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대장공주를 향한 공민왕의 사랑은 그야말로 유일무이해서 다른 여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둘이서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금슬에 비해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기에, 1359년 결혼 10년 만에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중신이었던 이제현의 딸을 비로 들였고, 그녀가 바로 혜비 이씨이다.


사실 이것도 공민왕은 들이기 꺼려했지만, 신료들은 물론 어머니인 명덕태후마저 간청을 하는지라 어쩔 수 없었기에 이씨를 들였지만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씨를 들일 때는 노국대장공주의 허락까지 맡고 들였지만, 들이고 나서는 노국대장공주가 투기로 인해 식음을 전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사건 때문에 환관들과 여관들이 백 가지로 참소했기 때문에 투기하는 뜻이 있었다고 한다.


정작 공민왕은 후사 문제로 인해 혜비 이씨를 들였음에도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보지 못했는데, 공주만 바라본 탓으로 보인다.


 신하들은 후궁을 더 들이라고 요구했지만 공민왕은 공주가 승하하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여자는 들이지 않았다.


노국대장공주를 지극히 사랑했던 임금 공민왕은 공주 사후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그녀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식사를 차렸으며, 공주가 살아 있을 적과 다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며, 어쩔때는 웃다가, 어쩔때는 울부짖으며 그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노국공주가 죽은 지 8년 뒤 어느 날.
공원왕후가 이르길


"어찌하여 비빈들을 가까이하지 않습니까?"


하자 공민왕 말하길


"공주만한 자가 없습니다."


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공원왕후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왕 또한 결국은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여 심히 슬퍼하십니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우니, 삼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공민왕릉을 보면 릉 사이에 통로가 있어 서로 이어져 있다


어찌보면 죽어서도 계속되는 순애보라 할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