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아니야-

 

호텔과 연결된 픽시비 아트센터는 평소엔 18시까지, 개막전 기념으로 지금은 22시까지 연장 전시를 하고 있었다. 비록 특별 전시는 아닌 상설전시였지만, 담서와 현지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트센터 안으로 들어간다.


"뭘 이런 걸 보자고 하냐."

"자기가 와 놓고. 형은 가서 술이나 먹던가."

"별로 재미있는 건 없어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온 중지는 별 달리 볼 것 없어 보이는 전시회에 흥미를 잃는다. 중지를 슬쩍 본 현지는 표를 두 장만 발권한다.


"어? 작가님?"


전시관에 입장하기 전 아트센터의 로비를 구경하던 현지를 누군가 불러 세운다. 인기도 없는 아마추어 작가 주제에 작가라는 말에 뒤를 돌아본다.


"PD님?"


중지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남성이 그에게 악수를 권한다. 중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받는다. 뒤를 돌아본 현지는 머쓱한 얼굴로 중지의 뒤에 선다.


"누구야?"

"노벨리아 공윤기 PD님."

"미핑 작가님을 여기서 뵙네요."

"미핑?"


중지답지 않은 닉네임 선정에 담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감이 꽤나 귀엽다.


"미들핑거."

"아."


담서에게 그 뜻을 설명한 현지는 욕이 아닌게 어디냐 싶지만, 역시 아무데서나 말할 법한 닉네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피디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그림 보러?"

"아뇨. 저희 웹소설 장면 삽화로 그린 걸 전시하는 계획이 있어서 보러왔죠. 저희도 픽시비 계열이잖아요."

"그랬나? 어우 그걸 주말에 보내요?"

"자기 플랫폼 정도는 알고 계시는 게....특별 전시실이 비는 게 오늘이라고 해서, 대신 좋은 방에서 하루 잠이나 자고 가려구요. 그런데 이쪽 분은...."


동생이냐고 물으려던 윤기는 중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사람을 보며 말 끝을 흐린다. 잠깐이나마 아무 상관없는 외부인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동생이랑 동생 친구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공윤기 입니다."


꽤 사무적으로 인사하는 윤기가 현지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준다. 노벨리아 PD 공윤기 라는 이름과 메일 주소 등이 적혀있다. 별 다를 것 없는 명함이지만 노벨리아의 보라색 깃털펜 마크를 보자 현지는 대단한 사람이 인사를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도, 그 소설 써요."


독자도 거의 없는 보잘 것 없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어필해보고 싶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 혹시 이 PD님이 홈페이지 배너 구석에라도 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물론 자신의 세계로써 인정받고 싶었지만, 매일 댓글도 반응도 없는 글을 올리는 게 지겹기는 했었다.


"오. 어떤 소설 인가요?"

"그, 'N타입 소녀'라는 소설입니다."


'N타입 소녀'는 현지가 쓰고 있는 소설이자 담서와 함께 만화로 그리고 있는 이야기였다.


"실례가 안되면 잠시만...."


윤기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소설을 검색한다. 프리미엄도 아닌 자유 연재 작품, 프리미엄을 달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비인기 작품이었다. 인기가 없는 소설은 많았지만, 이 정도로 인기가 없는 소설은 그리 흔치 않았다.

웹소설 pd인 만큼 습관이 된 속독 덕에 글을 빠르게 넘기는 윤기를 보며 현지는 글이 너무 지루한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보여주고 싶었지만, 보여주니 자신의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실감한다.


"네, 뭐...."


뜨뜻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못 쓴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기를 끌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웹소설에 맞는 글은 아닌 것 같네요. 물론 캐릭터들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네. 서사의 속도라던가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적다고 봅니다. 그래도 문장은 담백한게 분위기랑 잘 어울리네요."


요약하면 별로라는 이야기였다.

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의 평가를 받아든다. 칭찬이 섞였지만, 내용이 재미 없다는 윤기의 말에 금새 시무룩해진다.


"문장은 정말 좋았어요."

"이거 만화로 만들 거라...."


문장과 표현은 현지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분야였지만, 하필 만화로 만들려는 이 소설에 문장이 아름답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었다.


"만화요?"

"저 친구랑 같이 만화 그린다고 하더라구요."


빨리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중지가 끼어든다. 그런 중지의 노력이 무색하게 윤기는 머리를 굴리며 견적을 내어본다.


"작가님 동생 분이니까 특별히 얘기해드리는 겁니다."


윤기는 혹평에 대한 보상으로 현지의 귀가 혹할 만한 이야기를 꺼낸다. 중지는 괜히 자신을 끼워파는 것 같아 꺼림칙했지만, 굳이 언급 하지는 않는다.


"저희가 웹소설 말고 웹만화도 준비 중이거든요. 그래서 곧 있으면 공모전을 하는데, 미리 준비하시고 저희 쪽으로 꼭 제출 부탁드립니다. 상금도 커요."

