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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비가 내렸다.


축축한 우울함이 집안을 감쌌다.


“내일이네”

“내일이지”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늦었지만, 병원에 가보기로 했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겠으니, 먼저 자고 있으렴. 가게와 집은 맡길 테니, 잘 부탁할게.]

[덧 : 일주일이 지나도 내가 안 돌아오면 서랍장에 검은색 노트를 안나와 함께 읽어보렴. 그전에는 열지 말고.]


우리 둘 앞에는 편지 한 장

그리고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검은 노트 한 권이 놓여있었다.


자세히 보면 표지를 검게 칠해서 위에 뭐가 적혀 있는지 못 알아보게 만든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안 돌아오면] 이니까, 딱 일주일째인 오늘이 아니라 내일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


"저기… 너는 이 안에 뭐가 적혀있을 거 같아?"

"난 우리에게 보낸 편지 아닐까 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비밀 같은 거 적혀있지 않을까? 넌 뭐라고 생각해?"

"아마… 일기 같은 거 아닐까? 언니 우리에게 과거 이야기는 거의 안 했잖아."

"그쪽도 일리 있네."


또 잠시 침묵


“하, 어제만 해도 안에 뭐가 적혀있을지 궁금해서 짜증 났었는데, 정작 이렇게 되니… 아니 궁금한 건 궁금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무서웠다.

이걸 열면 정말 모든 게 끝날까 봐.

안나도 나랑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듯했다.


“내일은, 가능한 한 늦게 와줘...”


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미루는 것은 오늘이 한계니까.





뜬눈으로 지새운 밤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는 아침까지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집안에 나밖에 없다고 해도 난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래 언제나처럼 청소를 하자.


청소하고, 식사하고.


오늘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청소해볼까.


아, 마법 훈련을 더 해보는 것도 좋겠지.


아저씨와 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척비척 걸어간다.


지나가다 보면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인간이 아니니깐. 당신들의 호의 따위 필요 없어.


어차피 감각 따위 차단해 놨으니, 차갑지도 않은걸.


빗물에 품속에 든 상자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는 저녁이었다.

밖이 어두워져 갈수록 내 마음도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때, 덜컹거리는 문소리가 1층에서 들려왔다.


손님이신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가려던 때였다.


철컥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설마… 소피 언니!”


돌아온 거야!

기쁜 마음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뛰어나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어디서 뭘 하고 계셨는지부터 울면서 따질 거야!


그럼 곤란하다는 듯 미안하다고 해주시겠지?

늦었지만 점심을 해달라고할까?

아저씨는 괜찮으실까?


"다녀오셨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소피 언니가 완전히 푹 젖은 채로 서서 계셨다. 눈가는 피곤한지 퀭했고, 옷도 군데군데 흙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헉! 언니! 지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려가던 발을 멈추고 다시 한번 우당탕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 수건을 찾아 가져왔다.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 푹 젖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요! 빨리 물기를 닦으세요! 갈아입을 옷도 가져다드릴게요!”


하려고 했던 말이라던가 이것저것 많았지만, 언니를 보니 그런 말들은 전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일단 돌아오셨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아 그렇지!

바로 안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안나! 들려? 소피 언니가 돌아오셨어!]

[뭐? 진짜?! 잠깐만 기다려, 가능한 한 빨리 갈게!]





“아니, 진짜로 엄청나게 걱정했다고요! 이 근처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고, 어디서 뭘 하다 오신 거예요?”


“그냥, 좀 멀리 여행 좀 갔다 왔어.”


“아무 말도 없이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생각을 정리해야 했거든. 이것저것.”


“아, 아저씨는 어떻게 되셨어요? 일어나셨다면서요! 어떻게 된 거예요?”


“......”



째깍째깍 째깍째깍…



“저… 언니?”


"노트는 아직 안 본 모양이구나."


"아, 네 이거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응, 맞아."



부우욱!



"그, 그걸 왜 찢으세요!?"


“미안, 거짓말 좀 했어.”


“...네?”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는지 물어봤지?"


"네…"


"흐읍… 하아……"





째깍째깍 째깍째깍...





“돌아가셨어."


"어, 어? 그러니까… 네?"


"돌아가셨다고……. 하, 다시 말해줄까? 돌아가셨다고…”


언니는 팔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선 허무한 웃음소리를 냈다. 마치 울음소리와도 같은…


“다 끝나버렸다고…”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 저 상태라는 거지?”


안나의 속삭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안나는 다시금 언니를 슬쩍 쳐다봤다.


언니는 우리에게 등 돌린 채, 탁자 위에서 머리를 부여잡은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는 대략 소울젬 두, 세 개 정도 들어갈 법한 작은 상자가 놓여있었다.


“저 상자 뭔지 알아?”


“나도 몰라, 언니가 들고 오셨는데, 못 만지게 하셔…”


"그럼 노트 조각이라도 남은 거 있어?"


"언니가 다 찢고 불태워 버려서 없어."


"쳇, 진작에 볼걸."


