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Episode: [8-4] 개화




"...그럼, 저번 봄에 미타키하라에 닥쳤던 폭풍도 그 마녀의 짓이었던 건가?!"


토요일, 오후 9시 29분

카미하마 시 외곽 모처


정확해, 이즈미 카나기. 발푸르기스의 밤은 결계라는 개념이 따로 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폭풍으로 인식되는 마녀야. 그때 미타키하라에서도 그 마녀를 막기 위해 마법소녀들이 노력했지만, 끝내 도시가 붕괴하는 걸 피할 수 없었지.


"허어... 그렇다면, 카미하마에는 언제쯤 당도하게 되겠나?"


지금의 접근속도라면, 내일 밤 자정을 넘어서 도착하게 될 것 같네.


"시간이 정말 얼마 없군... 그 전까지 카미하마 마법소녀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그 마녀를 막아설 수 있겠나?"


너희들의 인과의 총합이 그 전설적인 마녀를 막아세울 만큼 강하다면야 막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전멸을 피할 수 없겠지.


"어렵다는 말인가..."


어쩌면 카미하마 바깥에서 인과가 매우 큰 누군가가 그 마녀의 도래를 막아 달라고 소원을 빈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네.


"아니다... 무고한 소녀들을 마법소녀의 세계로 또 끌어들일 수야 없지."


하지만 누군가가 정말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면, 우리로서는 그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걸.


"...그 마녀 이야기는 이쯤 하지. 한 가지 질문이 더 있는데, 카미하마의 도플에 대해서 자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플 시스템이라면 카미하마 밖에서 우리한테 물어보는 소녀들이 꽤 많아. 너도 도플에 대해 궁금한 거니?


"도플이 될 때마다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같다. 자네도 계약을 했으니 알겠지만, 츠카사 군과 츠쿠요 군 말이다. 츠카사 군은 인간으로서의 윤리의식이 희박해지는 것 같고, 츠쿠요 군은 친밀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같더군. 자네 아는 게 있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상정할 수 있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인지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네.


"두 사람은 도플이 되어서도 유독 의식을 갖출 수 있었지만, 오늘 만났을 때에는 의식을 잃는 것 같았다. 야쿠모나 나나미 쪽에서는 도플을 긍정하는 마법소녀들은 의식을 갖출 수 있다고 추론하고 있더군. 그 부작용은 의식을 갖춘 마법소녀들만 겪게 되는 문제인 건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도 확신할 수는 없어. 의식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제보가 필요해. 하지만 의식을 갖고서 도플이 되었다면, 그 도플에 대해 그 사람이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고 봐야겠지. 이미 그 마법소녀의 영혼은 반쯤은 마녀와 다를 바가 없어진 셈이야.


"도플에 저항하지 않는다...?"


도플로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많은 소녀들이 질문하는 단골 주제야. 우리가 세운 가설은, 마법소녀가 품은 희망은 그들의 영혼이 도플이라는 상태를 거부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거야. 희망을 품은 마법소녀는 그것을 짓밟는 존재가 뭐가 됐든 저항할 수밖에 없어. 반대로 희망이 없다면, 도플로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예상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츠카사 군과 츠쿠요 군이...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허나 그들에게는 분명 서로가 있을 것인데..."


마법소녀들이 희망을 잃은 뒤로도 매달리는 것이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두 사람이 객관적인 현실에 대해 절망했고, 서로를 향한 애착에만 매달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두 사람은 우리와 한날 한시에 계약했지만, 그 계약은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상전이가 아니라, 절망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었다는 의미가 되겠네.


"...그런가. 자신들은 모두가 필요 없고 서로만 있으면 된다던 말은... 그런 도피적이고 냉소적인 의미였던 거로군."


고마워, 이즈미 카나기. 아마네 자매의 일은 우리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제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로서도 더 신뢰할 만한 가설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


"자네들의 사의는 딱히 받고 싶지 않다만... 본인도 자네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츠카사 군이 마음을 닫은 이유가 현실에 대한 절망 때문이라니, 아무래도 죽공방에 뭔가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모양이겠군."


*


비슷한 시각

펜트호프 호텔 1층

다용도 창고 뒷편


"흐음~ 도플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펜던트는 왜 그렇게 난폭하게 만들었는지 토우카쨩이 설명하라는 거지...?"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토우카 님! 이들은 그저 배신자일 뿐입니다."


