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꽃이 좋았다.

 

왜냐고? 좋아하는데 딱히 이유가 필요할까? 굳이 꼽자면 아름답다는 점인 것 같다.

 

이런 나의 취미생활 역시 원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것보다 꽃곶이를 더 좋아하면, 사람들이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 걱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나의 취미생활을 이해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다.

 

그 도움 중 한 가지는 바로 꽃꽂이 수업 참여였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오게 되었다.

 

그 여자아이는 처음에는 관심이 없는 듯 책만 읽었지만, 부모님의 등쌀에 꽃꽂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분명히 내가 몇 번을 더 들었을 강의를 나보다는 물론, 주위의 어른들보다도 완벽하게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주위의 선생님과 어른들도, 나도 손뼉을 치며 환호했지만, 여자아이는 오히려 화가 났는지 책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여자아이가 너무 멋있어서 다가가서 물어봤다.

 

“안녕? 나는 유진인데, 네 이름은 뭐야?”

 

아무말 없이 나를 무시하길래 상처를 받을 뻔했지만, 그 여자아이의 부모가 혼냈다.

 

“그러면 안 되지, 안녕이라고 해야지.”

 

그럼에도 답이 없자, 여자아이의 부모님은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너랑 동갑인 것 같은데 이름은 서수아란다.”

 

나는 굴하지 않고 나도 꽃꽂이를 잘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다시 질문했다.

 

“수아야, 꽃꽂이 하는 방법 좀 알려줄래?”

 

그럼에도 꾸준한 묵묵부답.

 

이번에는 접근 방법을 다르게 해봤다.

 

“수아야, 아까는 왜 화났다는 듯이 책만 읽었어?”

 

그제서야 유리는 나를 쳐다보고서는 말했다.

 

“예술 같은 것을 잘해서 뭐해.”

 

그 말이 끝나자 유리의 부모님은 유리를 혼내기 시작했고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집으로 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방학이 지나가고 중학교 입학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중학교 입학식 때 나는 내 반이 쓰여 있는 푯말 앞에 줄을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꽃꽂이 수업시간에 만난 수아가 서 있었다.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고서는 입학식이 빨리 끝나길 빌었다.

 

입학식 이후에는 바로 자리 배치를 진행하였는데, 정말 우연히도 수아와 짝꿍이 되었다.

 

그렇게 짝궁이 되자마자 나는 아는 척을 한번 해봤다.

 

“수아야, 안녕?”

 

수아는 정말 영혼 없이 답해줬다.

 

“응, 안녕.”

 

나는 그런 수아의 태도에 굴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꽃꽂이는 언제 배웠어?”

 

침묵

 

“꽃꽂이 정말 잘하던데. 방법좀 알려줄 수 있어?”

 

침묵

 

“난 원예가가 꿈인데 너도 꽃꽂이가 꿈이야?”

 

묵묵부답

 

나는 답답해서 그날 들었던 얘기를 한번 꺼내봤다.

 

“예술이 싫은 거야?”

 

“그래, 난 예술이 정말 싫다고!”

 

나는 수아의 큰 소리에 놀라 멈췄다.

 

수아는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듯이 나에게 외쳤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자신의 재능 때문에 원하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무슨 기분인지.”

 

나는 그런 수아에게 조용히 사과했다.

 

“미안해, 난 네가 원예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수아는 그렇게 떠나려고 할 때, 나는 미안함이 들어 수아의 손목을 잡고서 손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수아는 걸음을 멈추고 손을 펼쳐보더니, 나에게 물어봤다.

 

“이게 뭐야, 새잎 클로버잖아.”

 

“새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야,”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고.”

 

수아는 내 말을 자르고서 차갑게 말을 뱉었다.

 

나는 그런 수아가 조금 서운해 딱 한마디만 하고 말을 끝냈다.

 

“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게 끝이야.”

 

나는 그렇게 돌아서서 내 갈 길을 갔다.

