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을 먹고 사는 불안-

 

내일 정도엔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추어 기차역까지 퐁피아드를 배웅해준 류디트와 멜레피슈는 마차에 몸을 싣는다.

 

"어때, 좋던?"

"정말, 멋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

 

퐁피아드의 어쩌면 자신과도 비슷한 사랑 이야기에 매료된 멜레피슈의 볼은 아직도 상기된 열감이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로리미엘을 마주할 때와는 다른, 녹아버린 가슴의 설레임이 아직도 그녀의 심장 박동을 재촉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류디트 아가씨"

"뭐, 나도 소개받은거고 원래는 로리미엘한테 소개하려 했지만 네가 팬인 것 같아서"

 

류디트는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이래저래 몸을 꾸미게 된 멜레피슈에게 하나 정도 선물을 주고싶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거니 생각하며 대화를 다음 주제로 넘긴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아가씨"

"피비아띠, 그거 줘"

 

류디트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피비아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네 류디트에게 양 손으로 건넨다. 그리고 류디트는 그것을 다시 받아 멜레피슈에게 건네어준다.

 

"이 편지에 관해서 네가 아는 거 전부 다 말해"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도리어 너무 많아서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세리는 누구이며, 그 사람은 왜 이 집에 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로리미엘의 경호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며, 그 주체는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 편지가 자기 아버지의 필체로 쓰여있으며 자기 가문의 문장이 박혀있는지 까지 듣자마자 한 번에 이해하기도 어려운 내용들인데다 이 편지에 관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들도 충분히 있을 법 했다.

멜레피슈는 이 편지를 어떻게 류디트가 갖고있는지는 문제삼지 않았다. 어차피 류디트라면 모르는 척 해봐야 무시할 것이 뻔했고 자신이 알리지 않으면 어떻게든 정보를 캐낼 성격인데다 그럴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듣고 나서 놀라지 않으실 수 있나요?"

"나 시험하는 거면 상황 잘못 골랐어. 나 지금 되게 예민해져있거든"

"알겠습니다. 아가씨"

 

멜레피슈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이 알고있는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로리미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류디트에게도 모두 전달한다. 자신의 과거, 튜륑드 집안의 자선활동, 그 곳에서 훈련받은 자신과 세리, 코코에의 이야기. 자신이 알고있는 귀족사냥 전후의 사정, 로리미엘을 류디트가 치료해주었던 날 있던 일을 모두 설명한 뒤에 숨을 한 번 고른다.

예상은 했던 반응이지만 류디트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남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듣고있던 피비아띠만 고개를 계속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면, 너랑 세리, 코코에라는 애가 훈련받은 메이드 같은 거고. 그걸 육성한 게 아버지라는거야?"

"네, 저희는 몇 유력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얻었고 마스터께서는 그 정보를 취합해 왕실에 보고하셨죠"

"귀족사냥 이후로 선왕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왕실 내부의 결속을 위해 역량을 안으로 집중했고 너희들의 활동이 그 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갔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이제와서 도련님을 노리는 세력이 있고 우리는 그 세력에게서 도련님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거죠"

 

저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앞뒤 자체의 모순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빈 구멍이 군데군데 나있기는 하지만 그 빈 구멍 사이에 잘못된 점은 없었다. 다만 빈 구멍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의아한 점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해가 안 가"

"네?"

 

류디트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진다. 피비아띠와 다른 사용인들을 먼저 클럽으로 들여보내고 류디트는 멜레피슈와 동행하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누구인지는 차치하고 아버지의 말 대로면 그 사람들은 이제와서 왜 로리미엘을 노리는 걸까?"

"저도 마스터가 시키는 일만 해서 자세한 내막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한데...설마 싶긴 하네"

"그게 무엇입니까?"

 

류디트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마차의 대금을 지불하고 오솔길의 앞에서 내린 두 사람은 일찍 해가져 어두워져가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간다. 이 시간에 이 곳을 올라간다는 점에서 류디트는 이미 클럽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로리미엘의 모습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의 집에 머물 예정인 듯 했다.

 

"우선 민트가문이 왜 귀족이 됐는지 부터 설명해줘야겠지"

"네"

"로리미엘의 할아버지는 외국인이었고 허브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많은 걸 알고 있었어. 처음에는 우리 집안의 정원사였다고 했는데, 그때에도 이미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원관리와 허브와 화원관리, 온갖 것들에 대해 배워갔고 할아버님께서는 허브와 화원에 대해 연구할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을 내어주셨지

 

멜레피슈도 류디트에게 얼핏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로리미엘이 해주는 이야기는 불완전한 정보였던 탓에 엉성하고 군데군데 이음새도 끊어져있었지만 류디트의 이야기와 다른 점은 없었다.

 

"그 때, 아버지가 한 가지 낸 묘수가 정원사의 귀족작위 부여였어"

"어째서...입니까?"