"뭐 어떻든 토우카쨩은 상관없긴 한데, 왜 부작용이 있고 없고에 신경쓰는지는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야─ 어렵네..."


여러 명의 마법소녀들이 결박당한 채 무릎꿇려져 있었고, 토우카가 평소와 같이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심지어 그녀는 배신감조차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펜던트 건은 토우카쨩보다는 네무가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네무 뭐 한대?"


"네무 님은... 지금은 일찍 주무십니다. 아까 귀가하시고 나서 방에서 한 차례 도플이 되셨거든요. 그 충격파 때문에 방이 아수라장이 됐고, 저희가 잘 진정시켜서 어렵사리 재워 드렸습니다."


토우카의 곁에서, 첩보 담당 금발 마법소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도플에서 되돌아온 네무는 울다 못해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고, 금발 소녀가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네무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중이었다.


네무 님... 꼭 기억하세요. 네무 님은 잘 견뎌내고 계신다는 거, 저는 알고 있습니다. 더러운 인간들이 네무 님에 대해서 뒤에서 뭐라고 하든, 저는 신경쓰지도 않고 믿지도 않을 겁니다. 뜬소문은 뜬소문일 뿐이에요.


나... 나 있잖아... 무슨 이상한 괴물한테, 내 몸을 빼앗겨서, 조종당하는 거면 어떡해...?


...네에?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네무 님은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걸까... 끔찍한 현장을 목격해서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시는 걸까. 금발 마법소녀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정신 조작 마법을 갖춘 사람을 수소문해서 네무를 진정시켜 달라고 연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나저나 첩보 담당한테도 무관한 건 아니니까, 마기우스의 약속에 따르면 이 인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아... 네. 작게는 소울 젬을 빼앗고 유폐, 크게는 소울 젬을 부수는 것...입니다."


"흐음... 토우카쨩이 이런 결정을 하기는 익숙하지 않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래?"


첩보 담당으로서도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반란 행위라면 유폐가 맞지만, 아까 전 헬리포트에서의 상황을 중대한 반란 행위로 해석한다면... 물론 이 반란자들을 압송해 온 깃털들은 중대하다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중대하진 않아 보입니다. 단순히 소문 하나를 일시적으로 비활성화시켰을 뿐이고, 토우카 님이 네무 님의 책 자체를 맡기신 시점에서, 일시적 비활성화만 따로 금지하셨으리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 상황 판단의 엇갈림만으로, 마법소녀의 소울 젬을 부숴야 한다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토우카쨩도 그 책 넘겨주면서 현장의 판단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럼 있잖아, 지금 같은 상황에 이로하 언니랑 내통하려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건 중대한 반란 행위일까나?"


흐읍 하면서 첩보 담당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거, 대답 잘 해야 한다... 토우카 님이 내 충성심을 의심하고 계시는 거구나.


"...그런 판단을 할 때에는, 전후사정을 전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으응, 아까 네무 맛폰에서 엄청 재밌는 문자를 봤거든! 이거 봐!"


네무, 근신 풀리면 제가 이로하 양에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해 볼게요. 불안해하지 말아요. - 08:51 PM


토우카가 자기 폰카로 찍은 네무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자, 첩보 담당의 안색이 변했다. 발신자, 아즈사 미후유. 그 문자에 대해서 네무 쪽에서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네무는 그 정도는 상황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똘망똘망한 아이야.


그나저나 이걸 누가 찍은 걸까. 토우카의 스마트폰을 만져 보니, 이건 토우카가 직접 찍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토우카에게 제보한 사진이었다. 어쩌면 첩보 담당이 연락했었던 그 마법소녀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대체 어쩌다 네무 스마트폰을 뒤적이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적어도 그런 일에는 자신보다 첩보 역량이 뛰어난 것 같았다.


"...미후유 님, 이럴 수가."


"네무가 미후유한테 만년 벚꽃의 소문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 모양이야. 네무 방에 들어갔던 인원이 미후유 답장을 보고 놀랐다고 그러더라구. 토우카쨩으로서는 이것도 판단하기가 참 힘드네에─."