 

그렇게 우리 둘은 자존심 때문에 대화도 끊기고, 서로의 시선도 못 마주치는 어색한 짝궁이 되었으며, 그렇게 또 1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학교가 끝나서 가려고 한순간 누군가 내 책상에 책 한 권을 두었다.

 

얼굴을 바라보니 내 짝궁 수아였다.

 

책 제목은 플로리스트였다.

 

“내가 꽃꽂이 수업 때 읽었던 책이야.”

 

나는 순간 당황해서 바로 고맙다는 인사가 나오지 않았었다.

 

어버버거리는 나를 보고서는 수아는 다시 내 옆자리에 앉아 말했다.

 

“미안해, 그때는 내가 너무 날카로웠어.”

 

먼저 사과하는 수아의 모습에 할 말을 더욱더 잃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단단히 오해했는지 수아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나였어도 아직 화가 안 풀렸겠지, 좋아하는 걸 잘하는 사람한테 잘 하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대답이라고는 고함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비로소 정실을 차리고 수아의 말에 반박하기 바빴다.

 

“아니, 아니, 화 안 났었어, 그리고 고마워….”

 

수아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네.”

 

나는 그런 수아를 바라보다가 주머니 안에 있는 초콜릿을 꺼내며 물어봤다.

 

“초콜릿 좋아해?”

 

나는 단순히 초콜릿을 먹고 싶냐는 질문이었지만 수아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나 보다.

 

수아의 눈이 반짝 반짝거리며 시선은 초콜릿에 고정된 채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나는 수아를 위해 초콜릿 전부를 수아에게 주었고, 수아는 초콜릿을 뜯기 바빴다.

 

“초콜릿 엄청나게 좋아하네.”

 

“응, 엄청 좋아, 넌 싫어?”

 

수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좋은데, 너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애.”

 

수아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먹기 바빴다.

 

나는 그런 수아를 두었던 책을 읽는데 그 중 한 장면에 눈길이 갔다.

 

초콜릿으로 꽃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장면이었는데, 수아에게 딱 어울려 보였다.

 

“이거 어때?”

 

나는 수아에게 손가락으로 그 장면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수아는 그것을 보더니 이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맛있겠다.”

 

나는 저 직업이 어때 보이냐고 물어본 건데….

 

“아니, 저 직업은 어떨 것 같냐고.”

 

내 말에 수아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잠시 후에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괜찮은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좋은 생각이 든 나는 수아와 그 책을 갖고서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그때 당시에는 컴퓨터도 대중화가 안 되었을 시기여서 정보를 알고자 하면 박학다식한 사람이나 책을 찾아봤어야 할 시기였다.

 

아무튼 우리는 그 책을 사서에게 보여주고 이 직업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사서는 웃으며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알려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제 고민은 끝났지? 네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면 되잖아! 그, 이름이….”

 

“쇼콜라티에.”

 

수아는 직업을 다시 읊조리더니 갑자기 내 볼에 키스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

 

내 소리에 수아도 놀랬는지 뒤로 물러났다.

 

“왜 갑자기 키스를 하는 거야.”

 

수아는 자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고마우니까.”

 

그렇게 수아와 나는 가까워지게 되었고, 어느 날 수아는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예술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수아는 어릴 때부터 예술 쪽에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부모님에게 예술 쪽을 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한다.

 

“힘들었겠네.”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무리 내가 재능이 있었더라도 원하지 않는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응. 그러니까 위로해줘.”

 

수아는 은글슬쩍 내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나는 그런 수아를 밀쳐내지 못하고, 수아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자꾸만 수아가 이렇게 나에게 들이댈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서 부담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아를 밀쳐내면 삐쳐버리니, 그건 또 싫다.

 

삐지면 오래가니까.

 

나는 문득 궁금증이 들어 질문했다.

 

“수아야, 초콜릿이 왜 좋은 거야?”

 

수아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변했다.

 

“너는 왜 꽃이 좋은데.”

 

“…같은 이유라는 거지?”

 

수아는 내 품에 안긴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겨있는 게 편해?”

