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떠났다.

'이젠 힘들어.'

그날 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날 정말 사랑하긴 하는 거야?'

그리고 난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에 멍청하게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아내는 입꼬리를 떨며 싱긋 웃었다.

'그래, 대답도 못 하는구나. 미안해... 정에 기대서 억지 부린 내 탓이지.'

문이 닫히는 마지막까지 아내는 날 원망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욕했고, 날 사랑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양가는 당연히 뒤집어 졌다.

어머니는 빨리 사과하라며 내 등을 내리치셨고, 장인 어른은 뭔가 오해가 있는게 분명하다며 잠깐 기다리라는 문자만 남긴 채 그녀에게 달려가셨다.
하지만, 모두의 노력에도 결말은 변하지 않았다.

받기만 한 나는 주는 법을 몰랐고, 주기만 한 너는 받는 법을 몰랐다.

결국 문턱에 넘어져 울던 꼬마에게 막대 사탕을 건네주며 시작된 만남은 30년을 지나 이별을 맞이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냥, 부끄러웠다.

'그동안 고생했어.'

아내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멍하니 그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사실 이미 다 끝났다.
서류는 이미 동사무소에 제출했고, 우리 둘의 관계는 서류상 남남이었다.
하지만, 이 손을 잡는다면 정말로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난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있잖아.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아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미안해. 진짜...내가.. 잘할테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했을까?
처음이야 어려웠지, 다음은 쉬웠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후회도, 슬픔도 눈물과 함께  술술 나왔다.

하지만,

'미안...'

마침표를 넘어 다음 문장을 적기엔 종이의 여유가 없었다.

*

집으로 돌아온 난 옷도 벗지 않은 채, 텅 빈 침대에 몸을 던졌다.
두 눈을 감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 이제는 무서워. 그냥... 좀 지쳤어.'

조금만 빨리 알았다면 바뀌었을까?
어쩌면 지금 내 옆에 누워 미소를 짓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부엌에서 맛있는 점심을 만들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밖에 나가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맛집으로 가고 중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상상을 하던 난 스스로가 우스워 헛웃음이 나왔다.

"병신..."

전부, 무의미한 망상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더운 열기에 눈을 뜨자, 난 좁지만, 그리운 침대 위에 있었다.

천장 구석에는 벽걸이 에어컨이 있었고, 침대 맞은 편에 있는 작은 화장대 옆에는 무표정한 나와 환하게 웃는 아내의 사진이 있었다.

"설마..."

주변을 살피자, 에어컨 리모컨에 귀여운 글씨체로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또 에어컨 켜고 자다가 감기 걸릴까 봐 끄고 갔어. 미안해ㅠㅠ]

메모지를 보자 조금만 에어컨 온도를 내려도 이상한 냄새가 나, 항상 차갑게 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정말 현실이었다.

"나, 돌아왔어."

눈물이 났다.

지난 생이 정말 현실감 넘치는 꿈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신이 도와준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중요한 건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한 대학생 3학년 시절로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띡디디딕. 띠리링!

"나 왔어!"

아내, 아니지 과거로 돌아왔으니까, 시아가 신발을 홱 벗어 던지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 일어났어...?"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다, 이내 살짝 땀에 젖은 티셔츠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아! 더워서 그랬구나! 그래도 지난번에 감기로 고생했서 끈 거니까! 음! 그,그러니까!"

허둥거리는 그녀를 보자,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차갑게 대했을까?

난 말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아직도 현실감이 없고, 시아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번 생엔 츤데레였으니까,

"미안해! 어? 어어?!"
"고생했어. 어서 와."

이번 생엔 숨기지 않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