어쩌면 네무 님의 휴대폰에 문자가 올 때마다 알림음이 울리는 기능을 꺼 드렸어야 했을까. 첩보 담당은 이제 와서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눈만 감으면 미후유의 순한 눈망울이 어른거릴 정도였지만, 그녀로서는 속마음이 어떻든 간에 힘겨운 판단을 해야 했다.


"아직은... 그 한 마디뿐이니까, 실제로 어떻게 내통하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역시, 중대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다소 부족합니다. 소울 젬을 부술 수는... 없습니다."


"뭐어─ 그래! 당신이 나보다 나이도 많으니까 잘 생각해서 판단했겠지! 오늘 얘기 나온 사람들 전부 소울 젬 압수해서 지하실로 내려보내."


토우카의 명령에, 지금껏 흔들림 없이 예를 갖추고 있던 깃털들이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죄인들이 다시 끌려나갔고, 토우카의 곁에는 첩보 담당만이 남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토우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토우카쨩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네. 하지만 긴장 풀어도 괜찮은걸.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간에, 토우카쨩으로서는 이젠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거든."




꧁ঔৣ?༺*───────༒───────༻*?ঔৣ꧂


Magia Record Rewritten

 대편의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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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7시

카미하마 신세 구

미카즈키장


알람 소리가 내 잠을 깨웠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내 몸은 평소보다 얌전하게 이불로 덮여 있었다.


"으음...?"


알람을 끄고 나서 이불 속에서 잠시 온 몸을 꼬물거렸다. 온 몸이 솜사탕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솜이불이 내 피부로 포근하게 감겨 왔다.


내 피부로...


...아 참.


순간적으로 으윽, 하면서 이불을 움켜잡아 목덜미를 감쌌다. 그, 그래... 어쨌든 나는 뭐라도 가져다가 몸을 가려야 한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래도 펠리시아쨩이 아침잠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 애가 아침잠까지 없었으면 당장 내 방으로 쳐들어와서 이불을 확 벗겨버렸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건...


...언니? 안 주무셨어요?


으응, 아직 안 자는 거지? 그냥 잠들려니까 좀...


괜찮아요 언니!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나도 참, 이 나이 먹고 이게 무슨 꼴인지.


에이 아니에요... 제가 항상 말하잖아요, 우린 마법소녀라구요. 잠들 때까지 같이 얘기해요, 언니 헬리포트에서 엄청 힘들게 싸우셨다면서요...


어젯밤에 야치요 언니는 자신의 방문에 몹시 민망해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나는 그녀를 마냥 우러러보기만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 조금도 놀라지 않고, 비웃지 않고, 이상해하지 않고, 따뜻하게 내 침대로 안내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싱그러운 열아홉 살의 몸 속에 갇힌 열두 살의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때 야치요 언니는 헬리포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솔직하게 다 말해 주었다. 그들이 언니한테 뭐라고 했는지, 그들이 언니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어둠에 휩싸인 이불 속에서 노란 커넥트 문양이 맹렬하게 불타오르듯 빛났고, 그 빛에 비친 언니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언니도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만큼은 열다섯 살 여자아이로서가 아니라, 야치요 언니의 영혼의 동반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언니의 몸을 감싼 보드라운 천을 조심조심 모두 끌러냈다. 언니가 누운 몸 위로 올라가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었다. 그들이 언니의 몸을 심연으로 끌어내렸으니, 나는 언니의 몸을 저 높은 곳으로 다시 끌어올릴 것이다...


예전 그때처럼 온몸이 웅웅 울리면서 숨이 가빠 왔다. 이번에는 어찌나 팔이 떨리는지 언니가 내 팔을 주물러 주었을 정도였다. 언니의 콧김이 내 입술에 부딪히는 동안, 나는 깊은 물 속으로 확 끌려들어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의 몸은 내가 상상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습하고 끈적이는 감촉으로 밀착해 갔다.


뭐... 그냥 어젯밤에 이것저것 엄청 했다는 얘기다.


몸을 이불로 두른 채 침대 아래로 조심조심 손을 뻗었다.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며, 내 몸을 다시 파스텔톤의 옷가지로 조심스레 감싸 덮었다. 내 몸을 감싸고 돌던 언니의 손끝의 촉감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또 다시 이불 속에서 웅크린 채로 숨을 몰아쉬고 싶진 않아서.