 

내 질문에 수아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앉더니 나에게 말했다.

 

“궁금하면 너도 안겨보던가.”

 

그 말에 나는 부끄러워서 잠시 뒤로 몸을 뺐고, 수아는 잽싸게 나를 끌어당겼지만, 힘이 부족해서 수아가 내 쪽으로 튕겼다.

 

그 바람에 우리는 포옹을 한 상태로 엎어지고 말았는데, 내 얼굴이 수아의 가슴에 묻히고 말았다.

 

수아의 가슴은 푹신했었다.

 

중학생이지만 나름 알 것은 안다, 그렇기에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은 가빠졌다.

 

이 상황을 숨키기 위해 바로 수아를 밀쳤고, 수아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가 수아가 조용히 물어봤다.

 

“그래서 좋았어?”

 

나는 바로 벌떡 일어난 뒤 사과했다.

 

“미안해, 괜찮아?”

 

수아는 마치 말을 돌리지 말라는 듯이 나를 째려보고서는 다시 말했다.

 

“좋았냐고.”

 

수아의 눈초리에 내가 시선을 돌리니 수아는 내 양 볼을 잡고서는 자신의 눈과 마주치게 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좋았냐고.”

 

솔직하게 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자, 수아는 이미 눈치를 챈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줘.”

 

명령조가 아닌 부탁이었고, 마치 수아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듯이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런 수아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 좋아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수아는 나에게 키스를 해왔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는 놀리는 친구들을 피해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낙점된 곳은 학교 뒷산.

 

그 뒤 학교 뒷산은 우리의 비밀공간이 되었다.

 

“너는 내가 첫사랑이야?”

 

내 무릎을 베고 편히 누워있는 수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수아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서는 오히려 똑같이 되물었다.

 

“너는 내가 첫사랑이야?”

 

나는 당연하게도 원예에 빠져 살았으니, 첫사랑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난 네가 첫사랑인데?”

 

그러자 수아는 안심이 됐는지 웃으며 내 볼을 잡아당겼다.

 

“으읍.”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잔뜩 소리를 내자 수아는 다시 볼을 놔줬다.

 

“아파….”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수아는 내 어깨에 턱을 올리면서 물어봤다.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대.”

 

“근데?”

 

“그런데 이루어진 것을 보면 사실 너는 내가 첫사랑이.”

 

 

수아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때려버리는 바람에, 나는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흙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수아가 한숨을 내쉬고 먼저 가려고 할 때, 나는 급하게 수아를 외쳤다.

 

“서수아!”

 

수아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바로 수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첫사랑의 키스 맛은 풋풋하다고 하는데, 난 달콤했어, 그게 하고 싶었던 말이야.”

 

수아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내 손을 잡고 같이 내려갔다.

 

이렇게 우리 둘의 행복한 시간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 소식이 오기 전까지는

 

“뭐라고?”

 

내 말에 수아의 표정은 나를 만나기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많은 경험을 해봐야 예술성이 늘어난다고 하셨어.”

 

나는 이미 가라앉은 심장이 더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말했다.

 

“그래서 외국으로 가는 거야?”

 

수아는 울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내 품에 얼굴을 비벼댔다.

 

“근데, 나…가기 싫어, 초콜릿보다도 네가 더 좋단 말이야.”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수아는 내 품에서 엉엉 울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가지 말아줘?

 

나는 수아의 어깨를 붙잡은 뒤 수아에게 말했다.

 

“우리 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 내가 네 꿈도 찾아줬잖아, 가능할 거야.”

 

어떻게든 울던 수아를 진정시키고 떠나 보낸 뒤 나는 벽에 머리를 박았다.

 

 

 

 

수아의 부모님을 설득해야 할까?

 

수아도 실패했는데? 아니 반드시 성공시킨다.

 

나는 이내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그 다음 날 나는 수아의 부모님과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수아의 남자친구 유진이라고 합니다.”

 

수아의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맞이해 주셨지만 먼저 입을 여셨다.

