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날.

모두가 하교를 하기 시작한 때.

한 소녀가 우산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는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는거야?"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같은 반의 한 남자아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남자애가 말했다.


"혹시, 저 애가 신경 쓰이는거야?"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여자애를 보고 있던 걸 깨달았으니까.

왜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있었을까?


"아, 아니거든."


그저 짜증을 부렸다.

설마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없을테니까.

남자애는 그럴 수록 내게 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거나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등.

하지만 나는 계속 반응하지 않고 꾹 참았다.


"왜 그러는데?"


이제는 답답했는지 남자애가 물었다.

나는 그저 아무말 없이 입만 껌뻑거릴 뿐이다.


"뭐라는거야."


알아듣게 얘기를 하라며 내게 강요를 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모르겠고, 너 일루 와봐."


남자아이는 내 손목을 획 낚아챘다.

그러더니 곧장 그 소녀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얘, 아까부터 너 보고 있었어."


강제로 들춰버린 나의 비밀.

남자애는 거리낌 없이 밝히고 말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정말이지.

너무 부끄러웠다.


"왜요?"


소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몰라. 니가 말해."


남자애는 용건이 끝났다는 듯 나를 버리고 갔다.

당황스러운 건, 나도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뭔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게...."


떠먹여준 수저.

그래도 꿀떡 삼켜 넘기긴 해야 하지 않을까.

결심을 한 나는 한손에 쥔 우산을 내밀었다.


"가, 같이 써요."


모기도 한수 접을 듯한 목소리였다.

그만큼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

그녀가 들었을리가 만무했다.

그저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그, 그래요."


진, 진짜인가?

나도 모르게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았다.

소녀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왠지 뜨거워진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그냥 우산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는지.

게다가.


"저, 붙어도 되죠?"


그녀는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저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에 달라붙는 거 뿐인데.

달콤한 향기, 부드러운 촉각이 나에게 느껴진다.


"그 불편하지 않아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혹시 자신이 너무 달라붙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아, 아니에요."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내 몸에 달라붙는 거.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휴, 다행이다."


그건 내가 할말이었다.

혹시나 땀냄새 같은게 그녀의 코로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