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순애가 아니야!]

 

민규는 후원 메세지를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후원자의 닉네임은 옆집 여동생’.

 

그가 웹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꾸준히 따라와 준.

 

열성 독자이자 누적 후원금액 순위 1위인 인물이었다.

 

예약된 회차가 올라오기 무섭게 가장 먼저 정성스러운 댓글을 매번 남기는 독자였고.

 

남성향 소설 사이트에서 하렘이나 NTR 없는 정통 순애를 고집하는 그의 작품을.

 

순애 채널이나 독자 커뮤니티에 리뷰를 남겨 역주행하게 만든 은인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웹소설 집필을 본업으로 가도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런 열성 독자의 분노에 찬 메시지는 민규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와 씨... 뭐지. 1화밖에 안 올렸는데 반응이 이렇다고?’

 

민규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새로 연재를 시작한 첫 고수위 작품의 제목은 옆집 여동생은 사랑의 노예!’

 

소꿉친구인 옆집 여동생과 가족 같은 관계에서.

 

SM을 통해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오랜 세월 편하게만 느껴왔던 감정들이 이성적인 호감이었음을 인정해서 순애로 이어지는.

 

흔히 말하는 순애 조교물이었다.

 

SM을 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사랑하기 때문에 SM을 할 수 있는.

 

신뢰와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SM이 아니라는 민규의 철학이 녹아든 작품이었다.

 

이미 기성작가가 된 민규의 신작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열광했는데.

 

제일 신경 쓰이는 옆집 여동생님의 반응에 민규가 답답해다가.

 

담배라도 한 대 피우러 현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별안간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진짜 옆집 여동생연수연이 뛰쳐 들어오며 소리쳤다.

 

이런 건 순애가 아니야!”

 

175cm의 장신인 수연의 미끈한 다리로 그림 같은 돌려차기가 뻗어 나가 민규의 복부를 향했다.

 

수연아 갑자기 왜 그래!”

 

썩어도 준치라고 태권도 3단인 민규는 급히 스텝을 밟아 뒤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현직 태권도 사범인 수연의 발차기 연격을 막아내기 급급하던 민규는.

 

결국뒷차기 한방을 복부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묵직한 뒷차기에 잠시 넋을 잃었던 민규는.

 

멱살을 잡고 흔드는 수연 때문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런 건 순애가 아니야조교 순애는 인정할 수 없어!”

 

갑자기 와서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뭐 잘못 먹었어?”

 

둘이 처음 만난 때의 나이는 권민규가 10연수연이 7

 

지금은 민규가 30수연이 27살이니 무려 20년 지기였다.

 

가끔 종잡을 수 없긴 해도 선머슴 같은 수연이 다짜고짜 이런 억지를 부리진 않았기에 민규는 의아했는데.

 

수연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

 

... 수연아무슨 일 있어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옆집에 사는 데다 부모님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터라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

 

이젠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미인이 된 수연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던 민규는.

 

잠시 갈등하다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직 수연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슬픔을 외면할 만큼 민규는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

 

****

 

겨우 진정이 된 수연에게 모든 사정을 전해 들은 민규는 충격에 빠졌다.

 

로맨스아니 소설이나 책조차 읽지 않을 것 같은 수연이 자신의 오랜 열혈 팬 옆집 여동생이었다.

 

원래도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던 차에민규가 지나가듯 흘린 필명과 작품명을 듣고 이후에 열성 팬이 된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물었더니 처음 봤을 때부터 수연은 민규가 좋았단다.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스포츠에 만능인 수연이 지금도 무서워하는 게 물.

 

어릴 때 수영장에서 혼자 허우적거릴 때 민규가 구해준 게 그렇게 멋있었단다.

 

신작은 심지어 옆집 여동생을 소재로 한다기에 자기 이야기 같아서 엄청 기대했는데.

 

SM이니 조교니... 정통 순애파인 수연 입장에서는 음습하기 짝이 없는 주제가 섞여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단다.

 

갑작스러운 옆집 여동생 수연의 고백.

 

열성 독자인 옆집 여동생이라는 것도자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도 민규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수연의 모든 것이 진실임을 드러냈다.

 

매일 보던 사이고친여동생이라고 해도 좋을 수연인데.

 

수연에 대한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녀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민규에게 수연이 말을 걸었다.

 

미안해많이 아프지오빠가 잘못한 건 없는데일개 독자가 뭐라고내가 너무 감정이입 했나 봐고백한 건 못들은 걸로 해줘나는 그냥 독자 옆집 여동생으로 남을래.”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또 흐르기 시작했다

 

내내 숨겨왔던 마음을 들켜서.

 

애독자 옆집 여동생으로도옆집 여동생 연수연으로도 남기 힘들 것 같았다.

 

다 끝났네. 20년 짝사랑안녕 내 사랑민규 오빠.’

 

눈을 감고 흐느끼던 수연은 입술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눈을 떴다.

 

수연은 민규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가깝게 지냈어도 입을 맞출 때와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그제야 수연은 민규가 자신을 품에 안고 진한 입맞춤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쁨에 겨워 수연도 민규를 마주 안고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긴 입맞춤 끝에 가쁜 숨을 내쉬던 수연이 부끄러운 듯 입술을 달싹였다.

 

난 첫 키스인데오빠는?”

 

첫 키스는 아니야하지만 수연이 입술이 제일 맛있었어.”

 

갑자기 웃음이 터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박장대소하다가서로를 응시했다.

 

진한 키스를 나누었지만성적으로 흥분이 된다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겨우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후련함이 서로를 기분 좋게 했다.

