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cm면 좀 짧지 않냐?"


  옆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말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 이전에, 주제부터 문제였다. 그녀가 '15cm' 과 '작다' 를 입에 올린 이 장소는 학교였다. 그런 주제를 큰 소리로 떠들어도 될 곳이 아니다. 상식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상식이다. 나는 주변을 슬쩍 훑어봤다. 몇몇 학우들은 움직이던 손을 멈칫, 하고 고개를 기웃, 했다. 그들은 아마도 나와 같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은유적으로 상스러운 그 문장에 놀란 것이고, 뒤이을 문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질문이고 대화의 시작이었다. 따르는 말들은 아마 비슷한 주제를 다룰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함부로 저런 말을 해대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잘 들어가고 말고 문제가 아니라. 부족하잖아. 어차피 가끔 쓰는데"


  문제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보았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는다. 너무나 대놓고인 말에도 학우들은 그저 흘끗흘끗 한 번씩 눈길을 주고 만다. 현명한 일이다.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맞다. 그냥 그런 애인가 보다 하고 무시하는 게 맞다. 굳이 집중해서 들을 필요는 없다. 어쨌든 본인과는 관련 없는 말일 뿐이다. 솔직히 학교에서의 음담패설이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다. 남자애들, 특히 조금 과한 애들은, 그녀처럼 모두에게 들리게 그런 말들을 뱉어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떨어져서,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그리고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녀의 말도, 나에게도 그렇게 깊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한마디를 마치고, 그녀의 눈동자가 슬쩍, 나를 비췄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눈가에 우스움이 가득 담긴 웃음이 맴돌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저 눈동자 때문에 도저히 태연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와 오래 알고 지내왔다. 어쩌면 알고 지내왔다는 말이 풍기는 분위기보다 조금 더 깊은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 볼 수도 있다. 면식을 가진 기간과, 가끔 유지되던 거리감은 소꿉친구라는 단어가 가진 그것과 같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있었다. 기본적인 성향부터 많이 차이났다. 그것은 첫 만남 때부터 느낀 것이었다. 유치원 놀이터라는 것 말고는, 그때의 주변 풍경이나, 내가 하고 있던 행동, 심지어 그녀 얼굴의 다른 부분까지도 떠올릴 수 없는 그 오래 전 기억에서도, 그녀의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나를 상대로. 아마도,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추정해보았을 때. 나는 혼자 놀고 있었다.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부류라는 걸 나는 그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보통의 어른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의 나를 포함해 내 또래들에게도 그렇지만, 자식을 가진 어른들에게, 소꿉친구는 얼마나 로망있는 울림인가? 자식에게 그 로망을 누리게 해주고 싶지 않은 어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잠깐의 놀이 이후에, 이어진 만남 대부분 나의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어쩌면 그녀의 첫 다가옴도 조금 면식이 있던 어머니들이 의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녀는 우연히 나와 같은 블럭식 단독주택단지에 살았고 그 주소는 우연히도 내 옆집의 옆집이었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자주 우리집에 놀러왔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너네 집으로 갔다. 그녀와 나의 어머니는 우리를 2층으로 올려보내고 티타임을 가졌다. 1시간 내외로 끝날 때도 있었지만 이야기는 때때로 꽤 길어졌다. 대체로 그녀의 아버지의 통제불능성이나 우리 아버지의 답답함이 그 전날 유독 기승을 부렸을 때 그랬다. 아래 층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금방 잦아들 기미를 보일 때는, 우리는 따로 놀았다. 멈추지 않을 때는, 그때는 네가 놀이를 주도했던 걸로 기억한다. 카프라, 도미노, 젠가, 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석 놀이. 여러 보드게임. 유년기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름들이다. 함께 쌓고, 무너뜨리고, 정리하는 시간들. 그 시간이 나는 다시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외출할 때 엄마의 손을 잡지 않아도 될 나이. 초등학교 저학년 언젠가부터 그녀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언젠가의 시기에 같은 반이 되고,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망상하는 소꿉친구가 가지는 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친구를 거의 그녀밖에 사귀지 못했지만 그녀는 주변에 늘 많은 친구가 있었고 나는 그중에 하나. 그마저도 솔직히 혼자 있을 때가 더 많았던 거 같다. 생각해보면 다 나의 잘못이다. 옛날 그 놀이터에서처럼, 우리집의 2층에서처럼, 그녀는 항상 먼저 말을 걸어줬지만 나는 늘 대답을 흐렸다. 왜 그랬던가? 무엇이 그녀 앞에서 나를 망설이게 했던가? 그녀의 말에 내 이름이 포함되고 그것이 나를 향할 때, 내 입을 막고 있던 것. 내 허파를 조이던 것은 무엇이던가? 내가 쉽게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그녀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등을 돌릴 때에도 늘,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놀라울 만큼 기억에 남은 것 없이, 오직 망설임만 품은 채로 몇 년이 흘러, 우리는 조금 먼 중학교에 입학했다.