 

“그래, 수아가 유학을 가지 않게 설득하려고 온 거니?”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을 꺼냈다.

 

“수아도 저도 정말로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수”

 

“잠깐, 우리 얘기 먼저 들어주게나.”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수아 부모님의 얘기를 들었다.

 

“자네하고 수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단지 수아와 우리 가족에게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이해해달라는 것이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수아부모님은 이미 예상하셨는지 손을 뻗으시고 마저 말을 이어가셨다.

 

“어렸을 적의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어, 물론 자네가 수아의 꿈을 잘못된 길로 엇나가게 해준 것은 아네, 하지만 그만큼 자네도 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지 않나?”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다 못해 가슴을 꿰뚫는 말에 나는 감정적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수아도 저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라는 것인가요?”

 

차마 이 말에는 대답하기에는 힘들었는지 수아의 부모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 하.”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수아와 부모님 때문에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반박해야 하는데, 반박해야 하는데….

 

 

 

눈물이 떨어졌다, 나도 알고 있다, 이미 설득은 글렀다는 것을, 수아와 나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아의 부모님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인지 다시 말씀을 꺼내셨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겠다는 것을 막는 것은 전혀 아니라네, 자네가 밉다는 것도 전혀 아니고, 단지 상황이 이런 만큼 이해해…”

 

그 다음 말부터는 들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어땠는지 기억이 없다, 잠깐 기억에 남는 것은 수아와 나는 서로 안으며 펑펑 울었던 것, 이 정도?

 

그렇게 나는 이별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뜬 눈으로 다음날을 맞이했다.

 

수아와 나는 학교에 왔고 우리 둘은 서로 말이 없었다.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는 등의 행위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종이 울리고 이제는 나가야 하는 순간에 말을 꺼냈다.

 

“수아야.”

 

“유진아.”

 

그리고 또 침묵.

 

사랑했다는 말이 적당할까, 아니면 행복했다는 말이 적당할까, 아님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이 적당할까.

 

내가 고민하던 찰나 수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랑해, 그리고 행복했어, 그리고…”

 

수아는 우느라 말을 못했지만, 다시 울며 말했다.

 

“고마웠어.”

 

나는 그 말에 바보같이 울며 한 마디밖에 못 했다.

 

“나도.”

 

그렇게 우리 둘은 헤어졌고 수아는 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미련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나도 수아도 더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서로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아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날 나는 수아와 항상 놀러 가던 자리에 물건 하나를 들고 갔다.

 

수아가 항상 앉아서 나랑 놀던 그 자리를 잠시 쳐다보다가 물건을 놓았다.

 

떨리는 손길로 물건을 열고, 베어 물었을 때, 단맛이 아닌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첫사랑은 끝이 났다.

 

………

 

그 때의 꿈을 꿨다.

 

분명히 시간이 지난 지 꽤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눈가는 열이 오른 듯 화끈화끈 거렸다.

 

이제는 후회하지 않기로 하였고, 사랑 따위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여전히 나는 울보인가 보다.

 

대충 눈물을 닦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식이라서 사람이 붐볐다.

 

부모님은 조금 있다가 오시기로 했기에 나는 강당 한쪽 구석에 앉아서 빨리 끝나기를 기도했다.

 

누가 내 옆에 앉았지만 나는 휴대전화기에 열중하느라 누군지도 몰랐지만, 옆자리의 시선이 느껴져 조금 불편했다.

 

어차피 졸업인데 그냥 핸드폰 좀 하지, 왜 남의 것을 쳐다보는 걸까.

 

그래도 끊이지 않는 시선에 비로소 옆자리를 바라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던 그녀가 앉아있었으니까.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는지 입가가 짭조름했다.

 

어떻게서든 눈물을 닦는 그 순간에 수아는 입에 초콜릿을 문 상태로 내 입술에 키스했다.

 

삼촌이 알려준 첫사랑의 맛은 틀렸다.

 

수아가 알려준 첫사랑의 맛도 틀렸다.

 

첫사랑의 맛은 달콤하고 씁쓸하며 짭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