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어렸을 때 첫 연애 하고 사별하고, 두 번째 사별을 겪어버렸네.

우선 내 나이는 30대 중반 아저씨가 다 되가. 그리고 내가 한국 처음 왔을 때가 대략 20년 전이지.

하늘의 별이 된 사람을 "희연"이라 부를게. 애칭이었었어. 실명하고는 거리 많이 머니 괜찮아.

그때 국제학교를 잠깐 다녔었는데, 이때 희연이를 처음 만났어.

덩치만 크고 말투는 어눌하게 한국어하고 잘 때 건드리면 괴상한 말로 사람 웃게 만드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날아온 건 주 먹이였지.

농담이 아니라, 내가 희연이 정보를 막 뿌리고 다녔다는 거야.

난 그때 희연이는 무슨 싸이월드는 당연히 모르고 밥 같이 먹을 사람도 없어서 혼자 도시락 컵라면에 마요네즈 한가득 넣어서 먹고 있었는데.

내가 억울해서 그때 처음으로 한국어가 되게 유창하게 튀어나왔음.

아직도 기억나는데, 내가 첫 운을 "야 이 미친년"으로 시작했다는 거 정도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렇게 서로 싸우다가 하필 지나가던 선생님이 딱 보고는 뺨 얻어맞으며 오피스로 끌려갔지. 한국으로 치면 교무실 정도

덩치 차가 거의 30센티미터 나서 내가 주먹 휘두르진 않았는데 목소리는 블루투스 스피커보다도 커서 내가 일방적으로 몰려서 멍들 정도로 많이 맞았음.

한 2시간 지났나 내가 안 했다는 걸 인증하고 자초지종 설명하니까 날 보내서
궁금해서 문 살짝 들여다보는 순간 그때 희연이 뺨 때리더라고.

그때는 존나 통쾌했는데 한 이틀 지나고 나서
또 라면에 마요네즈 한가득 들고 룰루랄라 카페테리아 가니까 미안하다면서 초콜릿이랑 손 편지를 가져다줌.

난 이때 말만 잘하고 한글을 잘 읽지는 못해서 일단 보관하고 먹으려는데 갑자기 빡쳤는지 마요네즈를 내 라면에 더 뿌리는 거야.

아니 시발 내 소중한 황금비율 도시락이….그런데 그때 똘끼 넘치는 행동을 나도 했는데
마요네즈 들고 옷에 뿌렸음.

서로 또 싸우고 끌려가고 서로 한 대씩 또 맞고 반성문 쓰고 하는데 한 방에서 반성문 쓰는데 이년이 갑자기 주먹을 날리네?

나도 아주 화나서 주먹 휘둘렀는데 빗나가고 무릎 차기 꼽히고 주먹으로 맞고 해서 졌음. 진짜 일방적으로 맞음.

180에 92kg 정도 된 남자가 160도 안 되는 여자한테 진 거야.

물론 제지당하고 엄청나게 혼나셨지만.

그때 이후로 손절했다가, 하필이면 같은 팀으로 프로젝트를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음.

여기서 내가 그냥 알아서 기었는데 이때 갑자기 많이 친해짐. 내가 생각해도 참 머저리 같은데.

말 트고 하다 보니까 대화하면 재미있더라고?
이때 정도면 나도 한국어랑 영어 되게 유창하게 시작되던 시기였으니까.

그래서 발표도 잘 끝내고 뒤풀이로 커피숍 가서 커피 마시면서 막 서로 욕하고 웃고 그러다가 내가 문득 그 편지에 뭐 적혀있었는지 궁금했어서 한번 물어봄.

그런데 그걸 아직도 안 읽었냐면서 웃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되게 이상해졌음.

황급히 해어지고 집 와서 찾아보니까 먼지 쌓인 상태 그대로 있는 편지지를 읽어보니까 때려서 진심으로 미안하고 상처 많이 받았을 텐데 조용하게 넘어가 줘서 고맙다고 하고….쭉 읽어보니까 어딘가 되게 익숙한 007 번호를 적어놓은 거야.희연이 번호 내?

아무튼 그때 이해하고 편지 내용 가지고 물어보기도 뭐해서 그냥 가슴 달린 불알친구로 지내다가.

내 부모님 모두가 돌아가셨음.
자세히 말하진 못하겠지만 이때 받은건 돈인데.
얻다 쓸 거야. 부모님은 이제 없는데.

집 돌아와서 맞아주는 엄마, 늦게 오셔도 항상 아들 바보인 아버지.둘 다 한 번에 갑자기 먼지처럼 사라지셨어.

당시에 학교도 거의 6달 못 나가고 그랬었는데 희연이가 정보 알아내서 내 집에 와서는 집 치우고 뭐 먹이고 지가 요리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랬음.

사연 들어보니까 희연이는 지 가정사를 다 말해줬는데, 자신은 9살 때 부모님 두 분 다 죽고 삼촌 집에서 살고 있다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해줬음

그리고 정신 차리라면서 나 줴패고 이때부터 아마 특별한 감정을 심연 어딘가에서 가지게 되었을 수도.사회 나가고 하면서 소원해졌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술고래 둘이 만나서 술 진탕 마시고 놈.

