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미군 태평양 함대의 기지인 진주만은 공습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을 한번 더 했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군은 진주만 공습 직후인 12월 17일 잠수함 이-7의 수상기를 통해 하와이 일대를 정찰하였다


이듬해인 1942년 1월 5일에도 잠수함 이-19의 수상기를 통해 재차 정찰하였다


이러한 정찰활동을 통해 미군이 진주만 복구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에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습하여 미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른바 K작전을 입안한다


1월 17일 이 작전은 남태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항공대 사령부에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진주만 공습을 위해 2대의 2식 대정이 준비되었다


일본군은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군의 경계가 강화되었고 


때문에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야간공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한 각종 항법장치들을 실을 만큼 거대한 크기를 지닌 것은 2식 대정 밖에 없었다


2월 12일 하츠시메 토시조 대위가 조종하는 1번기와 사소 다키노유 소위가 조종하는 2번기가 요코스카를 출발했다


14일 마샬 제도의 얄루이트 환초에 도착했으나 미군의 기동함대가 웨이크 섬을 공습해 작전은 연기되었다


3월 2일 작전이 재개되어 2식 대정은 우오체 환초로 이동하였고 4일 진주만 공습을 위해 출격하였다


그날 밤 오후 9시 이들 2식 대정은 하와이 오하우 섬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한편 미군은 레이더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접근해 오는 것을 알았고


곧바로 공습경보와 함께 요격기들을 보냈다


운이 좋게도 2식 대정들은 요격기들을 만나지 않고 성공적으로 폭격 임무를 완수한다


문제는 폭격은 성공했지만 미군에 입힌 피해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폭격 당시 하와이 상공은 구름이 껴서 시계가 불량한데다 등하관제까지 실시된 상태라


2식 대정들은 아무데나 폭탄을 떨구었기 때문이다 


한편 3월 10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하츠시메 대위기가 미군의 와일드캣 전투기에 격추되었고


이는 2식 대정의 첫 피해 사례로 남아있다