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는 계약의 세부사항들이 적혀있었다.

 

1. 악마 ‘릴’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키스해줄 것.

 

첫 번째 항목을 본 순간부터 할 말이 많았지만 참고 다음 항목들을 바라보았다.

 

2. 악마 ‘릴’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애정표현을 해줄 것.

 

3. 위 2가지 사항을 어길 시 계약은 해지됨.

 

위의 3가지 항목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쉰 뒤 탄식했다.

 

“이거는 완전히 절 인형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요?”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줬으면,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지, 안 그래?”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악마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할 때마다 키스와 애정표현이라니!

 

악마는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웃음을 지으며 제안했다.

 

“그럼 키스 말고 포옹으로 바꿔주는 대신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는데….”

 

악마가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100% 좋은 거래는 아닐 테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뭔데요?”

 

“하루에 1시간씩은 나랑 같이 얘기를 해줘.”

 

1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생각보다 나쁜 조건은 아니다.

 

“좋아요, 그럼 키스 대신 포옹으로 바꿔줘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악마는 바로 계약서를 키스에서 포옹으로 수정하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얘기 좀 해줘.”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때, 악마가 도움을 주었다.

 

“딱히 얘기할 게 없으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을 얘기하던가.”

 

그 말에 나는 대충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떠났으며, 아버지는 그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았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들 외에는 할 이야기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야기가 대충 끝나던 순간에 갑자기 악마가 나를 안아주며 가르쳐주었다.

 

“이럴 때는 너도 상대방을 안아주는 거야.”

 

악마의 품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나 또한 악마를 어색하게 안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위로해준다고 하더라고.”

 

나는 악마의 말을 듣고 감동이 깨져버려 포옹을 풀었다.

 

“그 말만 하지 않았으면 참 좋았겠네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악마는 내 말을 듣고서는 고개를 내저으며 설명했다.

 

“아니지, 우리는 계약상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잖아, 그럼 사랑하는 사이지.”

 

나는 계약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사랑하는 사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였지만, 멈췄다.

 

그래도 위로는 해주었으니까, 인간 말고 악마에게 위로받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그쪽 이름이 릴이에요?”

 

악마는 내가 말을 돌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볼을 부풀리고서는 대답은 안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악마를 안아주며 말했다.

 

“지금 큰맘 먹고서 안아준 건데, 그냥 대답해주시면 안 돼요?”

 

내 말에 마치 자기가 선심이라도 써주는 듯이 말했다.

 

“그래,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그냥 안 넘어갈 거야, 알아둬.”

 

그래, 그나마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뭔 짓을 못하겠냐, 나는 대충 대답하고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앞으로 릴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계속 악마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그렇잖아요.”

 

악마는 내 말에 잠시 행동을 멈추더니,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특별한 말이라도 했던가 싶어서, 내 행동들을 다시 되새겨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니, 릴이라는 이름 말고, 네가 내 새로운 이름을 지어줘.”

 

제멋대로인 악마의 말에 나는 또다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쪽이 먼저 부탁한 것이니까, 나중에 제가 원하는 것도 한 가지 들어줘야 해요.”

 

악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악마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하지만 나는 악마에게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악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전혀 이성으로 보지 않고 있으니까.

 

그럼 내가 해야할 것은 악마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악마는 이 정도 사실은 알고서 나와 계약을 하였을 텐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냥 단순히 잘 대해주면 사랑해 줄 것이라는 만화나 소설 같은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머릿속을 식히기 위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 나는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