"증기혁명이 왕국의 발전을 가져온 건 알거야. 그리고 그 발전으로 국가가 풍요로워진 것도 당연한거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어. 흔히 말하는 신 상류층이라고 하는 부류인데, 이 사람들은 당연히 기존의 귀족도 뭣도 아니었어. 대부분 아직도 귀족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갖췄지"

 

신 상류층, 평민임에도 많은 부나 학식등으로 타인과 사회에 인정받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부를 바탕으로 귀족처럼 큰 저택을 구매하고 사교계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당연하지만 기존의 귀족과는 달랐고 그들과 얽히려고 노력하면서도 보수적인 귀족층에 시기를 보내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신 상류층의 존재 자체는 평민층에게도 귀족층에게도 자극이 됐어, 좋은 방향의 자극만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반대도 있었지. 귀족층은 국가에 이바지한 것도 없는 평민 주제에 시류를 잘 타고나서 거드름 피우는 건방진 족속이라고, 반대로 평민층은 사회의 발전에 도움도 안되면서 오만하기만 한 녀석들이라고"

 

지금이라고 그런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국가의 발전과 그것이 가져온 풍요에 덮여져있을 뿐이란 건 마을 구석에 박혀 살던 멜레피슈도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선왕께선 몇 귀족세력에 대한 견제를 꾀하셨어. 하지만 그렇게 몇 가문에만 영향력을 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귀족 작위를 부여한 건 선왕들이고 하나의 가문에 의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그 여파는 모든 귀족들에게 퍼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로리미엘의 할아버지에게 귀족작위를 부여하려 한거야. 그 때 쯤 왕국의 정원문화의 세련됨이 이웃국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니까 업적도 인정할 만 했지, 눈에 띄는 업적을 계속해서 보이지 않으면 권력과 부의 분배가 깨질 수도 있다는 걸 귀족들에게 경고할 수도 있었고, 반대로 평민들에겐 하나의 상징, 그리고 지지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귀족의 자리를 얻게 되었단 말이었다. 멜레피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다.

 

"내가 세운 가설은, 귀족사냥이 단순한 평민들의 폭동이 아니었다는 거야"

"네?"

"네가 말한대로 아버지가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너희들을 배치했다면, 너는 6년 전에 귀족사냥의 당사자가 된 민트 가문에 있었고 그 이전엔 에띠 가문에 있었어. 그리고 네가 여기 박혀있는 동안 세리라는 애는 드탱 가문에 있었고, 코코에라는 애는 에띠 가문에 있지"

 

코코에가 에띠 가문에 있다는 말, 멜레피슈는 최근에 소식도 들을 수 없었던 그녀의 소재를 알고있는 류디트를 돌아본다.

 

"코코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퀴스띠브가 데리고 다니는 메이드잖아"

"아니 저는 소재를 모르고 있어서..."

 

코코에와 퀴스띠브, 며칠 전에 만난 아가씨의 메이드가 그녀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하여튼, 6년 전과 지금 공통으로 속해있는 건 에띠 가문이야. 그리고 드탱 가문도 뭔가 있는 것 같고"

"그러면 귀족사냥은 두 가문이 의도적으로..."

"아마 둘 뿐 만은 아니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에띠도 드탱도 왕권과 마냥 친할수는 없는 가문이고 도리어 평민들의 지지를 얻어야하는 가문이거든. 총기가 전쟁도구로 사용될 만큼 발전한 이후로 군대는 일반 병사와 그 역할을 할 평민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에띠 가문 역시 넓은 영지에서 나오는 광물을 캐고 유통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할 평민과 신 상류층, 그리고 외국인 등 많은 계층에 호감을 쌓아야하니까. 그런 사람들을 선동해서 민트 가문을 포함해 피해자가 되었던 몇 귀족들에게 불만의 칼을 돌리게 하면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고, 반대로 왕이 직접 작위를 부여한 민트가문을 몰락시키면 선왕은 평민들에 대한 불신을 쌓게 될테니까"

 

자신의 작은 집과는 다른 국가와 가문들을 아우르는 복잡한 가설에 멜레피슈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도식을 그린다.

 

"물론 이것도 가설이야. 로리미엘이 오면 내가 직접 데리고 아버지 앞으로 갈거야. 애초에 로리미엘이 그렇게 걱정되면 우리 집으로 부르면 되는거 아니냐고"

"혹시, 주인님이 그 집에 가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류디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르는 사람도 아닐 뿐 더러 도리어 아버지에겐 친구의 아들이지 않은가. 아버지가 안된다고 하면 자신의 방이라도 내어줄 수 있었다. 류디트의 머릿속에 로리미엘이 그 집에 들어가선 안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아"

 

류디트의 단말마, 멜레피슈와 류디트는 순간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

 

"이 편지가 온 건 클럽에서 주인님이 퀴스띠브 아가씨를 만난 뒤였고, 케니시메이어 호텔에서 뤼비올라 도련님을 만난 이후였어요. 그 이전까진 에띠와 드탱 가문이 도련님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면..."

 

류디트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왜 로리미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은 모두 추측일 뿐이었지만 머릿속의 조각들이 빈틈 없이 메워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만간다.

 

"하지만 이제와서 로리미엘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는 없잖아. 이미 가문은 사실상 잊혀졌고 왕권은 교체됐고...말이 안되잖아"

 

류디트는 그녀의 불안감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부정한 상상을 어떻게든 뒤덮기 위한 자기합리화와 추측을 내뱉는다. 류디트를 바라보는 멜레피슈도 뤼비올라와 퀴스띠브와의 만남이 인연이 아닌 필연인건가 하는 상상에 휩싸인다.

 

"로리미엘이 내일 오는 건 확실하지?"

"네, 하루만 있다가 오겠다고 하셨어요"

 

불안감에 젖은 밤은 유달리 어두운 하늘을 갖고 있었다. 로리미엘의 방을 내어받은 류디트도, 자신의 방에 들어온 멜레피슈도 방에 피워놓은 촛불이 꺼질 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안감이 만들어낸 공포심은 하늘을 짙은 회색으로 물들인다. 유달리 어두웠던 다음 날, 회색의 구름이 칠흑이 될 때 까지, 로리미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은 이걸 왜 쓰고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