옷도 입고 세면도 하고 사람 꼴을 갖추고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TV가 켜져 있고 야치요 언니는 혼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곁으로 다가갔을 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고, 언니가 다정하게 미소지어 주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우리는 가벼운 아침 키스를 나누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TV에서는 날씨 예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전 문제는 전기 회사에서 밤새 고생해서 해결했다는 모양이다.


「 오늘의 날씨입니다. 극심한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카미하마는 오늘 저녁부터 날이 흐려져 자정에는 호우특보가 발효될 예정입니다. 매우 강한 돌풍과 천둥, 번개, 우박이 예상되오니, 시설물 피해에 주의하시고 예보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오늘 밤에 이렇게까지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사나쨩이 고양이처럼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그러게, 예보가 오늘 갑자기 바뀌었네..."


참, 사나쨩에게 그녀가 어제 도플이 되고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부 말했다. 힘겨운 일일수록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눈이 크게 뜨였지만, 그녀는 이내 침착하게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랬었네요. 제 도플이 그렇게 난폭한 것일 줄은... 제가 후타바 일가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 그런 걸 봤었더라면, 은근히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럼, 지금은 스스로의 도플이 싫은 거야?


싫지만... 다시 나타날 일 없게만 하면 되니까요... 벌을 주고 싶은 사람보다는,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요.


식사 시간의 화제는 사나쨩이 낯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거였다. 어제 저녁에 호쿠요 구에서 조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첫 조정을 받은 마법소녀 몇몇과 인사할 일이 있었는데, 표정들이 밝지가 않길래 이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건가 싶어서 진땀이 났다는 모양이었다.


"뭐어... 사나쨩이 미즈나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경직돼 있어서 그럴지도... 아니면 서로 낯가림이 심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쪽도 알고보니 사나쨩처럼 얌전한 타입이었다거나!"


"...그, 그랬으려나요. 저는 상대방이 고개만 돌려도 제가 뭘 잘못한 건가 싶어서..."


"에에,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 없잖냐! 따라해 보라구, 예에─이! 요즘 어떠냐아─?!"


"예, 예~이! 어떠냐~? 요, 요즘 어떠냐~? ...아으, 모, 못하겠어요!"


"ㅋㅋㅋㅋㅋ 그럼 이것도, 이것도! 야아아─! 잘 지내냐아─!!"


"가, 갑니다... 으흠, 음, 야아아~! 잘 지내냐~? ...느낌 나왔나요? 이, 이런 건 처음이에요."


"...펠리시아, 사나, 밥 먹을 때는 집중해서 먹자?"


"아아, 넵... 근데 저는 이상하게, 상대방이 움츠러들면 제가 싫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나쨩, 미리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잖아? 모두가 사나쨩을 좋아할 수는 없어. 사나쨩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나쨩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로 가면 되지 않을까?"


"사나가 막, 만만해 보여서 그럴지도 몰라. 팍 하고 기선제압을 해야지. 뭘 꼬라봐?! 척추를 접어 버릴라! ...이렇게!"


"처, 척추를 접어 ㅂ─ 푸흡...!"


"너희들...! 언니 두 번째 경고하는 거다?"


"죄, 죄송해요! 갑자기 웃겨서...!"


"우웃, 먹을게, 먹으면 되잖아!"


"...일단 밥 먹고, 이따가 점심에 츠루노쨩 오면 그때 한번 더 상담해 보자!"


사나쨩은 말은 그렇게 해도 정말 많이 변한 사람이었다. 옛날의 그녀는 그 누구의 사나쨩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카즈키장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야치요 언니의 사나쨩이 되었다. 기억 뮤지엄 이후 탈출해 돌아온 뒤로는 미카즈키장의 사나쨩이 되었다. 그리고 킬레이션 랜드와 만년 벚꽃의 소문을 거치며, 지금 그녀는 모두의 사나쨩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만년 벚꽃의 소문에서 돌아가는 동안, 스스로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았었다. 솔직히 내 이름까진 아니어도, 야치요 언니나 츠루노쨩 같은 이름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떠올린 이름들은 그게 아니었다. 미후유 씨, 알리나 씨였다. 특히 알리나 씨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매번 알리나 씨한테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던 것 같아요. 미후유 씨도... 마법소녀의 진실을 알려주셨던 분이고, 적으로도 또 한 차례 만났었지만, 그때도... 네,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때 조정상에 도착하기 전, 무언가를 그녀에게 조용히 건넸다.


