다. 하마터면 눈가에 눈이 녹을 뻔했다.





처음 작성해서 올려봅니다. 조금 길 수도 있지만 재밌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