"웹툰식 아니어도 되나요?"

"페이지식이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웹툰식이 권장되기는 하죠."


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만화 공모전이라는 이야기에 담서도 나름 흥미가 도는 듯 했다.


"작가님 혹시 따로 일정 없으시면 술이라도...."

"어후, 제가 내나요?"

"아유. 저희는 언제나 작가님 모실 때는 저희가 대접합니다."

"가시죠."

 

중지와 윤기는 아트센터 밖으로 나간다. 핸드폰을 들고 자신의 소설 표지를 바라보던 현지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가자."

"응."

 

조금은 썰렁해진 분위기가 싫었던 현지는 일부러 담서를 바라보며 웃는다.

일러스트 사이트이자 그림 커뮤니티인 픽시비, 혼자 그림만 그리던 담서는 거의 들여다 본 적 없었지만 현지는 자주 찾아보는 사이트였다. 그런 픽시비의 그림들을 전시한 회장에는 현지와 담서가 아는 만화 캐릭터도, 일러스트가 아니라 흡사 예술 작품 같아 보이는 그림도 있었다.

 

"닉네임 되게 특이하다."

 

다른 미술관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작가의 이름이 아닌 닉네임이 적혀있단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실명을 적은 작가도 있었지만, 가끔 특이한 닉네임들이 피식피식 웃음 짓게 했다.

 

"현지야?"

 

그림을 감상하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던 현지, 닉네임을 들여다보던 담서는 멍하니 서있는 현지를 부른다. 담서가 자신을 부르자 현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어? 그러게."

 

현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닉네임을 들여다 본다.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래?"

"어?"

 

허리를 쭉 편 담서가 현지를 쳐다본다. 현지의 시선에서 15cm 위에 머무르는 눈동자는 가까이 붙을 수록 목이 아플 만큼 올려다 보아야 했다. 그럼에도 위압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현지의 어깨에 담서의 양 손이 올라온다.

 

"너는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

"티 났어?"

"응."

 

여자친구라기 보단 큰 누나가 어린 동생을 달래는 듯한 모습이 된다.

늦은 시간인데다 상설 전시인 탓에 전시장은 한산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용한 전시장에 메아리친다.

 

"속상해?"

"아니."

"그러면?"

 

담서의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자신을 타이르는 듯한 눈빛이 마음 속에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속상해."

 

담서와 같이 있으면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있는 담서에게 거짓말을 해봐야 속일 수 없단 걸 알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담서가 한참 어른처럼 보인다.

 

"열심히 썼다고 생각 했는데."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현지는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있었다. 그것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몇 번의 삭제와 작성 속에 그나마 글다운 글을 써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는 너무 초라했다. 누군가는 알아봐주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예상대로였다.

자세를 살짝 낮춘 담서는 자신의 옷 소매로 현지의 눈가를 닦아준다. 흐르진 않지만, 속눈썹이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고마워."

 

울고 싶을 때 울지 않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지 않고, 모든 감정을 닫고 살던 현지가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된 건 모두 담서 덕분이었다. 담서 옆에 있으면, 어쩐지 자신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도 약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담서는 넘칠락 말락한 현지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양 손을 모아 마음 속 가득 찬 슬픔을 담아 떠낸다.

 

"이제 괜찮아."

 

현지는 자신의 옷 소매로 눈가를 슥슥 닦는다. 홍조가 올라온 볼, 조금 붉어진 눈, 젖은 속눈썹을 하고도 현지는 해맑게 웃어보인다.

 

"웹소설이랑 안 맞는다고 했으니까. 만화로 그리면 분명 알아봐 줄거야."

"만화로 그리는 건 너잖아. 그림이 예쁘니까 다들 봐주겠지만."

"그렇지만, 난 네 캐릭터도 설정도 좋은걸. 그러니까 만화로 그리고 싶었던 거고."

"그래?"

 

역시 알아주는 건 담서밖에 없다. 어쩌면 만화로 그린 뒤에도 알아주는 건 담서밖에 없을지 몰랐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은,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세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담서 너는 왜 그렇게 어른스러운 거야?"

"응?"

"분명 나랑 동갑인데, 되게 어른 같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너처럼 어른스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른스럽다니, 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한다. 현지는 귀엽고 아이같고 가끔은 동생같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현지가 철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봐온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준 사람은 그 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어른스러운지는 몰라도, 현지 너는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아닌 거 같은데."

"애교부리는 거 보면 너 처럼 진심으로 대하고 싶거든. 어른스러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선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나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으니까."

"진심이라."

 

담서 앞에서는 감정을 숨긴 적이 없었다. 숨기지 않는 편이 더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했을 뿐이었는데, 담서는 그걸 보고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진심. 조금 알 듯 말 듯한 마음은 아트센터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ㅁㄴ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