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상황이 이렇게 꼬인 걸 어쩌라고."


"하아..........."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나는 프로듀서고. 그녀는 아이돌.


그래서 해외 로케이션 4박5일 화보촬영 일이 들어왔고.


우리 사무소는 가진 예산이 부족하기에 


동남아 어느 나라 무인도를 빌렸다


일단은 빌렸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무단점거 아닐까 의심은 되지만.


아무튼.


배로 이동해서 기본적인 짐들과 함께 우리 둘을 내려놓고


촬영 기자재들을 가지러 스태프들이 다시 배로 나갔는데


저쪽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파도가 거세어져서


이쪽 섬으로는 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 줄로 말해서. 나와 내 담당 아이돌은 이 무인도에 갇힌 거다


이제는 유인도라도 불러야 하나.









다행스럽게도 짐 가운데 비상용 위성전화가 있어서 


간신히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파도가 너무 높아서 섬에 들어갈 수도 없고


설상가상 우리 배도 원인 모를 고장 때문에 수리해야한단다.


그래서 내가 성질을 부리고 있는 중이다.


"그럼 다른 배라도 불러야죠!"


"돈은?"


"......지금 이 상황에서도 돈 타령입니까?"


"아이. 그럼 뭐 어떻게 하라고. 우리도 골치아파. 그리고....."


"그리고 뭐요."


"방금 이야기가 들어왔는데. 배 부품이 없어서 일주일은 걸린대."


"하아........그럼 여기 일주일 있으라고요?"


"아니. 그게 그...일주일 뒤에는 이 곳 현지 사람들이 


바다신의 저주를 받는다고


바다에 절대로 나서질 않는 기간이래."


"뭐라고요!"


"야. 귀청 떨어지겠어."


"감독님이 입장바꿔 놓고 보면 안 그러겠어요?"


"그러겠지. 근데 아니잖아."


그래. 여기서 살아나가면 내가 너는 꼭 죽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버텨봐. 길어봐야 한 달 정도야."


"한 달이요?!"


"그래. 그 정도면 저주 기간도 지나가고 배도 수리될거니까."


".....구조 헬기 보내면 되잖아요. 걔들도 설마 안 오나요."


"아니. 뜨기야 뜨겠지. 근데 너도 알다시피. 여기는 공권력이


제대로 갖춰진 나라가 아니야. 헬기 보내려면 그것도 돈이지."


"하아......"


"그러니까. 사무소에는 내가 잘 이야기할테니까. 


여름휴가라 생각하고. 응? 솔직히 있을 건 다 있잖아."


그래. 이 나라 공권력도 별로라니까. 내가 너는 꼭...... 


더 이상 대화도 의미없고 배터리 걱정도 되어서


그냥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물론 저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혈압으로 죽을 거 같아서.








"곤란하네요~"


옆에서 함께 통화내용을 듣고 있는 그녀의 대답.


대사와는 다르게 평온한 말투와 표정.


까놓고 말해서 남 탓하기에는 정말 싫지만.


지금의 사태에는 그녀의 책임도 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100프로에 가깝지.


그녀의 사무소 내에서의 포지션은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큰언니 캐릭터.


그러면서도 내가 합류하기 이전에 유일하게


사무소에서 제대로 된 일거리가 있었던 존재.


그녀가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사무소가 파산하거나 소속 아이돌들이 어둠의 세계에


빠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사무소에서 그녀의 발언권은 실로 엄청나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런 지위를 이용해서 


인성이 의심되는 짓거리를 한다는 건 또 아니고.


그냥 사무소의 멤버들은 그녀 앞에서는 다 사린다는 느낌?


아무튼 파산 직전의 사무소에 갑자기 처음 출근한


수상한 나라는 사람을 그녀가 앞서서 반기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아이돌들과도 친해지기 어려웠겠지.


이 업계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는 게 없고 


끌어줄만한 선배 프로듀서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그나마 있었기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거고. 








이렇게 우리 사무소뿐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도 고마운 사람이지만.


그녀에게도 한 가지 나쁜 버릇이라면 나쁜 버릇이 있다


무언가 요구사항이 생기면 들어줘야 하는 것.


물론 진지하게 인성이 의심되는 그런 갑질류는 아니고.


그녀 표현대로라면 [갑자기 머릿속에서 딱 나와서 안 떠난다]


식의 들어주려면 못 들어줄 건 없는 작은 요구들.


무슨 음식이 꼭 먹고 싶다든지 게임이 한 판 하고 싶어졌다든지.


물론 항상 정중한 말투로 직접 요구해오는 것도 있고


사정상 들어주기 어려워서 못 들어주더라도 일을 내팽개친다든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프로의식 있는 그녀지만


요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컨디션이든 퍼포먼스든 확 줄어든다


내가 사무소에 처음 왔을 때도 이미 아이돌로서는 완성형이고


딱히 트러블도 잘 일으키지 않지만 


가끔씩 요구사항이 튀어나오고 어지간하면 해줘야 하는 스타일.


당연히 사무소에서 그녀의 입지가 드높고 


그 요구를 할 때의 그녀는 묘한 위압감도 있기에 


그녀의 그런 요구들은 대부분 관철된다.








이번 로케이션도 이유는 딱 하나다. 


그녀가 나와 동행할 것을 요구했음.


아직 후배 프로듀서가 없기에 여길 따라오면 당연히 그만큼


일이 밀려버리기는 하지만 [꼭 와주세요.]라는 그녀의 포스에


결국 사장님이 임시로 프로듀서 자리로 복귀하는 


엔딩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래도 안 따라왔으면 


그녀 혼자 무인도에 갇히는 참사가 날 수도 있었으니.


다행이라고.........봐야 하나?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원래는 스태프들부터 먼저 들어가서


기본적인 세팅을 하고 가기로 했는데 그녀가 


섬에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그 요구를 들어줬더니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녀도 설마 그럴 줄은 몰랐을 테니까 


그녀에게만 다 뒤집어씌우는 건 조금 억울하겠지만.


뭐 어쩌겠어.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우선은 살아야지.


그 감독놈 말대로 그래도 4박5일 로케이션을 잡았고


스태프들까지 여기에 있는 걸 전제로 짐들을 가져왔으니까.


우리 둘 빼고 8명 정도가 더 오기로 했으니까


일단 물하고 식량은 대략 40-50인분 정도가 있는 셈이네.


둘이 나눠 먹으면 조금은 아껴야겠지만 그래도 한 달은 너끈해.


그래도 물하고 식량을 현지 조달할 방법도 생각해야겠어.


텐트도 여러 채 있으니까 내 거하고 그녀 거 


그리고 짐 넣어놓을 창고용으로..... 총 세 동을.







"텐트는 두 개만 치면 되겠네요. 창고용하고 우리 잘 거."


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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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신공!!


킹치만 너무 길면 순붕이들 눈 아프니까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