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덜커덩 꺄악!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하는 커다란 소리였다. 프린츠 오이겐은 왜 그런 소리가 숙소 쪽 복도로부터 들렸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발을 옮겼다. 뭔가 비명 소리도 굉장히 친숙한 사람의 것이었고.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진 어드미럴 히퍼가 있었다. 사다리도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으로 봐선, 약간의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오이겐은 히퍼를 일으켜 세워주면서도 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히퍼, 더 조심해야지. 넌 떨어질 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아플 것 같은데.”


“오이겐, 너어…”


“어머, 실례. 그런데 언니께선 어쩌다 이런 곳까지 오셨던 걸까…아하, 저것 때문이구나?”


오이겐은 전원이 나간 전등을 보며 수긍했다. 그저껜가부터 고장났었던 것 같은데.


“만쥬들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하아!? 안 그래도 부탁하려 했는데, 다들 바빠 보였을 뿐이거든!?”


“후후, 그랬구나?”


오이겐은 사다리를 도로 세워 주었다. 히퍼는 투덜투덜,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면서도 사다리를 올라갔다. 전등을 고치는 건 금방이었다.


“흥! 이런 일, 만쥬들이 바쁘지만 않았어도 할 생각조차 안 했어.”


“곧 메탈 블러드의 유서 깊은 축제니까 말이야.”


메탈 블러드의 영혼이 무엇인가. 맥주와 소시지다. 곧 그것을 위한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만쥬들이 바쁜 것도 그 준비 때문이었다.


“그런데 히퍼, 축제에 같이 갈 사람은 정했을까?”


“뭐어!? 왜 꼭 누구랑 같이 갈 거라 생각하는 건데!?”


너무 알기 쉽단 말야. 오이겐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도 나름대로 즐길 수 있지만, 나도 이번엔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말이야.”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눈짓을 주었다. 히퍼는 눈끝이 곤두선 채 이를 악물었다.


“하아!?”


오이겐이 이 모항에 착임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히퍼가 있었던 기간에 비하면 한참 짧았지만, 오이겐은 그 특유의 성격으로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무슨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도, 어쨌건 히퍼는 조금은 불만이었다. 바보가 헤실거리긴! 분명 오이겐 녀석은 지휘관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고 있는 것이 뻔했다.


‘흥, 신경 끌 테다.’


지휘관이 누구랑 같이 축제를 가려고 하던. 히퍼는 아직 일이 몇 개 더 남아 있었다. 비서함 역할은 어쨌거나 바쁜 것이다. 이번에 메탈 블러드의 아이도 새로 착임한다고 들었고. 마중도 나가야지.


 


“언니!”


히퍼는 깜짝 놀랐다. 친숙한 목소리다. 저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블뤼허!?”


블뤼허는 거의 돌진하듯이 히퍼에게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버텨낸 히퍼는 어색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언니! 보고 싶었어! 냐하☆”


“여전하구나. 블뤼허, 착임할 거라면 미리 말해주지.”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그랬어! 언니, 깜짝 놀랐어?”


“응, 정말로. 그래도 잘 왔어, 블뤼허.”


“응!”


블뤼허는 지휘관이라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겠다며 집무실을 물어봤다. 히퍼는 블뤼허도 알아볼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줬다. 설마 이상한 거에 정신이 팔려서 길을 잃어버리진…않았으면 좋겠다. 어쨌건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니까.


 “으음…블뤼허, 입었던 옷이 꽤 오래된 것 같았지…”


히퍼는 숙소로 돌아갔다. 자기 옷을 좀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도 추워질 것 같으니 따뜻한 옷으로 골라줘야지.




“어머, 히퍼. 숙소에 돌아와 있었네?”


“오이겐, 블뤼허는 만났어? 착임했다고 집무실로 뛰쳐들어간 것 같던데.”


오이겐은 멋쩍게 미소지었다.


“으음, 아직 만나진 못했는데. 그래서 네가 옷을 정리하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기껏 착임한 김에 새 옷을 사줘도 되지 않아?”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블뤼허가 ‘히퍼 언니 옷이 좋아!’라고 말하는 바람에...하, 하나도 기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그 여유 넘치던 오이겐도 이번만큼은 약간 휘청였다. 이 무슨 순수한 사랑인가.


“그런데 결국 히퍼, 과연 축제에 갈 사람은 정했을까?”


“축제고 나발이고 하루 종일 업무에 끌려다녔거든? 방금 겨우 숙소로 돌아온 거란 말야.”


“고생 많네. 그렇지만 설마 축제에 혼자 나타날 생각은 아니겠지? 우후후...”


“나가!”


오이겐은 순순히 방을 나갔다. 히퍼는 씩씩댔다. 오이겐 녀석, 대체 뭘 원하는 거야?


“히퍼 언니, 나 갔다 왔어!”


오늘은 참 손님이 많네...그렇지만 히퍼는 정리한 옷을 한아름 들고 문을 열었다. 블뤼허가 눈을 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이랑 인사는 했어?”


“응!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블뤼허, 지휘관이 정말 좋아!”


“그래...그래도 조심해야 해,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이상한 사람이니까.”


“응! 블뤼허, 언니 말대로 조심할게!”


“아니,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닌데...아무튼 이거, 블뤼허 너, 분명 옷도 많이 안 챙겨왔을 것 같아서.”


블뤼허는 다시 눈을 반짝였다.


“히퍼 언니, 정말 좋아!”


“너, 너무 달라붙지 마...!”


역시, 귀여운 동생이다. 히퍼는 자신을 있는 힘껏 끌어안는 블뤼허를 보며 생각했다.


 


다음 날도 히퍼는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아니, 정확히는 바쁜 일을 자처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방치된 채로 있으면 괜히 불편해진다. 늘 해오던 일이라 그런가. 점심쯤 되자 벌써 먼지투성이가 된 모습이었다.


