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붕대 사이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하늘씨는 그 촉감이 좋은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서 얼굴에 비볐다. 


고양이 같네.



"아. 저 이제 대답해도 되나요?"



"응? 뭘요?"



"우진씨가 고백했었잖아요. 그거에 대한 대답이요."



하늘씨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이른거 아닐까? 


흔들다리 효과나 그런 것 때문에 나중에 안정되고 나면 후회하는 거 아닌가?


하늘씨는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걸까? 


그 이전에 그런거 생각할 정도로 시간이 많고 안정된 상태였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이건 결국 하늘씨의 판단이다.'



적어도 나는 이전에 걸리는 부분을 충분히 이야기했고,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알려주었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거지. 


나는 하늘씨의 인생을 대신 살거나, 대신 고민해줄 수는 없는 거니까.



"이전에 말했던대로, 사랑해요. 하늘씨. 


그런데..."



다만 하늘씨에게 조금 더 물어봐야 할 것은 있었다.



"하늘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답을 정해놓고 묻지는 않았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테니까.



누군가는 육체적인 사랑을 자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안정감과 평화에서 사랑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다. 


우정의 연장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정과는 다른 특별한 유대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물질적인 지원이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플라토닉하게 사랑을 꿈꿀 수도 있을 거다.



사랑에 빠졌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스스로만이 느낄 뿐이다. 


정작 내가 그 사람을 왜 사랑했는가, 나의 사랑이 어떤 형태였는가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이유는 가져다 붙이는 것에 가깝다. 


세상에 많은 꽃이 있지만 나에게 깨달음을 준 꽃은 하나이듯이, 세상에 사람이 많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 하늘씨는 한 명 뿐이다. 


의미는 내가 내 마음에서 찾는 거지.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거나 증명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이유는, 사랑을 꿈과 환상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고통과 아픔, 슬픔을 다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나 리셋 버튼이 아니니까.



"이 마음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진씨와 같은 곳을 보며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늘씨에게 좀 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많은 것이 있고,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고, 당신의 세계는 더 넓어질 수 있다고. 


그러니 슬픔에서 눈을 돌리고 앞에 놓인 것을 바라봐 달라고 하고 싶다.



하늘씨는 웃는 표정이었고, 약간 부끄러워 하는 것 같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나의 팔을 끌어안은 채로 진심을 말하는 것 같았다.



"우진씨가 웃는 걸 보면 좋아요. 


같이 뭔가를 먹어도 좋고, 같이 해도 좋고, 아는 사람이나 친구를 같이 만나도 우진씨와 있으면 즐거워요.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손이라도 잡으면 심장이 콩닥콩닥 해요. 


우진씨와 좀 더 많은 걸 공유하고, 같은 것을 생각하고 싶어요."



마찬가지다. 나보다 어리고, 작고, 연약한 하늘씨는 내 심장을 쥐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웃을 때 심장이 요동쳤다. 


같이 손이라도 잡으면 가슴 한 구석이 터질 것 처럼 뛰기 시작하고, 서로 끌어 안으면 당장이라도 멈출 것 처럼 심장 부근이 꽉 조여들었다. 


몇 번이나 흘러 넘칠 것 같은 감정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억지로 외면하며 인내해왔는지 모른다.



"하늘씨,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언젠가 내 판단으로 하늘씨를 상처입히거나, 서로 싸우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왜 그랬냐고? 


하늘씨를 상처입힐지도 모르니까.



"이전에도 말한 적 있잖아요. 


우진씨가 주는 거라면 상처마저도 사랑스러울 거에요. 


서로 좋은 모습 뿐만 아니라, 힘들고 아파하는 모습도 가감없이 다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아파하는 만큼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저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하늘씨는 끌어안고 있던 내 왼손을 다시 얼굴에 가져다 댔다. 


고양이나 강아지들이 그러듯이, 뺨과 이마에 내 손을 가져다 대며 비볐다.



[쪽]



그리고 내 손에 작게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보며 머리가 잠깐 파업을 선언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이렇게 귀여운 하늘씨가 내 옆에 있는데. 


그냥 감정이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늘씨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두면 되는 것 아닐까. 


굳이 그렇게 하나하나 다 생각하고 고민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물론 우진씨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분명 날아갈 듯이 기쁘겠지만, 그것 만으로 제가 가진 문제와 제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이 다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랑을 한다고 해서 제 인생이 다른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제 인생에서 정말 갖고 싶었던 것 하나를 가질 수 있겠죠."



"음... 그게 뭔데요?"



"우진씨요."



하늘씨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가 다 물어보기도 전에 대답했다.



"사랑해요, 우진씨. 그 때 부터 지금까지 쭉. 


이렇게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내 인생에 유일한 빛이었으니까..."



얼마나 오래 굳어진 마음일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견뎌야 했던 수 많은 나날에서 내가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나쁜 놈이 맞지만.



내 몸 위에 떨어지는 눈물만큼, 하늘씨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서 닿는 것 같았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지. 


그 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사랑해요."



앞으로는 다를 거야. 


적어도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발이 닿는 곳 까지, 서로의 손이 닿는 간격으로.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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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넘게 연재하다가 드디어 완결.


https://posty.pe/sbd9823


내일 후기 및 자료 올라올 예정입니다.

끝내려니 아쉽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래서 작성하고 예약 걸어둔 후기가 1만자를 넘어버렸어요...


마지막까지 드리프드 없이 순애 외길만 갔으니 칭찬해주세요. 인기는 없지만...

인생과 건강, 통장 잔고를 갈아 넣었어요...


몇 분 있지 않겠지만 보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