이건...?


으응, 벚나무 가지야. 아까 소문의 내용을 완전히 지워버린 게 아니거든. 그 애들이 모르는 사이에 소문의 내용을 대폭 줄였어. 이제 이 나뭇가지는 우이를 만나면 화사하게 개화할 거야. 앞으로는 이걸 들고 다니면서 우이를 탐색하는 걸 도와줄 수 있겠어?


그때 사나쨩은 손에 들린 벚나무 가지를 조용히 바라보았었다.


그 정도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니지만... 아까 이로하 쨩이 그랬잖아요, 넷이서 다시 재회하고 싶다는 희망을 담은 소문이었다고... 이로하 쨩이 그 희망을 버린 것 같아서 저는 마음에 걸려요...


......


이로하 쨩이 재회의 꿈을 계속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그저, 조금은 빙 돌아갈 뿐이라고 믿어요.


...아직 희망을 버리진 않았어. 토우카쨩도 네무쨩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거야. 우이도... 언젠가는 꼭...


토우카쨩과 네무쨩을 예전의 그 모습으로 되돌리는 게 더 쉬울까, 아니면 우이를 다시 만나는 게 더 쉬울까...


내가 우이를 찾을 수는 있을까. 정말 엄청난 일들이 잔뜩 있었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토우카쨩과 네무쨩에 대해서도 어쨌든 다시 만났지만... 내 동생 우이. 그 그리운 아기새만큼은 정말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발푸르기스의 밤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이는 지금쯤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걸까...


*


시간 불명

펜트호프 호텔 지하실


잠에서 깨긴 했어도, 지금이 몇 시인지,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두런거리지 않는다면 이곳에는 정말 완벽한 정적이 흐를 뿐이었다. 지금이 정확히 그랬다. 일부러 최대한 늦게, 더 늦게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쌍둥이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우리 셋을 위한 아침식사는 물과 칼로리 바가 전부였다. 너무한 거 아닌가? 사람이 이것만 먹고 어떻게 살아...


마지막으로 숨쉬고 있었던 바깥 공기를 떠올렸다. 바깥 상황을 추측이라도 하려면 그거라도 떠올리면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어젯밤의 기억을 계속해서 재생했다. 그때 나는 미적분 문제를 풀던 중이었다.


...미후유 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네무 님께 보내셨던 문자, 토우카 님이 발견하셨거든요.


으응,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됐군요... 그걸 왜 당신이 죄송해하나요.


소울 젬 반지는 빼서 저한테 주세요. 지하실로 모시겠습니다... 약은 안 챙기시나요?


아 참, 그렇ㅈ─ 그, 그그그것도 알고 있었나요?!


...깃털들이 미후유 님한테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셨군요? 아주 소문이 파다해요.


첩보 담당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었다. 미후유가 알고 있는 네무는 차디차고 냉혹한 시설을 만들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지금 이곳이 딱 그랬다. 어두컴컴하고 가구가 없다는 것만 빼면, 그냥 평범하게 커튼이 있고 카페트가 깔린 호텔 방이랑 똑같았다. 지금 알았지만, 여기는 심지어 배수로와 마주한 창문으로 얇게 햇빛이 들어오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방이었다.


그때 깃털들이 몇 명의 소녀들을 묶어서 끌고 와서는, 각각의 방에 한 명씩 밀쳐 넣는 모습이 보였었다. 쟤네들은 또 뭔 죄를 지어서 여기 끌려온 걸까. 오늘 낮까지만 해도 같은 깃털 동료였을 사람들끼리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우리가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쟤네들은 여전히 동료를 저렇게 거칠게 대할 수 있었을까.


첩보 담당이 내게 마음을 열고 있는 소녀라는 건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여깁니다. 들어가서 좀 쉬고 계세요. 길게 말씀드릴 여유는 없지만, 해방이 눈앞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어이 당신! 그 방에는 이미 쌍둥이 자식들이 들어가 있잖아! 배신자들끼리 또 엮어줄 셈이야?!


그 거친 소녀들이 거칠게 시비를 걸었다. 이 아이가 괜히 나 때문에 욕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 괜히 움츠러들었다.