“하아...이걸로 겨우 이쪽 업무는 마무리된건가...”


그런데도,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 정말, 다들 축제 분위기라고 너무 들뜬 것이 뻔했다.


“다음은 이쪽인가아, 안 쓰는 강당이라...”


히퍼는 강당 안쪽에서 익숙한 물건을 꺼냈다. 몇 년 전, 연주했던 기타가 있었다. 이런 곳에 있었구나. 그 때는 모항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믿음직스러운 곳도 아니었다.


“그 때도 정말 힘들었는데 말이야...어떻게 여기는 여전하담.”


할 일은 여전히 많고, 눈을 돌리면 사방이 못미더워서 어딘가 불안해져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그 동안 지휘관 그 녀석도 꽤나 요령이 생겼고, 조금은 의지할 정도는 되었다.


갑자기 그 때 기억이 난 히퍼는 자리에 앉아 기타를 튕겼다. 정말 연습은 열심히 했었는데. 여전히 연주하는 법이 기억이 난다.


기타를 연주하다 보니, 폴라리스 때가 기억이 난다. 협력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때는 재미있었지.


“어머, 어디서 연주 소리가 들리나 했는데. 언니께선 이런 구석에서 뭘 하고 있을까?”


“깜짝이야! 오, 오이겐!?”


“우리 언니께선 여기서 뭘 하고 계실까? 바깥은 축제 분위기인데 말야.”


“신경 꺼! 너야말로 그 같이 가려는 사람이랑 가지 그래? 블뤼허도 꽤나 지휘관이 마음에 든 것 같았는데 말야?”


“...지휘관?”


오이겐은 잠깐 말을 흐리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겨우 웃음을 멈춘 오이겐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지휘관? 내가 설마 지휘관이랑 같이 축제에 가려는 줄 알았어? 어쩐지, 왜 요새 업무에 시달리는가 했더니. 일부러 피하고 있을 줄이야. 우리 언니를 어떻게 밀어줘야 한담.”


“하아!?”


“나는 진작에 퇴짜맞았어. 듣자하니 이미 같이 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정말 고마운 사람인데 너무 바빠서 그런지 아직 권유도 못 했다던데.”


오이겐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대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히퍼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강당을 빠져나왔다. 쟤는 무슨 말을 하는 거람.


“히퍼 언니!!”


블뤼허였다. 거의 울상이 된 표정으로 히퍼에게 달려든 블뤼허가 말했다.


“지휘관이, 지휘관이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어! 블뤼허, 충격...”


“뭐어!? 그 자식, 복에 겨운 줄 알아야...”


“지휘관, 블뤼허의 마음은 고맙지만...이미 같이 가려고 했던 상대가 있다면서...그러면서 히퍼 언니가 어디 있는지 묻더라고. 그래서 같이 왔어!”


어떻게 찾은 건지는 묻지 말자. 블뤼허의 후각 비슷한 뭔가로 찾은 거겠지.


“그런데, 같이 왔다고?”


“응! 저기 와!”


블뤼허는 다시 냐하 하는 웃음과 함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휘관은 어색한 미소를 띈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찾을 줄은...히퍼, 들었어...?”


“하아!?”


“사실 이 때 말고 더 좋은 때 권유하고 싶었는데, 히퍼 네가 너무 바빠 보여서 말이야. 들었어, 모항 일을 챙기느라 엄청 바쁘게 돌아다녔다며. 오이겐이 말해주더라.”


“하아!? 비서함으로써 당연한 일을 한 거 뿐이거든?”


“그렇지만 말야. 그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 그래서 히퍼 네가 정말 좋아. 그러니까...나랑 같이 이번 축제를 즐기지 않을래?”


“우와아아...지휘관의 대사, 엄청 두근거렸어...”


“하아아아!? 바보 아냐? 너, 너...!”


히퍼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그건 지휘관도 마찬가지였다. 히퍼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바, 바보 같은 말이야...!”


“긍정으로 봐도 될까?”


“싫다고는...한 마디도 안 했어! 그럼 말이야, 축제에서 제대로 에스코트 하란 말이야!”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이겐이 중얼거렸다.


“어련하시겠어.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잘 하는 짓이라니까.”


지휘관을 슬쩍 떠 보길 잘 했지. 오이겐은 아쉬운 듯 자리를 떴다.


“그럼, 우리도 축제에 갈까. 웨일즈, 준비됐어?”


“아쉽지는 않나?”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동생 된 입장에서 가끔은 언니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법이거든.”


축제는 오늘 밤이다. 아마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축제 시간이 되었다. 블뤼허는 벌써 맥주를 두세잔 비운 모습이었다. 웨일즈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오이겐은 오늘만큼은 언니를 위해 양보할 의향이 있었다.


“오이겐, 블뤼허 차였어~! 전혀 냐하 하지 않아아...!”


“저런...블뤼허, 조금 많이 마신 것 같네. 괜찮은 거야?”


“블뤼허 다시 지휘관한테 데이트 신청하러 갈래애!”


“오늘은 동생들끼리 즐기자구. 블뤼허도 히퍼가 행복했으면 좋겠지?”


“그치만...”


“저기 우리 언니의 모습이 보이는걸. 봐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지휘관과 함께 주인공이 되어 연주 아래서 입을 맞추고 있는 히퍼였다. 취기 탓일까, 그렇지만 취기는 고작해야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도운 역할밖에 못 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사람들은 귀엽다니까.”


“냐하, 블뤼허 말이야?”


“아냐, 블뤼허는 사랑스럽지.”




==============================


우리 모항엔 블뤼허가 없어

그리고 히퍼는 귀여운 게 맞음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