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고 간 계약서의 내용은 3가지였다.


1. 거짓말 하지 않기


2. 서로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간섭하지 않기


3. 계약으로 체결한 사랑을 정확하게 정의하기


과연 악마는 이 3가지 상세계약을 수긍할까?


악마는 내가 들고 간 계약서를 유심히 보고서손가락으로 종이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3번이 가장 문제네사랑을 정확히 정의하기라나도 사랑이 궁금해서 계약을 한 건데 말이지.”


나는 어이가 없는 상태로 입을 열었다.


그럼정확히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계약을 체결한 건가요?”


악마는 내 말이 안 들린다는 듯이 귀를 막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파고들 줄은 몰랐지.”


“…그게 할 말인가요?”


악마는 불만이 많은 듯투덜거리며 답했다.


보통 인간들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이렇게까지 자세하게 파고들지 않아오히려 좋아하기 바쁘지.”


나는 이 악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던 중악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너도 사랑 받는 것이 사치인 삶을 살아왔다며너한테 사랑은 뭔데?”


사랑사랑이 뭐냐고?


그야당연히…


너도 아무 말 못하잖아그러면서 무슨 나한테 그런 말을 해.”


하지만 그렇다고 3번 항목을 지울 수는 없다.


3번 항목에 의해서 계약 내용이 결정나는 것이니까.


내가 어떻게 3번 항목을 채워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악마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인간들은 항상 급하단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하지만 이 계약마저 잘못된 순간이 되면….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봤는지악마는 한숨을 내쉬며 물어봤다.


대체 어떤 점이 걱정이길래그렇게 표정이 썩어들어가는거야.”


내가 병주고 약주는 거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악마도 찔렸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평생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건 됐고요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아본 적이 없어요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이 아니잖아요.”


악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하다가픽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너는 네가 추구하는 사랑과내가 추구하는 사랑이 달라서 버려질까 봐 두려운 거야?”


맞다이제는 악마에게 까지 버려질까 봐 두려웠다.


내 폐부를 찌르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악마는 의자에 일어난 뒤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밥 먹을 시간 다 지났을 거 아냐?”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상태로 먼저 방 밖으로 나간 악마를 따라 나섰다.


방밖에는 들어오기 전과 같은 복도가 아닌 부엌이 있었고부엌 한쪽에는 식탁과 의자가 있었다.


나는 식사를 위해 부엌으로 걸어가자악마가 내 몸을 가로막고서는 얘기했다.


오늘 식사는 내가 만들게내일 식사는 네가 만드는 걸로.”


나는 살짝 궁금해서 한 가지 물어봤다.


원래 악마들도 음식을 먹나요?”


악마는 코웃음을 치며 다른 악마들을 비웃었다.


아니다른 악마들은 맛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몰라바보 같지?”


부엌에는 평범한 인간들의 집처럼 냉장고도 있었고전자레인지가스레인지프라이팬과 같이 요리 도구들도 잔뜩 있었다.


그렇게 악마의 집안을 구경하고 있을 때악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와서 밥 먹어다 됐다.”


집에서 흔하게 만들어 먹던 볶음밥이 눈앞에 있었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볶음밥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배어 문 순간납득했다.


이 악마요리 진짜 못한다고.


악마는 맛이 어떠냐는 듯한 눈빛을 담아 나를 쳐다봤고나는 그 눈을 피하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뭐야뭔 의미야?”


그냥 다음부터는 제가 식사 당번 할게요.”


나는 악마가 뭐라 할지 몰라 조심스럽게 쳐다보자예상 외로 악마는 아무런 짓도 안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짝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먼저 악마가 이야기를 꺼냈다.


나랑 같이 식사를 한 사람들은 다들 내 비위를 맞춰주려고 맛없다고 한 사람은 없었지.”


이런 상황에서 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과거를 왜 꺼내냐고간단해.”


말을 잠깐 멈춘 악마는 나를 꿰뚫어보듯 빤히 쳐다보다가 이어 말했다.


보통악마를 찾아오는 이들은 다 소원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야너 또한 소원을 이루고 싶어하지.”


하지만 너는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금 달라소원을 이루지 못해도 그만소원을 이루면 좋다…랄까?”


나는 악마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몰라 반론했다.


제가 원하는 소원이 아니라서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에요.”


악마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아무튼 결론은 너의 모순적인 행동에 흥미가 갔으니 너를 버리지는 않을 거야.”


그게 결론이면이제 다 말한 건가요?”


내 대답에 악동같이 씩 웃으며 악마는 말했다.


아니계약의 세부내용을 정해야지.”












어제 분명히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왜 안올려진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밤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