...마기우스의 약속에 독방 만들라는 얘기는 없을 텐데 말이죠. 있는 것 같아요? 얼마 걸래요?


이 새끼... 예전부터 아즈사 미후유랑 놀아나는 것 같더라니...! 당신도 배신자 아냐?!


아 참, 당신 어젯밤에 꽤나 달달하시던데. 동료와의 불운한 입술 박치기라기엔 너무 깨가 쏟아져서 사진 한 장만 찍고 갔었거든요. 벌써 서로 이름도 아시던데?!


크읏, 그, 그건...!


제가 웬만하면 다 봐 주니까 제 고유마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모양인데... 저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어른들 몇 명 인생 쫑내고 들어왔거든요? 저는 조직의 규칙 위반자를 잡는 사람이 아니에요. 남들 더럽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들 카메라로 찍어서 약점 잡는 사람이지.


아... 알았어! 아니면 아니라고 할 것이지 뭘 쓸데없는...!


...우리는 당신이 레즈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아 시끄럽다고─!


그 깃털은 본전도 못 건진 채 동료들에게 괜히 짜증을 내며 황급히 내뺐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첩보 담당이 입을 열었다.


근신 장소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저런 인간들이 어쩌다 실권을 잡았을 뿐, 미후유 님을 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많습니다... 사실, 저희는 마기우스를 따르기 이전에 미후유 님을 따르는 거예요.


토우카를 신뢰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토우카 님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니까요. 미후유 님이 토우카 님의 비인간적인 말씀들 하나하나를 상냥하게 중화시켜서 저희에게 전달해 주신다는 거, 알고 있는 사람들 은근히 있습니다. 저 인간들은 그걸 모를 뿐이죠.


그렇게 들어온 방이었다. 침대도 없는 방 한쪽에 대충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쌍둥이와 함께 늦도록 이것저것 대화를 나눴었고, 많은 걸 알게 됐다. 헬리포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쌍둥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얏 쨩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쌍둥이의 부작용이 무섭도록 심각해져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수신 펜던트의 소문 때문에 둘이서 폭주하면서 마구 도플로 변해 버린 탓이었다. 츠쿠요 양 쪽이라면 그래도 매번 기억을 다시 알려주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불행히도 츠카사 양은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미후유 님이 여기 들어오실 때요, 예전의 저라면 아마 울었을까요?


츠카사 양, 이거 꼭 기억해요. 츠카사 양과 츠쿠요 양은 꼭 닮은 쌍둥이라는 걸요. 아까 츠쿠요 양이 오히려 저를 격려하면서 맞이해 줬듯이, 츠카사 양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격려해 주었겠죠.


울지 않았어도 제가 따뜻할 수 있나요...?


츠카사 양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을 잊었을 뿐이에요. 같이 하나하나 알려드릴 테니까, 이제부터 다시 익혀가는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지하수로에서 실패했던 그날 밤, 내가 두 아이를 불러다가 위로하면서 따뜻하게 안아주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행히 츠카사 양 쪽에서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츠카사 양이 보충해 주었다. 그러면 츠쿠요 양은 마치 지금 또 위로를 받는 것마냥 훌쩍이면서 내 품으로 파고들어왔었다.


그때 제가 그랬었죠. 두 사람이 자꾸 스스로를 몰아세울까 봐서 걱정된다고요.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사람, 최근에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요. 그러다 보니 이것도 괜찮아, 저것도 괜찮아 하면서... 점점 물불 안 가리는 모략에 휩쓸려 버리게 된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좀 더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겠죠.


그래서 우리는 같이 옛날 얘기를 하다가 함께 끌어안고 한동안 울었다. 쌍둥이는 자신들이 이해받고 배려받는다는 느낌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만끽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무리짓듯이 했던 말이 아직도 떠올랐다.


...저는, 어쩌면 제가, 어쩌면 우리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미카즈키장이 옳았어요. 카나기 양이 옳았어요. 마기우스의 날개에서, 우리 셋은 행복할 수 없어요. 저는 어쩌면 미카즈키장으로 돌아가야 했는지도 몰라요.