  버스를 타고 반 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 곳으로 배정되고, 그곳이 그녀와 같은 학교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로부터 그녀와 함께 등교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기뻤다. 그녀가 나에게 보이던 것은 분명한 호의였다. 그러면서 나는 나아감은 없지만 흔들림도 없는 그녀와의 교우관계에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꼈고, 그녀의 명랑함에 내심 동경심도 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 중학교에 가는 날 어머니와 함께하는 등교길에서도 나는 그녀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 설렘과 흥분에 떠밀려 뱉어내던 정돈되지 않은 말들을 기억한다. 


일 년 하고 반년이 지나고. 그녀가 떠날 때의 표정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함께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많이 가까워졌었다. 늘 대답은 서툴렀지만 대화 자체가 많았기에 그랬던 거 같다. 등하굣길은 즐거웠다. 같은 반이 된 것도 기뻤다. 그것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란 것도 어렴풋이 눈치 챘었다. 학기 하나가 지나고, 나는 그녀를 더 따라다녔다. 그때는, 그녀의 무리에 섞여 함께 다니지는 못해도 그녀가 친구들 속에서 가끔 나를 돌아보는 게 좋았다. 그녀 친구들에게 받는 여러 오해가 괜히 좋았다. 학원이 끝나고 해가 다 져서 돌아가던 그 하굣길이 좋았다. 그제서야 내가 왜 그녀 앞에서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무척 늦었지만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 시작한 사춘기가 불러일으킨 열정에 나도 타올라서, 중학교 2학년 여름에 그녀에게 고백했다. 뻔한 마지막 일정인 캠프파이어에서, 뻔한 말들을 하는 와중에, 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차라리 뻔한 말을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어설프게 마음을 전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녀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녀와 나는 15c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분위기 상,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지 않아서, 처음의 반응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불길이 높이 솟고 불똥은 기류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았다. 잠깐의 정적이 숨이 막혀 나는 불에서 불똥으로, 불똥에서 별로, 별에서 달으로, 달에서 숲으로, 숲에서 그녀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표정은 묘했다. 그녀의 얼굴에 놀람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다. 슬픔이 있었고 미안함이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늘 그래왔듯, 높은 텐션으로 장난스럽게 말하다가, 정작 중요한 대답은 미뤘고, 약간 묘한 반응이긴 했지만,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았고, 내가 봤을 때는, 확실히 긍정적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너는 왜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던가? 왜 그때부터 같이 등교하지 않았는가? 너는 왜 말도 없이 전학을 갔는가? 왜, 항상 말을 걸고 내 대답을 기다렸음에도, 내 물음은 그렇게 무시했는가?


  물어볼 기회는 나중에 찾아왔다. 그 나중이 찾아올 때 까지는 안 좋은 일이 많았다. 학교에선 이상하게 친구들이 다가오지 않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크게 싸웠다. 그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 힘든 시기었다. 2층의 내 방에서 들리던 그 목소리들, 층계를 뚫고 나를 찌르던 그 소리들. 귀를 막고 잠들던 날들. 깨지고 부숴지던 가구. 이상하게도 나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나의 실연을 떠올렸다. 정신이 집안의 불행에 팔려 그녀가 말없이 가버린 것을 잊고 있다가. 그렇게 떠올리게 되면 나는 배로 화났다. 화였다. 슬프기도 했지만, 그만큼 억울하기도 했고,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그녀에게도, 화가 많이 났었다.


  나는 부모님의 다툼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그 둘은 극적으로 화해해서, -그것이 진짜 화해인지는 모르겠다. 화해 이후의 집안은 늘 고요했다.- 나는 그때의 이유를, 그녀에게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서울의 기숙사 학교에 가고자 한 것은, 여러가지로 화가 나서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어이없게 기숙사 시험에 탈락해도 아득바득 우겨서 그곳에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안된다고 하자 나는 집을 나갔다. 하루가 안되는 가출에 나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대체로 가본 적 있는 곳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녀랑 있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더욱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찌검을 당하면서까지 서울에서 자취하며 학교 다니는 걸 허락 받았을 때, 어머니의 표정은 무척 묘했다. 슬퍼 보이면서도, 이해가 된다는 것처럼 보이고, 미세하게 기뻐보였다.


그리고 며칠 전, 2학년의 첫 등교때, 교실에 그녀가 있었다.