"얘들아. 그리프시드 남은 거 있니?"


"네. 하나 드릴게요."


내 손가방에서 그리프시드를 하나 꺼내다 드릴 때, 슬쩍 이지만 언니의 품속에 소울젬을 볼 수 있었는데, 원래의 노란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언니의 소울젬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대마녀 같은 거라도 나타난 거예요!?”


 "시드부터."


이젠 거의 검은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저걸 정화하는 게 가능한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괜한 걱정이었다.

그리프시드에 가져다 댄 소울젬이 깨끗해지자, 언니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녀는 사람의 부정한 감정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했지? 반대로 마녀와 싸우는 마법소녀는 부정한 감정이 커질수록 약해지거든, 그래서 소울젬의 소모가 커져서 가만히 있어도 상태가 나빠지기도 하는 거야."


"뭐야 그 이야기는! 나한테도 안 알려줬으면서!"


"안 물어봤잖아?"


"아악!"


한쪽 구석에서 안나가 자신이 화났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언니가 피식하고 웃으셨다.


"언니, 지금은 좀 괜찮아진 건가요?"


"... 아니.”


언니는 갑자기 다 쓴 그리프시드를 방에 어두운 구석에 휙 하고 던졌다.

하지만,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 참, 혹시나 했지만, 넌 빈틈을 보이지 않는구나.”


“위험하긴 했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큐베가 몸을 드러냈다.

아마도 던져진 그리프시드를 회수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쓸데없는 말 말고. 꺼져.”


“... 그래, 그럼 안나, 메어리. 나중에 봐.”


그리고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도 무언가 말을 꺼내기 힘들어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창밖은 어느새 비가 그쳐있었고, 완전히 밤이 되어있었다.


소피 언니는 우리를 그리고 창밖을 연이어보더니


“후…”


하고 깊은숨을 내쉬고선, 상자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 난 가봐야 할 거 같아.”


“뭐?! 갑자기 왜?!”


“이 집은 메어리 네가 알아서 하렴. 이것저것 절차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집으로 삼아도 괜찮아.”


“아니, 언니, 잠시만요.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도!”


“사실 이곳에 돌아온 것도, 그 노트를 처리하기 위해서였어. 이런 식으로 헤어지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필요한 건 대부분 알려줬어. 이제는 너희들만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날 잊고 너희들끼리 지내길 바라. 주변의 마법소녀들과 만나서 구역을 다시 나눠도 좋겠지.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자기 할 말만 말하지 마!”


“그리고 큐베를 너무 믿지 마. 그러면 잘 있어.”


타닥, 소리와 함께 소피 언니는 매우 크게 도약하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언니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쫓아가야지!”

“맞아, 이러다가 놓치겠어. 빨리 가자!”


아직 의문은 많이 남지만, 일단 쫓아가기로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무 빨라…


[무슨 일인지 말 좀 해줘!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나는 언니와 처음 만났던 그 날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전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좁혀지기는커녕 어느 순간, 언니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헉, 헉 이 씨 너무 빠르잖아. 진짜…”


“이대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겠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아니, 아무리 우리랑 경력부터 차이가 크다고 해도, 나름 동료잖아!? 자신의 사정 이야기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정말로 언니가 원망스러웠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우리가 언니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언니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언니를 놓칠 수는 없는데…



아니, 하나 있었다.


“저기, 안나. 나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는데…”





둘의 인기척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겨우 아이들을 따돌렸구나.


괜히 감성적으로 되었다가 일을 그르칠 뻔했다.

그 사이에 정이 붙은 걸까.


“하…”


작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그럴 줄 알고 행동한 것이 아닌가.

5년 동안의 결심이었고, 이날이 올 것을,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난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주렴.’


아니, 자신의 아버지가 더 잘 알고 계셨을지도…


상념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마구 휘젓는다.

여기까지 와서 무서울 것이 뭐가 있을까.


이제 미련 따위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미련 때문에 집에 가본 것이었잖아?


자신의 마지막으로 정한 그 장소에 도착했다.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작은 교회.

다만, 워낙 작은 곳이라, 밤중에는 사람이 없어 음산한 곳이지만,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 묘지기와는 아는 사이니깐, 마무리는 잘해주시겠지.


품속에 고이 간직해둔 상자를 열어보면, 하나의 그리프시드가 고이 모셔져 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마지막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자신의 소울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그리프시드를 내려놓는다.

자신의 초승달 모양의 소울젬 안쪽에, 그녀의 그리프시드가 놓였다.


서서히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내려쳐 내려치는 거야 그거면 끝나는 거야.

왜? 이제 와서 무서운 거야? 미련이라도 남아버린 거야?


살고 싶어진거야?


내 소울젬에 벌써 어두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살짝 웃음이 나와버렸다.


누가 뭐래도 영혼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거구나.


그래, 간단한 일이잖아?

아프지도 않고 깔끔하게 끝날 거야.


자 이렇게, 목표를 잡고


내리쳐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