지금 칼로리 바를 씹으면서 생각해 보니, 마기우스의 날개에도 마음을 열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의외로 있었겠다 싶었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했다. 서로는 공통의 목표만을 공유하는 관계, 서로에게 이름을 비롯한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추가한 조항이었지만, 나는 틀렸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소녀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얏 쨩의 해산 선언이 어쩌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었다. 지금 얏 쨩은 이로하 양을 통해 치유받고 있겠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못난 나 때문에 나날이 상처입고 있다.


"...지금쯤이면 몇 시나 되었을지요."


"츠쿠요 양... 깨어 계셨군요."


어둠 속에서 모로 누워 웅크리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얇은 햇살 덕분에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향한 쪽으로는 똑같이 생긴 다른 소녀가 마주보고 모로 누워 있었다.


"저도 안 자요... 미후유 님."


"츠카사 양까지..."


"...이 사람 저 사람,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아마도 이게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거겠죠?"


"누구 생각했나요?"


"그냥, 죽공방의 아빠랑... 제자들... 타케 씨... 다들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아침식사 차려줄 사람도 없는데... 아빠는 지금쯤 딸이 가출했다고 찾으러 다니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랑, 카나기 씨도..."


츠카사 양의 목소리가 조금씩 잠겨들었다.


"...저를 그렇게 소중하다고 하시는 분인데, 정작 구하질 못하셨으니 지금쯤 무슨 생각 하고 계시려나... 그 사람, 내 일이라면 아예 맨발로라도 달려오실 성미인데... 여지껏 몰랐었단 말이죠. 그분이 어떤 마음인지, 지금껏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항상 귀찮다고 짜증만 냈었고..."


"...그래요 츠카사 양, 그렇게 조금씩 다시 깨달아 가는 거예요! 츠카사 양은 다시 상냥함을 회복할 수 있어요. 츠카사 양이 떠올린 그 사람들이 바로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왠지 타케 씨가 내 어깨 너머로 훔쳐보던 경험 살려서 요리를 하지 않을까, 쭉 상상해 봤었는데... 그럼 저한테는... 아빠보다 타케 씨가 더 소중한 건가요...?"


다같이 가볍게 웃었다. 츠카사 양은 항상 누군가를 비난할 때 당신도 타케 씨랑 똑같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지.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 대체 얼마나 미운 털이 박혔던 걸까 싶은 의아함이 줄곧 있었다.


"소녀도... 막상 떠오르는 사람들은 없사옵니다만... 츠카사쨩 말대로라면 저희 할머니께서도 연락 없이 외박했다며 많이 걱정하실 터인데... 혹여나 혼절하지는 않으셨을지..."


"그렇네요, 미즈나가 아니라 어디라도, 십대 소녀가 연락도 안 하고 외박한다면 큰일이니..."


"츠쿠요쨩, 나 그리고 또 소중한 사람 얘기해 줬던 거 있었잖아! 그... 미즈나 여학원에서 미타마 씨가 누명쓰고 쫓겨난 후에, 학교에 그 소문이 퍼지는 걸 막으려고 애썼다면서?"


"네에, 그 일도 어제 얘기해 주셨지요... 물론 소녀가 당시 동분서주하고 물심양면으로 애쓰기는 했다 하여도, 미타마 님이 소녀의 노력을 기억하실 리는 없지 않을까요..."


"그, 그리고 또 있잖아! 그... 우리 어릴 적 산타 언니! 그 사람도 츠쿠요쨩한테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후훗, 츠카사쨩의 그 이야기도 기억하려고 애쓰고는 있사옵니다만, 그분이야말로 지금쯤 정말로 소녀를 모르고 계시겠지요..."


츠카사 양은 츠쿠요 양에게 기억을 전해 준다. 사소한 것까지 전부, 필사적으로. 츠쿠요 양은 그 기억을 전해 들으면 다시 상냥함의 색깔을 입혀서 츠카사 양에게 전해 준다. 그럼 츠카사 양은 그 상냥함을 배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어려움을 극복시켜 나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 어쩌면...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처음부터 큐베의 소원이나 도플 같은 게 필요하기는 했을까?


"두 사람, 아직 해방을 원하나요? 마녀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도플에 의지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마녀가 되어서 서로를 잃는 건 원하지 않지만, 도플이 된다 해도 서로를 점점 잃어 가는 것은 마찬가지이옵니다. 저도 도플 때문에 미후유 선배님을 향한 소녀의 마음을 또 잊고 싶진 않사옵니다..."