알람보다 훨씬 늦은 기상. 홀로 하는 등교준비는 확실히 힘들었다. 학교에 들어와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둘러볼 새도 없이 교실로 뛰어들어갔는데, 그녀가 있었다. 하나 남은 빈자리의 옆옆자리에, 내 옆옆집에 살던 그녀가 있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처음 내게 말을 걸 때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뒷문으로 들어온 나를 그녀는 보지 못했다. 뒷모습은 익숙했다. 나는 멍청하게 서있었다. 선생님께 주의를 듣고, 걸어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녀가 나를 돌아보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때의 얼굴이 어땠을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개학식 일정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너도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가끔 나를 흘겨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날은 금방 끝났다. 머리가 복잡해서 곧바로 집에 가려고 했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교문 앞까지 가서야 그녀를 만났다. 지나쳐가는 나를 그녀가 잡았다. 나는 곧바로 돌아봤다. 그녀의 표정이 묘했다. 놀람, 당황, 두려움? 미안함? 기쁨? 반가움?  아마 내 표정도 비슷했을까? 좁혀진 미간이 떨린다. 눈동자도 같이 떨린다. 달싹이는 입술이 떨린다. 나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깨에 얹어진 그녀의 손에서도 쿵쾅거림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저 손이 떨리는 것일 수도 있다.


-너...


쿵쾅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 바로 달렸다. 나의 새로운 집으로 달렸다. 뒤따라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모퉁이를 지날 때 뒤에서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숨이 차올랐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다. 현관을 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나도 한 번 넘어진다. 정강이를 세게 박았다. 발걸음이 가까워온다. 왜 도망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현관 바로 앞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단을 올랐다. 도어락 비밀번호의 마지막 자리를 치면서 층계참에 도달한 그녀의 발걸음을 들었다. 현관문을 닫자 마자 그녀가 문을 두들겼다.


-야!


나는 외시경으로 그녀를 보았다. 현관이 덜컹거려서 눈두덩이가 아팠다. 15cm를 두 번 한 정도 거리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이마가 까져 피가 약간 흘렀다. 넘어질 때 생긴 상처였을까. 그녀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야!


그녀가 거세게 문을 두들긴다. 나는 놀라서 뒤로 자빠진다. 정강이가 쑤신다. 그녀는 한참을 더 두들겨대다가 멈춘다. 정적이 흐른다. 정강이가 쑤신다. 그녀의 이마도 이렇게 아플까 싶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마구 샘솟는다. 화가 나면서도, 못 본 사이에 조금 어른에 가까워진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왜 도망쳤을까? 그녀는 갔을까? 나는 일어났다. 일어나서 문을 살짝 열었다.


문이 확 젖혀지고, 그녀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가 내 멱살을 잡고, 내가 뒤로 넘어질 듯 뒷걸음질치고, 그녀는 무게를 실어 나를 밀며 전진했다. 그러다 내 다리가 무언가에 걸리고, 정강이가 욱신거렸고, 그녀의 이마에 생긴 까진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시야에는 15cm정도 떨어진 그녀의 얼굴이 가득 찼다. 이빨을 꽉 깨물고, 입을 앙다물고,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눈가는 촉촉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보이는 내 방이, 점점 기울었다. 아차. 눈을 질끈 감았을 때. 상반신을 받치는 푹신한 감촉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 침대란 것을 알았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을 가득 채운 그녀의 감은 눈, 속눈썹, 이마의 상처, 살짝 흐른 피, 비누 향기, 땀 냄새에, 내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것이, 그녀의 입술이란 것을 알았다.


그 이후의 일은 아무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녀를 안고 울었다. 울으며 물었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어째서 그렇게 떠났는지, 왜 연락을 받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지금은 이렇게 찾아왔는지. 그녀도 울으며 답했다.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의 외도를 알았다. 상대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때, 수련회 끝나고, 집에 갔는데. 집이 난장판인거야.


-나도 그랬어.


-그런데 엄마가. 너네 엄마때문이라고, 엄마랑 아빠가 바람나서. 그래서.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계속 너네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상하게, 네가 미워져서. 너때문이 아니라는 거 아는데, 솔직히, 어제까지도, 미웠는데, 얼굴을 보니까, 너무 기쁘고 반갑고, 막 눈물이 나고, 그래서...


-나도 그랬어.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손은 놓지 않았다. 살짝 열어 놓은 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갑자기 우스웠다. 그녀도 웃기 시작했다. 그녀가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쳤다. 옛날의, 그 2층의 놀이방이 떠올랐다. 카프라와 젠가, 그리고 또 뭐였던가, 하여튼 뭔가 많았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던 거 같다. 그녀와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웃었다.





그녀는 별 말을 더 하지 않고 대화를 마쳤다. 나는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때 이후로 뭐가 좀 바뀐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옛날보다 더 말이 많고 장난스러워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가 힘들다. 종례가 끝나고, 학우들은 우르르 자리를 떠난다. 문을 잠그고 나오니 그녀가 서있었다. 내가 먼저 그녀가 하던 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너, 그런 말, 막 하고 그러지 마. 다른 애들도 있는데.


-응? 뭐? 무슨 말?


-그 막, 15cm, 아니,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거야?


-아. 15cm? 무슨 얘기냐니? 그거야 당연히, '자'지.


그때, 잠시 정적이 맴돌더니, 그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발하는 메스가키 소꿉친구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쓰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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