지 남친 생겨도 나를 남자로 인식 안 하는 건지
남친 생겼어도 계속 불러서 술 마시고 보내고 그랬었음.

그렇게 거의 술친구로 지내다가 딱 1달 전쯤 연락이 옴.

제 남친이랑 헤어진 기념으로 양주 까자고.

그래서 나는 어이구 이게 왜 떡 이러면서 있는데
내 집으로 온다는 거야.

내 집은 좁쌀만 한 데 안쪽은 더 더럽고 하드 안은 더 더러웠는데….그냥 놔뒀음. 나 미친놈 맞음.

그냥 대충 치우고 상 펴고 치킨 4마리 시키고 기다렸는데 희연이 얼굴이 사람이 죽어있음.
진짜 죽은 눈으로 있어서 심각성 깨닫고는
다 집어놓고 소파에 앉힘.

그랬더니 갑자기 일어나서는 술병 까고 제 혼자 진탕 마시다가 울면서 사연 까기 시작함.

제 남친이 40대 초반 어제였는데, 되게 다정하고 그래서 결혼까지 생각했다가 보니까 유부남에 애만 3명이었던 거야.

바람피운 거고 내연녀 신세 된 거지.평소였으면 놀렸겠지만 놀리면 또 맞을 거 같고
선 넘을 거 같아서 들어주고 같아 술 먹고 그랬는데 필름 끊긴 다음 날 아침에 서로 알몸으로 침대에 있었음.

내 주변에는 쓰레기통 안에 있는 쓴 콘돔 덩어리들이랑 휴지가 있어서 대가리가 구르다가 멈추고 구르다가 멈추고 그랬음.

일단 옷부터 입히려는데 되게 무거워서 낑낑거렸음.

그러다가 일어나서 대충 상황 파악 끝낸 나랑 희연이는 황당해하고 있다가 베개 던지고 난리가 나다가 진정하고 희연이가 내가 어제 했던 병신 짓을 차례대로 나열해 줌.

뭐 사랑 고백했다  했다 등등이었는데
병신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즈음 보니 와꾸도 괜찮고 사람 인성도 훌륭하고 키도 크고 갑자기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아서 그냥 무조건 돌진으로 고백 갈겨버렸음.

결국 사귀기로 하고 연애하는데

부랄친구였었어서 조심할 게 단 하나도 없어서 편하게 함. 준 동거 수준에 술은 마시면 진탕 마시고
바뀐 거라곤 세탁기 넣기 전 정액이나 애액 있는 거 확인하는 거 정도…?

속궁합은 훨씬 더 엄청났었음.

그래서 연애 안 끝나고 이어졌었나 보다.. 이어졌었나보다….그러다가 한 달 만에 잠깐 시골로 내려간다고 해놓고 터미널에서 잘 가 멍청이야
이러다가 좀 많이 맞고 보내줬는데

새벽에 벨소리가 울렸음. 울렸음.
희연이 밸소리여서 뭐지 했는데 다급해 보이는
낯선 여자 목소리랑 의료 용어 소리치는 남자 목소리 그리고 떨리는 음성까지 딱 직감함.

사고 났구나.

들어보니까 병원이고 긴급연락처에 있어서 전화했다네.
병원 위치 알려주고.

난 그때 홀린 듯 내 차 몰고 300km 넘게 떨어진 곳으로 갔음.

가보니까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라.

처음엔 현실 부정하고 두 번째는 울다가 마지막으로는 맥 빠져서 생각이 없다는 글을 봤는데 내가 그랬더라.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내가 뭘 해줬더라도 사랑했다고는 해줬나 내가 같이 갔으면 과연 누가 죽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장례식장에서 거의 폐인처럼 지내다가.
잊으려고 커뮤니티 질도 해보고 했다가 포기하고 술 마시면서 계속 생각이 나는 거야.

둘 다 부모님 일찍 돌아가셔서 서로 공통점이 참 많아서 장난식으로 먼저 죽으면 서로 무덤에 남장/여장하고 오줌 갈긴다. 이런 실없는 소리 했던 기억부터

서로 사랑한다던 기억까지 한순간에 다 떠오르더라.

살아있을 때 잘해줄걸이라는 후회가 가장 의미 없는데 그걸 또 하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뭔갈 찾으려다가 실패하고.

그래도 난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런 모습 보여주기엔 초라하니까.
희년아.

네가 친구였을 때 내가 했던 행동들이
정말 실없고 재미도 없었는데.

넌 항상 맞장구쳐주고 때리고 하면서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었는데.

우리가 그날 이후로 연인이 되고 나서
그때부터라도 다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먼저 갔어.

내가니 몫까지 살긴 힘들 거 같아.
그래도 네가 그동안 나한테 해줬던 것들
빚이라도 다 갚으려고 살아갈 거야.

미안해. 사랑해.

기내.

주작이라 생각할 사람은 그렇게 해..
차라리 모든것이 주작이고 시작되지도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