"...우리 처음에 마기우스의 날개 들어왔을 때, 츠쿠요쨩이 분명 그렇게 얘기했었어요. 물론 마녀도 무섭지만, 미후유 님이 무서워하시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함께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미후유 님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든지 늘 함께하자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소녀는 앞으로도 그 결심 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저도 그때 그렇게 의기투합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럴 거예요...!"


자매가 내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서로를 위하는 것.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행복이었다.


"정말... 기뻐요. 항상 서로를 위하는 미카즈키장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가 똑같은 걸 받고 있네요..."


*


  받지 않은 전화 3건이 있습니다.

  알리나 선배 - 01:37 PM


"으으... 우으으... 왜, 왜 이러는 거야..."


카린은 지금 자기 방 침대 속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있었다. 정말이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가뜩이나 알리나 쪽에서 카린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전화를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받는다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아니, 이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할 만한 제3자가 있기나 할까. 마법소녀라니, 마기우스의 날개라니, 대체 누가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듣겠어.


얘들아 저기 있잖아... 미운 건 아닌데 전화하기는 싫은 사람한테서 전화 오면 어떡해? - 01:28 PM


뭐야 카린쨩 ㅋㅋㅋ 그거 그냥 미운거자나 ㅋㅋㅋㅋ - 01:28 PM


야 나 진지해ㅠㅠㅠㅠ 안받았더니 이사람 아까 또 전화했어... - 01:30 PM


와 대박 ㄷㄷ 그거 무슨 스토커 이런거 아냐??? 자꾸 너 쫓아다니는 남자 있어? ㄷㄷㄷㄷㄷ - 01:31 PM


남자는 아니구... 일단 아는 선밴데;;; 선배한테 약간 실망?한 게 있어가지구ㅠㅠㅠㅠ - 01:32 PM


아 진짜??! 뭐 비밀 같은거 알아버린 거야?! - 01:34 PM


좀 비슷해ㅋㅋㅋ큐ㅠㅠㅠㅠ 근데 가볍게 넘기긴 좀 힘든 일이라서;;; - 01:34 PM


혹시 그거 너네 만화연구부 선배 얘기야? 그사람 뭐 사고쳤어? ㄷㄷ - 01:36 PM


와 ㄷㄷㄷㄷ 근데 그사람이면 뭐든간에 사고칠 거 같은데? 막 예술 한다면서 ㄷㄷㄷ - 01:38 PM


아 또 전화왔다...ㅠㅠㅠㅠ 근데 진짜 왜 그랬던 거야... 나쁜 사람 아니라고 믿고있었는데;; - 01:38 PM


그사람 맞네 ㄷㄷㄷ 카린쨩, 그사람 나쁜사람 아니라고 엄청 커버쳐 주지 않았어? - 01:39 PM


카린이 지금까지 지켜봐 왔던 알리나는, 자신만의 희로애락을 갖고 있는 평범한 언니. 배고플 때는 배고파하고, 졸릴 때는 꾸벅꾸벅 졸고, 종종 화장실도 다녀오고, 재밌으면 웃고, 지루하면 하품하고, 컨디션 좋을 때는 흥얼거리는 사람. 아무에게도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그저 그 재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그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캔버스 내에서까지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울면서 캔버스를 찢어버리던 사람.


카린이 알고 있는 알리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 그렇기에 그냥 둘 수 없는 사람. 그렇기에 소중한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는, 바로 그런 얘기였다. 알리나 선배가 나쁜 짓을 안 한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인 거야.


근데 카린쨩도 식겁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사고를 친 거야, 그 사람은... - 01:40 PM


대화방에 말풍선 하나가 새로 떠올랐다.


생각이 조금 정리되었다. 지금의 나는, 알리나 선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그래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알리나 선배의 처지는, 결국 내가 얘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전화는 받아야 한다...


아무리 큰 문제더라도, 역시 들어봐야겠어. 알리나 선배는 나한테는 ㅅ


자판을 입력하던 그때 다시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알리나 선배. 카린이 이불 속에서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통화 버튼 위로 손가락이 스쳤다.


"...선배."


카린...! 연락하기 참 힘듭니다만...! 아무튼 잘 들어. Emergency.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오늘 밤은 카미하마 밖에서─


"선배... 우리 잠깐 만나서 얘기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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