 

민규가 양손을 내밀자수연이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눈동자를 말없이 응시하다가 민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애독자인 옆집 여동생진짜 옆집에 사는 여동생 연수연도 모두 소중해마찬가지로 새로운 작품도 소중해왜냐면이번 작품 옆집 여동생은 사랑의 노예!’는 수연이 너를 생각하면서 기획했거든.”

 

민규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민규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안심하며 대답했다.

 

... 조교 순애라니까 거부감은 드는데그래도 여태 정통 순애만 써온 오빠 말이니까 믿어볼게근데 나를 생각하면서 기획했다는 건 무슨 소리야?”

 

민규는 거의 10년도 전에나 해보았던 일.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20년이나 지나면서 몹시 편한 사이긴 하지만알게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해진 부분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머리 쓰다듬고 포옹하고 같이 뒹굴면서 노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잖아우린 무려 20년 지기 소꿉친구인데 이제는 나이도 먹고 서먹서먹해진 게 많지태권도도 같이 다니고 여행도 가고 추억이 참 많았는데그렇지?”

 

수연은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민규의 손길에 한 마리 고양이가 된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오빠 손 기분 좋다맞아진짜 어릴 땐 같이 목욕도 했잖아소꿉놀이하고 와서 흙투성이라고 혼난 날에그때는 내가 매일 오빠 색시 했는데 히히.”

 

비슷해소꿉친구 사이인 옆집 여동생과 남자 주인공이우리처럼 가깝지만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SM을 하면서 바뀌는 과정을 담고 싶었어사실 SM은 행위를 하려고 만나는 것보다누구보다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교감하는 거라고 생각해너나 나 같은 정통 순애를 지향하는 사람이 SM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고 봐사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두 사람이 SM을 통해 진짜 사랑과 자신을 마주하는 거지.”

 

민규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수연이 좋아하는 진중하고 묵직한진심이 담긴 음성이었다.

 

사랑에 취한 듯수연은 민규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다.

 

그래서 오빠는나랑 SM을 하고 싶었던 거야옆집 여동생인 나 연수연은 진심으로 믿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변태 작가 권민규는 옆집 여동생한테 고수위 작품으로 고백하고 있던 거냐고.”

 

몸 쓰는 데만 재능이 있고이런 쪽으로는 젬병인 줄 알았던 수연이 의외로 날카롭게 질문하자.

 

민규는 선선히 수연의 추리가 맞았음을 인정했다.

 

맞아연재하다 보면언젠가 나도 내 마음을 확실히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수연이 네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늦어도 완결하고 나면 너에게 고백하려고 했어. SM에 대해서는 작품 때문에 조사한 거지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수연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민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다가.

 

민규의 가슴에 귀를 가져가서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수연의 돌발행동에 민규의 가슴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는데.

 

수연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민규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솔직히 SM이든 조교든 잘 모르겠어하지만 한가지는 알아나도 오빠도 순애를 바란다는 거순수하고 깨끗한 사랑그거면 충분하잖아그 가치를 오빠가 더럽히지 않을 거라고 믿어그리고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 것처럼오빠도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믿을게.”

 

민규는 지고지순한 수연의 사랑에 끝내 함락되었다.

 

입술로 화답한 민규를 부둥켜안고 수연도 사랑을 느꼈다.

 

20년이나 묵혀온 수연의 사랑만큼.

 

돌고 돌았지만 결국 진정한 사랑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깨달은 사내의 뜨거운 열정이 수연을 녹여냈다.

 

길고 긴 입맞춤 끝에 달콤한 숨을 몰아쉬면서.

 

수연이 민규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빠 소설 제목처럼 되어버렸네나 옆집 여동생 연수연은 권민규에게 사로잡힌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렸어요.”

 

민규가 수연의 목소리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다가 수연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연수연네 몸이 아닌 마음에그 영혼에 사랑이라는 목줄을 채워줄게너와 나만이 공유할 수 있는은밀한 즐거움을 하나씩 만들어보자.”

 

엄청 화낸 것 치고는 민규의 신작, ‘옆집 여동생은 사랑의 노예!’의 대사들을 수연은 전부 꿰고 있었다.

 

그녀는 민규에게 여주인공의 대사로 화룡점정을 했다.

 

기꺼이저를 아끼고 사랑해주신다면저도 당신의 기쁨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사랑하는 나의 주인님.”

 

민규는 자신의 소설에 푹 빠져 상황극을 하듯 장단을 맞추는 수연에게 몹시 고마웠지만.

 

정말 SM을 하자는 것으로 오해할 듯해서 수연을 돌려보냈다.

 

고백의 여파가 남아 저녁에 술이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따로 나누기로 했지만.

 

민규도 수연도 후유증이 컸다.

 

수연이가 주인님이라고 불렀어너무 좋아!’

 

민규는 수연이 큼지막한 눈망울을 깜박이며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불끈거리는 하반신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사랑의 목줄이라니... 어쩌면 나... 순애 조교 당하고 싶을지도...’

 

수연은 옆집 여동생은 사랑의 노예!’ 의 1화를 몇 번이고 정독했다.

 

권민규와 연수연두 사람의 조교 순애혹은 순애 조교는 이제 막 시작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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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생각중인거 단편으로 구성해봤는데 그냥 이게 1화가 될지는 모르겠음.


표지는 웹연챈에서 제공받았는데 타이포나 외주해서 쓸것 같기도 하고? 


연재중인거 마무리하면 설정다듬어서 얼른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